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검은 절망이 내려앉음 (2)
한국이 크게 고전하고 있는 그 시각.
키이이이이잉 ― !
그리스 영공을 빠져나온 비행기 하나가 서남아시아의 상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행기 안.
급히 그리스 대통령의 전세기를 얻어 탄 태운이 전세기 좌석에 앉아 마력 호흡을 하고 있었다.
“스읍… 후우… 스읍… 후우…….”
슈우우우우 ―
텅 빈 그의 마력이 다시 빠르게 차올랐다.
남들에 비해 몇 배는 빠르게 마력 수치를 올리는 태운의 마력 호흡의 효율이, 마력을 회복하는 데에도 똑같이 적용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태운이 가진 마력통이 워낙 크다는 것.
슈우우우우 ―
아무리 채워도 그의 마력통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움찔! 움찔!
태운의 몸이 연신 계속해서 움찔거렸다.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무언가 내적으로 커다란 갈등을 겪고 있는 듯했다.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
이미 몇만에 달하는 마력을 회복한 상태였기에 태운은 지금 당장 비행기를 뛰쳐나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위험에 처한 이들은 일단 살릴 수 있을 터.
그러나 그와 동시에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전력이 아닌 상태로 갔다간 자신마저 노아신에게 당해 결국 한국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커다란 딜레마에 놓인 태운.
움찔! 움찔!
그의 심리를 반영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몸은 마력 호흡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 말 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곧,
“후우우우…….”
기다란 날숨과 함께 그의 몸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침착해… 침착해라, 권태운……!’
결국 상황을 좀 더 멀리 보기로 결심을 내린 것이다.
진작부터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것처럼 최대한 많은 이들의 생존율을 더 높이는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스읍… 후우… 스읍… 후우…….”
마력 호흡을 이어가는 태운의 숨소리가 조금 커졌다.
‘잘… 선택한 거겠지?’
막상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안한 듯 태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헌터가 된 이후 태운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건 바로,
‘제발… 다들 무사해야 해……!’
누군가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부르르 ―
태운의 전신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 * *
다시 동두천시.
악마들을 상대로 겨우겨우 버텨내던 한국 측 병력은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 발 떨어져서 전장을 바라보며 기괴하게 히죽거리고 있던 커다란 괴물이,
쿠웅 ―
마침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탓이었다.
구륵 ― 구륵 ― 구르륵 ―
마치 기포가 올라오듯 놈의 머리 부근에서 갖가지 얼굴이 마구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얼굴들이 가진 표정은 참으로 다양했다.
웃는 표정, 행복한 표정, 우는 표정, 화난 표정, 슬픈 표정, 비웃는 표정, 놀란 표정 등등.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란 감정을 모두 나타내고 있는 듯한 얼굴들이 단 1초에도 여러 개씩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런 거대한 괴물을 보며,
“아, 아름다워…….”
마력 수치가 낮은 상당수의 하급 헌터들은 홀린 듯이 멍하니 괴물 쪽을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미, 미친! 뭐 하는 거야!”
아직 현혹되지 않은 헌터들이 그들을 제지하려 했지만,
“이거 놔아……!”
몰려드는 악마들을 견제하기도 바쁜 와중에 진심으로 그들을 뿌리치며 괴물에게 다가가려는 헌터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몇몇 하급 헌터들이 방진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케에에엑!”
홀린 듯이 방진을 빠져나간 하급 헌터들을 악마들이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같은 편이라도 되는 듯 그들을 붙잡으려는 헌터들을 막아서기까지.
‘대체 이게 무슨……?’
그런 악마들의 행태를 보며 헌터들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듯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 놈들의 수에 넘어가지 마라!”
동석은 재빨리 호통을 쳐서 혼란스러워하는 헌터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하지만 당혹스러운 것은 동석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가 당혹스러워하는 이유는 다른 이들과 달랐다.
‘여러 개의 얼굴,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유혹하는 능력, 거기에 악마들을 통솔하는 존재라면……!’
동석은 저 거대한 괴물의 정체를 알아내고야 말았으니까.
“솔로몬의 72 대악마 중 71위계…….”
괴물의 정체를 알아낸 동석의 전신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단탈리안(DANTALIAN)……!”
동석의 입에서 괴물의 정체가 흘러나온 그 순간,
우드드득 ― !
어느새 괴물의 발치까지 다가선 하급 헌터들의 몸통이 갑자기 검게 변하며 커지기 시작했다.
우드득 ― 우드드득 ― !
“케에에에엑!”
기존의 악마들이 새로이 동료가 된 헌터들을 환영하듯 허공에 포효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는 단탈리안.
단탈리안의 머리 부근에 돋아난 마치 거품 같은 수많은 얼굴이,
히죽 ―
단체로 섬뜩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 * *
콰드드득!
“크아아악! 제발 정신 차려!”
방진이 순식간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악마로 변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전의를 상실한 탓이었다.
“그럼 이 악마들이… 전부 한국의 헌터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악마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동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헌터들은 섣부르게 악마들을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눈앞에서 동료들이 죽어 나갔다.
악마가 되어버린 동료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게 죽어가는, 아직 살아 있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선,
“제기라아아아알!”
악마가 된 동료를 죽여야만 했다.
슈악 ― !
어떻게든 의지를 다잡은 헌터들이 울분을 삼킨 채 동료를 향해 죽일 기세로 공격을 날렸다.
그러나 기세는 단지 기세일 뿐,
텁 ―
“케케케켈……!”
악마로 변한 동료는 이미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아아아……!”
절망이란 그늘이 드리워졌다.
결코 피해낼 수 없는 절망의 먹구름이 방진 전체를 뒤덮었다.
“정신 차리세요!”
터어어엉 ― !
척력을 전개해 가까스로 악마를 조금 물러서게 만든 유린이 목이 쉬어라 악을 썼다.
절망과 공포에 먹혀 포기하는 헌터들이 많아지면서 방진이 순식간에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으니까.
으득 ― !
목에 잔뜩 핏대를 세운 유린이 정신 차리지 못하고 좌절하는 헌터들을 어떻게든 일으키려 했지만,
“케에에엑!”
여유가 없는 건 유린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악 ― !
부지불식간에 날아든 악마의 손이 유린의 목을 노리고 어느새 코앞까지 짓쳐들어왔다.
“너나 조심해!”
콰앙!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부상을 회복한 기성이 유린에게 달려드는 악마의 손을 아슬아슬하게 쳐냈다.
“흐읍!”
동혁이 그의 뒤에서 보조를 맞추며 악마의 전신에 거미줄을 둘렀다.
“케엑!”
투두둑……!
그러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끊어지기 시작하는 거미줄.
하지만 그 잠깐의 틈은 기성이 파고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스카가가각 ― !
강철 검으로 변형시킨 기성의 양손이 악마가 있는 공간을 통째로 찢어발겼다.
“켁……!”
끝내 목이 잘린 악마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무리 동혁이 뒤를 받쳐줬다지만 놀라운 성과.
실질적 전투력만큼은 철민보다도 뛰어난 현 알파조 최강자다운 실력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
“케에에에엑!”
점점 늘어나는 악마들의 앞에서는 기성조차 속수무책이었다.
“젠장! 피해!”
기성은 자신에게 몰려드는 악마들과 대치하며 유린과 동혁을 뒤쪽으로 집어 던졌다.
“오빠아아아!”
“기성 니이이임!
콰드드득!
악마들이 만들어낸 검은 물결이 순식간에 기성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오빠아아아아아!”
유린의 절규가 이어지고,
“…기성아?”
전방에서 S급 헌터들의 보조를 맞추고 있던 인하가 그 절규의 음성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 * *
“끄아아아악!”
“크아아아악!”
“사, 살려……!”
방진이 무너지며 수많은 비명과 절규가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아, 안 돼……!”
이에 S급 헌터들의 보조를 맞추던 A급 헌터들의 정신마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친한 동료 혹은 가족의 비명 소리가 계속 뒤에서 들려오니 도통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것이다.
방진을 공격하고 있는 악마들보다 더 많은 수의 악마들이 그들의 앞에 있었지만,
“안 돼애애애!!!”
그들은 이미 이성을 상실한 채 스스로 자각하기도 전에 등 뒤에서 당하고 있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 어디 가는 겁니까!”
A급 헌터들의 보조를 받아 힘겹게 악마들을 상대하고 있던 호백, 정태 그리고 대상.
순식간에 뒤를 받쳐주던 A급 헌터들의 절반이 빠져나가자,
콰아아앙!
“크으윽!”
아무리 강한 그들이라도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핏! 피빗! 사악!
전신에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세 사람.
“아아악!”
자리에 남아 보조를 맞추던 A급 헌터들도 하나둘 당하기 시작했다.
“이…런 X바아아알!”
울분에 찬 호백의 욕설이 하늘에 울려 퍼지는 그때,
번쩍!
하늘에서 백색 불꽃이 떨어져 내렸다.
* * *
슈욱 ―
백룡 위에 타고 있던 호성이 동두천 시내로 떨어져 내렸다.
키이이이이잉 ― !
일단 절망으로 치닫는 상황을 억제하기 위해 호성은 단번에 전력을 다하여 마력을 전개했다.
터업 ―
호성의 손바닥이 동두천시 바닥에 닿았고,
“하압!”
쿠궁 ― !
악마들이 존재하는 모든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죽림대산(竹林大山)]
콰드드드드드드득 ― !
순식간에 7, 8층짜리 빌딩만 한 두꺼운 대나무들이 악마들의 발밑에서 수없이 치솟았다.
죽창군주라 불리는 이명다운 광범위한 기술이었다.
“케에에에엑!”
“키에에에엑!”
한순간에 대나무에 찔리거나 대나무 사이에 끼여버린 악마들.
무시무시한 기세로 헌터들을 몰아붙이던 악마들을 잠시나마 저지하는 데 성공한 호성이었지만,
우직 ―
아무리 마력으로 강화된 대나무라도 수많은 악마의 완력을 견뎌내기는 무리인 듯했다.
우지직……!
순식간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죽벽.
호성은 이를 악물고 코피까지 흘려가며 발악하듯 외쳤다.
“빨리이이이이!”
호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퍼져나간 동두천 시내.
“……?”
이 모든 전황을 재밌다는 듯 지켜보던 거대한 단탈리안은 문득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서 무언가 번쩍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윽 ―
단탈리안이 거대한 머리통을 움직여 자신의 가랑이 밑을 바라보는 순간,
우드드드드득 ― !
순식간에 지면에서 자라난 고동색 나무 두 줄기가 단탈리안의 전신을 휘감았다.
“……!”
순식간에 고개를 숙인 채 몸이 속박되어버린 단탈리안.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 단탈리안의 가랑이 사이에서,
처컥 ―
산발이 된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고 있는 한 사내가 번쩍이는 불빛을 겨누었다.
“뒈져.”
은발의 사내의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콰후우우우우우우웅 ― !
붉은 빛줄기가 동두천 하늘 위로 치솟았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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