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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286화 (286/300)

286화. 영웅은 죽지 않음 (4)

2년이 더 흘렀다.

[결국은 심판받는다… 김정원 前 대통령을 비롯한 前 여당인 ○○당 의원들 전원 구속]

[보다 큰 혼란을 막기 위해 잠시 미뤄왔다… 정권을 잡은 의인당, 마침내 칼을 빼 들다!]

[서민우 대통령 曰 “이 순간을 은인이신 그분과 함께하지 못해 그저 못내 아쉬울 따름.”]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한국 정부는 김정원 대통령을 비롯한 기존의 여당이 몰락하고 서민우 의원을 필두로 한 의인당이 정권을 잡았다.

정권을 잡고 그다음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서민우는 태운과 이야기했던 대로 그동안의 성과와 관계없이 김정원 대통령과 ○○당 의원들을 처벌했다.

“서민우……!”

“김정원 씨, 이제 죗값을 치르셔야죠.”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이, 이거 누구 지시야? 내가 어? 코드 제로랑! 어? 밥도 먹고! 하와이도 가고! 다 했단 말이다!”

“되지도 않는 소리 마시고 얼른 가십쇼. 그래도 사형은 면할 수 있을 겁니다. 공을 아예 무시하기에는 또 최근엔 나름 잘했으니까.”

“서민우우우우우!”

결국 죄를 지은 자는 무조건 처벌되어야 한다는 태운의 뜻은 그렇게 실현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본인은,

쉬이이 ― 쿠우우 ― 쉬이이 ― 쿠우우 ―

5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 *

[서민우 대통령의 은인은 코드 제로… 그러나 여전히 의식 불명 상태.]

[벌써 5년째… 영웅은 언제 깨어나는가?]

잊을 만하면 기사에 언급되는 코드 제로.

무려 5년이나 지났지만, 워낙 엮여 있는 일들이 많았기에 코드 제로의 존재는 여전히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이슈였다.

쉬이이 ― 쿠우우 ― 쉬이이 ― 쿠우우 ―

여전히 그때 그 자세 그대로 병실 침상에 누운 채 숨을 쉬고 있는 태운.

그의 호흡은 마력 호흡이라도 하는 듯 기계처럼 일정하기 그지없었다.

똑똑 ―

드르륵 ―

그의 병실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뚜벅 뚜벅 ―

훤칠한 키의 남자.

찰랑이는 은발과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는 하얀 가면이 인상적이었다.

척 ―

청년은 눈을 감은 채 숨만 쉬고 있는 태운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투욱 ―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형, 나 왔어.”

은발의 청년, 강천이 가면 뒤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미안해. 이제야 찾아와서.”

스윽 ―

강천은 태운의 여윈 손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태운이 입원하고 단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못했던 강천.

그러나 척 봐도 엄청나게 피곤해 보이는 그의 두 눈은 그가 얼마나 바빴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동안 태운이 해오던 일을 천용과 둘이 떠맡으면서 지난 5년간 정말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온 탓이었다.

“…형, 언제 일어날 거야?”

병상 옆 의자에 앉은 강천은 눈을 감고 있는 태운에게 물었다.

“뒷일이 너무 빡세잖아. 형.”

강천은 마른세수를 하며 퀭한 두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그나마 던전 수가 많이 줄었기에 망정이지…….”

노아즈 아크가 사라진 이후 세계의 던전 발생 수,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 발생하던 던전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한국수호대첩이 일어나기 직전에 미친 듯이 발생하던 때와 비교하면 거의 100분의 1 미만으로 줄어든 것이다.

원래 발생하던 평균보다도 줄어든 던전의 개수 탓에 세계는 이제 오히려 헌터가 너무 많이 남아도는 지경이었다.

이에 리바이브 생산시설이 부서진 데다가 태운까지 의식불명인 상태라 추가 리바이브 생산을 하지 못하던 메디스카이는 그 기회를 틈타 인명구조용 리바이브를 제외한 추가 수출 및 판매를 모두 중단했다.

줄어든 던전 수에 맞춰 더 이상의 헌터도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사실상 헌터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

다만 모든 세계급 헌터들이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세계급 헌터인 강천과 천용의 입지는 천정부지로 그 희소가치가 솟아 있었다.

때문에 전 세계에 발생하는 S급 던전의 조사는 대부분 두 사람의 차지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운 한국은 어떻게 던전을 관리하고 있을까.

“형, 근데 그거 알아? 코스모스 엄청 늘어났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이야기해줬으려나…….”

다행히도 코드 제로의 의지를 이은 협회 직원들이 고군분투하며 강해진 덕에 지난 5년간 한국 헌터 협회의 전력은 크게 증가해 있었다.

특히 협회 최강의 전력, 코스모스의 인원이 늘어난 것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코스모스의 인원이 무려 6명으로 늘었으니까.

한국수호대첩이 끝나고 반년 뒤, 코드 원인 강천과 코드 투인 태성의 뒤를 이어 철민이 코드 쓰리의 이름을 가져갔다.

그 후 2개월 뒤 기성이 빠른 속도로 따라붙으며 코드 포의 이름을 가져갔고, 수호대첩이 끝나고 2년 반이 되던 즈음에 인하가 코드 파이브의 이름을 가져가며 첫 여성 코스모스 헌터가 되었다.

그리고 작년, 수호대첩이 끝난 지 4년째가 되는 해에는 창훈이 코드 식스의 이름을 가져갔다.

스윽 ―

강천은 품속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혀 있는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촤악 ―

종이를 펼치자 쭉 나열되어 있는 이름들.

모두 헌터 협회 직원들의 이름이었다.

“형, 이거 봐봐. 내일 우리 전투부서 승급식이 있거든? 그런데 승급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코스모스가 늘어났다는 것은 곧 그 밑에 있는 전투부서 직원들의 승급도 엄청나게 이루어졌다는 뜻.

특히 수호대첩 이후 5년간 협회 직원들은 그들을 살리고 홀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태운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정말 말 그대로 죽어라 노력했다.

코드 제로가 이루고자 했던, 바르고 정의로운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 결과 다른 조들은 물론이고 항상 인력난에 시달리던 알파조마저 20명이나 되는 대형 조가 될 수 있었다.

“형, 여기 봐봐.”

강천은 종이를 태운의 얼굴 위로 가져가며 몇몇 이름들을 가리켰다.

“형, 동혁이 형 여자친구 알지? 그 왜, 우리 펜션에서 동혁이 형 고민 상담해줬을 때 말했던 썸녀 있잖아. 그분이 최장기간 예비조였거든? 근데 이번에 무려 감마조로 올라가. 대단하지?”

강천은 마치 태운이 깨어 있기라도 한 듯이 자연스레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이거 봐. 동혁이 형이 알파조장이 된다? 크큭… 진짜 감회가 새롭다니까. 참고로 대한이랑 민아는 베타조원이야. 작년에 올라갔는데 누가 말해줬는지 모르겠네. 한석이 형도 작년에 알파조원으로 올라갔어. 우리 실전반 선배님들 잘 자랐다. 그치?”

파르르 ―

종이를 든 강천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거 봐. 이분들은 형이 구했던 사람들이야. 왜 서울 다중브레이크 때 있잖아. 그때 병원으로 실려갔던 사람들인데… 주작 길드한테 꼬임당했다가 정신 차리고 협회에 지원했더라고. 그분들 다 사관학교 졸업하셨거든. 이분은 그 사람들 중에 제일 높이 올라간 사람이야. 벌써 감마조로 승급한다? 대단하지? 이분 인생 롤모델이 형이래.”

주르륵 ―

강천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종이를 든 그의 손은 어느덧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스윽 ―

강천의 손가락이 종이 제일 밑쪽으로 내려갔다.

“형… 그리고 이거 봐…….”

덜덜덜……!

떨리는 그의 손가락이 종이 하단에 적혀 있는 이름을 가리켰다.

“형 여자친구… 내일이면 코스모스가 될 거야. 정말 축하할 일이지? 코드 네임도 숫자 중에 제일 어감이 좋은 럭키 세븐이 될 것 같아. 정말 기쁜 일 아니야?”

후두둑 ― 투두둑 ―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형 여자친구잖아… 형이 제일 먼저 축하해줘야지…! 얼른 일어나서 축하하라고! 이 등신아아아……!”

으득…….

강천의 입안에서 끝끝내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스윽 ―

잠시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리던 강천은 입안에서 피가 나자 핏물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내일이야. 전투부서 승급식.”

“…….”

“형이 꼭 와줬으면 좋겠지만… 아마 힘들겠지?”

“…….”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기다리는 사람들 그만 애태우고 얼른 좀 돌아와. 형 일을 내가 커버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빙글 ―

강천은 태운에게서 몸을 돌렸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어.”

“…….”

“이만 갈게.”

뚜벅 뚜벅 뚜벅 ―

드르륵 ―

쿵.

강천이 떠나간 병실.

쉬이이 ― 쿠우우 ― 쉬이이 ― 쿠우우 ―

조용한 태운의 숨소리만이 그 안을 울리고 있었다.

* * *

살랑살랑.

잔잔한 바람이 불어왔다.

잔잔한 바람이 가부좌를 취한 채 앉아 있던 한 남자의 앞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후우우우…….”

길게 한숨을 뱉는 남자.

스윽 ―

감겨 있던 그의 두 눈이 떠지며,

화아악 ― !

눈이 멀어버릴 듯한 광명이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후욱 ― !

그의 중심으로 옅은 기운의 파문이 퍼져 나갔다.

우웅 ― 우웅 ― 우웅 ―

“벌써 다 회복했는가.”

눈을 뜬 남자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앉아 있던 초로의 노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환인… 님.”

남자, 태운의 말에 초로의 노인, 환인이 클클대며 웃었다.

“영멸의 검을 들이밀면서 영멸하고 싶냐고 협박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존칭을 사용하는가?”

“…그건 정말 죄송했습니다. 워낙 급했던지라.”

태운이 머리를 숙이자 환인이 배를 잡고 웃었다.

“클클클! 되었네. 그런 모든 성정이 결국 내 후손임을 증명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예의를 차리는 것 같으면서도 급하면 눈에 뵈는 게 없는 것이 우리들의 특징이 아니던가?”

한국인의 태초신이나 다름없는 환인의 말에 태운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회복력도 참 대단하단 말이야. 워낙 쌓은 영혼의 격이 적었을지언정 단순 신격인 우리와는 다르게 절대신격일 터인데… 과연 차기 절대신이라 그런 것인가?”

“그럴 리가요. 그냥 격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그런 것일 뿐입니다.”

태운의 겸손에 환인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그에게 다가와 등을 두드려주었다.

“어쨌든 고생했네. 얼른 돌아가야지. 미안하네. 우리의 격이 부족해서 인과율을 자네까지 감당하게 되었구만. 타락한 신이 조금만 적어서 몇 명만 더 남아 있었어도, 자네가 감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빙긋 ―

태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환인을 보고 미소를 지을 뿐.

그런 태운을 보며 대충 눈치를 챈 환인이 클클댔다.

“알았네. 더 이상 말 시키지 않을 테니 얼른 가시게나.”

“예, 환인님. 다른 신들께도 안부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특히 염라대왕께는…….”

“아, 됐네. 그 양반은 이미 자네한테 단단히 삐쳤어. 그 양반 화 풀려면 여기서 100년은 더 있어야 할 거야.”

긁적 ―

저지른 죄(?)가 있어 괜히 머쓱해진 태운은 살짝 뒤통수를 긁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화아아아 ―

태운의 몸이 새하얀 빛무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잘 가게나. 나중에 보자고.”

환인의 배웅을 받으며 태운이 사라지려는 그때,

꾸벅 ―

저 멀리 고개를 숙이는 녹색 머리의 남자가 있었다.

그의 정체를 알아본 태운은,

흔들 ―

사라지기 전 손을 한번 흔들어주었다.

사아아아아 ―

태운의 신형이 사라지며 사방으로 퍼지는 새하얀 빛.

“…고맙소.”

그 빛무리의 색처럼 새하얀 날개를 지닌 녹색 머리의 남자가 그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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