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261화 (261/300)

261화. 검은 절망이 내려앉음 (1)

양주시를 정리한 뒤 사실상 마지막 전선이나 다름없는 동두천시로 빠르게 지원을 간 백호 길드와 현무 길드.

수세에 밀리던 베타조와 델타조 그리고 불패 길드 헌터들을 후방으로 배치하여 잠시 쉬게 한 뒤, 백호 길드와 현무 길드원들은 뒤이어 도착한 알파조원들과 함께 노아즈 아크의 잔당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콰지직!

“크아아악!”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노아즈 아크 측은 더 이상 강력한 적이라 부를 만한 녀석이 남아 있지 않았다.

튀어나온 몬스터들도 기껏해야 B급 수준의 녀석들.

3대 길드에 이름을 올린 두 길드원들과 협회 전투부서 중 수좌를 다투는 알파조원들에게 그 정도 적들을 정리하는 일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퍼억 ― !

“크르르륵……!”

“후우…….”

몬스터 한 마리의 복부를 후려쳐 내장을 파열시킨 헌터 협회장, 동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파주시 전투에 참여했던 동석은 양주시로 재빨리 지원을 간 백호 길드를 대신해 파주시의 뒷마무리를 담당하고 방금 바로 동두천시에 도착한 참이었다.

‘포천으로는 코드 원과 청룡 길드장이 향했다고 했으니… 사실상 마지막 전선이군.’

동석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전투에 뛰어들기 전, 후방에서 휴식을 취하게 한 동두천시 병력의 생존자들의 면면을 확인하며 기성과 유린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놈들아… 너희들, 살아 있는 거겠지?’

콰앙! 콰아아앙!

동석은 각자 전선이었던 도시의 뒷마무리 후 자신의 주위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알파조원들을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기성을 제외한 모든 알파조원들이 그의 주위에 있었다.

오랜 전투에 지칠 법도 했음에도 그들의 얼굴에서는 피곤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표정에서 엿볼 수 있는 감정은,

‘…분노.’

심해와 같이 깊고 차가운 분노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아즈 아크와 그들이 일으킨 다중 브레이크에 의해 죽었다.

게다가 지금껏 함께 협회를 일궈온 동료인 감마조의 전멸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커다란 충격이었다.

으득 ― !

콰아아아앙!

두 눈에 핏발이 가득한 철민의 주먹이 몬스터의 머리를 짓이기다 못해 이미 상가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건물의 기둥 하나를 통째로 부쉈다.

우르르릉……!

기둥 하나를 잃은 건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진동을 일으키며 울음을 토해냈다.

“후우… 후우… 후우……!”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한 철민의 모습.

스륵 ―

그런 철민에게 알파조원, 재희가 다가와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과도하게 힘을 쓰는 그를 진정시켰다.

“선생님… 진정하세요. 건물이 무너지겠어요.”

“…미안하다.”

철민의 나지막한 사과에 재희는 그런 그를 이해한다는 듯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헌터 1세대 중 일인이며 오랜 시간 사관학교에서 교관을 맡아왔던 철민.

실전반을 전담하는 교관이었지만 기초반과 강화반에도 종종 모습을 보이며 지도해주었던 그였다.

그러니 사실상 사관학교를 거친 헌터 중 철민의 가르침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이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철민은 그중에서도 이상 혹은 뜻을 이루기 위해 열악한 협회를 지망한 제자들을 특히나 기억에 담아두었다.

혹시나 자신이 협회에서 못다 이룬 뜻을 그들이 이뤄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그랬기에 그들에게는 더 큰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감마조의 전멸은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감마조뿐일까?

베타조와 델타조에서도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선생님! 아… 교관님이었죠? 하핫!

협회에 돌아와 오랜만에 만난 녀석들이 웃으며 인사하던 모습이 아직도 그의 눈앞에 선명했다.

‘너희의 원수는 내가 갚아주마.’

철민의 두 눈빛이 살기로 가득 차며 형형하게 빛났다.

쐐액 ― !

그의 기존 전투 스타일답지 않게 날쌘 기동력을 선보이는 철민.

으득 ― !

그가 무리해서 신체를 강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편, 분노를 삼키느라 무리하고 있는 것은 다른 알파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감마조를 포함한 모든 협회 직원들은 그들의 또 다른 가족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렇게 모든 이들이 가족, 친구 혹은 동료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머금은 채 고요한 분노를 담은 공세를 이어 나가기 시작하니,

콰아아아앙!

이미 수적으로도 불리해진 노아즈 아크 측이 순식간에 밀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한국 측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던 전황도 잠시,

쿠웅 ― ! 쿠웅 ― !

어디선가 커다란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거인의 발걸음 소리 같은 느낌.

“……!”

“저, 저게 뭐야……?”

그 거대한 발걸음 소리의 주인을 발견한 헌터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하니 벌렸다.

동두천시 동쪽 끝자락.

그곳에서 빌딩보다도 커다란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 * *

전체적으로 사람처럼 생긴 그것의 형상.

그러나 단순히 평범한 사람의 형상은 아니었다.

그것의 머리 부분에는 여러 개의 얼굴이 달려 있었으니까.

게다가 놈이 움직일 때마다 머리 부분에 달린 여러 개의 얼굴은 시시각각 다른 얼굴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뿐일까?

“케에에에엑!”

녀석의 주위에는 놈을 호위하듯이 사람 키의 2배 정도 되는, 상대적으로 작은 악마들이 날고 있었다.

검은 타이즈를 입은 듯 전체적으로 검고 매끈한 피부.

검은 전신 끝에 달린 붉은 손톱과 발톱.

등 뒤에 펄럭이고 있는 박쥐와 비슷한 흑색 날개.

머리 위에 달린 여러 개의 뿔과 흰자 하나 없는 붉은 바탕의 새까만 눈동자까지.

그림책에서 한 번쯤 보았을 법한 그런 악마들이 커다란 놈의 주위를 날며 호위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이… 포천시에 나타났다던 그 악마들인가?”

장지희의 무전을 통해 이미 포천시에서 나타난 악마 형태의 몬스터 중 일부가 동두천시로 향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헌터들.

하지만 말로 들은 것과 직접 보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두근두근.

포천시에 돌입했던 청룡 길드원들과 태성이 그랬듯 악마를 보자마자 가슴의 두근거림을 느낀 헌터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미, 미친… 내가 무슨……!”

“아, 아니야… 나, 나는……!”

커다란 혼란을 느낀 헌터들이 하나둘 자괴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어어어!”

커허어어어어엉!

백호의 커다란 울음소리가 단번에 혼란을 느끼던 헌터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흠칫!

자괴감에 빠지진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며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상위 헌터들도 호백의 포효에 정신을 차렸다.

백호 길드원들을 비롯한 모든 헌터들의 정신을 일깨운 호백.

째릿 ― !

그는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괴물을 가만히 노려보며 녀석의 힘을 가늠해보았다.

‘S급 던전의 보스인가… 아니면 그 위? S급 던전 보스여도 힘들 텐데…….’

고오오오오……!

괴물의 힘을 가늠하던 호백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현재 한국 측의 주요 병력은 S급 셋.

알파조를 포함해 A급 헌터가 꽤 많이 있다고는 하지만, S급 던전 보스를 상대로 A급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터였다.

저 괴물을 비롯한 악마들이 S급 던전에서 나왔다고 해도 절망적인 상황.

하물며 만약 저놈들이 만약 S급 던전이 아닌 그 위의 EX급 던전에서 튀어나왔다면……?

오싹!

커다란 백호로 변신한 호백의 전신의 털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무조건 전멸이다……!’

최소한 코드 원과 천용의 존재가 꼭 필요한 상황.

‘두 사람이 빨리 포천시를 마무리하고… 이곳에 오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나……!’

호백이 보스를 바라보며 이를 바득바득 가는 그때,

“젠장! 형님! 뭐 하는 거요!”

근처에 서 있던 정태가 호백을 나무라며 앞으로 쇄도했다.

“…어?”

순식간에 저만치 앞으로 나아간 정태의 뒷모습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호백.

그러다,

“아……!”

정태가 향하는 방향 끝에 있는 이들을 보고 헛숨을 들이키며 그 또한 앞으로 몸을 날렸다.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커다란 괴물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앞에서,

“케에에에엑!”

누군가 악마들에게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악마들에게 쫓기는 이들의 정체는,

“젠장!”

기성과 유린 그리고 대한과 민아를 허리에 둘러맨 동혁이었다.

* * *

콰아아아앙!

“아니, 씨벌! 이 새끼들 장난 아니잖아?!”

“골 울리니까 조용히 좀 해라! 정호백……!”

포천시에서 흘러들어온 악마들을 상대로 한국 측은 협회장, 동석의 지휘 아래에 방어 진형을 갖추었다.

전위에는 호백과 정태, 대상.

그리고 각각 마력 수치가 2만이 넘는 A급 상위 헌터들이 그들의 뒤를 지원했다.

마력 수치가 2만이 채 안 되는 A급 헌터들은 다른 헌터들과 함께 방진을 갖추고 버티기에 돌입했다.

포천시를 정리한 강천과 천용이 도착할 때까지 생존율을 높이고 시간을 끌기 위한 작전이었다.

―{최소 S급은 되어야 상대가 가능합니다! 정면 대결을 피하셔야 해요!}

이 모든 것이 포천시에서 있었던 전투를 먼저 목격한 장지희의 경고 덕분이었다.

어차피 아무리 숫자가 많아 봐야 악마들을 상대로는 이길 수 없음을 알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S급 헌터인 세 사람도 악마들과 격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전하기 시작했다.

두 마리부터는 A급 상위 헌터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진작에 당했을 정도.

그야말로 악마 던전의 브레이크 하나로 인해 한국 측의 병력 전체가 완전히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순간이었다.

‘이곳을 제외한 모든 전선에서 승리를 거뒀음에도 이런 꼴이라니……!’

동석은 악마들로부터 가까스로 도망쳐온 기성, 유린, 동혁 그리고 대한과 민아의 상태를 살피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 아니, 협회장님! 코드 원과 청룡 길드장은 어디 있습니까? 저 보스를 죽이려면 최소 세계급이 필요해요!”

치이이이익 ― !

부족한 마력으로 악마들로부터 다른 4명을 지키며 도망치느라 전신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기성이 자가회복을 시전하며 동석의 옷깃을 잡았다.

“…두 사람은 지금 포천시 탈환을 위해 포천으로 갔다. 두 사람이라면 아마 곧 도착할 거야.”

“오ㅃ… 아니, 코드 제로 님은요? 아직도 연락이 안 되나요?”

기성 덕분에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이는 유린이 동석에게 물었다.

“…그래. 아예 신호 자체가 안 간다고 한다. 누군가 통신 자체를 막아놓은 것처럼…….”

“그리스 대사관 쪽도요?”

“코드 제로만 연락이 안 되는 게 아니야. 지금 전국의 모든 통화가 불발 상태야. 국내 직통 무전기를 제외하면 통신기기란 통신기기는 아무것도 작동되고 있지 않아.”

“……!”

“아무래도… 그 노아즈 아크에서 무언가 수를 쓴 것 같다.”

과거 태운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통제했다고 하는 노아즈 아크.

동석은 그들이 또 무언가 수를 써놓은 것이라고 확신했다.

한편 표정이 심각하게 굳은 세 사람의 옆에서는 대한이 민아를 깨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얼른 마력 모아서 회복하라고!!”

“으으으… 너무 졸려…….”

짝! 짝!

아직도 다리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민아가 대한에게 뺨을 맞고 있었다.

찔끔찔끔 자가회복을 계속하느라 마력 고갈 상태가 길어지면서 민아의 정신이 흐릿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자면 죽는다고!”

짜악!

대한이 아무리 그녀의 뺨을 쳐도,

“으으으…….”

민아는 그다지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듯 여전히 비몽사몽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야! 채민아……!”

대한의 얼굴이 완전히 울상으로 변하던 그때,

“비켜봐.”

동혁이 발품을 팔아 창훈에게서 겨우 얻어온 마력 포션을 민아의 입에 냅다 부었다.

다행히 창훈에게 여분으로 남겨둔 하나가 있었던 것이다.

“쿨럭!”

갑자기 입안으로 들어온 마력 포션을 민아가 반사적으로 토해내려 했지만,

“삼켜.”

동혁은 그녀의 턱을 꽉 붙잡고 열지 못하게 막아 억지로 삼키게 했다.

꿀꺽 ―

마력이 어느 정도 차오르자 민아의 눈빛에도 조금이지만 생기가 돌았다.

“바로 자가회복 해.”

“으, 으응…….”

동혁의 어두운 목소리에 민아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바로 자가회복에 돌입했다.

치이이익 ― !

다행히 민아는 다리를 완전히 회복하고도 마력이 남았고,

“스읍… 후우… 스읍… 후우…….”

곧바로 마력 호흡으로 마력까지 회복하기 시작했다.

“후우…….”

일단 민아를 살리는 데에 성공한 동혁은 한숨을 쉬며 연신 굉음이 터지고 있는 저쪽을 바라보았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다행히 악마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아서 S급 3인을 필두로 어찌저찌 버티고는 있는 상황.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히죽 ― 히죽 ―

어느샌가 다가오는 것을 멈춘 채 이쪽을 바라보며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커다란 괴물의 존재였다.

오싹! 오싹!

놈의 괴상한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공포를 느끼게 했다.

아마 놈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이곳에 있는 대다수가 몰살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으득 ― !

동혁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아직도 B급에 불과해 약해빠진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웠으니까.

초인이라 불리는 헌터가 되었음에도 누군가의 힘에 의지해야 한다는 무력한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으로선 일단 살아남기 위해 다른 강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강천아, 빨리 와라.’

동혁은 어느덧 해가 기울어 조금씩 불그스름해지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며 제때 도움의 손길이 닿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태운아, 너는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