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함정에 빠짐 (1)
파지짓!
아시아의 성층권에 한 줄기의 금색 선이 그어졌다.
[뇌신화(雷身化) ― 금뢰 ver]
눈 깜짝할 사이에 대륙을 가로지른 태운의 신형이 그리스에 다다랐다.
이전에 서울에서 인천항까지 이동했던 속도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달라진 그의 속도.
단순히 신체강화뿐만이 아니라 뇌신화까지 사용했으니 그 속도는 천지 차이나 다름없었다.
번쩍!
마치 번갯불이 빛나듯 순식간에 그리스 대통령 관저 상공에 다다른 태운.
푸쉬이이이이……!
그의 발바닥에 뚫린 강력피 구멍으로 강력피가 붙들었던 공기가 새어 나가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 !
발바닥에서 에어 펌프처럼 공기를 뿜어내며 서서히 가라앉는 태운의 모습은 마치 영화 속 히어로가 천천히 등장하는 것처럼 위엄과 기백이 넘쳐 보였다.
“코, 코드 제로 님!”
공식적으로는 거절당했지만 비밀리에 신변 보호를 승인받았던 그리스 대통령, 미할리스는 코드 제로가 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지 대통령 관저 바깥에 나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탁.
사뿐히 대통령 관저 앞마당에 착지한 태운이 미할리스 대통령에게 살짝 목례를 했다.
태운이 도착한 시간은 그리스 시간으로 새벽 1시 58분.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30일이 되기 딱 2분 전에 도착했다.
태운의 부탁대로 경호 인력 하나 없이 오매불망 태운만을 기다리던 그리스 대통령, 미할리스는 며칠 사이에 상당히 여위어 수척해 보였다.
그렇게 미할리스가 너무나 반가운 표정으로 태운을 맞이하려 했지만,
“…어떻게 된 겁니까?”
태운의 목소리는 어느새 낮게 가라앉았다.
미할리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할리스의 신변 보호를 승낙하는 대신 태운이 부탁한 것은 단 3가지였다.
첫째, 일단 신변 보호 요청을 승낙할 것이긴 하나 공식적으로는 거절할 것이니 이 사항을 비밀로 해달라.
둘째, 전투가 벌어질 수 있으니 무너지는 잔해나 파편을 피하기 위해선 바깥에서 대기해달라.
셋째, 사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미할리스 대통령 본인을 제외한 단 한 사람도 관저에 머무르지 않게 해달라.
태운은 분명 미할리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 3가지를 굳게 약조받았었다.
그런데,
우물쭈물.
관저에는 미할리스 대통령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총 세 사람.
그리고 그들은 모두 태운이 잘 아는 얼굴이었다.
‘토마스 대통령, 아론 총리, 무크 대통령…….’
각각 미국 대통령, 영국 총리, 인도 대통령이 어색한 표정으로 미할리스 대통령의 뒤에 서 있었던 것이다.
“저 사람들은 뭡니까?”
태운의 물음에 미할리스 대통령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 그게… 저는 정말로 비밀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선 어젯밤 갑자기 찾아와서는……!”
미할리스 대통령이 잔뜩 울상이 되어 변명을 시작하자,
털썩 ―
미할리스의 뒤에 서 있던 세 사람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코드 제로 님! 제발… 저희도 지켜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국가의 원수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가벼운 무릎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
무릎 한 번 꿇는 것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제가 올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분명 공식적으로 거절했다는 뉴스가 나갔을 텐데요.”
태운은 차가운 목소리로 세 사람에게 물었다.
미할리스처럼 정식으로 신변 보호를 요청한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나타나 지켜달라고 하고 있었으니 그의 입장에선 상당히 불쾌할 만했다.
태운의 물음에 토마스 대통령이 먼저 대답했다.
“뉴스를 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코드 제로 님이라면 오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일단 무작정 왔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설령 나타나지 않으셔도 영국에 있거나 그리스로 가거나… 죽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요. 그럴 바엔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곳에 도박을 걸어보고자…….”
“…저도 똑같습니다.”
아론 총리와 무크 대통령도 한마디씩 조심스레 거들었다.
말을 잇는 셋 다 낯빛이 좋지 않아 보였다.
암살 예고장을 받았으니 당연히 심신이 위태로웠을 수밖에 없었을 터.
더군다나 그들보다 앞서 암살 예고장을 받았던 다른 대통령들의 죽음을 쭉 지켜봤으니 얼마나 공포스러운 4일을 보냈겠는가?
“하아…….”
태운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1명에서 4명으로 늘어났으니까.
당연히 1명을 지키는 것과 4명을 지키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사신이 한 명일지 두 명일지 몇 명일지도 모르는 와중에 이렇게 지켜야 할 사람이 많다는 건 태운에게 너무나도 나쁜 소식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치면 그대로 죽어버릴 게 뻔한 사람들을 내칠 수도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이 이들까지 함께 지켜가며 사신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최대한 서로 뭉쳐 계세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국가 수장 세 사람이 연신 태운에게 허리를 굽신거렸다.
‘…괜찮겠지.’
태운은 서로 똘똘 뭉치고 있는 네 명의 아저씨들을 보며 쓰게 입맛을 다셨다.
지킬 사람이 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하와이에서 십이 방주의 합공에도 이미 네 사람을 지켜본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담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젠장. 뭔가 시작부터 꼬이는 것 같은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왔던 태운의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었다.
띠링 ―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시간을 맞춰놓은 태운의 핸드폰에서 자정을 알리는 짧은 알람이 울렸다.
“…30일이 되었군요.”
핸드폰을 확인한 태운이 잔뜩 긴장한 얼굴의 네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다 같이 서로 무사하길 기원해보자고요.”
사신의 먹잇감을 미리 선점한 투신, 코드 제로.
고오오오 ―
결전의 날, 그리스의 하늘을 뒤덮은 어둠이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 * *
한편, 그 시각.
콰아아아앙!
“끄아아아악!”
화르륵 ― !
쿠우우우……!
백적산과 장군산 사이에 위치한 산골짜기가 새빨간 불길과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우르르릉 ― !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나며 신약개발단지의 건물들이 모조리 무너지고 있었다.
“아, 안 돼애애애!”
“끄아아아악!”
콰아아앙!
연구에 한창이던 연구원들이 건물에 파묻히고 깔려 죽어가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 밑에는 당연히 그동안 메디스카이의 연구진들이 개발해온 수많은 신약 샘플과 그동안의 연구 성과도 함께 묻혀 있었다.
“어……!”
식사동에서 막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허준석 회장의 머리가 멍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그의 명석한 두뇌로도 지금의 이 상황은 잘 파악이 되질 않았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나름 평범하게 승승장구하던 날이었다.
리바이브 덕에 메디스카이의 매출이익이 상당히 상승했고, 그 이상의 어마어마한 홍보효과를 누리며 기존의 의약품들마저 불티나게 팔리던 상황.
오늘도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신약 개발에 몰두하며 즐겁게 연구하려고 했는데…….
콰르르릉 ―
힘없이 무너지는 개발단지의 건물들을 바라보는 허준석 회장의 볼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 아아아……!”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수많은 연구자료, 샘플, 희소성 높은 갖가지 연구재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으아아아악!”
소중한 연구원들의 목숨이 스러져가고 있었다.
“…아, 안 돼애애애……!”
허 회장의 입에서 힘없는 절규가 새어 나오는 그 순간,
퍼어어어엉!
화르르르륵!
어마어마한 폭발과 함께 연구재료 창고에서도 불길이 일어났다.
후두둑 ―
쿠웅! 콰직!
허 회장의 주변으로 폭발의 잔해들이 마치 유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슈우우우……!
그중 커다란 건물 잔해 하나가 허 회장의 위를 덮쳤다.
“위험해요!”
퍽 ―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허 회장의 몸뚱이가 옆으로 밀려났다.
콰앙!
허 회장을 밀쳐낸 누군가가 건물 잔해를 단번에 쳐냈다.
“괜찮으세요?”
그자의 정체는 바로, 노아즈 아크 잔당들을 수감한 수감동을 관리하던 협회 직원이었다.
개발단지에서 일어난 소란을 듣고 얼른 뛰쳐나온 것.
어찌나 급히 달려왔는지 D급 헌터인 그가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델타조 소속 헌터, 이정훈이 심각한 표정으로 화염에 휩싸인 건물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띠딕 띡 띡 ―
재빨리 협회 본부로 지원 요청을 보내려는 이정훈.
막 업무용 단말기에 문자를 치려던 찰나,
“크핫하하하하!”
한 남자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웃는다고?’
이정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스러져가는 지금 이 상황에서 웃는다?
‘…사고가 아니라 흉수가 있었던 건가!’
이정훈은 웃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순식간에 커다란 건물 여러 개를 무너뜨린 범인.
아마 헌터일 테지만 D급에 불과한 이정훈의 힘으론 역부족일 터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적의 수라도 파악한다!’
흉수 혹은 흉수들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해서 적절한 지원이 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쉬식 ― !
신체강화를 한 그의 신형이 바람을 가르며 움직였다.
“크핫하하하하하!”
무너진 연구재료 창고 뒤편에서 울리고 있는 누군가의 웃음소리.
아무래도 적은 한 명인 듯했다.
사삭……!
이동속도를 줄이고 기척도 최대한 죽인 이정훈이 아직 남아 있는 석벽에 기대어 슬쩍 창고가 있던 자리 뒤편을 확인했다.
“대단해… 대단하잖아?”
홀로 무언가에 감탄하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그의 두 눈에 비쳤다.
돌 더미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불길과 연기를 앞에 둔 채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감탄을 토해내고 있는 남자.
화륵 ― !
창고 잔해더미에서 연기를 뚫고 불길이 솟구치자 그 불빛에 의해 그의 얼굴이 한순간 드러났다.
“……!”
그의 얼굴을 확인한 이정훈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낼 뻔한 숨소리를 간신히 참아내며 재빨리 단말기를 두드렸다.
[신약개발단지 피습당함. 긴급 지원 요청.]
티디디딕 ―
단말기를 두드리는 이정훈의 안색은 그 짧은 사이에 상당히 핼쑥해져 있었다.
“허억… 허억……!”
너무 놀란 나머지 터져 나온 그의 거친 호흡.
“으응……?”
흉수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걸 알아차렸으면서도, 이정훈은 단말기를 두드리느라 자리를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흉수의 정체는]
티디디디딕 ―
“허억… 허억… 허억……!”
이정훈의 호흡이 더 가빠지고,
훅 ―
순간 한 줄기 바람과 함께 누군가의 묵직한 인기척이 그의 바로 옆에서 느껴졌다.
티디디디딕 ―
“누구 부르나 봐?”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는 순간,
콰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각 협회 본부.
“러시아의 세계급 헌터, 드미트리가 신약개발단지를 습격했습니다!”
헌터 협회가 이정훈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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