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반격이 이루어짐 (3)
화아아아악 ― !
마치 검은 쓰나미처럼 주위를 에워싸고 청룡 길드원들을 덮치는 악마들.
“아……!”
청룡 길드의 동료들과 함께 악마들의 포위 안에 갇혀 있던 서아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죽음을 직감하자마자 두 눈 가득 차오른 눈물이 그녀의 눈앞을 가린 탓이었다.
흔히들 소설이나 영화에선 죽음의 위기에 처하면 주마등이라는 것이 스쳐 지나간다고 했다.
지나온 삶이 쭉 되감기 되면서 삶을 돌아볼 수 있다나 뭐라나.
하지만 서아는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강천……!’
보고 싶은 그의 얼굴이 흑백사진처럼 스쳐 지나갔을 뿐.
아니, 어쩌면 강천의 존재가 그녀의 인생 그 자체였을지도 몰랐다.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고 주변인들의 기대와 부담만을 잔뜩 등에 진 채 헌터의 세상에 발을 디뎌야 했던 그녀였으니까.
물론 청룡 길드원들이 힘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동료들은 물론이고 길드장인 천용도 그녀를 항상 배려해주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스스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부여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살아내기 위해 외로이 고군분투하던 중,
―안녕하세요.
다시 돌아간 사관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저는 서아 씨가 더 대단한데요.
진심 어린 위로와 공감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이었다.
자신의 아픔과 고민을 무서울 정도로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마 그 또한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달리 그 중압감을 잘 이겨내고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강천이라는 사람에게 커다란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로는 그의 모든 것이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나이로는 자신이 누나임에도 종종 어린아이 같이 행동하는 그녀를 잘 받아주던 듬직한 남자친구.
세상이 아무리 코드 제로가 최고라며 칭송해도, 서아에게는 누가 뭐래도 코드 원이 최강이고 최고였다.
울컥 ―
서아는 문득 설움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무리 바빠도 데이트 몇 번 더 할걸.
아니, 데이트가 아니어도 좋으니 좀 더 옆에 붙어 있을걸.
아니, 그전에 좀 더 잘해줄걸…….
‘보고 싶다.’
서아는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강천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드미트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 회복하고 있다고 한 것이 마지막으로 들은 그의 소식이었다.
‘너라면 이 전쟁도 잘 정리해낼 수 있겠지.’
서아는 어느새 흐릿해진 시야가 전체적으로 새카맣게 변했음을 인지했다.
수많은 악마가 사위를 전부 덮어버린 탓일 터.
또륵 ―
가득 차올랐던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며 흐릿했던 시야가 조금 선명히 돌아왔다.
‘아아……!’
선명해진 시야 너머로 보이는 무시무시한 악마들의 모습.
한순간에 두려움과 절망감이 그녀의 전신을 엄습하기 시작하는 그때,
번쩍!
그 새카만 파도 속으로 한 줄기의 새하얀 빛무리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빛무리 속에서,
“강천……?”
서아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이의 얼굴을 발견했다.
* * *
콰르르릉!
포천시 상공으로 날아든 새하얀 뇌전 한 줄기.
검은 물결처럼 몰려든 악마들이 있는 곳에 도달하자마자,
파직 ― !
뇌전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두 갈래로 갈라진 뇌전의 줄기 중 하나는 호성을 죽이려는 악마에게 날아들었고,
키이이이이잉 ― !
다른 한 줄기는 청룡 길드원들을 뒤덮은 악마 떼 사이를 파고들었다.
[연극검회(軟棘劍廻)]
촤좌좌좌좌좌좌좍 ― !
백색의 기다란 연검이 청룡 길드원들을 에워싸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누구지?”
가면을 벗은 강천이 있었다.
“케에에에에엑!”
다 이긴 싸움이라 생각하며 방심하고 달려들던 악마들의 몸뚱이가 강천의 연검이 만들어낸 검막에 의해 갈려 나갔다.
햇빛마저도 뒤덮었던 시커먼 물결이 새하얀 그의 검에 의해 갈려 나가고,
반짝!
되찾은 하늘의 빛을 반사한 강천의 검이 더욱 빛을 발했다.
촤좌좌좌좌좌좍 ― !
최소 S급 중위 몬스터 수준의 강함을 자랑하던 악마 수십 마리가 순식간에 그의 검에 절명한 것이다.
투두두두둑 ― !
수많은 악마의 몸뚱이가 검은 육편 조각이 되어 지면에 흩어졌다.
“어……?”
죽음을 직감하고 두 눈을 질끈 감았던 청룡 길드원들은 문득 갑자기 밝아진 시야에 감았던 눈을 떴다.
“이, 이게 무슨……!”
갑자기 죽어버린 악마들과 뜬금없이 나타난 낯선 사내를 번갈아보며 청룡 길드원들이 당황해하던 그때,
와락 ― !
길드원들의 중심에서 연검을 회수하는 낯선 사내에게 한 여인이 달려들어 안겼다.
“…서아 씨?”
그들을 지켜보던 청룡 길드원들의 표정에 혼란이 일었다.
포옥 ―
아무런 말 없이 사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서아.
그리고 그런 서아를,
꽈악 ―
사내는 연검을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꽈악 안아주었다.
“안 늦어서 다행이다.”
사내의 다정한 목소리.
그런 사내의 말에,
“늦었어, 바보야…!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서아는 마치 고양이처럼 머리를 비비며 눈물을 흘렸다.
“대,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강천의 맨얼굴을 모르는 청룡 길드원들이 그렇게 살아났다는 안도감과 낯선 사내의 존재, 그리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서아의 행동에 당황하던 그때,
“다들 고생했습니다.”
그들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그들의 뒤쪽에서 들려왔다.
저벅 저벅 ―
상처투성이가 되어 기절한 호성을 업은 채 걸어오는 낯익은 사내.
그는 바로,
“아……!”
그들의 길드 마스터, 김천용이었다.
“길드장님!”
“마스터!”
그를 알아본 청룡 길드원들은,
주르륵 ―
그제서야 서아처럼 안도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 * *
“너는 아주 오자마자 염장을 지르는구나.”
청룡 길드원들이 천용 쪽으로 몰려간 가운데,
스윽 ―
서로 딱 붙어 있는 강천과 서아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투덜거렸다.
“아… 무사했었네.”
강천은 안도의 낯빛을 띠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반겼다.
방금 전까지 굳어 있던 태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고맙다. 아니, 미안하다…….”
태성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자신의 눈앞에서 몰살당할 뻔한 청룡 길드 사람들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표시와, 자신이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스러움을 동시에 표하려다 보니 말이 이상해진 것이다.
하지만 강천은 굳이 풀어서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상황이었으니까.”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잘 이해한다는 듯 무언의 교감을 주고받던 강천과 태성.
그런 두 사람의 사이로,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길드원들과 간단히 회포(?)를 푼 천용이었다.
천용은 태성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제가 없는 동안 저희 길드원들을 지키기 위해 애쓰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지키지 못한 이들이 더 많습니다. 죄스러우니 그만해주시지요.”
태성의 손사래에 천용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속초에서 같이 싸웠던 청룡 길드원 중 절반 이상이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음을 그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 도시 어딘가, 차가운 바닥 위에 몸을 뉘고 있겠지.
꽈악 ―
천용은 입술을 깨물며 침전하려는 감정을 애써 다잡았다.
그는 길드 마스터.
청룡 길드를 이끌어야 할 용의 머리였으니까.
순간 가라앉으려는 분위기를 눈치챈 강천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몬스터는 이게 전부입니까? 의외로 더 이상 기척이 느껴지지 않네요.”
방금 전 강천과 천용의 기습으로 죽은 악마의 숫자만 무려 수십 마리.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그 이상의 위기를 상정하고 날아왔던 강천과 천용은 연신 기감을 세우고 주위의 기척을 탐색하고 있었다.
“…두 분이 워낙 강하셨던 거죠. 그 악마 놈들… 한 놈, 한 놈이 최소 S급 수준이었다고요.”
잠깐 기절한 것뿐이었는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자가회복으로 상처를 회복한 호성이 지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확실히… 세계급과 S급의 차이가 이렇게 큰지 이번에 다시 확실하게 깨달았다.”
태성은 호성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럼 포천시는 완전히 정리되었다는…….”
괜히 부끄러워진 강천이 다시 대화를 일축하며 화제를 돌리려던 그때,
치이익……!
그의 품속에서 무전 연결음이 들렸다.
헌터 협회 지휘 본부에서 온 무전이었다.
{코드 원! 그리고 청룡 길드장님! 포천시까지 정리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코드 투와 청룡 길드원분들도 수고 많으셨어요!}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여성의 목소리에 강천과 태성의 눈이 살짝 이채를 띠었다.
매우 익숙한 목소리였으니까.
그녀는 바로,
“다 지희 씨 덕분이죠. 제때 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리안 능력자 장지희였다.
강천이 반가운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했지만,
{지금 막 전투를 끝내신 와중에 정말 죄송합니다만……!}
장지희는 그 인사를 받을 새도 없었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전달하려 했다.
“…무슨 일입니까?”
강천은 표정을 굳히며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전선인 동두천시가 위험합니다! 기존에 동두천에서 싸우던 헌터들에 더해 백호와 현무가 합세했는데도 수세에 몰리고 있어요!}
“……!”
무전기 너머 장지희의 말에 포천에 있던 헌터 전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전 내용이 모두에게 공유되고 있던 탓이었다.
‘백호와 현무가 둘 다 합세했는데도 밀린다고……?’
‘말도 안 돼……!’
“…현재 동두천에 있는 우리 측 병력 구성이 어떻게 되죠?”
태성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장지희에게 물었다.
{기존 병력인 베타조와 델타조 그리고 불패 길드의 생존자, 뒤이어 합세한 백호 길드와 현무 길드, 추가로 타 전선의 뒷정리를 마치고 도착한 알파조와 다른 길드 헌터들이 있습니다!}
‘뭐야…? 거의 전부잖아?’
장지희의 말을 들은 태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포천시에 있는 병력을 제외하면 이번 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병력의 생존자들이 동두천시에 모여 있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그런 병력이 동두천시에서 밀리고 있다고?
아무리 지원을 간 병력이 다른 전선에서의 전투로 지쳤다고는 하지만 말이 안 된다.
그럼 여태껏 동두천시에서 싸웠던 이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다는 말인가?
“동두천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천용의 질문에 장지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포천시의 브레이크에서 나왔던 악마들의 일부가 동두천시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악마들의 보스가 동두천시에 나타났어요!}
“……!”
“왠지 뭔가 허전하다 했더니……!”
악마 몬스터들의 보스.
그 말을 듣는 순간,
“청룡 길드 전원! 전속력으로 동두천시로 향합니다!”
“예!”
천용은 곧바로 길드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코드 원 씨! 코드 투 씨! 그리고 호성!”
““예!””
“꽉 붙잡으세요!”
번쩍!
가장 강한 세 사람을 등 뒤에 태운 천용의 신형이 순식간에 백색 뇌전으로 화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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