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이긴 게 이긴 게 아님 (2)
―…마력이 안 느껴지네?
도명조의 말을 듣는 순간,
번뜩!
태운의 머릿속에 한 줄기의 벼락이 쳤다.
‘그래… 마력……!’
마력이 다 떨어졌다.
그렇다면 다시 채우면 되는 일.
마력을 채우는 수단에는 3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그냥 기다리는 것.
두 번째, 마력 호흡을 함으로써 회복을 가속화시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마석을 먹는 거지……!’
마석을 갈아서 만든 마력 포션을 먹는 것이었다.
스슥 ―
태운의 감각이 상의 안주머니 속에 있는 물건의 재질을 새삼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안주머니에 있는 아공간 주머니.
그 아공간 주머니에는 한중 전쟁 당시 정부가 제작하여 건넨 몇 개의 마력 포션이 있었다.
강천이나 알파조에게 레이드 부스터를 해주며 태운 스스로가 자체적으로 만든 마력 포션도 조금 남아 있었고 말이다.
‘…마석을 다 팔지 말고 조금은 남겨둘 걸 그랬군.’
아쉽지만 마석은 직원들에게 모두 팔려 나간 상태.
마력 포션 몇 통만으로는 태운의 거대한 마력을 채우긴 힘들겠지만, 도명조를 해치울 한 방 정도 발휘할 양은 채울 수 있을 것이었다.
저벅 ― 저벅 ―
알 수 없는 희열과 우월감에 가득 찬 도명조가 그에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척 봐도 너무나도 여유로운 걸음걸이.
‘…좋아.’
태운은 그런 도명조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안도의 탄성을 내질렀다.
저벅 ― 저벅 ―
대략 10걸음 정도 남짓한 거리.
태운은 재빨리 정장 안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의 안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아공간 주머니.
그 속에서,
카라락 ―
유리병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응?”
여유로운 자세로 키득거리며 다가오던 도명조의 눈썹이 꿈틀댔다.
카라락 ―
품 안으로 손을 넣은 코드 제로에게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으니까.
“마력이 없으니까 설마 총이라도 꺼낼 요량…….”
말을 잇던 도명조.
멈칫 ―
그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다.
코드 제로의 손에 들린 물건의 정체를 알아본 탓이었다.
‘저건……?’
마력이 없는 절체절명의 상대.
그가 꺼내든 작은 유리병.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불그스름한 액체.
여기까지 파악되자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단 한 가지였다.
‘마력 포션……!’
화륵 ― !
다급해진 도명조의 심경을 대변하듯 그의 양손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거칠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 이 새끼가아아!”
후욱 ―
도명조의 양손에서 시뻘건 화염이 토해졌다.
화르르르르륵 ― !
마치 화염방사기를 쏘아 보내는 것처럼, 거대한 불길이 순식간에 코드 제로의 전신을 덮쳤다.
그러나,
화르르륵 ― !
태운의 행동은 도명조의 반응보다 한 발 더 빨랐다.
화륵 ― ! 화르륵 ― !
태운의 전신을 덮치려던 불길이 무형의 장애물에 막힌 듯이 태운의 주위를 돌아서 지나갔다.
[중력장(重力場)]
키이이잉……!
화르르륵 ― !
“……!”
불길 너머 속의 태운과 두 눈을 마주친 도명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느새 한 병을 목뒤로 전부 털어 넣은 태운이 입맛을 다시며 한 손을 뻗어 도명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이익!”
한순간에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다급해진 도명조가 힘을 더욱 강하게 전개하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 !
새빨간 화염이 검게 물들었다.
모든 금속을 제련할 수 있는 초고온의 불, 흑염이 전개된 것이다.
“그만 좀 죽어라아아아!”
[흑염권(黑炎拳)]
콰아아아아아아 ― !
검붉은 화염의 파도가 태운은 물론이고 4인의 대통령마저도 피격 범위 안에 넣고 달려들었다.
꿀꺽 ―
치이이이이 ― !
가지고 있던 5병의 마력 포션 전부를 털어 넣은 태운은 약간의 자가회복으로 일단 육체적 피로를 모두 날려버렸다.
그리고는,
“후우우우…….”
크게 심호흡을 하며 대통령들 앞에 자리해 자세를 잡았다.
[중력투법(重力鬪法)]
[뇌신화(雷身化) ― 청뢰 ver]
[뇌신권풍(雷神拳風)]
투확 ― !
태운의 손이 뻗어지며 푸른 광채가 명멸했다.
곧게 뻗어지던 그의 주먹은 허공에서 움직임을 멈추었고 그와 동시에,
퍼어어어어어엉 ― !
어마어마한 풍압이 전방으로 쏘아졌다.
푸확 ― !
화르르륵 ― !
집채만 한 흑염의 파도가 거대한 풍압과 맞부딪쳤다.
화륵 ― ! 화르르륵 ― !
속절없이 밀려나는 흑염.
아무리 일반적인 불을 상회하는 상위의 화염이라지만, 뇌신이 내지른 권풍에는 힘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는 듯했다.
화아아아아악 ― !
도명조가 내지른 검붉은 불꽃이 도로 다시 그를 덮쳤다.
쿠아아아아아 ― !
머리카락 한 올도 남기지 않고 도명조의 전신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흑염의 파도.
그러나,
스륵 ―
흑염이 지나간 자리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도명조의 신체는 그을음 하나 보이지 않았다.
헤파이스토스의 두 번째 권능, 화염 면역 덕분이었다.
금속과 불을 다루는 헤파이스토스의 신체는 불에 대한 완전한 면역을 가지고 있었다.
그 권능을 이은 도명조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 내성은 어디까지나 불에 대한 면역일 뿐.
번개에 대한 면역이 아니었다.
파짓 ― !
푸른 섬광이 도명조에게 날아들었다.
마력이 조금 부족해 광뢰신까지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뇌신화(雷身化) ― 청뢰 ver’를 전개한 태운이었다.
“네가 이긴 줄 알았어?”
“……!”
그 속도에 반응하지 못한 도명조의 두 눈이 뒤늦게 태운의 기척을 파악하고 동그랗게 커졌다.
[뇌신권(雷神拳)]
콰아아아아아아앙 ― !
이무기의 대가리와 거대한 판다의 대가리를 날려버렸던 뇌신의 정권이 도명조의 복부에 작렬했다.
치이이이이익 ― !
수 미터나 뒤로 밀려나는 도명조.
뒤로 밀려나는 도명조를 바라보며 태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밀려난다니?
이상했다.
뇌신권의 위력은 고작 상대방을 밀어내는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우웅 ―
도명조의 전신을, 희미한 무언가의 기운이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희미한 무언가의 기운은 도명조의 옷 속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역시.”
태운은 혀를 쯧 차며 그렇게 된 거였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 아이기스를 하나 더 가지고 있었군.”
“큭… 크크큭!”
태운의 말에 도명조가 미친 듯이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싹! 오싹!
도명조의 피부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옷 안에 받쳐 입은 갑옷형 아이기스가 아니었다면 방금 죽을 뻔했다는 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다 이겼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느낀 감정이라 더욱더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씨익 ―
어마어마한 안도감도 함께 밀려들고 있었다.
‘굳이 푸른 번개를 사용했다는 것은…….’
코드 제로의 입장에서는 마력 포션을 마셨다고 한들, 빨리 끝내버리는 것이 나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굳이 푸른 번개를 사용했다?
이는 마력 포션을 마셨어도 자줏빛 번개나 검은 번개, 혹은 그 소멸의 힘을 사용할 정도로 마력을 회복하지는 못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이거 정말 큰일났군. 노아신 님께 한소리 듣고 말겠는걸?”
도명조의 중얼거림을 들은 태운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도명조의 중얼거림을 들은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불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소리지?”
태운의 감각에 다시 경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까 전 문득 느꼈었던 불안했던 추측이 조금 다른 내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네놈들의 목적은 내가 아니었나?”
“으음……?”
코드 제로가 자신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 도명조의 목소리엔 어느새 또 한껏 긴장이 풀려 있었다.
여유가 넘치는 듯한 도명조의 표정.
까딱 ― 까딱 ―
그의 고개가 양옆으로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세계 최강의 헌터를 가지고 놀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흥분되고 즐겁겠는가?
그 감정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그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계속해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크큭… 그래 뭐, 어차피 죽을 테니 알려는 드릴게.”
도명조의 두 눈과 입가에 숨길 수 없는 광기가 어렸다.
“우리의 목적은 너를 여기에 붙들어놓는 것이었다. 네놈이 한국에 돌아갈 수 없도록 말이지.”
“……!”
도명조의 말을 들은 태운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짚이는 바가 있었으니까.
“서, 설마… 한국과 연락이 안 되던 이유가……!”
“으음? 벌써 연락을 해봤었나? 이거 참,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할 뻔했군.”
도명조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싱긋 미소 지어 보였다.
“맞아. 그분께서 한반도와 외부와 오고 가는 모든 전파를 차단하셨지. 통화는커녕 문자나 메신저도 모두 불가능하다. 인터넷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
가면 뒤 태운의 턱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알고 싶어? 원래라면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사실 상황이 다 끝나면 네놈을 풀어줘서 한국에 돌려보내려고 했거든. 네놈이 한국의 모습을 보고 절망에 빠질 수 있게.”
저벅 ―
도명조가 한 걸음 태운에게 다가갔다.
“기존의 십이 방주를 모조리 몰살시킨 코드 제로. 그런 너를 우리끼리 잡을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어. 최대한 네놈에게 당하지 않는 선에서 대통령들이나 대충 공격하며 시간이나 좀 끌다가 도망가려고 했는데…….”
짝짝짝 ―
도명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게 웬걸? 생각보다 더 전심전력으로 대통령들을 지켜주네? 그리고 뭐 때문인지 꽤나 조급해 보이네? 힘을 막 쓰고 엄청 세게 나오네?”
저벅 ―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엄청 세게 나오면서 방주들을 죄다 죽여버리네? 어라? 나 혼자 남았네? 근데 그 코드 제로가 마력을 다 써버렸네? 그럼 이거…….”
씨익 ―
“내가 죽여버릴 수 있겠네?”
태운의 하얀 0 가면과 도명조의 소 탈이 정면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나는 네놈에게 원한이 참 많아. XX당도 그렇고, 주작 길드도 그렇고… 그것도 모자라 너 때문에 일본에서도 도망쳐야 했지.”
화륵 ― !
도명조의 전신이 검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전신으로 흑염을 발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곧 죽을 테니 알려주마.”
퍼석 ― !
화르르륵 ― !
도명조는 자신의 소 탈을 잡아 부순 후 태워버렸다.
“나를 포함한 방주 총 8인은 너를 상대하기 위해 그리스에 왔다. 그리고 남은 다른 방주 하나, 드미트리와 다른 노아즈 아크 조직원들이 한국으로 향했다.”
“…뭐……!”
“그리고 무엇보다…….”
저벅 ―
도명조의 얼굴이 태운의 가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도명조의 광기 어린 두 눈이 가면 뒤에 흐릿하게 보이는 태운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노아신 님께서 한국으로 향하셨다.”
“……!”
태운의 두 눈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포기해. 코드 제로.”
도명조의 두 눈이 기분 나쁜 호선을 그렸다.
“너희는 끝났어.”
푸화아아악 ― !
검붉은 불꽃이 두 사람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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