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총체적 난국임 (5)
악마.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악의 존재.
악마는 선이라 표명되는 신과 천사의 가장 대척점에 위치한 존재들이었다.
언제나 호시탐탐 인간을 타락과 파멸로 이끌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존재.
전설 속에 묘사되는 그들의 모습은 굉장히 다양했다.
여러 동물이 합쳐진 모습 혹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
아니면 기괴하게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이거나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 혹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전혀 다른 생김새로 묘사되기도 했다.
‘악마는 어떤 모습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마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궁금해했다.
악마는 어떤 존재이며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악마라는 존재에 빠져 스스로 타락과 파멸의 길을 걷기도 했다.
궁금증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사람을 파멸로 이끈 악마의 존재.
그 희대의 난제가,
“크에에에에에엑!”
지금 포천시에서 풀리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악마의 앞발이 도로를 뒤엎고 건물을 짓이겼다.
그리고 그런 악마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꾸릿꾸릿.
그 악마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상당히 지독했으며,
“크에에에에에엑!”
악마들의 포효는 듣는 이로 하여금 오금이 저리고 소름이 끼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덜덜덜……!
포천시를 탈환하겠다는 일념하에 자신 있게 뛰어들었던 청룡 길드원들은 삽시간에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으윽……!”
저마다 어떻게든 움직여보려 애를 쓰고 있는 모습.
그러나,
“크에에에에에엑!”
저 멀리 악마들이 토해내는 포효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오싹! 오싹!
자동으로 근육이 경직되는 감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씨X! 진짜 악마라고……?”
선두에 선 태성의 두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저 멀리 날뛰고 있는 악마의 모습이 어릴 적 상상해보았던 악마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검은 타이즈를 입은 듯 전체적으로 검고 매끈한 피부.
검은 전신 끝에 달린 붉은 손톱과 발톱.
머리 위에 달린 여러 개의 뿔과 흰자 하나 없는 붉은 바탕의 새까만 눈동자까지.
단 한 번도 세세하게,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익숙한 외형을 지니고 있는 악마들이었다.
꾸깃 ―
그 끔찍한 악마의 외형에 태성은 커다란 불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근두근.
그런 악마의 모습을 보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던 것이다.
‘뭐, 뭐야……?’
태성과 마찬가지로 악마의 모습을 보고 불쾌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낀 청룡 길드원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꿈틀.
악마들의 신형이 움직일 때마다 그들의 까맣지만 매끈한 피부가 꿈틀거리며 그 밑의 오밀조밀한 근육들이 꿈틀거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애매한 느낌의 악마의 신체.
굉장히 중성적인 느낌을 지닌 악마의 신체에 포천시로 뛰어든 일행들은 남자와 여자를 가릴 것도 없이 자신도 모르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화끈!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느낀 두근거림의 정체를 깨달은 헌터들이 커다란 자괴감을 느끼며 하나둘 주저앉기 시작했다.
“내, 내가 대체 뭘……!”
“아, 아니야… 아니라고……!”
이런 상황에 악마를 보고 성적 흥분을 느꼈다는 어마어마한 자괴감이 헌터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전투에 돌입하기도 전에 단순히 악마를 목격하는 것만으로 대한민국의 최정예라 불리는 청룡의 헌터들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실로 무시무시한 악마의 위용이었다.
비틀.
S급인 태성과 호성도 그 자괴감에 단숨에 먹힐 뻔했으나,
으득 ― !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그 자괴감에서 간신히 벗어났다.
끄덕 ―
서로 눈을 마주친 태성과 호성은 무언가 뜻이 통한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휙 ― !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뒤를 돌아보는 두 사람.
청룡 길드원들과 김바울이 주저앉거나 무릎을 꿇은 채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이 두 사람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 일행들을 향해,
“정신 차려!!!”
커허어엉!!!
태성이 커다란 음파를 토해냈고,
“일어나!!!”
파바바바박!
호성은 지면에서 대나무를 솟구치게 해 일행들의 몸을 두드렸다.
퍼뜩!
태성의 음파에 정신을 차리고, 호성의 대나무에 경직된 몸이 풀린 헌터들은 마치 최면에 걸렸다 풀린 사람들처럼 동시에 제정신을 차렸다.
“내, 내가 무슨……?”
“갑자기 왜……?”
정신을 차린 헌터들이 크게 당황하며 제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무나도 부지불식간에 벌어졌던 일이라 대항도 하지 못한 채 그런 감정에 먹혀버렸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김바울도 방금 전까지의 자신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는지, 제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일행들에게 태성이 정신이 바짝 들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로 경고했다.
“다들 잘 들으세요! 상대는 악마입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다 죽어요!”
“다들! 옆의 동료가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으면 망설임 없이 뒤통수 한 대씩 후려갈겨! 오케이?!”
뒤이은 호성의 조언에 마음을 다잡은 일행들이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케에에에에엑!”
그들의 존재를 눈치챈 악마들이 시가지를 부수다 말고 태성과 청룡 일행 쪽을 향해 돌아서기 시작했다.
* * *
태성과 청룡 길드가 악마들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한 그 시각,
“후우…….”
거대한 평야 지대 한복판에서 두 명의 남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길게 숨을 내쉬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청장발의 남자, 천용이 여전히 조금 지친 표정으로 상대방에게 물었다.
그러자 회색빛의 머리의 청년, 강천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면이 완전히 부서져 맨얼굴이 드러난 강천의 모습은 상처투성이였던 아까 전과는 달리 완전히 멀끔해져 있었다.
“네, 다 회복했습니다. 다만… 마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게 아쉽네요.”
“얼마나 회복하셨습니까?”
“4할 정도.”
강천의 말에 천용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회복도 하셨는데 그 정도면 엄청 빠른 거 아닙니까? 역시 대단하십니다.”
“청룡 길드장님은 얼마나 회복하셨습니까?”
“저는… 6할이 조금 안 되게 회복했습니다.”
천용의 말을 들은 강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평야의 바깥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이왕이면 마력을 다 채우고 가고 싶긴 합니다만…….”
“…네. 이 기운… 심상치 않아요. 얼른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쿠우우웅……!
두 사람이 마력 회복을 도중에 멈추고 눈을 뜬 이유.
세계급에 이른 헌터답게 두 사람은 아주 먼 거리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기운과 진동을 아주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상치 않은 마력의 파동이 심해지자 두 사람은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희 씨가 여길 보고 있을 텐데…….”
휙휙 ―
강천은 한 손을 들어 하늘의 누군가를 향해 휙휙 흔들었다.
그러자 정말 그런 강천의 손을 보기라도 한 듯이,
치익……!
그의 품 안에 있던 무전기에서 무전이 울렸다.
때마침 천리안 능력자 장지희가 두 사람이 마력 호흡을 끝낸 걸 확인한 모양이었다.
{코드 원! 괜찮으세요? 벌써 다 회복하신 건가요?}
협회 지휘 본부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직원의 목소리만으로도 두 사람은 다른 곳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얼추 회복했습니다. 다른 전선 상황 알려주세요. 제일 급한 곳이 어딥니까? 그곳으로 향하겠습니다.”
강천의 말에 본부 직원은 빠르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우선은 파주, 연천, 철원, 고성으로 시작된 4대 전선 중 파주 전선은 백호 측에서, 고성에서 속초로 이어진 전선은 청룡 측에서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다만 연천과 철원 전선은 방어에 실패해 동두천, 포천으로 밀렸고 동두천은 현재도 전투 중. 포천에서는 또다시 밀려 현재 양주까지 전선이 확대된 상황입니다!}
“……!”
드미트리와 싸우느라 천용이 알려준 강원도의 상황을 제외하고는 다른 전선의 상황을 처음 듣는 강천의 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포천이… 밀렸다고……?’
코드 제로인 태운이 부재한 지금, 전투부서의 최상위 부서 코스모스의 코드 원으로서 적어도 협회 전투부서 직원들이 어느 전선에 배치되었는지 잘 알고 있던 강천이었다.
‘포천엔 분명 감마조와 태성이 형이……!’
모두가 소중한 협회 동료들이었지만 위기의 상황에선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법.
포천시가 밀렸다는 본부 직원의 말에 강천의 머릿속에는 제일 먼저 한석과 태성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눈에 띄게 핼쑥해지는 강천의 안색.
그런 강천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본부 직원은 두 사람에게 지휘 본부 측의 지침을 전달했다.
{현재 청룡 길드와 포천시에서 퇴각했던 코드 투가 포천시 탈환을 위해 전투 중입니다만… 고전 중입니다! 두 분은 빠르게 포천시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퇴각.
이미 한차례 밀렸다는 포천시에서 태성이 퇴각했었다는 본부 직원의 말에, 태성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강천은 속으로 커다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바로 포천시로 가겠습니다. 그런데 코드 투가 퇴각했다면… 포천시에 있던 다른 병력도 퇴각했던 게 맞습니까?”
태성의 안위는 확인했으니 이젠 감마조의 안위만 확인하면 된다.
강천은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만…….}
본부 직원은 강천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수 없었다.
{포천시의 병력은 코드 투와 청호 길드장,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전멸했습니다.}
“…네?”
{…정말 죄송합……!}
소식을 전하던 본부 직원은 목소리가 떨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울먹임으로 바뀌며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아무리 전투부서와 행정부서가 나뉘어 있다고는 하지만, 협회 직원들은 모두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며 버텨왔던 존재.
같은 전투부서가 아니더라도 감마조의 전멸은 그들에게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비보였던 것이다.
툭 ―
무전기를 들고 있던 강천의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
옆에서 함께 무전 내용을 듣고 있던 천용은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대한 평야에 1~2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청룡 길드장님.”
강천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 정적을 깨뜨렸다.
“…네.”
“빨리 가시죠.”
키이이이잉 ― !
이마에 핏줄이 잔뜩 불거진 강천이 새빨개진 두 눈을 부릅뜨며 전신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전부 쳐죽여버리러……!”
으드드득 ― !
차오르는 눈물로 인해 흐릿해진 강천의 시야.
그런 그의 시야 너머로,
―얀마! 좀 쉬면서 해라. 우린 어떻게 따라가라고?
미소 지으며 농담을 던지던 한석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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