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마계를 청소함 (1)
―[그렇다면 너는 아직 그들을 잃지 않았군.]
―……!
초힘과의 대화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 그게 무슨 말이지?
그와의 대화에서 태운은 실낱같은 희망을 느꼈다.
―[말 그대로다. 너는 아직 그들을 잃지 않았어.]
―제, 제대로 말해줘…! 정확히 말해달라고! 이상한 선문답 같은 건 집어치우고!
허억… 허억… 허억……!
흥분한 태운의 숨이 거칠어졌다.
대화의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그답지 않게 크게 흥분한 것이었다.
아니, 사실은 그게 그의 본심이었을 터다.
무엇보다 태운이 있는 장소는 그의 심상세계, 즉 그의 본심이자 진심이었으니까.
초힘은 그런 태운에게 차분히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뭐라고 생각하지?]
―…네가 뭐냐니… 초힘이잖아?
―[그런 명칭 따위를 물어본 것이 아니다.]
초힘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진해진 듯했다.
―[내 본질이 무엇이냐.]
―…….
태운은 잠시 말을 잃었다.
초힘의 본질?
―‘무엇을 이야기하는 거지?’
―초힘은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4대 힘을 말하는…….
가만히 중얼거리던 태운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동공을 확장시켰다.
―…태초의 힘이자… 모든 힘의 근원……?
―[반은 맞았지만 반은 틀렸군.]
초힘의 목소리가 묘하게 진해졌다.
―[태초의 힘 그리고 모든 힘의 근원. 둘 다 맞는 말이지. 하지만 그 말은 즉, 모든 힘의 집합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
눈코입이 모두 확장된 태운이 어둠만이 가득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그 순간,
―[나의 주인이여. 그리고 이 우주의 선택을 받은 자여. 네게 불가능은 없다.]
반짝!
초힘의 한마디와 함께 허공에서 빛 한 줄기가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내가… 그들을 살릴 수 있다는 건가?
태운의 목소리가 크게 떨리고 있었다.
어느새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울컥 ―
목이 메는지 울대가 위아래로 연신 출렁였다.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만 따진다면… 가능하다.]
덜덜덜……!
주르륵 ―
태운의 두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아아……!
탄식과도 같은 안도의 탄성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힘은 매정하게도 그런 태운의 감정을 기다려주지 않고 곧바로 맥을 끊었다.
―[허나, 그건 우주의 인과율을 무시했을 때의 이야기.]
―…뭐?
―[우주의 인과율을 무시하고 그들을 살리는 순간, 넌 그 이상의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태운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그, 그럼 대체 어떻게……!
―[인과율의 범위 안에서 그들을 살리려면 대가가 필요하다.]
―대가……!
―[잘 들어라.]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한 초힘의 목소리가 태운의 전신을 울렸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니.]
초힘에게서 그 방법을 듣는 순간,
―……!
화아아악 ― !
어둠으로 가득 찼던 그의 심상이 태양과도 같은 빛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 * *
우르르릉 ― !
천지가 요동쳤다.
콰르르르르릉 ― !
검은 밤하늘을 배경 삼아 떨어져 내리는 검은 뇌전들.
대악마들이 묵뢰를 피해 빠르게 비산했다.
“건방진 인간!”
“우리 모두를 상대하겠다는 것이냐!”
묵뢰를 피하면서 분노를 토해내는 대악마들.
그런데 그때,
퍼서서서석……!
빗나간 묵뢰가 대지에 깊은 구덩이를 만들어냈다.
“……!”
코앞에서 묵뢰의 흔적을 목격한 대악마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멀리서 보았을 땐 단순히 파괴력이 강한 뇌전이라 생각했던 대악마들.
하지만 가까이서 그 위력을 보니,
꽈지직!
묵뢰의 힘은 단순히 강한 것만이 아니었다.
‘방금 그건……!’
‘소멸의 힘……!’
평범한 악마들과는 격이 다른 대악마들이었기에 그 격만큼이나 물체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상당했던 것이다.
“아가레스!!!”
“대공!!!”
소멸의 힘을 확인하고 단숨에 다급해진 악마들이 아가레스를 불러댔다.
저 인간을 먹겠다고 선언한 아가레스에게 빨리 저 인간을 해치우라고 종용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대악마들이라고 해도 언제까지 저 소멸의 힘이 담긴 번개를 피해 다닐 수는 없었으니까.
안드로말리우스와 세에레를 죽인 힘이 저 번개임을 알아챈 대악마들의 두 눈에 커다란 당혹감이 깃들어 있었다.
끼기긱 ― !
아가레스의 손에 들린 흑염주가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일으켰다.
“소멸의 힘이 담긴 번개라고……?”
히죽 ―
그의 입가에 광기 가득한 미소가 맺혔다.
“이거… 갈수록 날 놀라게 하는구나……!”
키잉 ―
흑염주의 알 하나가 검회색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말지어다.]
웅 ― 웅 ― 웅 ―
흑염주의 알이 발하는 검회색빛과 공명한 아가레스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일대를 잠식했다.
그러자,
덜컥 ―
“……!”
그의 목소리가 닿은 범위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느려졌다.
거의 멈춘 수준으로 보일 정도로 말이다.
“아…가…레…스으으… 왜… 우…리…까…지……?”
아가레스의 기술에 함께 걸려버린 대악마들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클클클… 미안하네. 내가 조절이 서툴러서 말이야. 금방 끝낼 테니 다들 조금만 참으시게.”
전혀 미안하지 않은 듯한 웃음을 흘린 아가레스가 허공에 떠 있는 태운을 올려다보았다.
꽈…지…지…지……!
몸 주위에 둘러져 있던 검은 뇌전이 마치 지렁이가 기어가듯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생물을 포함한 만물을 느리게 만드는 아가레스의 권능, ‘느림의 미학’의 힘이었다.
“클클클! ‘느림의 미학’은 모든 것을 느리게 만드는 힘이다. 더 이상 내 친구인 엘게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야.”
“그어어어……!”
아가레스의 말에 그를 등에 태우고 있는 거대한 악어, 일명 ‘엘게’가 울었다.
“클클클. 그래, 엘게. 너보다 빠른 녀석들은 모두 벌을 받아야 해. 감히 우리를 앞서가다니 말이야. 그렇지?”
“그어어어……!”
엘게가 동의하듯이 울었다.
쿵 ― 쿵 ―
엘게의 짧지만 육중한 발이 지면을 굴렀다.
그러더니,
쿵 ―
곧 허공을 밟기 시작했다.
쿵 ― 쿵 ―
마치 보이지 않는 비스듬한 오르막길이라도 있는 것처럼 허공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엘게.
“클클클!”
아가레스는 엘게의 위에 탄 채 계속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려대고 있었다.
쿵 ― 쿵 ―
아가레스와 태운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꽈…지…지…직!
느려진 묵뢰가 그를 노리고 날아들었지만,
“클클클. 어이쿠! 이런.”
아가레스는 엘게 위에 탄 채 여유롭게 그 공격을 피해냈다.
엘게보다도 느린 뇌전 따위는 아가레스에게 거의 멈춰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쿵 ― 쿵 ―
어느새 아가레스와 엘게가 거의 멈춰버리다시피 한 태운의 지척까지 도달했다.
“클클클. 소멸의 힘을 가진 강한 아해야. 인간의 몸으로 잠시라도 대악마들을 긴장하게 만든 것은 칭찬해주겠다.”
스윽 ―
아가레스의 까끌까끌한 손이 태운의 머리와 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하지만 결국 너 또한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지. 그 아까운 힘, 유한한 목숨으로 날려버릴 바에 영생을 살아가는 내가 사용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클클클……!
아가레스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태운의 귓가를 울렸다.
움찔! 움찔!
태운의 근육이 연신 움찔거렸다.
빠르게 움직이고 싶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모습.
태운의 그런 발버둥을 눈치챈 아가레스는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포기하거라. 아해야. 이 권능은 모든 것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힘! 아무리 벗어나려 애써봐야 소용없단다.”
끼기긱 ― !
아가레스는 흑염주를 굴리며 흑염주를 쥔 손을 태운의 심장에 가져다 댔다.
“그냥 얌전히 나의 힘이 되려무나.”
키이이잉 ―
그렇게 아가레스의 징그러운 미소와 함께 흑염주가 검회색빛으로 빛나며 불길한 기운이 깃드는 순간,
터업 ―
태운의 손이 순식간에 아가레스의 손목을 잡아챘다.
“……!”
깜짝 놀란 아가레스가 무언가 해보기도 전에,
“…이렇게 쓰는 거였군.”
파지지지지직!
의미심장한 한마디와 함께 그의 전신이 자줏빛 뇌전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 * *
파지지지지직!
“크아아아아악!”
아가레스의 비명이 동두천시의 상공에 울려 퍼졌다.
“…대공?”
아가레스의 권능이 풀리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대악마들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두 눈을 비볐다.
하지만,
“크아아아아악!”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현실이었다.
인간의 손에 붙들린 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 아가레스의 모습.
그러나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가레스가 아니던가?
72악마 중 제2위계 대악마인 마계의 대공작 아가레스.
악마왕 바알을 제외하고는 최강자인 존재가 바로 그였다.
그런 그가 인간의 손에 붙들려 비명을 지르고 있다?
“대,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할파스가 놀라 전신의 깃털을 떨어댔다.
“아, 아버지!”
아가레스의 아들인 바싸고가 재빨리 자신의 악어, ‘크로’의 배를 박찼다.
“구어어어!”
쿵 ― 쿵 ―
엘게가 그랬듯이 허공을 밟고 올라가기 시작하는 크로.
하지만 그 몸집이 훨씬 작아서인지 엘게의 움직임보다는 훨씬 빨랐다.
“네 이노오오옴!”
달리는 크로의 위에서 바싸고는 품속에 있던 책을 펼쳐 들었다.
그의 권능 ‘역사’의 힘이 담긴 책.
일정범위 안에 들어온 대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정보를 모두 알 수 있는 책이었다.
키이이이잉 ― !
너덜너덜한 잿빛의 책이 빛을 발하더니 태운의 정보를 모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촤악 ― !
자신의 꼬불꼬불한 머릿속에서 펜 하나를 꺼내 드는 바싸고.
상대의 미래를 바꾸는 그의 권능인 ‘사건 왜곡’을 발휘할 참이었다.
“네놈의 죽음을 앞당겨주마!”
쉬익 ― !
그의 펜이 태운의 미래가 적힌 책에 닿으려는 찰나,
“가만히 두겠냐.”
치직!
자줏빛 섬광이 바싸고의 미간으로 날아들었다.
“흥!”
그러나 바싸고는 괴물 같은 감각과 운동신경으로 그 자뢰에 반응하여 피했다.
아니, 피하려 했다.
덜컥 ―
“…뭣?”
알 수 없는 힘에 속박된 바싸고.
전신이 스턴 상태에 걸려버린 바싸고가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
파지지지지직!
날아든 자뢰가 결국 그의 미간을 직격했다.
“크아아아아아악!”
소환된 대악마 중 최강자인 제2위계와 제3위계인 두 부자가 나란히 자줏빛으로 물들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황.
“…미친.”
대악마들의 표정에 황망함과 두려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스윽 ―
태운은 두 대악마를 자뢰에 묶어둔 채로 고개를 돌려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바로 노아신, 아와드가 누워 있는 곳.
“헉!”
아와드의 몸을 탐하던 그레모리는 갑자기 아와드 쪽을 바라보는 코드 제로의 시선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뒤로 허둥지둥 물러섰다.
치직!
태운의 몸에서 얇디얇은 붉은 번개 한 줄기가 뻗어 나갔다.
파직!
순식간에 아와드의 발목 위로 떨어지는 적뢰.
그러자,
“크윽!”
기절해 있던 아와드가 고통에 신음하며 깨어났다.
“허억… 허억… 허억……!”
갑작스런 고통에 많이 놀랐는지 거친 숨을 내쉬는 아와드.
치이이이……!
벌겋게 익어버린 발목을 자가회복으로 회복하며,
스윽 ―
아와드는 누군가의 고통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크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악어 위에 올라탄 낯익은 두 대악마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 그의 두 눈에 들어왔다.
“……!”
놀란 아와드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고,
“으헉!”
두 대악마를 억압하고 있는 존재와 눈이 마주치고는 헛숨을 들이켰다.
“일어났어?”
씨익 ―
태운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미소는 곧,
“그럼 이제 마계 문 열어. 이 새끼야.”
순식간에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마치 악귀 탈의 그것처럼.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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