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이긴 게 이긴 게 아님 (4)
“으, 으아아악!”
태운의 한마디를 듣자마자 냅다 도망가기 시작하는 도명조.
지익 ― 지이익 ―
줄행랑을 치는 도명조의 몸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그의 고유 능력 ‘분신’이 발현된 것이다.
지익 ― 지이익 ―
툭 ― 투둑 ―
한 발 뗄 때마다 새로운 도명조가 하나씩 늘어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태운은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물론 도명조의 분신은 도명조와 완전히 똑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옷차림도 마찬가지.
그러나,
“내 눈을 속이려면 아이기스부터 벗어놓던가.”
옷 안에 받쳐 입은 갑옷형 아이기스의 기운은 오직 한 개체에게서만 느껴지고 있었다.
아무리 분신이더라도 신기까지는 똑같이 베껴낼 수는 없는 듯했다.
꽈지직 ― !
태운의 손가락 끝에 검은 뇌전, 묵뢰가 장전되었다.
“잘 가라.”
[묵뢰탄(墨雷彈)]
꽈릉 ― !
총성 대신 짤막하지만 거대한 천둥소리와 함께,
꽈지지지지직 ― !
검은 뇌구가 아이기스를 입은 도명조의 등 뒤를 향해 쏘아졌다.
퍼서석……!
태운에게 등을 내보인 채 달아나던 아이기스를 입은 도명조의 상체가 바스라지듯 사라졌다.
상당히 오랜 시간 태운을 번거롭게 만들며 끈질기게 살아남던 도명조의 최후라기엔 굉장히 허무한 결과.
“후우…….”
그래도 어떻게든 그리스의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고 판단한 태운은 희미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응?’
무언가 이상했다.
광역적으로 펼쳐진 자기장 내에서 여전히 자신과 대통령들을 제외한 기척들이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
태운은 고개를 돌려 급히 주위를 살폈다.
눈앞에 보이는 대상들과 자기장 안에 감지되는 기척들을 비교하는 태운.
‘분신들이… 안 사라져?’
본체가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줄행랑을 치는 도명조들의 모습이 태운의 두 눈에 들어왔다.
총 18명의 도명조.
“이런… 씨X……!”
태운은 일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곧바로 깨달았다.
파짓 ― !
그의 신형이 곧바로 붉은 섬전이 되어 날아갔다.
* * *
“허억… 허억… 허억……!”
수많은 도명조 중 하나가 거친 숨을 내쉬며 도망가고 있었다.
‘죽기 싫어…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이대로는 죽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어온 목숨이던가?
한국에서도 도망치고 하와이에서도 도망쳤으며 일본에서도 도망쳤다.
코드 제로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이 벌써 3번.
이번에도 도망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때,
꽈릉!
핏빛 섬광이 번쩍이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던 도명조들의 분신 중 하나가 사라졌다.
“……!”
코드 제로가 자신의 블러핑을 눈치채고 추격을 시작한 듯했다.
키잉 ―
도명조는 곧바로 분신들에게 사념을 전달했다.
‘전원 퀴네에를 착용해라!’
척 ―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던 본체를 제외하고 남은 16명의 분신이 각자 품속에서 퀴네에를 꺼내 머리에 착용했다.
분신을 만들어낼 때마다 각자 퀴네에를 쥐여줬던 도명조.
한 분신에게는 아이기스까지 양도해가며 코드 제로의 눈을 한 차례 속인 도명조는 자신도 얼른 아공간 주머니에서 퀴네에를 꺼내어 착용했다.
스륵 ― 스르륵 ―
육안으로 잘만 보이던 도명조들의 신형이 허공에서 녹아내리는 눈송이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그러나,
꽈릉!
어디선가 또 한 번의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또 하나의 분신이 사라졌다.
퀴네에로 모습과 기척을 감춰도 소용이 없게 되자,
‘제기랄……!’
도명조의 애간장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 * *
파지직! 파직!
적뢰를 두른 태운의 신형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뇌신화(雷身化) ― 적뢰 ver.]
청뢰 버전의 뇌신화를 두르지는 못했다.
그러기에는 마력이 너무 부족했으니까.
스르륵 ―
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던 도명조들의 모습과 기척이 사라졌다.
하지만,
‘다 느껴져!’
태운의 자기장 안에 있는 이상 태운이 그들을 놓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가 태운의 뇌리에 박히고 있었으니까.
꽈릉!
한 줄기의 붉은 천둥으로 화한 태운이 단숨에 도망치고 있던 무형의 도명조를 위에서부터 찍어눌렀다.
콰드득!
자비는 없었다.
단숨에 내리찍은 태운의 주먹이 붉은 뇌전을 두르고 분신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그 자비 없는 일격에 단숨에 분신의 목뼈가 부러졌고,
치지직!
태운의 손을 트고 흘러 들어간 적뢰는 단번에 대상의 뇌와 신경을 마비시켰다.
사아아아……!
그러나 쓰러지기는커녕 마력 입자로 화하여 먼지처럼 사라지는 도명조.
벌써 두 번이나 헛방을 친 태운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기깅 ―
자기장의 넓이를 더 넓힐 수 없었으니까.
적뢰 버전의 뇌신화만으로도 마력이 간당간당한 와중에 자기장의 넓이는 그 크기의 유지만으로도 벅찬 상태였던 데다가,
타다닥 ― !
남은 16명의 도명조는 어느새 자기장의 끝자락에 거의 다 도달해 있었다.
으득 ― !
태운이 이를 악물었다.
키이이잉……!
투둑 ― 투두둑 ―
무리하게 힘을 끌어올린 태운의 두 눈에 실핏줄이 마구 터져 나갔다.
파직!
굵은 붉은 번개 한 줄기가 하늘 위로 쏘아 올려졌고,
[적뢰산탄(的雷散彈)]
파지지직!
자기장 끝까지 솟아올랐던 붉은 줄기는 산산이 흩어지며 적뢰가 아닌 적뢰가 되어 도명조들을 향해 날아갔다.
꽈르르릉!
가장 약한 붉은 번개라고 하더라도 번개는 번개.
잔뜩 약화된 본체와 분신들이 그 번개를 피해내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파지지지직!
하늘에서 내리친 갑작스런 붉은 섬광과 함께 본체를 포함한 16명의 도명조 중 12명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아무래도 분신인 데다가 나눠준 마력이 그리 크지 않아 쉽게 당한 듯했다.
“크으으윽!”
다른 분신들과 마찬가지로 적뢰에 맞은 도명조가 침음성을 흘렸다.
비틀비틀.
쿠당탕탕!
번개에 맞은 도명조의 신형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비틀거리다 이내 넘어지고 말았다.
퀴네에를 쓰고 있었지만 번개의 데미지는 거의 경감되지 않고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퀴네에는 방어 기능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그저 금속으로 된 철제 투구나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그나마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져 조금 더 단단할 뿐이었다.
“끄으으윽……!”
우웅 ― 우웅 ―
일렁 ―
거기에 더해 분신들이 소멸하면서 전해진 정신적 데미지가 한 번에 몰려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분신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예민해져 있던 와중에 정신적 데미지와 벼락에도 맞았으니,
“우웨엑! 우웨에엑……!”
도명조는 눈앞이 뱅글뱅글 돌다 못해 속이 뒤집히는 듯한, 심한 멀미까지 느껴야 했다.
어딘가 길바닥 한구석에 처박힌 도명조가 바닥에 엎드려 속을 게워내고 있을 때,
꽈릉! 꽈릉! 꽈르릉!
세 번의 천둥소리가 더 들려왔다.
남은 세 명의 분신마저도 코드 제로에게 당해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우우웅……!
정신적 데미지도 추가로 몰려왔다.
“우에에엑… 에엑……!”
속은 이미 모두 게워낸 채 이젠 위액을 게워내고 있는 도명조의 얼굴에서 눈물과 콧물, 침과 토사물이 질질 흘러내렸다.
‘어, 얼른 도망쳐야 해……!’
덜덜덜……!
도명조의 전신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본인 하나.
곧 코드 제로가 이곳에 도달할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콰앙!
요란한 굉음과 함께 태운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비틀비틀.
일어서는 태운의 신형이 위태로워 보였다.
마력마저 다 떨어졌는지 몸에는 붉은 번개조차 두르지 못한 모습.
“허억… 허억… 씨X, 확률 진짜 뭣 같네.”
총 18명 중 본체를 마지막에 찾다니.
처음엔 도명조가 속였다고 치더라도 18명 중 본체를 마지막에 찾은 것은 재수가 없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태운이 주먹을 꽉 쥐며 마력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칙 ― 치직 ―
적뢰가 나타나질 않았다.
무형의 정전기만이 튈 뿐.
방금 전 이곳으로 이동하느라 마력이 바닥난 것이다.
피이잉 ―
어마어마한 현기증이 몰려왔지만,
뿌득 ― !
태운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의식을 붙들었다.
터벅 ― 터벅 ―
억지로 근육을 꽉 죄어 투박한 걸음으로 도명조에게 향하는 태운.
흐릿 ―
금방이라도 블랙 아웃될 것만 같은 그의 시야가 태운의 신경을 긁어댔다.
“바…퀴벌레 같은 새끼……!”
왜 도명조 따위를 처리하는 데에 이렇게 수고로워야 하는 것인지.
지금까지의 과정만 살펴봐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명의 여신이 도명조의 목숨을 구해주는 것이기라도 한 걸까?
압도적인 전력 차에도 불구하고 바퀴벌레보다도 끈질긴 생명력의 도명조는 태운의 상대했던 적들 중 가장 죽이기 힘든 상대였다.
“우에엑… 허억… 허억… 크큭… 크크크큭……!”
바닥에 엎드려 이젠 위액마저도 나오지 않아 헛구역질만 계속하던 도명조가 웃음을 실실 흘리기 시작했다.
“너… 마력 없는 거 아니야…? 크크큭… 날 어떻게 죽이려고……?”
도명조 또한 마력이 바닥난 건 마찬가지였다.
아까 전 불기둥에 거의 전력을 다했었으니까.
거기다 분신까지 18명을 만들어냈고 적뢰까지 맞았으니,
피이이잉……!
마력 결핍으로 인한 현기증이 돌고 있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분신에 대한 반동이 끝나자 마력 결핍으로 인한 현기증이 몰려오며, 도명조는 더 이상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고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힐 것 같았으니까.
“허억… 허억… 큭큭큭……!”
하지만 도명조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천하의 코드 제로가… 마력이 바닥나서 나와 함께 뒹굴고 있다니… 허억… 허억… 참 세상일 모른다니까……!”
도명조가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부릅뜨며 고개를 쳐들었다.
“코드 제로… 일단 같이 편해지자고…! 허억… 허억… 깨어나면 모든 게 끝나 있을 테니까…! 어차피 너도 이제 날 죽일 수단은 없……!”
콰악!
말을 잇던 도명조는 말을 다 끝마치지 못했다.
태운의 억센 손이 그의 목을 붙잡았으니까.
꽈아아아악……!
“켁… 케켁……!”
단숨에 목이 졸린 도명조의 두 눈빛이 흐려졌다.
“허억… 허억… 널 죽일 수단이 없다고…? 크큭……!”
도명조의 목을 틀어쥔 태운의 엄지가 그의 목 가운데 위치한 울대를 누르기 시작했다.
“도명조… 그거 아냐…? 허억… 허억… 격투기 선수는… 아마 의사 다음으로 급소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는 거.”
“……!”
흐릿해지던 도명조의 눈빛이 살짝 돌아오며 크게 흔들렸다.
자신의 목울대에 위치한 태운의 손가락을 느낀 것이다.
“사, 살려……!”
“허억… 말해봐야 네가 뭘 알겠냐… 이제 시간 그만 끌고…….”
꾸욱 ―
태운의 손에 마지막 힘이 들어가고,
“이만 죽어라.”
뚜둑 ―
태운의 엄지손가락이 도명조의 울대뼈를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시각.
“…전부 당했군.”
한 존재가 무언가를 느낀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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