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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221화 (221/300)

221화. 방주가 다시 나타남 (2)

촤아악 ― !

“흐어어업……!”

별안간 퍼부어진 찬물에 절로 헛숨이 들이켜졌다.

“허억… 허억… 허억……!”

살을 에는 듯한 찬물에 정신이 번쩍 든 드미트리가 거친 호흡을 반복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분명 오랜만에 S급 던전 하나를 토벌하고, 시베리아 숲을 벗어나던 길이었는데…….

‘…아!’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던 토끼 탈을 쓴 남자.

그자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순간 눈앞이 암전되었던 것까지.

상황이 파악된 드미트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깜깜한 암실.

눈을 떴음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 여긴 어디야!”

드미트리가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버둥버둥.

어떤 기둥에 묶여 있는 듯 다리는 땅에 닿지 않았고,

꽈아아아악……!

몸을 칭칭 묶고 있는 밧줄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이익……!”

드미트리는 밧줄을 뜯어내기 위해 마력을 사용했다.

아니, 사용하려 했다.

피이이이잉……!

“…어?”

마력을 사용하는 순간 느껴지는 탈력감.

온몸에 힘이 쑥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에 순간 그의 고개가 바닥으로 툭 떨구어졌다 다시 솟아올랐다.

‘이, 이건?’

마력을 사용하는 순간 마력을 모두 어딘가로 빼앗기는 듯한 이 느낌.

헌터에게 이런 느낌이 들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제마액.

헌터의 힘의 근간을 없애버리는 무시무시한 액체.

드미트리는 직감적으로 그 제마액이 자신의 몸속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드미트리의 두 눈이 뒤집어졌다.

감히 세계급 헌터인 자신의 몸속에 제마액을 집어넣다니.

누군지는 몰라도 곱게 죽이지는 않으리라.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그가 뭐라고 노호성을 토해내려는 그때,

촤아아악 ― !

어둠 속에서 그를 향해 찬물 세례가 한 번 더 퍼부어졌다.

“어푸푸! 크아악! 어떤 새끼야! 너 누구야아아!”

고개를 마구 저으며 찬물을 털어낸 드미트리가 어둠 속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 정신이 들었었나? 미안하군.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어둠 속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칙 ―

어둠 속에서 불빛이 반짝거렸다.

라이터의 불빛이었다.

화륵 ―

촛불 하나에 불을 붙이는 남자.

터벅 ―

그는 촛불을 들고 기둥에 묶여 있는 드미트리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뭐 납치한 주제에 이러는 것도 웃기지만… 일단 내 소개를 하지.”

촛불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밝히자,

“……!”

그의 얼굴에 씌워진 하얀 토끼 탈이 드러났다.

“노아즈 아크 최후의 방주 중 하나, 토끼의 방주라고 한다.”

* * *

파르르 ―

드미트리의 입술이 살짝 떨려왔다.

추워서?

아니, 아무리 마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들 세계급 헌터의 신체는 추위나 더위 정도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럼 어째서인가?

번뜩!

공포.

지금 이 순간 드미트리의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오로지 공포였다.

토끼 탈 뒤에 비친 토끼의 방주라는 남자의 두 눈이,

사아아아아아 ―

마치 사신의 그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내가 두려움을 느낀다고……?’

드미트리가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 공포심을 느낀 적은 딱 세 번뿐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왕룽과 제이슨을 만났을 때.

세 번째는 바로 코드 제로를 만났을 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덜덜덜……!

네 번째가 되었다.

“내, 내게 뭘 원하는 거냐……!”

드미트리의 턱이 덜덜 떨렸다.

그와 눈을 마주한 것만으로 날카로운 사신의 낫이 목에 드리워진 듯한 착각이 일고 있었던 탓이었다.

“원하는 것?”

그러나 토끼의 방주, 푸르바는 오히려 드미트리의 질문에 의문을 띄웠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툭 ―

푸르바의 차가운 손가락이 드미트리의 이마를 건드렸다.

“역으로 질문하겠다.”

푸르바의 섬뜩한 두 눈이 드미트리의 폐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너는 지금 만족하는가?”

“……!”

드미트리의 두 동공이 크게 떨렸다.

예상치 못한 역질문이었으니까.

다짜고짜 납치해와서는 묻는 말이 만족하냐니?

그러나 푸르바의 다음 질문을 듣는 순간, 드미트리의 두 눈이 착 가라앉았다.

“지금 세계가 흐르고 있는 꼬라지가 마음에 드냐는 말이다.”

푸르바가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드미트리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노아즈 아크는… 코드 제로에 의해 괴멸 직전까지 몰렸었지.’

그들의 입장에서는 코드 제로를 위시한 한국이 세계의 흐름을 쥐고 주도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을 터.

대체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세계에 한국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러니 지금껏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한국… 아니, 코드 제로를 끌어내리려 하는 건가?”

“…….”

드미트리의 물음에 푸르바는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끌어내린다? 아니지.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어. 우리는 코드 제로를 죽일 거다. 물론 한국도 포함해서 말이야.”

“……!”

드미트리의 두 눈이 다시 한차례 흔들렸다.

노아즈 아크의 잔당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드미트리의 입가에 조소가 머금어졌다.

“…미쳤군. 너희 노아즈 아크의 방주들이 코드 제로를 죽이려다 어떤 꼴을 당했는지 잊은 건가? 중국은 어떻고? 코드 제로와 한국을 없애려던 이들은 모두 괴멸 직전까지 역으로 당했어. 중국은 서서히 회복하는 중이지만 사실상 한국의 속국이 되었고, 너희 노아즈 아크는 코드 제로의 눈을 피해 꽁꽁 숨어 있는 꼴 아닌가? 그런데 코드 제로와 한국을 없애? 완전했던 노아즈 아크도 하지 못한 일을 너희 잔당만으로?”

드미트리의 조소 어린 비아냥이 쏟아졌다.

“크큭… 꽤나 용기 있는데? 이런 상항에도 그런 말을 하다니 말이야.”

콰악!

푸르바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기둥에 묶인 드미트리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헉……!”

목이 졸린 드미트리가 신음 소리를 토해냈다.

“몇 가지 정정해주지.”

푸르바는 한 손으로 드미트리의 목을 움켜쥔 채 그의 눈앞에 손가락 3개를 펴 들어 보였다.

“첫째, 우리는 코드 제로가 무서워서 숨은 것이 아니다. 기껏 늘려놓은 조직원들의 수를 지키기 위함이었을 뿐.”

그의 손가락 하나가 접혔다.

“둘째, 하와이 전투를 말하나 본데, 방주들의 공격은 완전하지 않았다. 십이 방주 중 두 명이나 빠져 있었던 데다가 겁쟁이 하나가 도망치는 바람에 사실상 9대 1이나 마찬가지였어.”

그의 손가락 하나가 더 접혔다.

푸르바는 마지막으로 남은 검지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는 잔당이 아니다. 본대지.”

“커헉… 개소리… 그래봐야 남은 방주는 몇 없지 않은가……!”

드미트리의 발악에 푸르바는 킥킥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코드 제로가 세간에 알린 노아즈 아크에 대한 정보 중 그것 하나는 빠져 있더군.”

드미트리의 두 눈을 정면으로 마주친 푸르바의 두 눈이 호선을 그렸다.

“노아즈 아크의 수장은 우리 방주들이 아니야.”

“……!”

“노아즈 아크의 수장은… 그 이름 그대로 ‘노아신’ 님이시다.”

“노, 노아신?”

푸르바의 잇새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십이 방주? 우리야 곁다리밖에 안 되는 존재들이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듯한 푸르바의 눈빛이 살짝 흐려지기 시작했다.

“노아즈 아크 그 자체, 십이 방주를 포함한 조직원 전원을 한순간에 제압하실 수 있는 절대자.”

일렁 ―

가면 속 푸르바의 두 눈에 광기가 일렁였다.

“그런 분이 바로 우리의 신, 노아신 님이시다.”

* * *

드미트리는 푸르바에게 설득당했다.

광기 어린 푸르바의 행동이 무서운 것도 있었지만,

“방주 몇 명을 상대하는 데 고전한 코드 제로 따위, 노아신께서 나선다면 즉살이다.”

노아신이란 자에 대한 푸르바의 절대적인 신뢰가 한몫했다.

‘정말로… 코드 제로만 없앨 수 있다면……!’

푸르바에게 납치되기 전부터, 애초에 코드 제로와 한국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드미트리였다.

그런데 코드 제로를 처리해준다?

‘그럼 한국 따위는……!’

코드 제로가 없는 한국은 이빨 빠진 호랑이이며 여의주 없는 용과도 같았다.

비록 새로이 탄생한 세계급 두 명이 있긴 했지만 단지 그뿐.

그 외에는 전체적으로 고위 헌터 수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부족한 한국은 세계를 주도할 힘이 부족해질 터였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우리와 함께한다면 너를 방주로 임명해주지. 그럼 노아신께서 커다란 권능을 하사하실 것이다.”

“……!”

노아신이 내려준다는 권능이라는 힘이 가장 혹하는 점이었다.

‘제이슨… 왕룽……!’

그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던 두 사람.

두 사람에게서는 뭐라 항거할 수 없는 커다란 힘이 느껴졌었다.

무엇보다 코드 제로와의 전투에서 보여주었던 모습들.

왕룽은 괴수들을 소환했고, 제이슨은 번개를 다뤘다.

본인의 고유 능력이 아닌 능력을 말이다.

‘나도 좀 더 좋은 능력이 하나만 더 있으면……!’

고유 능력 ‘불곰’의 동물형 능력자, 드미트리.

그는 자신의 능력이 동물형인 것에 대해 언제나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느, 능력은 내가 고를 수 있나?”

“아니. 하지만 신의 힘이다. 뭘 상상하든 네 생각보다 더 커다란 힘일 테지.”

그런데 무려 신의 힘을 준다고 한다.

세계급에 오르며 성장한계에 부딪혀 힘을 갈망하던 드미트리로서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다른 6명의 세계급 헌터들은 이미 힘을 받고 대기 중이다. 남은 건 너 하나야.”

심지어 다른 세계급 놈들도 이미 힘을 받은 뒤라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드미트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일말의 죄책감마저 사라졌다.

“좋다. 함께하지.”

“잘 생각했다.”

서걱 ― !

드미트리의 수락과 함께 드미트리를 묶고 있던 밧줄이 잘렸다.

“곧 노아신께서 오실 것이다. 권능을 하사받으면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 명령에 대기해라.”

“호, 혹시… 내가 할 일이 뭔지 미리 알 수 있…나?”

드미트리의 물음에 푸르바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상관없겠지. 아마 너는 한국에 잠입하여 리바이브 생산시설을 모두 파괴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하,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다.”

“…말해라.”

드미트리의 연이은 질문에도 푸르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편이 되기로 하자마자 꽤나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푸르바였다.

“너희들… 아니, 노아즈 아크는 이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굳이 다른 세계급 헌터들을 모으는 거지?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실 남은 방주들과 노아신… 님만으로도 코드 제로와 한국을 지울 수 있는 것 아닌가?”

“…….”

푸르바가 드미트리를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피식 ―

웃음을 흘렸다.

“그야 당연히 시시하니까.”

“……?”

드미트리의 표정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시시하다?

‘…뭐가?’

코드 제로를 죽이는 게?

한국이라는 나라 하나를 지우는 것이?

어느 쪽이든 소름이 돋는 대답이었다.

“코드 제로는… 그냥 죽일 수 없어. 너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코드 제로가 지금까지 한 일들 말이야.”

드미트리는 가만히 끄덕였다.

마치 유토피아를 창조하고자 하는 듯한 코드 제로의 발자취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상태니까.

“그놈의 그 큰 그림을… 하나하나 깨부숴줘야지. 철저하게, 하나하나, 잘근잘근 말이야. 복수라면 응당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려다 보니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려는 거지.”

“……!”

드미트리는 그 표정에서 진심 어린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푸르바가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노아신께서는 정말로 보고 싶어 하시거든.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 찬 놈의 얼굴을 말이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크하하하하하……!”

위치를 알 수 없는 어느 어두운 암실.

광기의 빛이 암실의 어둠을 집어삼켰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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