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검은 절망이 내려앉음 (3)
콰후우우우우우우웅 ― !
하늘 높게 치솟은 불꽃 한 줄기가 도시를 가득 뒤덮은 절망이라는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랑이에서부터 정수리 끝까지 커다란 구멍이 뚫린 단탈리안이 끔찍하고도 기괴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케에에에에에에에에엑!”
수많은 얼굴만큼이나 다양하게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
그 기괴하고도 불쾌한 비명 소리에 헌터들은 전투 도중 자신도 모르게 양손으로 두 귀를 막고 엎드려야만 했다.
“크으윽!”
“젠장!”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눈앞의 적들을 두고 자신도 모르게 두 귀를 막은 채 엎드려버리고 만 정태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1~2초 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이르게 악마의 손이 자신의 모가지를 뜯어버리겠지.
저마다 비슷한 생각을 하며 헌터들은 귀를 막은 채 끝끝내 그들에게도 찾아온 사신의 손길을 기다렸다.
그러나,
“……?”
생각보다 죽음이 찾아오는 시간이 느렸다.
정태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눈동자만을 움직여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악마들을 올려다보았다.
부들부들……!
어찌 된 일인지 악마들이 떨고 있었다.
“꺼어어어억……!”
저마다 입을 벌린 채 하늘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떠는 모습.
괴로운 것인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꺼어억… 꺼어어어억……!”
악마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힘없이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
헌터들은 그제서야 마음껏 안도할 수 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코드 원과 청룡 길드장이 왔어……!”
헌터들의 눈빛에 차오르기 시작하는 희망.
콰릉! 콰르르릉!
그리고 그 희망에 확신을 부여하듯,
파지지지직!
붉은 선 주위로 하얀 뇌전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 *
콰후우우우우웅 ― !
강천이 쏘아 올린 붉은 레일건이 단탈리안의 몸통을 꼬치처럼 꿰뚫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엑!”
기분 나쁜 단탈리안의 비명 소리가 강천의 정신을 뒤흔들었지만,
으득 ―
강천은 입술을 깨물어 피까지 내며 정신을 붙들었다.
후우우우웅……!
레일건 광선의 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강천의 마력이 무한한 것이 아니니 당연한 현상.
그러나 그 파괴력에 힘을 더하듯,
파지직!
천용의 백뢰가 뻥 뚫린 단탈리안의 몸통 내부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치지지지직!
어느덧 사라진 붉은 광선의 자리를 백색 뇌전이 메꾸었다.
회복할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몸통 안을 마구 난자하기 시작하는 천용의 번개.
그러나,
슈루룩 ―
단탈리안의 회복 속도가 백뢰의 파괴 속도를 살짝 앞서는 듯, 단탈리안의 몸통에 난 구멍은 아주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었다.
“응애애애애애애애애애!”
단탈리안의 갓난아이 같은 비명 소리가 천용의 온몸에 닭살이 돋게 만들었다.
“징글징글하다 징글징글해!”
레일건을 거두고 호흡을 회복한 강천이 다시 단탈리안의 가랑이 밑에서 두 손을 쳐들었다.
[백린탄(白燐彈) ― 초대형 ver]
두두두두두두두 ― !
상대방을 모조리 태울 때까지 꺼지지 않는 불꽃을 품은 커다란 백린탄들이 단탈리안의 상처 부위에 난사되었다.
콰과과과과광 ― !
“꺄아아아아아아악!”
상처 부위에 닿은 백린탄이 폭발했다.
그리고는,
치이이이이이이 ― !
단탈리안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흐에에에에에에엑!”
단탈리안은 마력으로 강화된 리그넘바이티에 묶인 채 갖가지 공격을 얻어맞으며 갖은 비명으로 계속 두 사람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세계급에 이른 두 사람이었기에 원래라면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테지만,
“크윽……!”
둘 다 워낙 지친 상태라 두 사람은 약간의 자극에도 크게 예민해져 있었다.
“천용 씨!”
강천의 외침에.
“으윽… 예!”
표정을 잔뜩 찡그린 천용이 뇌전을 거두고 다른 능력을 전개했다.
후우우우우웅 ― !
일대의 산소가 단탈리안의 몸통 안으로 모여들었다.
치이이이이이이이 ― !
안 그래도 무서운 기세로 타들어가던 백린이 더 거세게 타올랐고,
“흐아아아압!”
강천은 여기에 더해 화염방사기로 화염을 불어넣었다.
푸화아아아아악 ― !
밀집된 산소를 타고 번진 불길이 거대한 화룡을 만들어냈다.
백린과 화룡의 합공.
그 파괴력은 단순한 백뢰를 뛰어넘기에 충분했다.
“끼에에에에에에에엑!”
마침내 전신이 불살라지기 시작한 단탈리안.
고막이 찢어지고 뇌가 뒤흔들릴 정도로 요란하게 비명을 질러대던 단탈리안은,
스르륵 ―
잠시 뒤 끝내 힘을 잃고 쓰러졌다.
두 도시를 공포로 몰아넣은 몬스터들의 보스라고 하기엔 꽤나 허망한 최후였다.
쿠웅 ― !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새카맣게 타버린 단탈리안이 쓰러지자,
“꺼어어어어억……!”
쿵 ― 쿵 ―
하늘을 향해 꺽꺽거리던 악마들도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스르륵 ―
쓰러진 악마들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사락 ―
무언가 걷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악마가 있던 자리에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 *
노아즈 아크의 갑작스런 대대적인 남침.
멸망의 날 혹은 최후의 날이라도 도래한 듯 모든 이들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집어넣던 그 엄청난 혼란은 다행히 한국 헌터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흐으윽… 흐윽……!”
너무나도 커다란 희생이 잇따랐다.
동두천시.
쓰러진 단탈리안의 거대한 시체를 보며 헌터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몇몇 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단순히 살아났다는 안도의 눈물.
그러나 대부분의 헌터들이 흘린 눈물은 동료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도와 한탄의 눈물이었다.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다……!”
헌터들이 저마다 여기저기 널린 동료들의 시체를 붙잡고 흐느꼈다.
그리고 그중에는,
“오빠아아아……!”
“기성아아아아악!”
동석의 가족도 있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손상된 기성의 몸.
철인이라는 이명이 무색할 정도로 다친 기성의 몸은 그가 마지막 순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으허어어엉… 허어어엉……!”
기성의 약혼녀, 인하가 그의 머리를 붙잡고 오열했다.
뚝… 뚜둑…….
그녀의 두 눈에서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기성의 얼굴에 난 커다란 상처들 위로 떨어져 내렸다.
“오빠… 오빠아아……!”
유린은 자신을 구하고 죽은 오빠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믿을 수 없었다.
언제나 강인했던 오빠가 이런 식으로 가버릴 줄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유린은 처음 기성이 마력 감염증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의 기억까지 맞물리며 호흡 곤란이 올 정도로 흐느끼고 있었다.
그런 유린의 등 뒤에서 한 발치 떨어진 곳.
들썩들썩.
동석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차가운 시신으로 변한 아들의 모습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마주하는 순간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나 아직 동석은 무너질 수 없었다.
그는 한국 헌터 협회장.
이 전장을 정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자, 모든 헌터의 죽음을 애도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미안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생하고 가는 아들을 가슴에 묻으며 동석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주르륵 ―
그의 입가에 한 줄기의 핏물이 흘러내렸다.
빙글 ―
애써 아들에게서 눈을 떼는 동석.
그가 뒤를 돌자,
뚝… 뚝…….
여기저기에서 동료들의 죽음에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협회 직원들이 있었다.
“모두… 전장을 정리합시다. 시체들을 회수하고 부상자들은 빠르게 병원으로 옮기세요.”
동석은 울음을 삼키며 꾹꾹 누른 목소리로 슬퍼하고 있는 협회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예.””
협회 직원들과 그들을 도우려는 길드 헌터들이 이미 시체가 되었거나 크게 다쳐 혼절한 동료들을 회수하며 울음을 집어삼켰다.
“기성이 형…….”
강천 또한 잠시 기성의 시체를 쳐다보다가 눈물을 머금고 현장 정리를 위해 발길을 돌렸고,
“…….”
천용은 조금 늦게 도착한 청룡 길드원들과 함께 묵묵히 현장 정리를 도왔다.
스윽 ―
한 헌터의 시체를 회수하던 천용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덧 불그스름해지고 있는 하늘.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는 것이, 길었던 하루가 마무리되려는 듯했다.
“너무… 긴 하루구나.”
천용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토록 길고 끔찍한 하루가 또 있을까.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그들의 하루도 끝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전장에 흩어져 있을 한국 헌터 전사자들의 시체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몬스터들의 사체나 노아즈 아크의 시체도 깨끗이 청소해야 했다.
피 튀기고 다급했던 낮이 끝났으니, 이제 가슴 먹먹한 밤을 맞이해야 할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든 헌터들이 눈물을 머금고 현장을 정리하고 있는 그때,
치지직 ― !
동석의 가슴에서 무전기가 울렸다.
지휘 본부에서 날아온 무전이었다.
“…협회장입니다.”
동석은 힘없는 목소리로 무전을 받았다.
{협회장님!}
한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
천리안 능력자 장지희였다.
“아… 지희 씨인가. 그래, 수고 많았네. 동두천은 지금 마무리되어서 현장을 정리하고 있는 중인…….”
동석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표정으로 씁쓸히 미소 지으며 무전기 너머로 수고했다는 위로를 건넸다.
현장에 있는 헌터들 못지않게 수고한 헌터 중 하나가 바로 장지희였으니까.
하지만 장지희는 동석에게 그런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자 급히 무전을 한 것이 아니었다.
{협회장님! 안 끝났어요!}
장지희의 무전에 동석의 표정이 단번에 딱딱하게 굳었다.
“…뭐?”
아직도 어디선가 노아즈 아크의 병력이 남아 학살을 벌이고 있는 광경이 저절로 상상되었으니까.
{안 끝났다고요! 아직 한 명이 남았어요!}
하지만 다행히 남은 병력은 겨우 하나에 불과한 듯했다.
동석은 그 말을 듣고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다 보면 적의 병력을 한둘 놓치는 일 정도야 종종 있는 일이지 않은가?
동석은 남은 적 하나가 그런 류의 잔당이라고 생각했다.
“후우… 다행이군. 알겠네. 곧바로 추격조를 편성해서 놈을 마무리하도록 하지. 그래서? 그 남은 하나는 어디쯤 도망가고 있지?”
{도망가는 게 아니에요! 그곳으로 가고 있다고요!}
장지희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막 동두천시 안으로 들어가… 아앗! 위, 위를 보세요!}
“…위?”
장지희의 무전을 들은 동석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노을의 끝을 알리듯 보랏빛으로 물든 동두천시의 하늘 한가운데.
“……!”
누군가 허공을 밟고 서 있었다.
전체적으로 검은 망토를 두르고 얼굴에는 붉은 무언가를 쓰고 있는 낯선 사람.
그자의 신형이,
스으으 ―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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