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신을 협박함 (2)
“…사람들을 되살려달라?”
태운의 말에 염라대왕은 잠시 벙찐 표정을 짓다 되물었다.
“맞아.”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이야기하는 건가?”
“…….”
“지금 나보고 우주의 인과율을 어기라는 것인가? 그것도 영혼의 인과율을 관장하는 나, 염라에게?”
쿠구구……!
심기가 불편해진 염라대왕에게서 거센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최고신인 옥황상제 이상의 무력을 지닌 염라대왕의 기였다.
아무리 전력이 아니라지만,
쿠구구구구구 ― !
그의 전신에서 새어 나오는 기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연이은 싸움의 여파로 인해 약해져 있던 마신성.
우르릉…….
마신성의 성벽 일부가 그 기운에 짓눌려 무너졌다.
조금 더 지속했다간 마신성 전체가 무너질 판이었다.
그러나,
“맞다.”
태운은 그런 염라대왕의 눈치 따위는 전혀 보지 않는다는 듯 할 말을 내뱉었다.
“이……!”
신에게는 거의 모욕이나 다름없는 그의 말에 염라대왕이 분노를 토해내려던 순간,
“그러라고 너희를 살려준 거니까.”
태운의 싸늘한 한마디가 염라대왕이 피워올린 기세를 단숨에 잠재웠다.
“뭐, 뭐?!”
“내가 마계에 왜 왔을까?”
태운의 차가운 눈빛이 염라대왕의 폐부를 꿰뚫었다.
“설마 순수하게 너희를 구하러 왔다고 생각했나? 우리 중간계를 방치한 너희들을?”
“……!”
긴장한 염라대왕의 표정을 바라보며 태운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다고 너희를 해치러 온 것도 아니니까.”
태운은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난 단지 내 사람들을 구하러 왔을 뿐이야. 그리고 그걸 해줄 수 있는 게 바로 염라, 당신이고.”
“하, 하지만……!”
“우주신의 말을 벌써 잊은 건가?”
태운의 말에 염라대왕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주신의 말씀……?’
―<그러니 전투가 끝나거든 네가 이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거라.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염라대왕은 그제서야 우주신이 한 마지막 한마디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거였던 것인가……!”
염라대왕이 커다란 충격을 받아 입을 쩍 벌린 채 멍하니 있는 그때,
스윽 ―
옥황상제가 조심스레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인간… 아니, 신들의 구원자여.”
“…말해.”
옥황상제는 태운의 반말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어떤 사람들을 되살리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는 우주의 인과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인가?”
“…잘 몰라. 하지만 그 대가가 매우 무겁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태운의 대답에 옥황상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매우 무겁지. 예를 들자면…….”
스윽 ―
옥황상제의 시선이 신들의 무리 속에 있는 한 하급 신을 향했다.
흠칫.
옥황상제와 눈을 마주친 하급 신이 어깨를 살짝 떨었다.
“저 아이는 이제 존재한 지 천년이 지난 친구지.”
옥황상제의 말에 태운은 그가 바라보고 있는 하급 신을 바라보았다.
꼬마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하급 신.
존재한 지 천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꼬마의 모습이라니.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다른 신들의 나이는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10살의 아이를 되살리려면 저 친구는 신격을 통째로 잃어야 하네.”
“……?”
태운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생전의 수명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렇지.”
옥황상제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의 인과율이란 매우 엄격하고 지엄해서, 그 위반의 대가를 톡톡히 받아낸다네. 특히 영혼의 윤회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하지.”
옥황상제가 검지손가락 하나를 펼쳤다.
“생명 하나의 수명 1년을 되살리려면 그 100배의 신격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네.”
“…….”
태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10살이면 일천 년의 신격이 필요한 건가.”
옥황상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기에 하루가 지날수록 필요한 신격은 그에 10배가 되지.”
“……!”
죽은 지 이틀이 지난 10살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필요한 신격은 무려 일만 년.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인과율의 대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대가 살리려는 이들은 언제 죽었지?”
“…잘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아직 하루를 넘진 않았어. 아마 불과 몇 시간 전…….”
“아니, 그건 또 모르는 일이다.”
어느새 제정신을 차린 염라대왕이 짐짓 굳은 표정을 하며 말했다.
“중간계와 마계의 시간 비율은 다르니까.”
“……!”
그건 몰랐던 듯 태운의 두 눈이 살짝 흔들렸다.
“…얼마나 차이가 나지?”
“대략 6대 1. 마계에서의 하루는 중간계에서 6일 정도의 시간이지.”
태운은 가만히 시간을 어림했다.
마계에 들어와서 지금까지의 시간.
“…….”
잠시 고민하던 태운은,
키잉 ―
“[시간계측(時間計測)].”
초힘의 힘을 사용했다.
파짓!
태운의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계측값.
“…이곳에 온 지는 마계의 시간으로 1시간 정도 지났다.”
“중간계에서는 6시간이라… 몇몇 영혼에 따라서는 아슬아슬할 수도 있겠어. 동시에 죽진 않았을 거 아닌가?”
끄덕 ―
태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꽤 많은 사람이 죽은 지 하루가 넘었을 것이었다.
태운이 살리려는 이들은 이번 노아즈 아크의 침공으로 죽은 모든 이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많이 힘들겠군. 신들이 더 많았다면 모를까, 타락신들이 모두 격을 잃고 영혼으로 돌아간 지금… 신격을 지닌 이들은 여기 있는 이들뿐일세.”
타락하지 않고 남아 있는 신들은 천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겨우 수백 명의 신들만으로는 그 인과율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전에…….”
옥황상제가 염라대왕을 바라보았다.
“일단 염라의 허락을 받아야겠지만 말이야.”
윤회와 영혼의 총관리자, 염라대왕.
그의 허락이 없으면 애초에 신격으로 대가를 치르며 죽은 이들을 살릴 수도 없었으니까.
“내가 허락할 리가 없지 않은가? 자칫하면 살아남은 이들의 신격을 전부 잃을 수도 있는 일을! 그렇게 되면 천계가 무너질 거야!”
염라대왕이 팔짱을 끼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
“후우…….”
그러자 태운은 한숨을 쉬며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태운이 바라본 이는,
흠칫.
천계의 대장군, 이랑이었다.
“이랑.”
“…말하시오.”
“인과율의 거래 내용을 이행해.”
“…알겠소.”
지잉 ―
이랑의 손아귀에서 거대한 대검이 생성되었다.
기기깅 ―
푸른빛이 일렁이는 그의 대검은 척 봐도 일반적인 무기가 아니었다.
“그, 그건……!”
“영멸의 검이잖나!”
대죄를 지은 타락천사의 영혼까지 멸해버리는 천계 대장군 전용 무기인 영멸의 검.
영멸의 검에 심장을 맞는 이는 더 이상 윤회의 고리에 탑승하지 못하고 영혼까지 사라지게 되었다.
그야말로 완전한 소멸.
그런 영멸의 검을,
스윽 ―
이랑은 태운에게 건넸다.
“……!”
“미, 미친…! 이랑, 자네… 지금 뭐 하는……!”
신들이 기겁하는 가운데,
텁 ―
태운은 이랑에게서 영멸의 검을 건네받았다.
“거래를 했거든.”
부웅 ― 부웅 ―
태운이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신들을 구하고.”
부웅 ―
“너희 신들은 내 사람들을 구해주기로.”
부웅 ―
영멸의 검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신들의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으윽!”
순간 코를 베일 뻔한 염라대왕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지, 지금! 수백 명의 신들을 적으로 돌릴 셈이냐!”
다급해진 염라는 자신도 모르게 되지도 없는 협박성 멘트를 날렸다.
그리고 그 멘트는,
“적으로 돌려?”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강해지기 전의 바알 하나도 못 이겨서 쩔쩔매던 것들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은데.”
부웅 ―
척 ―
영멸의 검날 끝이 염라의 미간을 조준했다.
“선택해라.”
태운의 무자비할 정도로 차가운 눈빛이 신들의 공포를 자극했다.
“이대로 영멸할지.”
기이잉 ―
“아니면 신격을 바치고 내 부탁을 들어줄지.”
화륵!
신들을 협박하는 태운의 두 눈에 귀화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영혼들은 생전의 죄의 경중에 따라 저마다의 갈 곳이 정해졌다.
죄가 없거나 매우 가벼운 선량한 영혼은 천국으로,
어느 정도의 죄가 있는 이들은 연옥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심한 죄를 지은 이들은 지옥으로.
천국으로 간 영혼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만큼의 시간 동안 천국에서 안식을 얻은 후 환생하고, 연옥으로 간 영혼은 연옥에서 죄를 탕감한 뒤 천국을 잠시 맛본 뒤 환생했다.
지옥으로 간 영혼 또한 모든 죄를 씻을 때까지 고통받다가 천국은 맛보지도 못한 채 환생했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영혼들이 세 곳으로 가기 전 머무르는 곳이 있었으니, 이를 명계라고 불렀다.
죽은 영혼들이 다음 행선지를 지정받는 곳이자 영혼들이 대기하는 곳인 명계.
하지만 명계의 왕이자 신인 염라대왕이 바알에게 잡혀 수십 년째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명계는 현재 죽은 영혼들로 포화된 상태였다.
“…….”
이지가 사라진 영혼들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명계에 머무르고 있었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흐릿한 눈을 가진 영혼들.
보통 같으면 염라대왕이 판결을 내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명계는 영혼이 가득함에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지잉 ―
명계의 상공에서 차원문이 열리며 수백 명의 누군가가 나타났다.
‘여기가 명계인가.’
태운이 명계를 둘러보는 사이,
“하아…….”
염라대왕은 수십 년간의 공백으로 인해 포화 직전에 이른 영혼들의 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나만 아주 죽어 나가겠군…….”
최소 며칠, 아니 몇 달 동안은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일할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염라대왕이었다.
“…얼른 진행하지.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너희가 아니던가?”
척 ―
태운이 영멸의 검을 겨누며 염라대왕에게 말했다.
“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안 되겠나? 이대로 모든 신들이 대부분의 격을 잃으면… 연옥을 다시 정상적으로 만들 수가 없어. 연옥에 둘러진 마계의 장벽을 뚫으려면 최소 천 년이 필요하다고!”
염라대왕이 마지막으로 발악했다.
마계의 모든 악마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가운데, 천계로서는 연옥을 탈환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태운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선 수만… 아니, 수억 년을 살아온 최고신이나 대신들마저도 대부분의 신격을 걸어야 하는 상황.
태운의 요구대로 수많은 사람을 다시 살리고 나면, 천계도 다시 힘을 키우기 위해 오랜 시간 재정비에 들어가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태운은 전혀 타협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야. 어차피 너희들은 이미 오랜 시간 중간계를 방치하지 않았나? 인간들의 입장에서 너희들은 있으나 없으나 똑같아.”
“……!”
으득…….
염라대왕은 할 말이 없는 듯 이를 갈았다.
끝끝내 염라대왕이 망설이자,
텁 ―
누군가 염라대왕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바로 환인이었다.
“염라여.”
“화, 환인?”
“닥치고 하시게. 우리 애가 원한다잖나. 신격 그까짓 거, 뭐 그리 아깝다고.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시 생기는 거 아닌가?”
텁 ―
염라의 반대쪽 어깨에도 누군가 팔을 올렸다.
이번엔 환웅이었다.
“쫄리면 뒈지시던가.”
단군신도 환웅 옆에 뒷짐을 지고 나타나 한마디를 거들었다가,
“이 미련곰탱이 같으니… 아.”
“너 이리 와.”
웅녀신에게 끌려갔다.
“이이이이……!”
염라대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거지같은 한반도 놈들!”
염라대왕의 외로운 절규가 명계에 울려 퍼졌고,
지이이이잉……!
곧 일부의 영혼들의 몸이 빛무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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