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이긴 게 이긴 게 아님 (1)
쩌저적……!
툭 ―
붉게 물든 토끼 탈이 바닥에 떨어졌다.
울컥……!
푸르바의 입에서 피가 마구 터져 나왔다.
줄줄줄.
입뿐만이 아니었다.
눈과 귀, 코를 포함한 인체의 모든 구멍에서 핏물과 타액이 줄줄 흘러나왔으니까.
애초에 그의 전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그러져 인간의 몸이었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
쿵 ― !
균형을 잡지 못한 푸르바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나마 어렴풋이 형태가 남은 머리.
울컥 ― 울컥 ―
토끼 탈이 벗겨지며 드러난 비뚤어진 입에서 계속해서 핏물이 새어나왔다.
“아아아… 아아아아…….”
푸르바는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새빨개진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쿠우우우우……!
어느덧 완전히 동이 튼 푸른 하늘.
한차례 재앙이 지나간 그리스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아무리 할퀴고 상처를 내어도 마냥 깨끗한 하늘.
그런 하늘의 모습이 왠지 푸르바를 위로해주고 있는 듯했다.
치익… 치이익……!
자가회복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온몸의 감각이 완전히 뒤집혀버린 탓이었다.
공간이 어그러지며 몸 안의 체계가 전체적으로 뒤바뀐 듯, 푸르바는 평소의 감각으로 마력이 제어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끝인가……?’
죽음을 직감했음에도 푸르바의 표정은 이상하게도 편안해 보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두렵지가 않군.’
죽음이 두렵지 않다니.
그 누가 들어도 개소리라 치부할 만한 말이었다.
하지만 푸르바는 지금 진심으로,
씨익 ―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덜덜덜……!
푸르바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고개를 움직여 자신의 인생에 마침표를 찍어준 남자를 바라보았다.
“커헉……!”
털썩 ―
어느새 그자는 자신과 함께 온 다른 동행인, 루카스의 목숨까지 거둔 상태였다.
스윽 ―
“…….”
푸르바의 시선에 남자는 그와 시선을 맞춰주었다.
“…할 말이 있나?”
푸르바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목소리엔 짙은 피로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하긴 애초에 피로를 느끼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긴 했다.
‘온갖 핸디캡을 지닌 채 방주들을 홀로 상대했으니…….’
푸르바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저 남자, 코드 제로에게 적의나 원망이 아닌 존경심을 느꼈다.
“…히드지으… 아으아?(…힘들지는… 않은가?)”
이가 모조리 부서지고 혀가 이상하게 뒤틀린 푸르바는 완전히 새는 발음으로 간신히 태운에게 물었다.
힘들지는 않은가.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지금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태운은 용케도 그 말뜻을 모두 알아들었는지,
피식 ―
살짝 힘 빠진 바람 소리를 내었다.
“살짝……?”
농담조가 반 섞여 있었지만 그래도 진심이 느껴지는 그의 대답에,
“하하… 하하하……!”
푸르바는 그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글썽 ―
실핏줄이 죄다 터져 토끼처럼 새빨개진 그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로 인해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스륵 ―
한 여인의 형상이 나타났다.
‘니마…….’
죽어서야 모든 짐을 벗어 던질 수 있었던 그의 연인, 니마.
그녀가 저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서서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지금 갈게.’
푸르바가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자,
덜덜덜……!
완전히 엉켜버린 몸속에서 그의 손이었던 무언가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스륵 ― 스륵 ―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푸르바의 시야가 점차 흐려졌다.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진한 화장을 지우고 뽀얗고 수수한 얼굴이 된 니마가 푸르바의 손을 잡아주었다.
―나같이 피곤한 애 사랑하지 말고, 다른 여자한테 가라니까.
―나는 평생 너 하나뿐이라니까.
언젠가 버릇처럼 말했던 그녀와의 약속.
생애 마지막 순간, 푸르바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니마.’
후욱 ―
그의 코에서 마지막 숨이 내쉬어지고,
덜덜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던 그의 손이었던 것이 가슴 한편에서 우뚝 멈추었다.
작은 계란이라도 쥔 듯 잔뜩 오므린 손가락들.
가슴 부근에 살짝 꽃봉오리처럼 올라와 있는 것이,
‘나 약속 지켰어.’
마치 토끼풀(꽃말 : 약속, 행운)과 닮아 보였다.
* * *
“…….”
푸르바의 임종을 지켜본 태운.
다른 방주들과는 달리, 태운은 그의 죽음을 보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기분이 이상하네.’
“후우…….”
태운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다가,
“……!”
돌연 무릎을 잡으며 상체를 숙였다.
“허억……!”
피잉 ―
참아왔던 피로가 단숨에 몰려오며 현기증이 일었다.
마력이 바닥났는지 마력 결핍 증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덜덜덜……!
뒤이어 초광뢰신을 사용한 반동마저 오면서 겁에 질린 듯 사지가 벌벌 떨려왔다.
‘미치겠군……!’
멀미라도 난 듯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시야 너머로 저 멀리 멍하니 서 있는 도명조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도 놓칠 수는 없는데……!’
아직까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듯 멍을 때리고 있는 도명조.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놈에게 자뢰를 맞출 수 있으면 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아이기스가 없는 이상, 도명조는 결코 그의 공격에서 무사할 수 없…….
‘…어?’
태운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태운은 이곳에 나타났던 총 8인의 방주의 아이기스들을 모조리 부쉈다.
부서지는 순간 모두 신기로서의 기운을 잃었던 레플리카 버전의 아이기스들.
그런데…….
‘왜 저 녀석의 몸에서 여전히 아이기스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도명조에게서 조금은 흐릿하지만 여전히 아이기스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도명조를 바라보는 가면 뒤 태운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스윽 ―
그리고 도명조의 시선이 태운과 마주치는 그 순간,
“…마력이 안 느껴지네?”
까딱…….
도명조의 고개가 모로 꺾어졌다.
그리고는,
“혹시… 마력 다 썼어?”
씨익 ―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피어 올렸다.
* * *
도명조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갖가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며 한데 드러난 결과였다.
놀라움, 두려움, 절망,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마력 반응이 사라졌다?’
씨익 ―
환희까지.
순식간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방주가 당해버릴 때만 해도 한없이 절망스러웠던 도명조였다.
그 강력하던 푸르바마저도 어이없이 당해버렸으니까.
용의 방주조차 한순간에 끝장낼 수 있다는 비장의 기술까지 사용하고서도 당하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그런데 그렇게나 굳건하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코드 제로가,
“허억……!”
덜덜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푸르바와 부딪치던 마지막 순간, 도명조는 제대로 보지는 못했어도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말도 안 되는 힘의 충돌로 인해 공간 자체가 어그러졌던 것을.
그러나 푸르바의 비장의 한 수를 단숨에 압도적으로 제압한 만큼, 코드 제로 또한 상당히 무리했던 모양이었다.
‘이거…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꿈틀.
도명조는 몸을 살짝 꿈틀거리며 몸에 얇게 걸쳐져 있는 얇은 금속 갑옷의 감촉을 느꼈다.
그가 몸에 두르고 있는 것은 바로 신기, 아이기스의 제작법을 응용하여 만든 갑옷 버전의 아이기스였다.
올림포스 신화와 관련된 모든 신기를 제작할 수 있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그의 권능을 이은 도명조의 머릿속엔 모든 신기들의 제작법이 들어 있었다.
제작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그 소유자의 재량에 따라 응용 또한 가능하다는 것이었으니,
‘역시, 혹시 몰라 만들어두길 잘했군……!’
도명조는 방주들과 자신이 쓸 아이기스를 제작하면서 스페어 카드로 혼자만의 갑옷형 아이기스를 또 하나 제작해둔 것이었다.
코드 제로가 다시 자줏빛 번개를 사용하더라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을 터.
하지만 대충 느끼기에도 코드 제로의 자줏빛 번개는 상당한 마력이 소모되는 기술이었다.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지금의 코드 제로가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자줏빛 번개만 사용하지 못한다면… 이거 완전 낙승 아닌가?’
설령 그가 자줏빛 번개보다 마력이 덜 소모되는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전에 맞았던 푸른 번개나 영상 속에서 확인했던 붉은 번개는 자줏빛 번개와 비교했을 때 훨씬 더 옅은 마력의 결합체였으니까.
‘자줏빛 번개가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기술도 통하지 않는다……!’
아이기스는 최고신을 지키는 무적에 가까운 방어구.
코드 제로가 가진 기술 중 아이기스를 뚫어낼 수 있는 거라곤 그 무시무시한 소멸의 힘이나 방금 전까지 신 방주들의 목숨을 거두어갔던 검은 뇌전뿐이었다.
하지만 그 힘들은 분명 그 위력만큼 발현하는 데에 자줏빛 번개 이상의 마력이 필요할 터.
하물며 마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코드 제로 따위야…….
“이빨과 발톱이 다 빠진 호랑이… 독침과 주둥이가 전부 사라진 말벌…….”
도명조의 입안에서 음흉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으흐흐흐… 이거 완전 거저먹기 아니야?”
금방이라도 쳐죽일 듯이 태운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빛은 기분이 나쁘다 못해 섬뜩할 정도였다.
그동안 저 코드 제로 하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던가.
공들여 형성해두었던 정부와의 유착 관계가 파탄 나고, 그의 기득권이 무너졌다.
산하 길드들은 물론이고 한국 헌터계를 장악했던 주작 길드를 버리고 한국에서 급히 떠나야 했으며, 하와이에선 꽁지가 빠져라 도망쳐야 했다.
모든 방주들을 죽여버린 코드 제로의 눈을 피해 겨우 다시 자리 잡았던 일본에서 또다시 몸을 피해야 했고, 코드 제로를 중심으로 시작된 대대적인 수사로 인해 노아즈 아크는 전 세계의 연결망을 모두 잃고 멸망의 땅, 북한으로 도망쳐야 했다.
그리고 오늘.
전력을 모조리 파악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자꾸만 그 외의 모습이나 기술들을 꺼내 드는 코드 제로 코드 제로 때문에 몇 번이나 간담이 서늘해지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는지 몰랐다.
“크흐흐흐… 쉽게 죽이지는 않겠다……!”
삼류 악당이나 할 법한 대사를 내뱉는 도명조.
그러나 마력이 바닥난 태운에게,
고오오오……!
그런 도명조의 모습은 충분히 위협이 되고 있었다.
화륵 ― !
도명조의 손바닥에서 시뻘건 불꽃이 타올랐다.
검붉은 화염도 아닌, 그냥 붉은 화염.
도명조는 지금 온몸으로 태운을 가지고 놀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인류 최강자의 비명은 어떤 소리일지… 궁금하지 않나? 응?”
도명조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진이 다 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대통령들을 살짝 바라보며 말했다.
“으으으으으…….”
직접 전투를 벌인 것은 아니었지만 벌써 수십 수백 번도 넘게 죽다 살아난 그들은 제정신이 아닌 듯, 이렇다 할 대답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한 채 그저 신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저벅 ― 저벅 ―
잔뜩 몸이 달아오른 도명조가 몸이 근질거려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양손에 불꽃을 두른 채 태운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력은 바닥났고, 마력 호흡으로 마력을 회복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주륵 ―
뚝 ― 뚝 ―
상체를 숙인 채 힘겹게 고개만을 들어 도명조를 바라보는 태운의 턱 끝에서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가면 뒤 태운의 표정은,
반짝!
무언가를 노리고 있는 듯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듯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저벅 ― 저벅 ―
도명조의 발걸음이 점차 가까워져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대략 10걸음 정도 남은 그때,
스윽 ―
태운의 손이 그의 정장 안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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