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278화 (278/300)

278화. 문제를 모르는 게 문제임 (3)

“신이라는 작자가 아직도 뭐가 잘못인지 전혀 모르고 있군.”

염라의 기억을 읽은 태운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어째서?

신들의 몰락에 어째서 태운이 분노하고 있는 것인가?

신들을 동정해서? 악마들을 증오해서?

아니,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것이 겨우 신들의 사사로운 욕심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염라는 태운의 분노한 감정보다는 그가 본인의 기억을 읽었다는 사실에 더 크게 놀라고 있었다.

‘내 기억을 읽었다고?’

염라는 도교 신화체의 최고신인 옥황상제와 동급에 위치한 최상위 신이었다.

옥황상제의 인품과 지혜를 인정해 한발 뒤로 물러났을 뿐, 단순한 무력만으로는 옥황상제마저도 뛰어넘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

그런데 한낱 인간이 그의 기억을 읽는다니?

‘물론 저자는 한낱 인간은 아니다만…….’

염라도 보았다.

그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속도로 순식간에 대악마들을 학살하는 태운의 모습을 말이다.

하지만 신과 인간의 사이에는 단순한 무력으로는 메꿀 수 없는 영혼의 격의 차이가 존재했다.

그 영혼의 격차 때문이라도 인간은 결코 신에게 정신적인 간섭할 수 없을 터였다.

‘설마… 신격을 얻은 것인가?’

그의 무력을 생각해보면 아예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피조물에서 신이 된 이들도 존재했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모두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업적을 쌓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너… 설마 신격을……!”

“이 와중에도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군.”

“……!”

태운의 목소리에 염라의 두 눈이 흔들렸다.

“너희 신들의 역할은 무엇이더냐.”

오색의 신묘한 안광을 번뜩이고 있는 태운의 시선이 염라의 폐부를 찔렀다.

“여, 역할……?”

“그래, 우주가 너희에게 부여한 역할 말이다.”

쿠구궁 ― !

마계의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할, 오로지 염라만이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압력이 십자가에 매달린 그를 덮쳤다.

‘크윽……!’

짓누른다기보다는 옥죄는 느낌.

턱하고 숨이 막힌 염라의 이마 위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지,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태운의 뒤에 있던 이랑이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눈앞의 인간이 바알을 상대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가 싶더니 갑자기 염라를 압박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를 어떻게든 말려보려 했지만,

희번뜩!

인간에게서 느껴지는 거대한 분노에 이랑은 알 수 없는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다.

“너희 신들이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태운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마신성 전체를 울렸다.

“욕심을 버리지 못한 죄.”

“……!”

타락해가던 신들의 표정에 당혹스러움이 피어났다.

태운은 그런 신들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을 계속해 나갔다.

“중간계를 위해 합의한 거라고? 모든 것이 중간계의 피조물들을 위해 내린 결단이라고? 아니, 너희는 그저 특정 신화체가 특별히 더 섬겨지는 것이 싫었을 뿐이다. 소수의 신화체에게 모든 신앙과 영광을 넘길 바엔 다 같이 받지 못하는 쪽을 택한 것뿐이지.”

태운의 두 눈에 허탈함과 혐오감이 동시에 일었다.

“결국 너희들은 신의 탈을 쓰고 더럽게 오래 산 게들에 불과하단 뜻이다.”

꽃게 이론(Crab Theory).

꽃게를 한 대야에 담아놓으면 대야 밖으로 나가려는 꽃게를 대야 속에 있는 꽃게가 끌어 내린다는 이론이다.

신들은 결국 서로가 이권을 가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모두가 가지지 말자는 결론.

정말 대야 속의 꽃게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것이냐.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져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 지금 잘못을 깨닫는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어차피 모든 게 다 끝났단 말이다……!”

염라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힘없이 외쳤다.

아무리 저 인간이 대악마들을 학살할 정도로 강하고, 신격을 얻었다고 한들 이 우주는 이제 끝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바알의 힘은 모든 대악마의 힘을 합친 것만큼이나 강했다.

그런데 거기에 대악마들의 영혼을 흡수하고 수많은 신들의 힘마저 흡수했으니, 이제 그를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천계 최강의 신, 천신이 살아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바알은 이길 수 없을 터.

하지만,

“아니, 의미가 있다.”

태운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대체 무슨 의미가……!”

“나는 바알을 멸할 것이다.”

“……!”

신들이 하나같이 놀란 것은 물론이고 힘에 취해 있던 바알도 눈썹을 꿈틀거렸다.

“다만 알아둬. 나는 너희를 구하려는 게 아니야.”

신들을 내려다보는 태운의 싸늘한 눈빛이 신들의 양심을 후볐다.

그와 동시에,

“내 사람들을 구하려는 거지.”

바알을 향한 오색찬란한 그의 안광에 슬픔과 분노가 깃들었다.

“호오?”

대악마들과 신들의 힘을 흡수한 악마왕, 바알.

그리고 무언가 새로운 힘에 눈을 뜬 코드 제로, 태운.

고오오오오오 ― !

두 절대 강자의 거대한 기운이,

파직! 파지지직!

마계의 중심에서 정면으로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 * *

덜덜덜……!

한편, 이랑이 나타나 코드 제로와 대악마들을 데리고 갈 때 몰래 뒤로 빠져 그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던 아와드.

그는 여전히 중간계와 마계를 잇는 차원문이 열렸던 장소 근처의 바위 뒤에 숨어 전신을 덜덜 떨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팍! 팍! 팍!

아와드는 허공에 대고 끊임없이 손을 뻗었다.

“열려라 열려… 제발 열리라고……!”

어떻게든 중간계로 향하는 차원문을 다시 열기 위해 악을 쓰는 아와드.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마계에 돌아온 뒤로 아와드의 힘이 발동하는 일은 없었다.

“젠장… 젠장… 어떻게 된 거냐고, 바알……!”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노아즈 아크의 수장, 노아신 아와드.

그는 지구에 처음 던전이 나타났던 해에 탄생한 최초의 헌터 중 한 사람이었다.

풀 네임은 ‘오사마 빈 아와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의 후손이었던 것이다.

그 혈통과 어울리는 힘이라고 해야 할까. 아와드는 고유 능력으로 악마의 힘을 각성했다.

때문에 그는 소위 ‘저주받은 인간’이라 불리며 지탄받다가 어느 순간 세계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자신의 고유 능력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너는 인류를 구원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사마 빈 라덴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야 했고, 기껏 각성한 능력마저 악마의 힘이라는 이유로 각종 살해 위협까지 받아야 했던 아와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그 목소리에 단숨에 넘어가고 말았다.

―내가 뭘 하면 되지?

―[우선 세력을 만들어라. 어둠 속에서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세력을.]

악마, 바알은 아와드에게 거대한 힘을 부여해주었다.

악마의 힘은 물론이고 대악마들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을 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새로운 힘이다.]

무려 신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신들의 힘까지 다룰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인류를 구한다는 대의를 설파하며 ‘노아신’을 자처하고, 신들의 힘을 부여하며 전 세계의 헌터들을 잠식해 나간 아와드.

그의 압도적인 강력함은 모두 바알로부터 기인되어 있었다.

악마왕의 계약자로서 바알에게 굴복한 모든 타락신들과 대악마들의 힘을 다룰 수 있었던 아와드.

하지만,

“제기라아아알!!!”

팍! 팍!

마계로 돌아온 뒤로는 애꿎은 마력만 무의미하게 소모될 뿐 바알의 힘이 발동되는 일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바알과 연결되어 있던 계약의 힘이 흐려져 있었다.

계약 자체가 사라진 게 아닐까 싶은 걱정이 들 정도로 거의 느껴지지 않는 바알과의 연결고리.

“바알! 바알! 듣고 있나? 힘이 안 나온단 말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울컥 ―

어찌나 당황한 것인지 두 눈이 시뻘게진 아와드의 모습은 노아신이라 불리던 과거의 위엄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해져 있었다.

“젠장! 바……!”

휙 ― 휙 ―

홀로 허공을 향해 바알의 이름을 외치던 아와드는 무언가 두려운 듯 고개를 연신 돌려대며 주위를 살폈다.

어디선가 악마병이 튀어나올까 봐서였다.

평소라면 바알의 기운 때문에 얼씬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만,

“으…….”

지금의 아와드에겐 바알의 힘이 없었으니까.

바알의 힘이 없는 이상, 아와드는 단순히 마력만 많은 평범한 헌터에 불과했다.

악마병 개체 하나하나가 각 S급 최상위 던전의 몬스터들과 맞먹으니, 지금의 아와드에게 한 마리만 나타나더라도 목숨이 위험했다.

그러던 그때,

[대악마 전원, 전투 준비.]

우르르르릉 ― !

천둥과도 같은 바알의 목소리가 마계 전역에 울려 퍼졌다.

“으힉!”

아와드는 잔뜩 겁에 질린 채 마계의 바닥에 몸을 바짝 붙이며 엎드렸다.

쿠우우우우…….

저 멀리 어디선가 느껴지는 거대한 마기.

마신성으로 향한 대악마들과 코드 제로가 전투를 벌이려는 듯했다.

[전력으로 적을 말살하라.]

다시 한번 천둥 같은 바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케에에에에엑!

갑자기 마계의 하늘이 시커멓게 뒤덮이며 셀 수 없이 많은 악마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

대체 여태 어디에 숨어 있던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아와드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마계의 하늘을 뒤덮은 저 수많은 악마병은,

‘미, 미친……!’

분명 마계의 모든 악마병이 동원된 것이라고.

‘악마병을 전부 동원할 만큼 강하다는 건가? 그 녀석이?’

주륵 ―

아와드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곧,

씨익 ―

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어쨌든 놈도 이제 끝났군.’

마계의 전력이 동원되었다.

아무리 강한 코들 제로라고 하더라도 마계의 전력을 당해내지는 못할 터.

생각보다 훨씬 강한 코드 제로의 힘에 간담이 서늘했던 기억을 떠올린 아와드는 바닥에 벌러덩 누워서 악마병들로 까맣게 물든 마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가라…! 가서 놈들을 죽여버려……!”

마치 악마병들을 자신이 통솔하듯 하늘에 손을 뻗어 두 주먹을 쥐어 보이는 아와드.

하지만 그 흥분감도 잠시,

파지지직!

“…어?”

하늘이 자줏빛 광채로 물들었다.

“으헉!”

코드 제로의 자뢰임을 알아본 아와드는 자신도 모르게 두 팔과 두 다리를 웅크렸다.

케에에에에엑!

악마병들의 비명 소리가 그의 귓가를 가득 메웠다.

덜덜덜……!

코드 제로의 압도적인 힘 앞에 전신을 벌벌 떠는 아와드.

아니나 다를까,

꽈직!

한순간 다시 하늘이 검게 물드는가 싶더니,

파사사사사삭!

마계를 가득 뒤덮었던 악마병들이 순식간에 입자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아와드는 온몸에 힘을 뺀 채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멍하니 검보랏빛으로 변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X… 이게 말이 돼?”

얼마 뒤,

[계약자여, 수고했다.]

“…바……!”

[너도 이만 내 힘이 되어라.]

“꺼어어억……!”

파스스스……!

귓가를 울리는 바알의 목소리와 함께 아와드의 몸이 순식간에 스러졌다.

전 세계를 공포에 물들였던 노아즈 아크의 수장, 노아신.

그의 끝은 허무하리만치 초라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