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함정에 빠짐 (2)
타다다다다 ―
헌터 협회 직원들이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삐리리리리 ―
삐리리리리 ―
헌터 협회 3층부터 5층.
비상사태 발생 시 총지휘본부로 사용되는 뻥 뚫린 공간 사이로 직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협회 직원들이 이렇게나 바쁘게 지휘본부를 동분서주하는 것은 예전 수도권 다중 브레이크 사태 이후 처음.
이미 최근에 한 차례 사태를 겪어본 적이 있었기에 조금 더 수월할 법도 하건만.
“헉… 헉… 헉……!”
지휘본부를 돌아다니는 협회 직원들의 표정은 전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그야 지금 터진 사태가 지난번 다중 브레이크와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다르게 어마어마한 규모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휴전선 방마벽 총 10군데 뚫렸습니다!”
바로 멸망한 땅인 북한과 남한을 나누고 있던 거대한 방마벽 라인이 뚫려버린 것이었다.
본디 현재 북한 땅은 완전한 몬스터들의 영역.
그런 북한과 남한 사이에 경계를 나누던 방마벽이 뚫려버렸다는 것은,
“대량의 몬스터들! 빠르게 남하 중!”
북한에 있던 몬스터들이 전부 남한으로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력이 아니더라도 몬스터들의 감각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
방마벽이 뚫려버린 지금, 우려대로 몬스터들은 급남하를 하고 있었다.
생존자가 몇 없는 북한과는 달리, 살아 있는 인간들로 넘쳐나는 남한 방향에서 대량의 인기척을 느낀 것이었다.
당연히 마력을 지닌 몬스터들을,
“휴전선 주둔 군부대 전부 연락 두절되었습니다!”
일반인인 군부대들이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 있었으니,
“전 세계에서 실종되었던 노아즈 아크 조직원들의 존재가 목격되고 있습니다!”
바로 전 세계에서 각국 협회의 수사망을 피해 사라졌던 노아즈 아크 조직원들이 몬스터들과 함께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한편이라도 된 것처럼 몬스터와 나란히 내려오는 노아즈 아크 조직원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질적이기 짝이 없었다.
“현재 남하 세력 위치 및 전선 상태 보고!”
총지휘를 맡은 현주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현주의 외침에 지휘본부 곳곳에서 직원들이 파악된 정보들을 마구 외쳤다.
“파주시 부근에서 백호 길드 전투 중입니다!”
“동두천시 델타, 베타조 도착! 전투 막 돌입했습니다! 불패 길드 측 5분 뒤 합류 예정!”
“철원으로 향했던 적호, 백룡 길드 전멸! 포천에서 감마조, 청호 길드 대기 중입니다!”
“고성군 우천 길드와 산왕 길드 전멸! 속초시에서 청룡 길드 전투 중입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보고들.
그 모든 보고 내용을,
키이잉 ―
타다다다닥!
지휘본부 한가운데에 앉은 현숙이 모조리 타이핑하고 있었다.
그녀의 고유능력, ‘병렬사고.’
순식간에 여러 개로 나뉜 그녀의 의식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직원들의 보고를 모조리 캐치하여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노트북 화면에 기입할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타다다다닥!
나뉘어진 의식 중 하나가 다른 의식들이 수집한 정보들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빠르게 타이핑했다.
“대, 대체 이게……!”
현숙이 써 내려가는 기록들을 대형 스크린으로 확인하는 현주의 의식이 아득해져 갔다.
과거 6 · 25 전쟁이 이러했을까.
갑작스런 북쪽 세력의 남침으로 인해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적의 침입으로 인해 협회장인 동석마저 현장으로 급히 튀어 나간 상황.
안 그래도 손이 부족한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의 세계급 헌터, 드미트리가 신약개발단지를 습격했습니다!
―…뭐?
뜬금없이 나타나 파괴를 일삼고 있는 드미트리 때문에 현재 한국의 두 최강 전력들을 다른 전선이 아닌 신약개발단지 쪽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여유가 단번에 사라진 협회는 알파조를 각 전선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하여 배치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남편과 아들 그리고 딸까지 가족
모두를 전선으로 내보낸 현주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홀로 협회 본부에 남은 그녀.
전선에 나가 싸우고 있는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냉정하고 냉철하게 이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무 길드는 어디쯤이야!”
머리를 차갑게 식힌 현주가 다시 또렷해진 눈빛으로 지휘본부를 지휘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막 세종시를 지났다고 연락왔습니다!”
한 직원의 현무 길드 위치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알파조 모든 전선 도착! 전투 시작했습니다!”
“코드 투 포천시 전투에 합류했습니다!”
“협회장님께서도 파주 전선에 도착하셨습니다!”
“충청도 20여 개 중소 길드 각 전선으로 투입됩니다!”
새로운 전선 보고가 물밀듯이 이어져 들어왔다.
타다다다닥!
그 모든 보고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현숙.
‘여보.’
그녀 또한 마찬가지로 철민을 전선에 홀로 보낸 상태였기에,
타다다다다닥!
불룩 ―
그녀는 이마에 핏줄이 울룩불룩 솟아오를 정도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다했다.
그때,
“코드 원, 신약개발단지 도착 1분 전!”
한 직원이 강천의 위치를 보고했고,
“코드 제로와의 연락은!”
그와 동시에 현주는 이 모든 사태를 가장 빨리 해결해줄 수 있는 최강의 패, ‘코드 제로’와의 연락을 지시해두었던 직원을 떠올리고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여, 연락이 안 됩니다…! 시, 신호 자체가 가질 않습니다……!”
“뭐……?”
코드 제로와의 연락은 전혀 닿지를 않고 있었다.
우웅 ―
동북아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한 한반도.
그 한반도… 아니, 인근 바다인 서해, 남해, 동해 상공 전역을,
우우웅 ―
정체를 알 수 없는 무형의 기막이 마치 비닐하우스처럼 감싸고 있었다.
지직……!
협회 직원이 연신 쏘아 올리는 통화 전파가 허공에 튕겨 사라지고 있었다.
* * *
한편 그 시각 그리스 아테네.
“…….”
“…….”
그리스 대통령의 관저 앞마당에 다섯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꾸벅… 꾸벅…….
요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잤는지, 네 명의 대통령은 서로 가까이 붙은 채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졸고 있었고,
“스읍… 후우… 스읍… 후우…….”
태운은 그리스 대통령의 관저 일대에 자기장을 둘러놓은 채 가만히 앉아 마력 호흡을 하고 있었다.
벌써 그리스 시간으로 새벽 2시가 된 지도 한 시간이 지나 3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매번 30일 새벽에 암살을 결행하기는 했지만 꼭 새벽에 하리란 법도 없는 법.
사신이 언급한 30일은 아직도 23시간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에 태운은 자기장을 쳐놓은 채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었다.
“스읍… 후우… 스읍… 후우…….”
[마력이 1 오릅니다.]
그 짧은 사이에 또 마력을 꽤나 올린 태운.
그러나 최근 너무 바빠 마력 호흡을 거의 하지 못한 걸 생각하면 이제야 밀린 숙제(?)를 뒤늦게 하고 있는 느낌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감을 퍼뜨린 채로 마력 호흡을 이어 나가던 태운.
그는 문득 한국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여기가 3시 반이니… 한국은 오전 10시 반인가.’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2시간이 빠른 그리스와 9시간이 빠른 한국.
즉, 두 나라 사이에는 7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이곳은 완전 한밤중이었지만 한국은 곧 오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갈 타이밍.
태운은 오늘 집에서 푹 쉬고 있을 유린에게 혹시라도 그녀가 걱정하고 있을까 싶어 메신저를 하나 보냈다.
[한 시간 넘었는데 사신은 아직 코빼기도 안 보임. 대통령들은 속 편히 조는 중 ㅋㅋㅋ]
틱 ―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상황을 보고(?)하는 태운.
그런데,
“…응?”
메신저가 전송되질 않았다.
[전송 실패]
전송 실패라며 메신저 옆에 뜨는 빨간 글씨.
재전송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전송 실패]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혹시나 자신이 펼친 자기장 때문인가 싶어 자기장의 크기를 조절해 핸드폰을 자기장 바깥으로 내보내는 태운.
그러나,
[전송 실패]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자기장이라는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메신저 앱 문제인가?’
태운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메신저를 포기하고 문자를 보내보기로 했다.
같은 내용을 적는 태운.
문자를 다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지만,
[메시지 전송 실패]
이번에도 같은 문구가 떴다.
“아이씨…….”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설을 내뱉을 뻔한 태운.
슬쩍 ―
태운은 혹시나 자신의 중얼거림에 네 아저씨들이 깼을까 싶어 그들 쪽을 바라보았다.
“커어어…….”
다행히 이렇다 할 미동도 없이 속 편하게 잘만 졸고 있는 네 사람.
그런 그들을 보며,
‘…어이가 없네.’
오히려 태운이 저게 정말 오늘 암살을 예고당한 사람들이 맞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뭐, 피곤했겠지.’
태운은 그들의 심정을 이해해보려 애쓰며 다시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연락이 왜 안 되는 거야 이거?’
결국 메신저나 문자 보내기를 포기하고 전화를 걸어보는 태운.
그러나 이번에도,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이후 통화료가 부과됩…….}
연락에 실패하고 말았다.
‘…혹시 핸드폰을 꺼뒀나?’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모처럼 맞이한 비번 날이었으니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푹 쉬려고 핸드폰을 꺼두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마 오랜만에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나중에 연락해보지 뭐. 점심 먹을 땐 일어나겠지.’
태운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다시 품 안에 넣고 마력 호흡을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더 지났을까.
3시간이 더 흘러 새벽 6시가 넘은 그리스에도 동이 트기 시작하며, 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6시 반…….”
그렇다는 말은 지금쯤 한국은 오후 1시 반쯤 되었을 시간.
‘…이젠 일어났겠지?’
태운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눈을 감은 채 마력 호흡을 하며 마력 수치를 올리고, 피로를 회복했기에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다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이후 통화료가 부과됩…….}
여전히 유린의 핸드폰은 꺼져 있는 듯했다.
‘아니, 얘는 언제까지 자는 거야?’
한국의 소식이라도 알기 위해 태운은 이번엔 유린이 아닌 강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이후 통화료가 부과됩…….}
이번에도 같은 기계음이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던전 안이라 그런 거겠지?’
강천은 자신의 대타로 워낙 바쁘게 일하고 있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다음은 동석.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이후 통화료가 부과됩…….}
‘바쁘신가 보지?’
다음은 현주.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이후 통화료가 부과됩…….}
‘뭐야.’
서민우 의원.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이후 통화료가 부과됩…….}
‘…어?’
철민.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이후 통화료가 부과됩…….}
태성.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이후 통화료가 부과됩…….}
하다못해 언제나 답신이 그 누구보다도 빠른 소문광 사장마저,
{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이후 통화료가 부과됩…….}
연락이 되질 않고 있었다.
철렁……!
태운은 순간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 무언가 일이 생긴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토독 ― 톡 ―
재빨리 한국 소식을 검색하는 태운.
그러나,
“…뭐야.”
새로운 뉴스가 하나도 없었다.
마지막 뉴스 기사가 태운이 한국을 떠난 직후에 올라온 한국 시간 기준 30일 8시 57분 기사.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보통 같으면 오전에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을 텐데 말이다.
별다른 소식이 없어서?
아니.
‘통신이 막혔다……?’
과거 한국을 둘러싼 정보 왜곡망처럼 무언가 한국과 전 세계를 단절시켜놓은 것이다.
으득 ― !
불길한 느낌에 태운은 이를 갈며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미할리스 대통령님!”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할리스 대통령에게 사정을 설명하려는 찰나,
흠칫!
태운의 자기장 내에 무언가가 들어섰다.
다만,
“…이런 거였나……!”
그 기척은 하나가 아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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