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마계를 청소함 (3)
“크하하하! 마계다! 이제 네놈은 죽은 목숨이야!”
아와드가 열어젖힌 마계의 문 안으로 들어선 대악마들이 저마다 자신만만한 웃음소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우우 ― !
확실히 인간계에 있을 때보다 배는 더 강해진 그들의 기운.
대악마들이 오만하게 폭소를 터뜨릴 만했다.
후욱 ― !
마지막으로 아가레스와 바싸고가 마계로 돌아오면서 안드로말리우스와 세에레를 제외한 모든 대악마들이 마계로 들어섰다.
“허억… 허억… 크아아아아아!”
“하악… 하악… 크오오오오!”
아가레스와 바싸고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빠른 속도로 기운을 회복했다.
마계는 대악마들에게 가장 익숙한 환경이자 보금자리.
느껴지는 온도와 공기 분자 하나까지 모두 대악마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것투성이였기에,
쿠구구구구구……!
대악마 중에서도 최상위 서열을 자랑하는 두 존재에게 기운을 회복하는 것 따윈 식은 죽 먹기였던 것이다.
“죽여버리겠다! 죽여버리겠어!”
으드드득 ― !
아버지와 함께 인간에게 농락당한 바싸고가 크게 울부짖으며 이를 갈았다.
대악마 서열 3위, 바싸고.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아가레스의 후광을 등에 업고 시작한 마계 역사상 최고의 금수저였다.
바알과 아버지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무력감을 느껴본 적 없던 그가 한낱 인간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으니,
“인간 따위가아아아아!”
어지간히도 분한 것이 당연했다.
반면 아가레스는 바닥부터 시작해 마계 서열의 정점에 이른 존재.
“후우…….”
아들, 바싸고와는 달리 차분하게 힘을 가다듬으며 상황을 분석했다.
‘몸을 구속하던 힘이 사라졌다.’
여전히 그 힘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의 전신을 무력할 정도로 무겁게 옥죄던 압력이 사라졌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
다행히도 그 힘이 사라지니 자줏빛 번개를 떨쳐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섭군.”
아가레스는 허물을 벗어던지듯 마계 바닥으로 떨어진 자신의 표면 조각을 바라보았다.
치지직!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신체 조각을 자줏빛 번개가 갉아먹고 있었다.
신체를 떼어내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번개라니.
대악마의 초월적인 회복력이 아니었다면 감히 벗어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었다.
스윽 ―
끼기기긱 ― !
아가레스는 흑염주를 거칠게 비틀며 잔뜩 흥분한 채 괴성을 지르고 있는 바싸고를 바라보았다.
“바싸고.”
“크아아아… 예, 아버지!”
아버지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바싸고는 괴성을 지르다 말고 아가레스의 부름에 곧장 대답했다.
“흥분하지 마라. 한순간이지만 우리 둘을 가볍게 제압했던 존재야. 한순간의 방심이 조금 전처럼 어이없는 패배를 불러올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인간을 상대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듯했지만, 바싸고는 순순히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때,
끼기기기……!
쿠궁 ― !
열렸던 마계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완전한 본신의 힘을 되찾은 대악마들의 시선이 마계 문이 있던 자리를 향했다.
그곳에는,
“여기가 마계인가.”
한순간이나마 그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던 한 인간이 서 있었으니까.
치지직!
인간의 몸에서 자줏빛 번개가 튀어 올랐다.
“다들 꽤나 신수가 훤해졌는데? 그나저나…….”
인간, 태운이 단체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대악마들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스윽 ―
“너희들, 죽이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흠칫!
어느새 대악마들 뒤로 도망간 아와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봐도 네가 불러왔던 놈들 중에 대장으로 보이는 놈은 없는 것 같거든.”
울컥 ―
태운의 말에 아가레스의 전신에 핏줄이 잔뜩 불거졌다.
만년 서열 2위라는 아가레스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건드린 것이다.
부들부들……!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부들부들 떠는 그의 모습은 다른 대악마들이 보기에도 굉장히 생소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태운은 그런 아가레스의 반응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아와드에게 물었다.
“그래서? 바알 그 새끼는 어디 있냐?”
태운의 질문이 끝나는 동시에,
쿠구구구구구구 ― !
“감히!!”
“인간 따위가!”
최강자로서의 바알을 인정하는 대부분의 대악마들이 거칠게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극 ― !
본신의 힘을 되찾은 대악마들의 기운이 태산과도 같은 압력으로 태운의 전신을 짓눌렀다.
“…….”
키이잉 ―
태운이 그 거대한 압력을 느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없이 전투태세를 갖추려던 그때,
펄럭 ―
어디선가 대악마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촤르르르 ―
그리고 그와 함께 들리는 의문의 쇠사슬 소리.
“……?”
태운은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펄럭 ― 펄럭 ―
촤르르르르 ―
목에는 쇠사슬을 매단 채 거대한 회색빛 날개를 지닌 한 존재가 날아오고 있었다.
“다들 멈추시오.”
그 존재가 태운과 대악마들을 향해 음성을 퍼뜨렸다.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듯한 느낌.
하지만 대악마들은 그를 낮잡아보며 그의 말을 무시했다.
“닥쳐라! 노예 따위가!”
“감히 어딜 끼어드느냐!”
대악마들은 누가 봐도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태도로 낯선 존재를 대했다.
‘…악마가 아니군.’
태운이 가만히 그의 정체를 유추하는 그때, 회색빛 날개를 지닌 존재가 차분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마신(魔神)의 명령이오.”
그러자 그 순간,
“……!”
그들이 있던 마계 일대가 한순간에 침묵으로 물들었다.
* * *
펄럭 ― 펄럭 ―
촤르르르 ―
목에 쇠사슬을 매달고 회색빛 날개를 지닌 존재가 선두에서 대악마들과 태운을 이끌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뒤쪽으로 저만치 떨어져서 따라오는 대악마들과 달리.
슈우우우 ―
반중력을 사용해 몸을 띄운 태운은 그 존재의 뒤를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마계에 들어온 이들을 모두 데려오라는 마신이자 악마왕인 바알의 명령을 전달한 존재.
흘깃 ―
태운은 그의 옆으로 바짝 따라붙어선 곁눈질하며 물었다.
“당신, 악마 아니지?”
“…….”
펄럭 ― 펄럭 ―
그러나 그 존재는 말이 없었다.
그저 회색빛의 날개만을 퍼덕일 뿐.
하지만 태운은 그런 그의 행동에 상관하지 않고 혼자 추측을 이어 나갔다.
“그 날개, 명백히 박쥐의 날개 같은 대악마들의 것과는 달라. 깃털이 있는 걸 보니… 천사 출신인가?”
움찔.
태운의 말에 그 존재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천사의 날개가 하얀색이 아니라 회색빛이라… 타락했군. 아니, 완전한 타락은 아니야. 강제적으로 타락된 건가?”
스윽 ―
태운의 계속된 추리에 마침내 그 존재가 고개를 돌리며 태운을 바라보았다.
“…상당한 추리력이구나. 인간.”
드디어 해당 존재가 반응을 하자 태운은 이때다 싶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반응하는군.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만 말하겠다.”
“……뭐?”
“마계에 신들이 잡혀 있지?”
“……!”
태운의 말에 존재, 이랑의 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 그걸 어떻게……!”
슬쩍 ―
태운은 저 멀리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대악마들의 눈치를 살짝 본 뒤, 이랑에게 입 모양으로 자신의 말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거래를 하자.)
(거래라고?)
끄덕 ―
태운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인과율의 거래를 제안하지.)
* * *
마계의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마신성.
그 안에서는,
키기기기기기깅!
언제나 그랬듯 소름 끼치는 금속의 진동과 마찰음과 함께 고막이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악!”
수많은 신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흐음~”
권좌에 앉은 바알이 눈을 감은 채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제 들어도 참 좋은 중창이란 말이야…….”
후룩 ―
탁.
신들의 피로 만든 신혈주를 홀짝인 바알은 권좌의 팔걸이에 잔을 내려놓으며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거의 다 왔군.”
가늘게 뜬 바알의 시야에 검은 안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검은 안개의 중심에 있는 두 존재.
이랑과 태운의 존재도 그의 눈에 들어왔다.
“크흐흐흐… 뭐야, 의외로 순순히 따라오고 있잖아? 그래도 한바탕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랑의 몸이 멀쩡한 것을 확인한 바알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잠시 뒤,
펄럭 ― 펄럭 ―
이랑의 신형이 마신성 상공에 다다랐고,
슈우우우우 ―
마찬가지로 태운도 마신성 상공에 도착했다.
‘이건……!’
마신성 안을 내려다본 태운의 두 눈이 순간 미미하게 흔들렸다.
―[신들을 구해라.]
초힘이 말했다.
마계에 잡힌 신들을 구하라고.
그들을 구하고 인과율을 상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태운은 신들이 마계에서 커다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크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설마 이 정도의 상황일 줄이야.
마신성 안에는 수도 없이 많은 작은 십자가들이 성 바닥 위에 박혀 있었고,
“허억… 허억……!”
그 십자가들에는 마찬가지로 수많은 신들이 침과 피를 뚝뚝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키기기기기기깅 ― !
신들의 전신을 붙든 쇠사슬들이 검보랏빛 광채를 내며 흔들릴 때마다,
“크아아아악!”
“끄어어어억!”
그들의 입에서는 처절한 고통의 비명이 토해지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한때는 고고하고 위엄이 넘치는 신들이었을 터.
그랬을 그들이 이렇게 처참한 상태로 고통받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태운이었다.
‘기껏해야 감옥에나 갇혀 있겠거니 싶었는데…….’
스윽 ―
태운의 차가운 눈빛이 마신성 한쪽, 십자가들이 늘어서며 만들어진 기다란 길 끝에 놓인 커다란 의자를 향했다.
바닥에서 살짝 솟아올라 있는 커다란 의자 위에 앉아 있는 한 존재.
마치 그림자처럼 온몸이 시커먼 단색으로 뒤덮인 존재가 태운과 눈을 마주쳤다.
“마계… 아니, 마신성에 온 걸 환영하지.”
검은 존재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태운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씨익 ―
그 존재가 미소를 짓자 입안에서 드러나는 날카로운 이.
보랏빛의 광채를 발하고 있는 이를 본 태운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코드 제로라는 인간아. 네가 인간계 최강이라면서?”
검은 존재, 바알이 킥킥거리며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래, 마신성에 온 소감은 어떻지?”
마치 놀리는 듯한 바알의 질문.
“…….”
이에 태운은,
크아아아아악……!
피투성이 넝마가 된 신들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주먹을 쥔 채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척 ―
냅다 가운데 손가락만 올려주었다.
“X나 별론데?”
“……!”
“마신성이 아니라 병신성으로 이름을 바꿔야 할 듯.”
빠직 ―
바알의 이마에 굵은 힘줄 하나가 솟아올랐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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