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영웅은 죽지 않음 (3)
삐익… 삐익… 삐익…….
쉬이이 ― 쿠우우 ― 쉬이이 ― 쿠우우 ―
어느 한 1인 병실 안.
한 사내가 산소 호흡기를 쓴 채 병실 침상 위에 힘없이 누워 있었다.
삐익… 삐익… 삐익…….
규칙적으로 뛰고 있는 그의 심장 소리가 심장박동기 모니터에 규칙적인 그래프를 그려 나가고 있었다.
남자는 마치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지만,
쉬이이 ― 쿠우우 ― 쉬이이 ― 쿠우우 ―
그의 숨소리는 그 누구보다 힘차고 강인했다.
[권태운]
침상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이름표가 그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락 ―
그의 옆에서 책 페이지가 부드럽게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상에 누워 있는 태운의 옆자리.
병실 침상 옆에 앉아 있는 검은 머리의 한 여인이 책을 읽고 있었다.
사락 ―
책을 넘기는 그녀의 모습은 한없이 차분해 보였으나,
파르르 ―
정작 책을 읽는 그녀의 눈빛은 한없이 불안정해 보였다.
사락 ―
규칙적인 속도로 넘어가는 책장.
페이지 속 내용을 다 읽지도 않은 채 그냥 넘기는 듯 책을 넘기는 속도는 무섭도록 일정하고 빨랐다.
사락 ―
대략 10초에서 15초에 한 번씩 넘어가는 책장.
탁.
얼마 지나지 않아 책 한 권을 다 읽어버린 여인, 유린은 책을 덮음과 동시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스읍… 후우…….”
호흡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유린.
그녀의 한숨에서 짙은 우울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짝!
유린은 양손으로 자신의 볼을 때리며 방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벌떡!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은 기합과 함께 유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쫘아악 ―
대야 안에 담겨 있던 물수건을 쭉 짜냈다.
톡톡 ―
눈을 감고 있는 태운의 얼굴을 살짝살짝 닦아주는 유린.
마치 귀한 도자기를 닦는 듯 그의 얼굴에 물수건을 가져다 대는 유린의 손길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오빠, 언제 일어나? 오빠 목소리 듣고 싶은데.”
유린은 태운의 얼굴을 닦아주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는 태운.
삐익… 삐익… 삐익…….
그의 심장박동 모니터도 별 차이 없이 똑같은 리듬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오빤 진짜 복 받은 줄 알아. 이런 미녀가 수발을 다 들어주고 있으니.”
스윽 ― 스윽 ―
태운의 얼굴과 목을 다 닦아낸 유린은 물수건을 빨아 작은 빨랫대에 널어놓았다.
털썩 ―
다시 침상 옆에 앉은 유린.
그녀의 손이 삭발한 태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까끌까끌한 촉감이 그녀의 손바닥을 타고 전기처럼 찌릿하게 전해졌다.
“…오빠, 머리 또 많이 자랐네. 한번 밀어야겠는데?”
움직일 수 없는 태운의 위생을 위해 입원하면서 그의 머리를 모두 밀어버린 것.
이번에 민다면 그걸로 벌써 17번째였다.
한 달에 한 번씩 밀고 있었으니 곧 태운이 의식을 잃은 지도 17달, 그러니까 일 년 하고도 반이 지난 것이었다.
울컥 ―
태운의 머리를 한없이 쓰다듬던 유린의 두 눈에 참았던 눈물이 차올랐다.
툭 ―
유린은 태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빨리 일어나… 제발… 나 무서워…….”
애써 태연한 척 묵묵하게 홀로 태운을 간호하던 유린의 어깨가,
들썩들썩.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들썩이고 있었다.
그러나 태운은 그런 유린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인지,
쉬이이 ― 쿠우우 ― 쉬이이 ― 쿠우우 ―
그의 숨소리는 원망스러울 정도로 규칙적이었다.
* * *
약 17개월 전.
한국수호대첩에서 전멸했던 헌터들이 동두천시에서 막 눈을 떴을 무렵이었다.
“흐윽… 흐윽……!”
협회 본부에 있는 부협회장, 현주에게 생존 신고를 마친 유린이 태운의 품에 안겨 울고 있었다.
“…고생했어.”
태운의 먹먹한 목소리.
그의 목소리는 그 누가 들어도 태운이 지금 가까스로 울음을 참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물기에 젖어 있었다.
“…….”
막 되살아난 강천이 그런 태운과 유린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지끈!
어떤 장면 하나가 그의 뇌리를 스치며 두통이 일어났다.
―못 지켜서 미안해.
콰아아아아아앙 ― !
자신의 마지막 한마디 그리고 경악에 물들어 있던 태운의 눈빛.
그렇게까지 당황한 태운의 모습은 처음 봤던 강천이었기에,
“흐윽… 흐윽……!”
“고생했어… 고생했어…….”
그는 여전히 지금의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전부 다 죽었던 게……?’
태운을 비롯해 주변을 살피며 강천이 당황스러워하던 그때,
비틀… 비틀…….
한 남자가 태운의 앞으로 다가왔다.
“……!”
분명 커다란 뱀에 먹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동석.
그가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태… 아니, 코드 제로.”
“…협회장님.”
동석은 태운의 품에 안겨 있는 유린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아빠아아아……!”
태운의 품에 안겨 있던 유린은 이번엔 등 뒤로 다가온 동석의 다리를 껴안고서 그의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동석은 입술을 깨문 채 그런 유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태운과 눈을 마주쳤다.
“자네가… 우릴 살린 건가?”
“…….”
“나는 분명 죽었다네. 커다란 뱀의 내장 속에서 녹아내리던 고통이 여전히 생생해. 맞아, 분명 나는 죽었어.”
동석의 눈빛도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되질 않는다는 듯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줄 수 있겠나?”
떨리는 동석의 목소리.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직면했을 때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빙긋 ―
태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하지만 그 미소는,
“…형?”
너무나도 씁쓸했다.
“저도 설명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시간이 없군요.”
“…시간이 없다고?”
태운의 알 수 없는 말에 동석의 미간이 꿈틀거렸고,
“흐윽… 흐으… 으으?”
흐느끼던 유린의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갑자기 무슨……!”
순간 불안한 느낌이 든 강천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락 ―
태운의 손이 유린의 볼을 한번 쓰다듬었다.
“좀 오래 걸릴 거야.”
“오…빠…? 갑자기 무슨……?”
유린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볼을 어루만지는 태운의 손등을 잡았다.
왠지 이대로 놓치면 태운이 멀리 떠나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빙긋 ―
그러나 태운은 그런 유린을 바라보며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스윽 ―
태운의 시선이 조금 떨어져 있는 강천을 향했다.
“강천.”
“형……!”
강천은 본능적으로 태운을 향해 달렸다.
오싹! 오싹!
그가 이대로 어디론가 떠나버릴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자꾸만 그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형!”
쉬익 ― !
강천의 신형이 순식간에 태운의 바로 앞까지 당도했다.
하지만,
스르륵 ―
태운의 신형은 이미 옆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뒷일을 부탁한다.”
풀썩 ―
마치 줄이 끊어진 인형이 쓰러지듯 허물어지는 그의 몸뚱이.
그의 머리가 땅에 닿기 직전,
터억 ―
강천의 손이 가까스로 그의 몸을 붙들었다.
“형? 형! 혀엉! 정신 차려!!”
흔들흔들.
극심한 혼란으로 물든 눈빛으로 태운의 몸을 흔드는 강천.
그런 태운은 이미 의식을 잃은 채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
그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본 동석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고,
“오빠……!”
덜덜덜……!
유린은 마치 시체처럼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오빠아아아아!”
“권태운 이 새끼야! 일어나라고오오오!”
두 사람의 절규가 도시 전역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졌다.
그러나,
“…….”
정작 그 부름의 대상은 침묵할 뿐이었다.
* * *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태운이 의식을 잃은 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쉬이이 ― 쿠우우 ― 쉬이이 ― 쿠우우 ―
태운이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1인 병실.
드르륵 ―
그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아빠?”
“음, 그래. 뭐 하고 있었니?”
태운의 옆에 앉아 있던 유린이 살짝 반색하며 양손 가득 뭔가를 들고 온 동석을 반겼다.
꼬옥 ―
유린은 동석에게 가서 꼭 안겼다.
“어휴, 얘 살 빠진 거 봐. 일로 와. 일단 이거부터 먹어.”
동석과 함께 태운의 병실을 찾아온 현주가 동석을 끌어안고 있는 유린의 팔을 잡아끌었다.
“어, 엄마? 나 배 안 고픈…….”
“그냥 먹을래 아니면 안 먹고 여기서 쫓겨날래?”
“…….”
태운의 간호를 시작한 뒤로 1년 만에 몸무게가 10kg이나 빠져버린 유린.
그렇지 않아도 늘씬했던 유린은 기어이 몸무게 앞자리 3을 달성하고 말았다.
―이년이 또 속 썩이지!
만약 어머니인 현주가 없었다면 지금쯤 유린은 30kg대 초반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나마 매번 강제로 수제 도시락 탑을 싸 들고 와서 꾸역꾸역 먹였던 현주 덕에 최근 유린은 간신히 앞자리 4까지 몸무게를 회복했다.
“그냥 좋은 말 할 때 먹어라. 어?”
“네…….”
유린은 현주에게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팔 길이만큼이나 높이 쌓인 도시락 탑을 꾸역꾸역 입안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아 참, 그리고.”
현주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 뭔가를 또 내밀었다.
붉은색 박스였다.
“네 오빠가 보낸 거야. 한 달 안에 다 안 먹으면 죽인댄다.”
“…홍삼? 이거 맛없는데…….”
“네 새언니도 벼르고 있더라.”
“…….”
작년에 결국 부부의 연을 맺은 기성과 인하.
태운과 유린의 상황을 이해했던지라 식은커녕 신혼여행도 다녀오지 않고 조촐히 혼인신고만 마친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 또한 뼈마디만 남은 유린을 보고는 기겁하여 매번 이렇게 몸보신이 되는 무언가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그냥! 아픈 건 태운인데 주변 사람들 걱정은 네가 더 시키고 있네. 응?”
현주의 잔소리에 유린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없이 도시락만 깨작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동석은 허허 웃으며 현주를 뒤로 물렸다.
“여보, 당신은 왜 오자마자 유린이한테 뭐라고 해. 유린아! 천천히 먹어라.”
“네에…….”
달그락 ―
덜덜덜…….
젓가락으로 조금 커다란 덩어리의 갈비를 들어 올린 유린의 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3년간 근육이 완전히 다 빠져버린 탓이었다.
“세상에…….”
그 모습을 처음 본 현주는 눈앞이 핑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안 되겠어.”
현주는 두 눈에 불을 켰다.
“한유린.”
“…으응?”
현주의 부름에 팔을 달달달 떨며 고기를 물고 있던 유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대론 안 되겠어.”
“……?”
태운이 은퇴하던 날, 동반 은퇴를 선언했던 유린.
현주는 그런 유린을,
“너 다시 헌터 해라.”
다시 헌터계로 끌어들이기로 결심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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