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224화 (224/300)

224화. 사신이 등장함 (1)

2097년 10월 10일.

미리 검수관들에 의해 안전 검수를 마친 배송물들이 대통령들에게 전달되었다.

“음…? 뭐야 이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는 편지 하나를 펼친 후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편지 안에는 기분 나쁜 문장 한 줄이 떡하니 적혀 있었다.

4일 뒤 당신을 죽이겠다는 영어로 된 문장.

다른 미사여구도 없이, 발신인조차 표시되지 않은 이상한 편지였다.

“…검수관이 실수를 했나보군.”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배송물 중 발신인이 불명할 경우엔 보통 검수관에 의해 자체 처리되기 마련이었다.

대통령은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여러 위험 요소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

그렇기에 혹시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발신이 불분명한 것들은 미리 걸러져서 대통령에게 아예 도달조차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찌익 ― 찌익 ―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그저 이 편지를 검수관의 실수로 치부하며 그저 태연하게 그 ‘암살 예고장’을 찢어버렸다.

아무리 실수로 전달되었다고는 해도 죽인다는 말을 들으면 꽤나 등골이 서늘할 법도 하건만,

찌익 ― 찌익 ―

편지를 찢는 블라디미르의 표정에서는 두려움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질린다, 질려.”

암살 예고?

대통령이 된 뒤로는 거의 매일 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게 암살 예고나 경고였다.

인터넷 댓글에서는 이런 말들을 굉장히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심지어 길을 걸을 때도 경호원들이 있음에도 자신을 죽인다고 난동을 피우는 사람들이 나오곤 했으니까.

아마 이는 전 세계 대통령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애로사항 중 하나가 아닐까.

겨우 편지 하나에 겁을 먹어서는 대통령 노릇도 해나갈 수 없었다.

“비서관.”

“예, 각하.”

블라디미르의 부름에 한쪽에서 대기하던 비서관이 고개를 숙였다.

“배송물에 암살 예고장이 섞여 있었어. 검수관 징계처분 진행해.”

“예, 알겠습니다.”

비서관이 대통령의 명령을 외부에 전달하기 위해 집무실을 나서려는 찰나,

“아, 그리고.”

“예?”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자신이 찢어버린 암살 예고장을 잠시 내려다보다 비서관을 불러세웠다.

“…뭐, 이왕 암살 예고장을 받은 거, 경비를 조금만 더 강화하지. 고위 헌터가 좋겠군. 드미트리 씨는…….”

“죄송합니다만 각하, 드미트리 헌터님은 오늘 아침 던전 토벌을 위해 던전에 들어가셨지 않습니까.”

“아, 그랬지.”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잠시 그 사실을 잊었던 듯 자신의 머리를 툭 쳤다.

바로 어제 2097년 10월 9일.

시베리아에서 측정 불능 던전이 생성되었다.

세계급 헌터인 드미트리가 먼저 조사를 나선 결과, 등급은 최소 S급 최상위이며 EX급 던전일 가능성이 높았다고 했다.

하여 곧바로 세계 7대 헌터를 초청 및 소집했고, 드미트리는 오늘 아침에 막 던전으로 들어간 참이었다.

물론 그 7대 헌터 중 한국의 세계급 헌터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한 나라 안의 던전은 그 나라의 재산이자 소유물과 다름없는 바. 아무리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코스모스라도 알아서 토벌하겠다는 EX급 던전 레이드에 막무가내로 참여할 수는 없었으니까.

“뭐, 하긴… 아무리 대통령 경호 일이라고는 하지만, 세계급 헌터인 드미트리 씨에게 부탁하면 꽤나 기분 나빠했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서관은 현명하게 말을 잘 골랐다.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그런 비서관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장난 같은 암살 예고에 어울려주는 일일 뿐이야. S급 헌터들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겠지. S급 헌터들에게 연락해. 일주일간만 단기 경호를 좀 부탁한다고. 보수는 1회 면책권.”

“각하, 이제 면책권은 사용할 수가…….”

“아… 에이씨, 그랬지 참.”

면책권.

코스모스와 러시아 헌터 협회에 의해 실각된 전 대통령인 이반 대통령이 종종 고위 헌터들에게 부탁의 대가로 뿌리던 무죄 보장 쿠폰 같은 느낌의 권한이었다.

애초에 기소가 되거나 걸리더라도 큰 처벌을 받지 않던 헌터들이었으나 면책권을 사용하면 걸리게 되더라도 수사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 어떤 기록도 남지 않고, 혹시나 언론에 알려지더라도 정부에서 나서서 그 모든 정보를 지우고 검열해주는… 대단한 특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과거엔 종종 이 면책권으로 고위 헌터들을 꾀어내 이용했던 대통령이었으나, 한국 헌터 협회의 힘을 등에 업은 러시아 헌터 협회의 힘이 강해진 뒤로는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우… 한국 때문에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니까…….”

부르르르 ―

행정부 차관이었다가 이반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블라디미르는 한국의 코드 제로를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와이를 습격한 방주들을 홀로 모조리 격살한 그의 무지막지한 힘이, 그를 떠올릴 때마다 러시아의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블라디미르마저 두려움에 몸서리쳐지게 만든 것이었다.

“그럼… 아니, 꼭 뭘 걸어야 해? 나 대통령인데? 그냥 요청하면 안 오나?”

“…S급 헌터들이지 않습니까.”

블라디미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쯧 찼다.

“쯧. 그럼 그냥 A급 헌터 몇 명 불러. 그렇게 전달해.”

“알겠습니다.”

암살 예고장이 왔음에도 최선의 방어를 위해 노력하지 않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대통령.

그렇게 4일이 지나고,

[긴급 속보! 4개국 대통령 간밤에 사망.]

[라트비아, 카자흐스탄, 앙골라, 그리고 러시아까지… 4개국 대통령 별세. 타살 흔적 명확히 드러나.]

러시아를 비롯하여 암살 예고장을 받은 4개국의 대통령들이 모조리 암살되었다.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이탈리아의 베르나르도 대통령이 혀를 쯧쯧 찼다.

러시아를 포함한 4개국 대통령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고 그가 보인 반응이었다.

“대통령 경호가 대체 어떤 상태길래 암살을 허용해?”

“4개국 대통령 비서관들의 말에 따르면 암살 4일 전, 공통적으로 암살 예고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경호를 늘린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대통령 하나뿐이었다고 합니다.”

“암살 예고장이라… 나도 뉴스로 봤지. 하긴, 그런 식의 아무것도 없는 암살 예고장이면 나 같아도 대충 넘겼을 거야.”

베르나르도 대통령은 턱을 쓸며 미간을 찌푸렸다.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경호를 얼마나 강화했다고 했지?”

“러시아 언론사에 따르면 그날 이후 늘어난 경호 인력은 A급 헌터 4명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A급 4명?”

베르나르도 대통령의 눈빛이 진해졌다.

인원만 따지면 겨우 4명이라지만, A급 4명이면 결코 적은 경호 인력이 아니었다.

A급 헌터 하나는 수십, 아니 최소 수천 명의 일반 경호원의 무력을 상회하는 바.

그들의 벼려진 감각 또한 일반 경호원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흉수는 헌터군.”

“예. 모든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헌터가 아니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무엇보다 네 사람 모두 목이 잘린 채로 발견되었으니까요.”

마치 예전 중세 시대의 단두대에 목이 잘리기라도 한 듯 목과 몸이 분리된 채 발견된 네 명의 대통령.

자살로는 절대 불가능한 그 모습에 모든 수사기관은 이를 타살로 확신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력의 잔향이 없었다면서? 일반 경호원 중에서도 마력 감염증에 걸린 사람은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예… 그래서 전문가들은 흉수를 최소 S급 이상의 최고위 헌터로 보고 있습니다. A급 4명의 눈마저 속이고 들어갔으니, 고유 능력 또한 모습을 감추는 등 은밀하고 잠입이 가능한 계열의 능력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후보는 나왔어?”

“…문제는 데이터상으로 S급 중에 은신 계열 능력자가 없다고 합니다.”

비서관의 말에 베르나르도 대통령은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그거참 골치가 아프네…….”

그런데 그때,

똑똑 ―

“각하! 피에트로 비서관입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집무실 문밖에서 누군가 인기척을 냈다.

끄덕 ―

베르나르도 대통령은 옆에 있던 수석 비서관, 안토니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이라는 뜻이었다.

끼익 ―

안토니오가 집무실 문을 열어주자,

“엇! 안녕하십니까, 수석 비서관님.”

“들어와.”

피에트로 비서관이 그에게 인사하며 대통령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인가?”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베르나르도 대통령이 피에트로 비서관에게 물었다.

“예, 서류를 전달해드리려고 왔습니다.”

“아, 여기 놓고 가.”

“예.”

척 ―

총 8장의 동봉된 서류들.

대충 보니 대부분 각 부 장관들이 올린 결재서류나 검토안들이었다.

“후우… 대통령을 괜히 했어. 일이 끊이질 않네 진짜.”

한숨을 쉬며 동봉된 서류들을 뜯어보는 베르나르도 대통령.

그는 커다란 봉투 안의 서류들을 책상 위에 쏟아내며 피에트로 비서관에게 눈짓했다.

“수고했어. 나가봐.”

“예.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끼익 ― 탁.

피에트로가 나가고,

“후우…….”

베르나르도는 서류 속 내용물들을 정리하며 업무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툭.

“…어?”

봉투 안에서 이상한 게 떨어져 나왔다.

평범한 우편물처럼 작은 편지 봉투에 담긴 하나의 우편물.

발신인조차 적히지 않은 그 우편물은 척 보기에도 업무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았다.

“뭐야, 이건?”

베르나르도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 그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피에트로 이 자식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베르나르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던 안토니오 수석 비서관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최종 검수를 담당한 피에트로가 제대로 검수하지 않아 불순물이 섞여 들어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머릿속엔 이따가 피에트로를 혼낼 생각만이 가득했다.

촤락 ―

우편물 안에 있는 편지 하나를 꺼내 드는 베르나르도 대통령.

막 편지를 펼쳐든 그 순간,

“……!”

부르르르……!

베르나르도 대통령의 두 동공과 팔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각하, 무슨 일이십니까?”

베르나르도의 반응에 놀란 안토니오가 재빨리 그에게 다가갔다.

탁 ―

팔을 떨다 못해 결국 책상 위로 떨어뜨리는 베르나르도 대통령.

그가 그 편지를 책상 위에 떨어뜨리자, 자연스레 그 내용이 안토니오 비서관의 두 눈에도 들어왔다.

“…헉!”

편지의 내용을 읽은 안토니오 비서관은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고,

“이, 이런 젠장……!”

베르나르도 대통령의 안색은 그사이 희게 질려 있었다.

“저, 전부 소집해…….”

“…….”

베르나르도 대통령의 중얼거림에도 반응하지 않는 안토니오.

그러자 베르나르도는 조급한 마음에 크게 소리를 질렀다.

“비서관!”

“…헉! 예, 예!”

자신도 모르게 넋이 나가 있던 안토니오가 바짝 군기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장 소집하라고! 이탈리아 전역의 고위 헌터들 전부!”

“아, 알겠습니다!”

후다닥 ― !

안토니오 비서관이 고위 헌터 소집을 위해 집무실을 후다닥 빠져나가고,

덜덜덜……!

집무실에 홀로 남겨진 베르나르도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발신인 불명의 편지를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 나는 안 죽을 거야… 이대로 어이없이 죽을까 보냐……!”

베르나르도 대통령의 책상 위에 놓인 그 의문의 편지.

그 편지 안에는,

간결하지만 섬뜩한 문장 하나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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