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검은 악몽을 꿈 (1)
꿈이다.
이건 꿈이다.
지금 이 상황은 꿈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으니까.
‘어째서? 왜? 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거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서울은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성한 건물 하나 없었고 민간인들은 모두 대피했거나 죽어 있었다.
그뿐일까.
“아아아…….”
오며 가며 종종 마주치곤 했던 길드 헌터들이 바닥에 싸늘한 시체로 변해 누워 있었다.
단순히 일반 헌터뿐만이 아니었다.
“박대상 헌터… 구정태 헌터… 정호백 헌터… 민호성 헌터……!”
오랫동안 한국 헌터계의 정점으로 군림하며 한국을 이끌어가던 기둥 같은 S급 헌터들마저 숨이 끊어진 듯 미동조차 없는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파르르 ―
태운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더미 속엔,
“김천용 헌터……!”
겨우 얼굴 부분만이 드러난 청장발의 천용이 피 칠갑을 한 상태로, 두 눈도 감지 못하고 흰자를 드러낸 채 죽어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충격이 태운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으윽……!”
비틀 ―
공중에 떠 있던 태운의 신형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와중에 밑을 내려다보자,
“아아아아……!”
그간 동고동락했던 헌터 협회 헌터들의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모두 아는 얼굴들 뿐.
동혁과 대한, 민아의 시체는 물론이고 알파조원들과 태성 그리고 민철의 시체도 그곳에 있었다.
덜덜덜……!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 애초에 받아들일 수는 있을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꿈이다.
이건 꿈이다.
반드시 꿈이어야만 했다.
꽈악 ―
덜덜 떨리는 태운의 손이 자신의 볼을 꼬집었다.
아프다.
고통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 현실이라고……?’
“허억… 허억… 허억……!”
태운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거칠었던 그의 숨은 눈앞에 서 있는 키 큰 십자가에 매달린 두 사람을 보는 순간,
“끄흐으윽……!”
한순간에 처절한 울음으로 뒤바뀌었다.
거의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강천.
그리고…….
“유린아……!”
이미 숨이 끊어진 듯 일말의 미동 하나 없이 아래로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는 검은 머리의 여인.
―근데 이 목걸이는 뭐야? 항상 하고 다니던데.
―아, 이거? 엄마가 나 사관학교 들어가기 전에 사준 거야. 내가 하도 사고를 쳐서…….
―아 그래? 되게 심플하고 깔끔하다. 어머님 취향이신가?
―보기엔 심플해도 목걸이 안에 보석이 들어가 있대.
―무슨 보석?
―아쿠아마린! 아쿠아마린이 예전부터 안전을 기원하는 보석이래.
―오… 근데 밖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 아니야? 아무 티도 안 나는데.
―뭐 어때. 마음이 중요하고, 의미가 중요한 거지. 그리고 난 애초에 화려한 건 별로 안 좋아해.
―오, 알았어. 참고할게.
―…잠깐만. 뭘 참고한다는 거야?
그리스로 떠나기 전 새벽, 그녀의 무릎에 누워 했던 달콤하고 즐거웠던 대화가 태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대화의 주제가 되었었던 그 목걸이가,
스륵 ―
여인의 머리카락이 늘어지며 드러난 그녀의 목에 걸려 있었다.
여인의 목에서 드러난 수수한 디자인의 목걸이는 잔인하게도 그녀가 틀림없는 한유린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애초에 그런 목걸이 같은 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전신에 피 칠갑을 하고 상처를 입었더라도, 태운이 자신의 연인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까.
부글부글부글……!
태운은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노아즈 아크……!”
뚝… 뚝…….
태운의 두 눈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
도시를 뒤덮고 있는 시뻘건 화염의 빛깔이 비치며, 마치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듯 그의 눈물이 붉어졌다.
너무나도 커다란 충격에 태운의 이성이 날아가려 하는 그때,
“선물은 마음에 드나?”
어디선가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
태운의 시선이 십자가 아래로 향했다.
두 십자가 사이에 서 있는 한 남자.
남자는 붉은 악귀 형상의 탈을 쓰고 있었다.
“너는……!”
태운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부서져라 이를 갈았다.
“설마, 네가 노아신이냐……?”
태운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호오……?”
남자는 약간의 놀라움이 섞인 감탄사를 내뱉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짝 짝 짝 ―
주변의 상황과 맞지 않는 박수 소리가 불타는 동두천시 전체에 울려 퍼졌다.
“역시 코드 제로로군.”
붉은 악귀 탈의 남자, 노아신이 박수를 치는 동시에 아주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아주 예리한 추리력이다. 그리고 참 무서운 통찰력이야. 어떻게 단번에 내가 노아신이라는 걸 알았지?”
“…….”
태운은 자신을 놀리는 듯한 노아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볼 뿐.
태운의 묵묵부답에 노아신은 재미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말라고. 그래, 그래서 내가 준비한 선물을 본 소감은?”
노아신이 이를 드러내며 이죽거렸다.
“꽤 볼 만하지?”
“너……!”
“아아, 참으로 힘들었어. 이 장면 하나를 만드는 데에 대체 방주가 몇 명이나 죽어 나간 것인지…….”
이 지옥 같은 참상을 만들어낸 노아신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피곤하다는 듯 하품을 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 노아신의 행동을 보며.
“이 천하의 버러지 같은… 찢어 죽일 씨X 새끼가아아아……!”
태운의 두 눈이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충혈되었다.
으득 ― 으드득 ― !
그의 전신에서 근육과 뼈 그리고 신경계가 마구 울고 있었다.
피이이이잉 ― !
그의 핏줄 속 혈류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가속했다.
고오오오오오 ― !
태운의 기운이 거칠게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도시를 불태우던 화마가 기세를 잃고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만전의 태세를 갖춘 태운이 막 노아신에게 달려들려는 그때,
“…근데 이거 참, 어이가 없군.”
노아신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자세 그대로 헛웃음을 흘렸다.
멈칫 ―
노아신의 그 태연자약한 행동에 그에게 달려들려던 태운의 기세가 움찔하며 주춤거렸다.
쿵쿵쿵쿵쿵!
‘…뭐지?’
본능적인 경종이 태운의 뇌리를 울리고 있었다.
지금 달려들어선 안 된다고.
태운이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자,
“오히려 화내야 할 건 이쪽이지 않나? 안 그래?”
쿠우우웅 ― !
이번엔 노아신의 분위기가 한순간 뒤바뀌며 압도적인 기운으로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
생각보다 더 강한 노아신의 기운에 놀란 태운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이글이글……!
붉은 악귀 탈 뒤로, 노아신의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이 태운의 두 눈을 정확히 노려보았다.
“얼마나 걸렸다고 생각하나?”
노아신의 목소리에서 짙은 분노가 절로 묻어나왔다.
“일말의 의심조차 할 수 없도록 전 세계에 걸쳐 만들어진 헌터계의 카르텔 그리고 정계와의 연합. 그에 파생되어 누릴 수 있었던 헌터들의 특권과 기득권에도 불구하고 확보할 수 있었던 헌터들에 대한 서민들의 긍정적인 이미지.”
쿠구궁 ― ! 쿠구구구구…….
노아신의 기운에 짓눌린 주변의 건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정교하고도 거대한 판을 구축하는 데에 얼마나 걸렸다고 생각하나?”
고오오오오 ― !
노아신의 기운이 끝도 없이 상승했다.
이미 세계급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 노아신의 기운.
도대체 마력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느껴지는 마력 자체만 보면 곧 태운이 가진 마력량마저도 뛰어넘을 듯했다.
“처음으로 던전이 등장한 2075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2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판을 깨뜨린 건 네놈이 먼저였어!”
우우우우우웅 ―
노아신의 신형이 점차 떠오르기 시작했다.
슈우우우 ―
순식간에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두 사람이 있는 곳까지 떠오른 노아신이,
팟 ― !
양손으로 손을 뻗었다.
“……!”
정신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놀란 태운의 몸이 경직된 그때,
“이 모든 건.”
키이잉……!
“다 네놈이 자초한 거다.”
노아신의 양손에서 커다란 빛이 내뿜어지던 그 순간,
“…형.”
겨우 고개를 든 강천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두 눈에는 온통 눈물범벅을 한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태운을 불렀다.
“강천……!”
“못 지켜서 미안해.”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콰아아아아아아앙 ― !
십자가 두 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어……!”
태운의 몸이 오류라도 난 듯이 버벅거렸다.
그의 사고가 상황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어……!”
머릿속이 새하얗다 못해 까맣게 암전되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그가 느낄 수 있는 거라곤,
부글부글……!
금방이라도 몸 전체를 터뜨릴 듯이 끓어대는 거대하고도 깊은 분노뿐이었다.
치지직!
태운의 몸에서 금빛 번개가 튀어 올랐다.
치지지직!
번개는 곧 금빛에서 바다와 같은 푸른빛으로 변했고,
치지지지직!
다음으로 튀어 오른 번개는 짙은 자줏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뚝 ―
“으으으으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두 눈이 뒤집힌 태운의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고,
꽈지지지지지지지직!
그를 통째로 집어삼킨 절망과도 같은 어두운 흑색 번개가 그의 전신에서 사방으로 방출되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르르르릉!
줄기줄기 뻗어 나간 새까만 묵뢰가 건물과 도시를 통째로 지우기 시작했다.
“큭큭큭…! 어이쿠.”
태운의 눈앞에서 유린과 강천을 직접 없애버린 노아신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흑색 번개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열 받느냐? 화가 나느냐? 날 죽이고 싶어서 미치겠느냐?”
노아신은 입으로만 미소를 지으며 분노와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허공에서 발작을 일으키고 있는 태운을 바라보았다.
“네놈은 우릴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 그냥 얌전히 체제에 순응해서 살아야 했어! 쓸데없이 판을 뒤집고 화를 불러온 것은 모두 네놈이야!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너 때문에 죽은 거다!”
“크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태운의 정신을 더 거세게 뒤흔들고자 했던 노아신의 외침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이미 검은자가 사라지고 흰자만이 남은 태운의 이성은 이미 날아간 지 오래였기에.
그런 태운의 모습을 보며,
“…뭐야? 벌써 정신이 무너진 건가?”
노아신은 생각보다 싱겁다는 듯 혀를 찼다.
“쯧, 겨우 이런 놈에게…….”
스윽 ―
뒤로 물러난 노아신이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죽여.”
섬뜩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한마디에,
쿠웅 ― !
수십 개의 존재가 노아신의 주위로 한순간에 등장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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