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검은 악몽을 꿈 (4)
어두운 공간.
혼자가 된 태운은 그 어둠 속을 홀로 헤매고 있었다.
“하아… 하아……!”
아무리 달려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목표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뭐 하고 있지?’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리고 있는가.
그리고…….
‘…난 왜 여기 있지?’
왜 이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것인가.
지끈지끈.
깨질 듯한 두통이 엄습했다.
“크윽!”
어둠 속을 달리다 말고 머리를 감싸 쥔 태운은 그 자리에 엎어졌다.
지끈지끈.
누군가 머릿속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 속에서 기묘하고도 복잡한 느낌이 동시에 들고 있었다.
무언가 잊어선 안 될 것을 잊고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절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느낌.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두려움과,
주륵 ―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그리움.
“…어?”
투둑 ― 툭 ―
그의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왜 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울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살 것 같았으니까.
그래야 이 먹먹하고 꽉 막힌 마음이 조금 풀어질 것 같았으니까.
“흐윽… 흐으윽……!”
우직 ―
어떻게든 버텨내려던 태운의 마음속 견고했던 성이,
“으흑! 허으으으윽……!”
우지지직 ―
그의 두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의 홍수에 휩쓸렸고,
“으아아아아아악……!”
콰르르르르 ―
곧 천둥과도 같은 비명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꺼흐흐흑!”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어린아이처럼 오열하기 시작하는 태운.
격투기의 천재이자 세계 챔피언이며, 전 세계를 전율케 했던 코드 제로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 모습.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태운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흐으으윽! 쿨럭! 쿨럭!”
울부짖다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할 정도로 거리낌 하나 없이 슬피 우는 태운.
그렇게 얼마나 홀로 어둠 속에서 울었을까.
[다 울었는가.]
“……!”
갑자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니면 아이인지 어른인지 노인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묘한 목소리였다.
스윽 ―
잠시 아이가 되었던 태운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전히 어두컴컴한 공간에 태운 혼자만이 존재했다.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고, 느껴지지 않았다.
[꼴사납구나.]
그저 하나의 목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누구야.”
태운은 눈물을 닦아내며 허공에다 대고 중얼거렸다.
[내가 누구냐라……?]
태운의 물음에 목소리는 살짝 말끝을 올렸다.
본인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듯한 뉘앙스.
하지만 곧 목소리는 대답을 내렸다.
[나는 네가 가진 힘.]
“……!”
[모든 것의 ‘시작’이다.]
태운의 두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 * *
초힘, 영문으로는 ‘Super Force.’
우주의 탄생과 동시에 갈라졌다는 4대 힘인 중력, 전자기력, 약력, 핵력의 모체이자 기원.
그게 바로 태운이 가진 힘이자 고유 능력이었다.
“네가… 내 힘이라고?”
태운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초힘……?”
[초힘이라… 나는 그런 식으로 불리고 있었나. 뭐, 명칭이야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만.]
태운의 힘, 초힘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너는 왜 이곳에 와 울고 있는가?]
초힘의 말에 태운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내가 왔다고? 네가 날 끌고 온 게 아니라?”
태운의 말에 초힘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무얼 위해 너를 끌고 들어온다는 거지? 애초에 나는 의지 자체가 없었다. 이 목소리 또한 네가 바란 심상에서 비롯된 도구일 뿐.]
“내가… 바란 거라고?”
태운은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덜덜덜……!
사고가 따라올 수 없는 상황이 여럿 누적되면서 두 팔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흠… 스스로의 의지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보아하니 버거워 보이는 것 같군.]
“버겁다고…? 뭐가……?”
[뭐긴 뭐겠나. 현실에서 맞닥뜨린 너의 모든 상황이 버거웠던 거겠지.]
“……!”
[이제 알겠군. 현실이 너무 버거워서 내면으로 도망친 거였어.]
“도망쳐…? 내가……?”
[이 공간을 보면 모르겠나?]
초힘의 말에 태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
그 공간엔 오직 어둠과 태운, 단 두 가지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여긴 너의 심상세계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지.]
“심상세계…….”
[진실된 너를 나타내는 공간이란 뜻이다.]
초힘은 짧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이곳은… 그래, 유토피아였다. 네가 사는 지구만큼이나 넓고 밝은 세상이 펼쳐진 유토피아.]
“…….”
[그런데 한순간에 그 모든 것이 사라지더군. 이곳에서 너와 함께 웃고 부둥키던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세상이 말이야.]
“……!”
[그렇게 네 심상세계에는 어둠만이 남았고, 조금 뒤 네가 들어왔다.]
주르륵 ―
태운의 두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털썩 ―
그의 신형이 다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아아아…….”
마침내 기억해낸 것이다.
그의 가슴을 찢어놓던 슬픔의 원인을.
“아아아아아……!”
이 처절한 상실감과 공허함의 주인공들을 말이다.
그렇게 태운이 다시 어둠 속에서 울기 시작한 그때,
[왜 울고 있는 거지?]
초힘이 그에게 물었다.
“나는… 지키지 못했어.”
[무엇을 말인가?]
“내 소중한 사람들… 그들을 눈앞에서 잃었어…….”
[잃는다라… 잃는다는 것은 무엇이지?]
“…다시는 볼 수도 없고, 느끼지도 못하는 것.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
초힘의 물음에 태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초힘의 질문이 자꾸만 그의 아픈 구석을 건드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곧,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건 잃은 것이 아니게 되는 건가?]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면 너는 아직 그들을 잃지 않았군.]
“……!”
태운은 초힘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 * *
번뜩!
“하아…….”
태운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이 흘러나왔다.
스륵 ―
흐릿했던 초점이 돌아오자마자,
쿠와아아아아아 ― !
그의 눈앞에 웬 화살 하나가 날카로운 화살촉을 그의 미간에 떡하니 들이대고 있었다.
파사삭……!
태운의 몸을 감싸고 있는 묵뢰에 닿으며 겉에서부터 소멸되어 가는 화살.
하지만 화살이 소멸하는 속도보다 화살촉이 태운의 미간에 다가오는 속도가 더욱 빨랐다.
핏 ― !
초점이 돌아온 태운의 신형이 순식간에 제자리에서 뒤로 빙글 돌았다.
섬전과도 같은 반응속도였다.
피잇 ― !
쿠와아아아아아아아 ― !
태운의 이마에 작은 상처를 낸 화살은 그대로 그 자리를 지나쳐 검은 구를 형성한 악마 무리를 꿰뚫었고,
콰아아아아아 ― !
곧이어 공간 전체를 뒤덮는 검붉은 지옥염이 악마구 전체를 뒤덮었다.
“케에에에에에엑!”
그 지옥염에 휩쓸려 순식간에 사라지는 수십만 마리의 악마들.
그런 악마들을 바라보며,
“…….”
태운은 무심한 눈빛으로 불꽃 너머 저 멀리 있는 수많은 존재의 기척을 느꼈다.
‘악마들이라…….’
무심했던 태운의 눈빛에 차가운 살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퇴마부터인가.”
중얼.
작게 뭐라고 한차례 중얼거리는 태운.
스윽 ―
손을 앞으로 뻗더니,
꽈지지지직!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묵뢰를 전방으로 모았다.
[묵뢰벽(墨雷壁)]
쿠구궁 ― !
그 무엇도 뚫을 수 없는 소멸 속성의 검은 벽이 생성되었다.
푸화아아아악 ― !
화르르륵 ― !
파사사삭……!
불꽃이 갈려 나가는 소리가 태운의 귀를 간질였다.
‘도명조의 불꽃보다 강력하군.’
묵뢰벽 너머, 피부로 느껴지는 불꽃의 열기가 도명조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뜨거웠다.
화끈! 화끈!
꽤 거리를 두고 막아 직접 닿지 않았는데도 화끈거리는 피부가 그 화염의 위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수초 정도 더 시간이 흐른 뒤,
화륵 ― !
어느새 사위를 온통 검붉은색으로 물들였던 화염은 불씨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꽈지지지직!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오로지 검은 번개가 주위에 아른거리고 있는 태운 한 명뿐.
그를 감싸고 있던 악마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불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과연… 악마는 악마인가.’
아무리 썩어 넘칠 정도로 많은 부하라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같은 편을 적과 함께 몰살시키려 하다니.
‘몰살……?’
우욱 ―
순간 죽은 이들의 모습을 떠올린 태운은 허공에서 비틀대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하아… 하아… 역겨운 놈들.”
으득 ― !
조금 뒤 정신을 차린 태운의 두 눈이 저 멀리 위치한 악마들을 찾아냈다.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태운 쪽을 바라보고 있는 대악마들… 그리고…….
“노아신……!”
꽈지지지직!
태운의 전신에서 검은빛이 명멸하기 시작했다.
* * *
“헉!”
태운이 아몬과 바르바토스의 공격을 막아낸 걸 확인한 아와드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게다가 뭔가 분위기까지 달라진 것이 제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다, 당장 전부 공격해! 당자아아앙!”
다급해진 아와드가 대악마들을 향해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그러나,
“…….”
대악마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에이~ 주인! 왜 그리 겁을 내고 그래? 으응?”
그레모리는 계속 눈치 없이 그에게 치근덕대고 있었다.
“푸히히히힝! 명색이 바알의 계약자가 인간 하나를 두려워하는 게 말이 되는가?”
오로바스가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었다.
그러자 아와드는 더는 참지 않고 두 눈을 부릅뜨며 대악마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벌써 대악마 두 마리가 당하고, 최상위 대악마의 공격까지 멀쩡하게 막아낸 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대체 네놈들은 대가리가 어떻게 된……!”
아와드가 악을 쓰며 분노를 토해내던 그때,
“쉬이이이…….”
작은 악어의 등 위에 올라탄 한 남자아이가 악어의 등을 밟고 서서 그의 입에 검지를 올렸다.
“아직 아빠가 아무 말도 안 하셨어.”
“그런……!”
“그러니까 좀 닥쳐줄래?”
오싹!
남자아이의 경고에 아와드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작은 남자아이의 모습이었지만 상대는 제3위계 대악마, 아가레스의 아들인 바싸고였으니까.
“크윽!”
결국 아와드는 아가레스를 향해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바알의 힘을 빌려 악마들을 소환한 것은 그였지만,
“흐으음…….”
사실상 이곳 대악마들에 대한 통솔권은 아가레스에게 있었던 것이다.
“아가레스…! 이러다 다 죽는다고……!”
아와드는 바싸고의 눈치를 보고 목소리를 낮춘 채 그를 채근했다.
“클클클. 확실히 제법 하는 인간이구나. 아몬과 바르바토스의 합격을 막아내다니.”
“…흥. 마계였으면 달랐을 거라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오.”
아몬과 바르바토스가 기분이 상한 듯 표정을 찌푸렸다.
“이런… 자네들을 폄하하는 게 아니야. 저 인간이 대단한 것이지.”
아가레스는 그런 두 대악마를 달래며 검회색빛 안광을 빛냈다.
“흥미롭군. 참 흥미로워.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었을까?”
끼기긱 ― !
흑염주를 굴리는 아가레스의 손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계속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저 인간은 내가 먹어야겠다.”
“……!”
아가레스의 말에 아와드는 물론이고 다른 대악마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아가레스! 너 혼자 좋은 인간을 차지하려고 하는구나!”
“치사하군… 하지만 강자의 뜻이니, 본인은 인정하겠소.”
아가레스는 지금 코드 제로라는 인간의 힘을 흡수하려는 것이었다.
언제나 악마의 왕좌를 호시탐탐 노리는 아가레스였으니까.
그에게는 언제나 바알과의 한 끗 차를 메울 무언가가 필요했던 참이었다.
“아가레스, 너……!”
당황한 아와드가 뭐라고 하려는 찰나,
“자네는 시끄러우니 조금 자고 있게.”
투웅…….
퍼억 ―
아가레스가 흑염주를 튕기자 아와드는 뒤통수를 무언가에 맞은 듯이 고개를 앞으로 젖히며 쓰러졌다.
“꺄악!”
그레모리는 짧게 탄성을 지르며 순식간에 기절한 아와드를 질질 끌고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바로 그때,
꽈지지직!
검은 섬광과 함께 저 멀리 있던 코드 제로가 대악마들이 있는 곳에 등장했다.
“…전부 쓸어주마.”
꽈지지지지직!
살기 가득한 묵빛의 번개를 두른 코드 제로의 모습을 올려다보며,
“클클클.”
할짝 ―
아가레스는 몰래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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