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7화. 영웅은 죽지 않음 (完)
다음 날.
헌터 협회는 전투부서 승급식 준비로 한창 바쁜 상태였다.
최근 승급하는 이들이 많아 거의 매달 준비할 정도로 빈번해진 전투부서 승급식.
하지만 이번 승급식은 조금 특별했다.
다른 이들이 승급하는 것도 충분히 축하할 만한 일이지만, 협회장과 부협회장의 딸이자 코드 제로의 여자친구로 알려진 유린이 코스모스로 올라가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거 떼라니까!”
승급식이 열리는 대강당에서 한창 준비 중이던 현주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현주에게 혼난 직원들이 울상을 지었다.
그들의 손에는,
<[경] 제로♥세븐 커플 탄생! [축]>
이라는 남사스러운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아니! 대체 누굴 위한 플래카드냐고!”
“저희의… 대리만족?”
“당장 떼!!”
“히익!”
현주의 귀신 같은 기세에 눌린 직원들은 얼른 플래카드를 떼서 가지고 나갔다.
어쩌다 유린이 코드 제로와 연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세상은 한차례 들썩인 바 있었다.
당연히 반발도 있었다.
감히 코드 제로와 사귀다니…라든지, 한국의 영웅이자 위인인 사람과 사귄다는 이유로 욕설을 써 갈긴다든지…….
하지만 그 모든 건 강천의 한마디에 의해 잠재워졌다.
[코드 원 공식 경고, “그녀가 코드 제로와 잘 어울린다는 것, 곁에서 지켜봐왔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아… 명분 없는 혐오와 근거 없는 비방은 직접 단죄할 것.”]
그러나 사실 굳이 강천이 나서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런 악플은 어디까지나 소수일 뿐, 이미 베타조장이 된 이후 이름을 날리며 대단한 미모로 팬클럽까지 가지고 있었던 유린이었으니까.
코드 제로와 유린에 관한 팬픽 소설이나 만화 등이 활개를 치며 둘보다 둘 사이에 더 진심이 된 팬들 수도 상당할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팬들이,
“하아… 드디어 우리의 꿈이 이루어졌어!”
“아직 완전한 건 아니지. 코드 제로 님이 얼른 깨어나셔야 할 텐데…….”
협회 안에까지 잔뜩 생겨났다는 것이다.
왁자지껄.
각자 어디선가 만들어온 플래카드와 머리띠를 가지고 대강당 안으로 들어오던 협회 직원들이,
멈칫.
현주와 두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어붙었다.
“너희들…….”
“아, 아하하… 아하하하…….”
강당 어딘가에 숨겨두었다가 유린이 올라올 때 기습적으로 사용하려 했던 그들의 계획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시말서 쓰고 싶어!?”
“죄송합니다아아아!!!”
“너희들! 일이나 똑바로 하란 말이야아아아!”
전투부서 승급식 준비.
현주는 오전 내내 제로 세븐 커플의 극성팬들을 쫓아내느라 진을 빼야 했다.
* * *
마침내 대망의 승급식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꽉 찬 대강당.
기존의 대강당이 작아졌다고 판단해 3년 전 2배로 증축했음에도 그 넓은 대강당이 만석을 이루고 있었다.
그만큼 이번 승급식에는 승급하는 협회 직원들도 많았고,
“와아아아아!”
그들을 축하하러 온 지인들도 많았던 것이다.
예비조에서 델타조로 올라가게 된 이들을 시작으로 밑에서부터 한 명, 한 명 천천히 진행되는 승급식.
그 모든 이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협회장, 동석은 단상 위에서 벌써 거의 한 시간째 내려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승급식이 진행되었을까.
알파조로 승급한 마지막 직원에게 임명장을 부여한 동석은 다음 임명장을 집어 들고는 살짝 눈빛을 빛냈다.
그에 맞춰 현주가 이름을 호명했다.
“알파조, 지동혁.”
“와아아아아!”
“지동혁! 지동혁!”
직원들의 환호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혁.
얼굴이 살짝 빨개진 그가 직원들을 향해 살짝 손을 흔들어주었다.
“꺄아아아아아!”
협회 내에서도 인기가 꽤 많은지 동혁이 손을 흔들 때마다 여직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그런 너무나도 커다란 리액션에,
긁적 ―
동혁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
이번에 감마조로 승급하며 앞서 이미 임명장을 받았던 다래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동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래 누나! 내가 복수해줘?”
뭔가 슈퍼스타가 된 듯한 동혁의 인기를 질투한 대한이 실실거리며 다래에게 속삭였다.
“복수……?”
“응. 저거 봐. 여직원들이 소리 질러주니까 기분 좋아서 얼굴 빨개진 거. 괘씸하지 않아?”
“…….”
다래는 자리에 앉아 단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동혁을 바라보았다.
두 볼에 홍조를 띠고 있는 것이,
울컥 ―
왠지 모르게 열받았다.
“복수해줘.”
“오케이!”
다래의 허락을 받은 대한이 킥킥거리며 입가에 악동 같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동혁이 단상 위로 거의 다 올라갔을 때쯤,
“스파이더놈! 스파이더놈!”
대한이 갑자기 동혁의 별칭 중 하나를 외치기 시작했다.
영화 속 스파이더맨과 베놈을 합친 스파이더놈.
독과 거미줄을 사용하는 동혁의 온라인상의 별명 중 하나였다.
문제는,
화악 ― !
동혁이 이 별명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야 어감 자체가 되게 별로였으니까.
“와하하하하하!”
시뻘게진 동혁의 얼굴을 본 승급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석과 민아가 쿡쿡댔고,
들썩들썩.
다래도 만족했는지 숨죽여 웃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너 이따 두고 보자……!)
(에헤헤헤 스.파.이.더.노옴~)
단상 위에 올라와 뒤를 돈 채 깐죽대는 대한에게 소리 없는 경고를 날리는 동혁.
“크, 크흠…….”
졸지에 동혁의 등을 보게 된 동석이 헛기침을 했다.
“헉.”
눈치를 챈 동혁이 재빨리 다시 뒤를 돌았다.
“죄, 죄송합니다.”
“나중에 저 친구 데리고 협회장실로 오게. 한마디 해야겠어.”
“바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협회장 찬스를 얻게 된 동혁.
대한은 자신의 미래도 모른 채 자신이 만들어낸 분위기에 취해 낄낄대고 있었다.
동석은 잠시 짜증을 삭힌 뒤 차분해진 목소리로 임명장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임명장, 지동혁. 위 헌터를 헌터 협회 전투부서 소속 알파조의 장으로 임명합니다. 2102년 4월 1일, 헌터 협회장 한동석.”
임명장을 다 읽은 동석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동혁과 두 눈을 맞췄다.
씨익 ―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동석이 임명장을 받아 들면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스파이더놈 멋있다!”
“스파이더놈! 스파이더놈!”
저놈의 스파이더놈만 안 나왔으면 참 좋으련만.
동혁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스파이더놈을 연호하고 있는 대한을 웃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넌 이따 죽었어, 진짜.’
그렇게 동혁까지 승급식이 끝나고,
“다음은…….”
대망의 마지막 승급자가 나올 차례가 되었다.
다음 승급자의 이름을 본 현주는 살짝 울컥하는 마음을 추스르며 천천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전(前) 알파조장, 한유린.”
* * *
그녀의 이름이 불렸다.
또각 ― 또각 ― 또각 ―
대강당이 한순간에 침묵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침묵 한가운데를,
또각 ― 또각 ― 또각 ―
느리지만 일정한 구둣발 소리가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사락 ―
검은 융단과도 같은 그녀의 머릿결이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검은 햇살처럼 찰랑거렸다.
한유린.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헌터 외모 투표에서 몇 년째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헌터.
코드 제로와 코드 원에 이어 가장 짧은 시간 만에 코스모스에 이른 헌터이자, 두 번째 여성 코스모스가 될 능력 있는 인재.
3년간의 병간호로 폐인이 되다시피 했지만 불과 2년 만에 원래의 기량을 회복한 것도 모자라 B급에서 S급까지 올라선 불굴의 여인.
또각 ― 또각 ― 또각 ―
헌터 협회장과 부협회장의 딸이자 코드 제로의 연인이라는 이유로 그 위명에 덮여 있던 유린은 어느새 그런 외부적인 수식어가 없어도 될 정도로 대단한 헌터가 되어 있었다.
이 모든 건 지난 2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피를 토할 정도로 노력한 결과였다.
그리고 오늘은 그 노력의 보상을 정식으로 수여받는 날.
그러나 단상을 향해 걸어가는 유린의 표정에서는 기쁨의 기색이라곤 요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각 ― 또각 ― 또각 ―
꿀꺽 ―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대강당에 자리한 이들의 오금을 울렸다.
그녀가 지금 어떤 기분일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리고 누구를 떠올리고 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헌터로 복귀한 뒤 2년간 인간적인 생기 하나 없이 오로지 강해지겠다는 일념하에 기계처럼 수련과 레이드만을 반복해온 그녀였다.
‘유린아…….’
그런 유린을 바라보며 대강당에 앉아 있던 인하가 눈물을 글썽였고,
“…….”
기성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꽈악 ―
강천도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가슴이 아픈지 가면 뒤에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또각 ― 또각 ― 또각 ―
그녀가 단상 위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척 ―
어느덧 동석의 앞에 선 유린.
울컥 ―
생기가 사라진 유린을 정면으로 마주한 동석은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누르며 천천히 임명장을 읽기 시작했다.
“임명장, 한유린. 위 헌터를 헌터 협회 전투부서 소속 대헌터진압특수부대, 코스모스의 일원으로 임명합니다. 또한 위 헌터에게는 코드 네임, ‘코드 세븐’을 부여합니다. 2102년 4월 1일, 헌터 협회장 한동석.”
스윽 ―
동석에게서 임명장과 숫자 7이 적힌 가면을 받아 드는 유린.
“축하한다.”
동석의 축하 인사에도,
꾸벅 ―
유린은 피폐한 표정으로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울컥 ―
그런 유린의 모습을 보며 현주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도 태운의 옆에서 병간호를 할 때는 가끔이라도 웃던 딸이었다.
자꾸 여위어가는 게 겁이 나 다시 헌터로서 일이라도 시켜볼 요량으로 복귀시켰는데,
“…….”
저렇게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시체 같은 인간이 되어버릴 줄 누가 알았으랴.
스윽 ―
동석에게 인사를 마친 유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대강당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꿀꺽 ―
사람들은 유린의 눈치를 보느라 그 어떤 환호나 박수도 치지 못하고 마른침만 삼켜대고 있었다.
“…….”
그러한 침묵 속에서도 유린이 아무런 감흥 없이 고개를 숙이고 단상을 내려가려던 그 순간,
덜컹 ―
끼익…….
갑자기 대강당 정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지금 뭐 하는……!”
대강당 문을 지키고 있던 헌터가 그를 제지하려 했으나,
스윽 ―
“어어……?”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절로 밀려나버렸다.
뚜벅 ― 뚜벅 ―
승급식 도중에 난입해놓고는 태연자약하게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한 남자.
남자의 손에는 커다란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누구지?”
“몰라. 처음 보는데.”
대강당에 앉아 있는 이들은 갑자기 난입한 남자를 보며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중 강천을 포함한 몇몇은,
“……!”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스윽 ―
남자가 단상 위를 바라보았다.
“어… 어……!”
동석과 현주가 턱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단상 한가운데에 서 있던 유린.
시체를 연상시킬 정도로 무뚝뚝하고 차갑던 그녀의 얼굴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오, 오, 오…빠……?”
감정이 메말라 있던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목소리에서도 물기가 잔뜩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에,
싱긋 ―
남자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꽃다발을 내밀었다.
“승급 축하해.”
와락 ― !
번개처럼 달려든 그녀를 안아 들며,
흔들흔들.
남자는 대강당 안 사람들을 향해 하얀 가면을 흔들어 보였다.
하얀색 가면 중앙에 그려진 보라색 숫자.
그건 모두가 그동안 오매불망 기다려왔던,
“우,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숫자 ‘제로’였다.
<본편 완>
<지금까지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을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 글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