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마계를 청소함 (2)
“마계 문을 열라고……?”
아와드가 턱을 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저 녀석이 마계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스윽 ―
아와드는 주위를 살폈다.
사방에 퍼져 있는 대악마들.
하긴 저 대악마들의 존재를 확인했으니 마계의 존재를 추측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터.
게다가 이 대악마들을 소환한 존재가 자신이었으니 마계로 통하는 문을 여닫을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왜 그 문을 저 녀석이 열라는 거지?’
코드 제로가 그의 적이라면 마계 문을 열지 않기를 바라야 정상이었다.
마계 문이 열리면 대악마들의 힘이 더 강해질 테니까.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다!’
그러나 아와드의 복잡한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드 제로의 말을 들은 대악마들은 오히려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래! 마계 문을 열어! 아예 마계에 가서 싸우는 거야!”
“마, 맞아! 마계라면 우리가 인간에게 질 일은 없다고!”
타락한 신들과 달리 현세에 직접 강림하긴 했지만 그들의 힘이 본신의 힘보다 약한 것은 똑같았다.
다만 인간과 계약을 맺어 빌려주는 힘이 대략 1할에서 2할 정도라면, 현세에 직접 강림하여 사용할 수 있는 힘은 대략 5할 정도라는 차이가 있을 뿐.
즉, 마계로 돌아가면 대악마들은 지금보다 최소 2배의 힘을 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빨리 마계 문을 열어라!”
푸르르륵!
성질 급한 오로바스가 콧김을 내뿜으며 앞발을 마구 굴렀다.
하지만 아와드는 신중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냐?”
“꿍꿍이라고?”
피식 ―
아와드의 말을 들은 태운이 비웃음을 흘렸다.
“꿍꿍이랄 것이 있나. 대악마라는 것들이 너무 약해서 제대로 붙어보고 싶을 뿐이지. 안 그래? 늙은 대악마와 꼬마 대악마.”
파지지지지직!
태운은 자신의 자뢰에 전신을 난자당하고 있는 두 대악마를 바라보았다.
“크아아아아악! 이 자식……!”
“크으으으윽! 마, 마계! 마계 문을 열어라!”
아가레스와 바싸고의 두 눈에 공포와 무력감 그리고 분함이 동시에 깃들었다.
‘대, 대체 뭐냐고! 번개는 둘째치고 몸을 구속하고 있는 이 힘은!’
‘움직일 수가 없어… 게다가 더럽게 아프네 진짜!’
두 대악마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 자줏빛 번개였다.
하지만 그들을 심리적으로 더욱 위축되고 무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꾸국… 꾸구국…….
그들의 몸을 옥죄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었다.
치이이익! 치이이익……!
그나마 대악마의 괴물 같은 회복력으로 버티고는 있었지만,
꾸구국…….
언제 이 자줏빛 번개가 소멸의 힘이 담긴 검은 번개로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그들을 겁먹게 만드는 데에 한몫하고 있었다.
영원불멸의 생을 살아가는 대악마.
오히려 그런 대악마들이었기에 ‘죽음’이라는 개념은 그들에게 더 큰 공포감을 선사했다.
“크아아아악! 아와드! 당장 마계 문을 열어어어어!”
점잖고 교활한 노인의 모습만 보여주던 아가레스가 고래고래 악을 쓰기 시작했다.
거의 한 평생 절대자로 군림한 아가레스도 고통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바싸고보다도 고통에 취약한 그 모습에,
히죽 ―
태운은 가만히 그를 비웃어주었다.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굴더니, 이거 완전 순 조무래기였잖아?”
울컥 ―
아가레스에 대한 태운의 도발이 대악마들의 자존심을 제대로 긁었다.
“마계를 열어! 당장! 저 인간을 죽여버려야겠다!”
“감히 인간 따위가 우리 대악마들을 모욕하다니이이이!”
차마 코드 제로에게 공격을 시도하지는 못하고 있던 대악마들이 저마다 제자리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주륵 ―
아와드의 전신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아무리 이들을 소환한, 바알의 계약자인 아와드라도 수십 마리의 대악마들이 동시에 발산하는 투기의 압력을 버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기랄!’
분명 꼼수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지금은 알아볼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마계 문을 열지 않았다간 아가레스와 바싸고가 금방이라도 죽게 될 것 같았으니까.
“…젠장! 이제 나도 모른다!”
아와드가 옆으로 손바닥을 펼쳤다.
쿠웅 ―
육중한 소리와 함께 아와드의 옆 허공에서 검은 문이 생성되더니,
끼기기기기기긱 ― !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두 문짝이 아가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두 문 안쪽에서 문의 색깔보다 더 새까만 검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안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비명 소리.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공간의 정체.
바로 마계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
마계의 존재를 확인한 그 순간,
부릅!
태운의 두 눈에 한가득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마계, 혹은 마경.
신들과 천사들이 존재하는 천계와 대척점에 있는 세계.
온갖 악마들이 존재하는 마계에는 신들에 대적할 수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72 대악마들.
악마 중에서도 가장 강한 72마리의 악마들에게 지위와 위계를 부여해 천계의 존재들로부터 마계를 수호하는 72개의 기둥이자 방패를 세워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존재가 있었으니,
크그그그긍 ―
바로 악마왕 또는 마신이라 불리는 제1위계 대악마 바알이었다.
“…마계에서 싸우겠다라……?”
가장 높은 마신성의 권좌에 앉은 바알이 권태로운 표정으로 앉은 채 중얼거렸다.
“큭… 큭큭… 큭큭큭큭큭큭!”
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며 검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하하하하하! 대악마를 상대로 마계에서 싸우겠다고? 크하하하하하하!”
쩌렁 ― 쩌렁 ―
쿠구구구구구구구구 ― !
그의 웃음소리 한 번에 마신성 전체는 물론, 그 일대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기가 짙게 묻은 그 음파에,
“크으으윽……!”
“끄으으윽……!”
그의 권좌 밑으로 쭉 늘어선 존재들이 고통스러운 듯 침음성을 흘렸다.
뚝… 뚝…….
카가가강! 카가강!
온몸을 검보랏빛 쇠사슬에 묶인 채 입가에서 피 섞인 침을 뚝뚝 흘리고 있는 존재들.
그들의 눈빛은 마치 죽은 생선처럼 이미 초점 하나 없이 흐릿했다.
“안 되지, 안 돼… 고통의 합창이 멈춰버렸군.”
딱!
바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키기기기기기깅!
검보랏빛 쇠사슬들이 빛을 발하며 진동하기 시작했고,
“크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악!”
묶여 있던 존재들의 입에서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바알의 말처럼 마치 합창같이 울려 퍼지는 그들의 비명 소리.
쇠사슬에 묶인 존재들, 즉 마계에 패배한 천계의 신들이 내지르는 고통스런 비명이 마계 전체에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크큭… 크하하하하하하!”
그 사이를 비집고 바알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그냥 순순히 타락하라니까. 왜들 그리 고집을 피우는 건지… 쯧쯧쯧.”
바알의 혀 차는 소리에 그의 권좌와 가장 가까운 곳에 묶여 있던 신 중 하나, 옥황상제가 시뻘건 노기를 토해냈다.
“네 이노오오옴! 감히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크아아아아악!”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바알을 노려보다 진동하는 쇠사슬에 다시 비명을 지르는 옥황상제.
“상제시여……!”
옥황상제의 맞은편에 묶여 있는 존재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붉은 갑옷과 붉은 턱수염이 인상적인 사내.
그런 사내의 곁으로,
촤르르르륵 ―
쇠사슬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녹색빛의 머리를 한 남자가 다가왔다.
“대왕님, 그만 받아들이십시오. 더 이상 무의미하게 고생하지 마시고…….”
녹색 머리 남자의 말에 붉은 턱수염의 남자는 쇠사슬에 묶인 채 눈을 부릅뜨며 노발대발했다.
“닥쳐라! 나보고 대악마에게 굴복하라는 것이냐! 너야말로 대체 무슨 짓이더냐! 그러고도 네 놈이 천계의 대장군이라고 부를 수 있… 크으으윽!”
키기기기깅 ―
진동하는 쇠사슬이 주는 고통에 붉은 턱수염의 남자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이를 꽉 물었다.
“…….”
그런 사내를 바라보는 녹색 머리의 남자.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이 깃든 눈으로 내려다보던 남자는,
쩔그럭 ―
자신의 목에 묶인 쇠사슬을 가만히 건드려보았다.
그러던 그때,
“이랑.”
권좌 위에 앉아 있던 바알이 남자를 내려다보며 불렀다.
스윽 ―
녹색 머리의 남자, 천계의 대장군 이랑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말하시오.”
“곧 대악마들과 인간 하나가 마계로 넘어올 것이다. 그들을 데려와라.”
“…싸움을 말리라는 것이오?”
이랑의 물음에 바알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 말리라는 게 아니라 잠시 뒤로 미루라는 것뿐이야.”
번뜩!
바알의 두 눈에 흥미로움과 즐거움의 빛이 어렸다.
“이왕이면 여기서 편하게 보고 싶어서 말이지.”
씨익 ―
바알의 입가에 소름 끼치는 미소가 맺혔다.
인간계라지만 대악마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던 존재가 넘어온다는데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듯한 바알.
하지만 그런 바알의 모습이 오만이 아니라 근거 있는 자신감이라는 것을 이랑은 잘 알고 있었다.
바알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으니까.
슬쩍 ―
이랑은 그의 권좌 앞에 끝도 없는 줄을 이루며 쇠사슬에 묶여 있는 신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미 상당수의 신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해 그에게 굴복했지만, 여전히 고통과 싸우며 굴복하지 않은 신들도 많이 있었다.
꾹 ―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랑은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가 힘을 풀었다.
“…알겠소.”
펄럭 ―
그의 등 뒤에서 커다란 날개가 펼쳐졌다.
천계의 존재를 상징하는 새하얗고 맑은 색의 날개가 어느새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펄럭 ― 펄럭 ―
그는 그 색에 아랑곳하지 않고 날개를 펼쳐 허공으로 떠올랐다.
촤르르르르 ―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그의 목에 묶인 쇠사슬이 따라왔다.
마계에서 가장 깊은 곳, 무저갱에 묶인 기다란 쇠사슬이 언제든지 그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바알에 굴복하여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촤르르르르 ―
완전한 자유를 얻지는 못한 것이다.
“…그럼 다녀오겠소.”
묘하게 힘이 없는 눈빛의 이랑이 자리를 뜨려던 그때,
“큭큭큭… 빨리 다녀오라고. 아, 그리고.”
바알이 할 말이 있다는 듯 그를 불러세웠다.
멈칫 ―
바알의 지시에 자리를 뜨려던 이랑의 움직임이 긴장한 듯 잠시 딱딱하게 굳었다.
“아가레스에게 전해. 일단 오면 처맞을 준비 좀 하라고. 감히 내 계약자한테 X랄을 해?!”
“…알겠소.”
하지만 다행히 별일은 아니었다.
말만 전하면 되는 단순한 잔심부름이었으니까.
펄럭 ― 펄럭 ―
바알의 계약자가 열어젖힌 인간계와의 통로를 향해 빠르게 날아가는 이랑.
바알을 등진 그의 표정에는,
으득 ―
어느새 지독한 분노와 울분이 어려 있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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