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압도적임 (2)
<우주다.>
“……!”
신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우주라고……?’
저 말은 즉 본인이 태초의 신이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마치 인간이 처음 신을 목도한 것처럼,
덜덜덜…….
십자가에 매달린 신들은 그들의 신을 만난 듯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기 시작했다.
<두렵더냐.>
오색안의 태운, 우주신이 그들에게 말했다.
<무엇이 너희들을 그렇게 두렵게 하더냐?>
덜덜덜…….
<나의 존재더냐.>
덜덜덜…….
<아니면 너희의 죄더냐.>
덜덜덜……!
우주신의 마지막 말에 신들의 떨림이 심해졌다.
그런 신들의 모습을 보며 우주신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알긴 아는구나.>
스윽 ―
염라는 흔들리는 눈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감히 우주신을 올려다보았다.
“우, 우주신이시여.”
<말하거라. 영혼과 인과율의 관리자여.>
우주신은 무심한 눈빛으로 자신을 부른 염라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너무나도 차갑고 무심해서,
섬뜩!
시선을 마주친 염라로 하여금 절로 오한에 떨게 만들었다.
“어, 어찌하여 인간의 몸에 계신…….”
<이 와중에 그것이 궁금하더냐……?>
쿠구구구구구 ― !
우주신이 끌어올린 기운에 마계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으윽……!”
신들은 크게 당황했지만,
콰지지직 ― 콰지지직 ― !
아이러니하게도 그 뒤흔들림은 신들을 구속하고 있던 십자가와 쇠사슬을 단숨에 부숴주었다.
털썩 ―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신들이 마계에 패배한 지 수십 년 만에 십자가에서 해방되어 바닥을 밟았다.
“아아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신도들처럼 신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우주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진 자연회복력 덕에 특별한 상처는 없었지만 정신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는 상태.
뚝… 뚝…….
어찌나 감격했는지 몇몇 신들은 아이처럼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신들에게 감사 기도를 받은 우주신은,
<착각하지 마라.>
쿠궁 ― !
오히려 거세게 기운을 일으켜 십자가에서 풀려난 신들을 압박했다.
“크윽!”
바알의 쇠사슬에서 벗어나자마자 이번엔 우주신의 기운에 짓눌리게 된 신들.
그들은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우, 우주신이시여…! 어째서……?”
옥황상제가 바닥에 옆얼굴을 처박은 채 눈동자만을 움직여 우주신을 올려다보았다.
번뜩!
우주신의 두 눈빛이 한층 더 진해져 있었다.
<나는 너희를 용서하지 않았다. 너희를 풀어준 건 단지 천계의 신으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타락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작은 치하일 뿐.>
쿠구구구 ― !
콰득 ― 콰드득……!
우주신의 기운이 조금씩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허나 너희에게는 그보다 더 큰 과가 있음을 잊지 말라.>
우주신은 자신, 그러니까 본인이 잠시 빌린 태운의 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아이가 보이느냐.>
바닥에 짓눌린 신들의 시선이 우주신이 아닌 그가 차지하고 있는 몸뚱이를 향했다.
<너희의 방관과 게으름으로 인해 이 아이는 꿈을 잃었다.>
스륵 ―
우주신의 손짓에 의해 그의 주변에 희뿌연 안개가 태운의 기억을 투영시켰다.
그러자,
―훅! 훅!
그 안개 속에서 체육관에서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는 태운의 모습이 나타났다.
스륵 ―
<부모를 잃었고,>
―으흐흑!
스륵 ―
<스승을 잃었으며,>
―아아아……!
스륵 ―
<동료를 잃었고,>
―안 돼……!
스륵 ―
<연인을 잃었다.>
―으으으으… 아아아아아아아악!
콰르르릉 ― ! 콰르르릉 ― !
꽈직! 꽈직!
기억 회상에 흥분한 태운의 몸이 우주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묵빛의 번개를 일으켰다.
<이런… 아이가 흥분했구나.>
스륵 ―
툭 ― 툭 ―
우주신은 가만히 태운의 가슴 부근을 두드려주었다.
<잠시 쉬고 있거라.>
치지직……!
우주신의 두드림에 거세게 폭발하던 번개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태운을 진정시킨 우주신의 싸늘한 눈빛이 신들에게 향했다.
<이 아이가 불쌍하지 않더냐.>
“…….”
<모든 걸 잃은 이 아이가 너희들이 싸질러놓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계까지 왔구나.>
“……!”
<어째서 이 아이가 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거지?>
파르르 ―
신들의 눈꺼풀이 잘게 흔들렸다.
우주에서 천계와 마계의 역할은 분명했다.
천계는 우주를 관리하고 지키며, 마계는 그런 천계를 감시하고 견제한다.
역천의 본능을 지닌 마계의 존재들은 끊임없이 천계를 뒤흔들려 하고, 마계의 존재를 의식해야 하는 천계는 우주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경계해야 했다.
한쪽이 그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우주의 균형이 뒤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계가 중간계에 개입했다는 걸 알았을 터.>
“…….”
<어째서 가만히 있었느냐?>
우주신의 물음에 염라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곧바로 신성력을 불어넣었…….”
<그런 응급조치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쿠구구구구 ― !
화르르륵 ― !
우주신의 두 눈에서 오색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째서 연옥을 탈환하지 않았지?>
“……!”
<너희가 제때 연옥을 탈환했다면 중간계에 던전이 나타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두려웠더냐? 죽음이 그리 두려웠더냐?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아닌 너희 신들이?>
파르르 ―
신들의 어깨가 죄책감과 창피함으로 인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너희는 죽음으로 인해 격을 잃더라도 모든 기억을 가지고 되살아난다. 반면 중간계의 피조물들은 아니야. 윤회의 과정에서 모든 기억을 잃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너희에 비해 훨씬 더 열악하단 말이다.>
“…….”
<너희는 그 시점부터 필멸자들보다 못한 존재들이 된 것이야.>
뚝… 뚝…….
꽉 깨문 몇몇 신들의 입가에서 신혈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꽈악 ―
염라의 입가에서도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우주신은 그런 염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찌하여 이 아이의 몸에 있느냐고 물었느냐?>
“…….”
<이 아이만이 너희들이 벌여놓은 사태를 수습할 수 있으니까.>
“……!”
염라의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인간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라…….’
그저 다스려야 하는 존재로만 치부했던 인간이었다.
대충 내버려 두면 알아서 100년도 되지 않는, 짧은 삶을 마치고 윤회의 고리를 돌아 다시 중간계로 돌아가는 나약한 존재들.
그제서야 염라는 별것 아닌 존재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오게 된 자신들의 처지를 진심으로 반성했다.
‘못났구나.’
스윽 ―
단순한 분노와 억울함이 아닌, 진심 어린 뉘우침의 눈빛으로 변한 염라의 시선이 우주신을 향했다.
씨익 ―
<그래, 이 정도까지 했으면 알아들어야지.>
염라를 보며 미소 지은 우주신의 시선이 마계 저편을 향했다.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다 된 차였다.>
“……?”
우주신의 말이 끝난 순간,
쿠우우우우 ― !
마계의 지평선 저 너머에서 압도적인 기운을 가진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태운이 일으킨 ‘전반사’에 맞고 날아간 바알이 그새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코드 제로 네이노오오옴!”
분노에 찬 바알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주신은 염라에게 말했다.
<영혼과 인과율의 관리자여.>
“예.”
<이 아이의 공을 치하하고 싶구나.>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전투가 끝나거든 네가 이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거라. 그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예?”
그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염라가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눈빛을 띠었지만,
스르륵 ―
우주신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만을 남긴 채 이미 태운의 몸에서 떠나간 뒤였다.
[너의 소원을 일러두었다.]
사라락 ―
여전히 같은 오색안이었지만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온 태운.
주륵 ―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픈 과거를 모두 마주해야 했던 그의 두 눈에서 아직 다 해소하지 못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씨…….”
슥 스슥 ―
태운은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아내며 혼잣말로 투덜댔다.
“…이거 완전 거짓말쟁이잖아?”
자신의 심상 속으로 돌아간 초힘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리고는,
“뭐 어쨌든 그럼…….”
쿠오오오오오 ― !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바알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저놈만 끝내면 되는 거지?”
쿠아아아아아아 ― !
태운의 전신에서도 거대한 기운이 폭사되기 시작했다.
* * *
악마왕, 혹은 마신.
그리고 이제는 삼계를 모두 지배하는 절대신의 자리를 눈앞에 둔 존재, 바알.
방금 전 공격을 실패하다 못해 오히려 튕겨 나간 바알은 뼈저리게 깨달았다.
‘단순한 전력으로는 안 된다……!’
아무리 상대가 인간이라지만, 놈은 자신이 여태껏 싸워온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강력한 존재라는 것을.
지금 코드 제로가 가진 힘은 천계와 마계의 모든 힘을 흡수한 자신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말이다.
‘빈틈을 노린다……!’
바알의 두 눈이 데굴데굴 굴렀다.
그리고 이윽고,
씨익 ―
그새 머릿속으로 금방 계획을 세운 것인지 태운을 향해 돌진하는 바알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희미하게 어렸다가 사라졌다.
쐐애애액 ― !
한 줄기의 검보랏빛 빛살이 된 바알.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태운의 코앞에 도달했다.
그렇게 태운이 바알의 모습을 눈에 담은 순간,
“……!”
바알을 맞이하기 위해 힘을 끌어올리던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오빠……!”
흡수한 아와드의 기억을 읽은 바알.
그가 죽인 이들 중 코드 제로의 연인이 있음을 떠올린 바알이 유린의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폭 ―
유린으로 변신한 바알이 눈물을 흘리며 태운의 품에 안겼다.
“오빠… 오빠……!”
바알의 입에서 유린의 목소리와 울음이 흘러나왔다.
덜덜덜……!
바알을 안은 채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태운의 전신이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상대가 바알인 것을 알면서도 차마 유린의 모습의 그를 쳐낼 수 없었던 것이다.
태운의 품에 안긴 바알의 입가에 곧 비릿한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멍청한 녀석.”
푸욱 ―
마비독을 비롯한 각종 극독을 가득 주입한 바알의 손이 태운의 심장을 꿰뚫었다.
“커헉……!”
검붉은 피를 토해내며 몸을 벌벌 떠는 태운.
바알은 유린의 모습을 한 채 그런 태운을 보며 깔깔깔 웃어댔다.
“깔깔깔! 이래서 인간이란! 겨우 외형을 흉내 내는 것만으로 속다니! 네놈이 가진 힘이 아깝구나!”
콰악 ―
한순간에 태운을 무력화시킨 바알의 다른 한 손이 그의 목을 틀어쥐었다.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아라. 그래도 사랑하는 여자의 손에 죽는 거잖아?”
씨익 ―
바알의 입가에 가증스러운 미소가 피어났다.
“네놈의 힘은 내가 잘 사용해주마.”
키이이잉 ― !
태운의 가슴 속을 파고든 바알의 손이 그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 검보랏빛의 마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전(反轉)].”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키잉 ― !
“커헉……!”
순식간의 두 사람의 형세가 뒤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바알에게 가슴을 뚫린 채 목을 붙잡혀 있던 태운이 오히려 바알의 가슴을 뚫고 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후우…….”
가슴이 뚫렸던 고통의 정신적 잔향이 아직 남았는지, 태운은 한숨을 쉬고 미간을 찌푸리며 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꽈악 ―
“커헉… 크헉……!”
울컥 ―
바알의 입에서 검은 핏물이 마구 솟구쳤다.
태운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은 채 그런 바알의 눈앞에 자신의 두 눈을 가져다 댔다.
“놀아주니까 재밌디?”
“……!”
태운의 말을 들은 바알의 두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크게 흔들리는 순간,
“이제 그만 끝내자.”
콰드득 ― !
그의 손이 바알의 목을 무자비하게 뜯어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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