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외전 ― 호랑이들이 친구 먹음 (3)
“이건 미쳤어… 이건 미친 짓이야…….”
태성의 입에서 주문 같은 중얼거림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 사람이 지금 있는 곳.
바로 측정 불능급 던전 안이었으니까.
호백의 고집(?)에 의해 단둘이서 던전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
서든 브레이크나 갑작스런 상황에 대비해 필요한 물품들을 언제나 어느 정도 아공간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는 헌터들이었기에, 두 사람은 딱히 이렇다 할 준비 없이 던전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거참, 천하의 코스모스가 말이 왜 이리 많아?”
빠르게 낚시하던 것들을 정리하고 매운탕까지 처리한 호백이 입맛을 다시며 쓴소리를 했다.
빠득 ―
그러자 태성이 이를 갈며 호백을 쏘아붙였다.
“야, 이 미친놈아… 우리 둘이서 여기를 토벌하자고? 장난해?”
혹시나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끌까 싶어 태성이 작은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그니까 토벌이 힘들면 정찰만 하고 나가자고. 어차피 정찰은 해야 할 거 아니야?”
호백이 태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태성은 그런 호백의 태평한 표정이 더 열받는 듯 가슴을 치며 말했다.
“야, 이 새끼야… 측정 불능급 던전 조사는 코드 제로랑 코드 원 이 쌍룡만 가능한 거라고! S급으로 확정되어야 그때 다른 S급들이 토벌하는 거란 말이야!”
“코드 원도 되는데 코드 투인 너는 왜 안 돼?”
“뭐?”
“겨우 코드 네임 숫자 하나 차이잖아? 너는 왜 안 돼?”
“그게 무슨 궤변……!”
“옛말에 용호상박이라 했는데 쪽팔리게 용들한테 뒤처지고 있어야겠냐?”
부들부들……!
태성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큭큭큭. 이제 알았냐? 둔한 뚱보 고양이 놈아.”
“이……!”
호백의 계속된 도발에 태성의 이성이 날아가려는 그때,
“크어어어어어엉 ― !”
저 먼 곳 어딘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들었냐?”
“그래. 이 소리 꼭…….”
태성과 호백의 머릿속에 비슷한 형상이 스쳐 지나갔다.
“두룡미사 느낌인데?”
거대한 파충류가 울부짖는 듯한 포효 소리.
그 울음소리에 두 사람의 근육이 딱딱하게 긴장되었다.
“…일단 가보자고.”
“…그래.”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돌산.
그 거대한 바위산맥을 두 마리의 호랑이가 조심스레 탐험하기 시작했다.
* * *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두 사람이 던전 안으로 들어온 지도 어언 2시간이 흘렀다.
“…아니, 왜 몬스터가 하나도 안 보여?”
“…이거 좀 불안한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두 사람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거 단일형 던전은 아니겠지?’
태성은 커다란 불안함에 사로잡혔다.
단일형 던전.
일반 몬스터 없이 오로지 보스 단 한 개체만 존재하는 형태의 던전으로, 단일형 던전 속의 그 개체는 같은 수준의 던전 보스보다 훨씬 강하다는 특징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보통 던전의 마력 파장이 모든 몬스터가 내뿜는 마력 파장 수치로 어림되어 측정되는 것인데, 단일형 던전의 개체는 혼자서 그 비슷한 파장을 내는 것이니까.
아까 전 포효를 내질렀던 몬스터가 이 던전의 유일한 몬스터라면, 그 강함은 최소 S급 최상위 던전의 보스에 육박할 것이었다.
“어이, 이태성.”
태성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호백의 표정은 꽤나 불안해 보였다.
“이거… 설마 단일형 던전은 아니겠지?”
“알게 뭐야. 들어오자고 한 건 너라고.”
태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호백을 노려보았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나가서 지원을…….”
점점 더 심해지는 불안감에 태성이 뒤를 돌아 나가려는 그 순간,
쿠구구구구구 ― !
바위산맥 전체가 크게 흔들리며 무언가 하늘 높이 솟구쳐올랐다.
“크어어어어어엉 ― !”
기다란 몸통을 가진 채 거대한 기둥처럼 솟아오른 몬스터.
“…용?”
그 몬스터를 바라본 두 사람의 눈동자가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 * *
거대한 몸통과 기다란 몸뚱이 그리고 바위산맥의 바위들과 닮은 회갈색 비늘까지.
산맥 속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몬스터는 전설 속에 나오는 동양의 용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
태성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용 형태의 몬스터라…….”
아까 전, 용 이야기를 좀 했다고 정말로 용 형태의 몬스터가 나타나다니.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아, 이 속담은 좀 안 맞나.’
어쨌든 굉장히 절묘한 우연의 일치로 나타난 적의 등장에 태성은 곧바로 전투 자세를 취했다.
‘보면 볼수록 김천용 씨가 변신했을 때랑 많이 닮았는걸……?’
태성은 눈앞의 거대한 바위용의 모습을 바라보며 천용이 완전변신했을 때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크르르르르……!”
입가에 기다란 수염이 흩날리고 두 눈도 거대한 용안을 하고 있는 것이 영락없는 김천용의 바위 속성 버전이었다.
“크흐흐흐흐……!”
그때, 돌연 옆에 있던 호백이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너 왜 그래?”
호백의 반응에 놀란 태성이 재빨리 그의 표정을 확인했다.
“헉!”
온통 투지와 열등감을 물든 그의 얼굴.
눈앞의 바위용을 보며 본인의 평생 숙적(?)인 천용을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야, 이태성.”
“…어?”
“이건 기회다.”
“…뭐?”
번뜩!
호백의 두 눈이 맹수의 그것으로 바뀌며 살기를 띠기 시작했다.
“호랑이가 용보다 더 강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기회!”
우드드득 ― 뚜둑 ― !
호백의 몸이 순식간에 작은 트럭만 한 백호로 변모했다.
“크허어어어엉 ― !”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는 바위용을 향해 커다란 포효를 터뜨리는 호백.
도망쳐도 모자랄 판에 시비를 걸고 있다니.
태성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야, 야! 이 미친놈아! 대체 뭐 하는 거야! 여기 단일형 던전 확정이야! 우리 둘이 못 이긴다고!”
태성이 막 앞으로 달려들려는 호백의 꼬리를 잡아끌었다.
그러자,
“이태성!”
희번뜩!
호백이 살기와 투기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꼬리를 끄는 태성을 돌아보았다.
흠칫!
단순한 만용이 아니라는 듯한 호백의 눈빛에 태성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너는 이대로 괜찮냐?”
“…뭐?”
“이대로 쌍룡한테 맨날 비교당하고 짓눌려도 괜찮냐 이 말이다!”
갑작스런 호백의 진지한 호통에,
“……!”
태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코스모스.
한국 헌터 협회의 최강 전투부서이며, 세계적 힘의 균형이 한국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
사람들은 코스모스에 속한 7명의 특수요원을 모두 우러러보며 선망했다.
코스모스에 올라간 순서대로 부여된 코스모스의 코드 네임 숫자.
그 숫자는 사실상 강함의 순위이기도 했다.
그 숫자나 순위로 따지면 코드 원인 강천과 코드 투인 태성의 사이에는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없는 것이 맞는 것 같지만,
―코드 투랑 코드 쓰리가 편 먹고, 코드 원이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에이, 코드 원 혼자서 나머지 다 이기지. 코드 제로는 논외로 한다고 치고.
세간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도 엄연한 구분점이 있었던 것이다.
―코스모스는 세 부류로 나뉜다. 코드 제로, 코드 원. 그리고 나머지.
말이 좋아 세 부류지 사실상 묻어가는 깍두기 취급을 받은 것이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을 뿐,
“하하하…….”
태성은 마음 한편으로는 언제나 그 두 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열등감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괜찮겠냐……?”
태성의 달라진 눈빛을 본 호백.
씨익 ―
그의 입가에 광기 어린 미소가 피어올랐다.
“저거 잡으면 세계급 각 나온다. 대충 다 느껴지고 있지?”
“그래……!”
우드득 ― 뚜두둑 ― !
태성의 전신이 호백과 비슷한 크기의 주홍빛 대호로 변했다.
“크르르릉!”
산천초목을 뒤흔드는 두 대호의 울음소리가 바위산맥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래봤자 바위용의 크기에 비하면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보다 작은 수준.
“크르르르르…….”
거대한 바위용은 그런 두 호랑이를 가소롭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씨X… 저거 지금 우리 얕보고 있는 거네?”
“감히 크기만 한 뱀 따위가!”
커허어어엉!
호랑이 두 마리가 하얀색과 주홍색 선 두 줄기를 그리며 바위용에게 쇄도했다.
용호상박.
용과 호랑이가 싸우듯 두 강자가 싸운다는 말이 참으로 잘 어울릴 것 같은 상황이,
콰르르르릉! 콰광!
여수 밤바다에 갑자기 생성된 어느 던전 안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 * *
바위산맥은 쪼개지고 대지는 갈라져 있었다.
완전히 폐허가 된 던전 안.
어찌나 그 파괴의 정도가 심하던지, 애초에 풀과 나무 따위는 없었음에도 뒤늦게 누군가 와서 본다면 푸르던 산이 커다란 싸움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것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허억… 허억……!”
“하아… 하아……!”
두 남자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허억… 허억… 씨X 더럽게 세네 진짜……!”
“하아… 하아… 봐라 인마! 하면 되잖… 쿨럭!”
호백이 말을 잇다 바닥에 피를 토해냈다.
그런 호백의 행동에 태성은 웃기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허억… 크크큭… 야! 괴로우면 자가회복이라도 하지 그래? 응? 허억……!”
숨이 차는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태성을 보며 호백도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하아… 그러는 너나 자가회복 해라. 숨차서 말도 제대로 하아… 못 하는 놈이…….”
크크크크큭……!
두 남자의 웃음소리가 폐허가 된 던전 안에 잔잔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타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몸을 뉜 자리.
그곳이 바로 거대한 바위용의 사체 위였으니까.
“…마력 수치 몇 찍었냐?”
“5만하고 5.”
“제기랄! 나는 5만하고 3인데…….”
세계급이자 4차 각성의 기준점이 되는 마력 수치 50,000.
이미 던전에 들어서기 전부터 S급 최상위 헌터였던 두 사람이었다.
사투 끝에 바위용을 잡아낸 두 사람은 전투 중에 자가회복으로 수백의 마력 수치를 잃었지만, 그 이상의 마력 수치를 획득함으로써 간신히 세계급의 문턱에 발을 걸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허억… 허억… 아이고, 죽겠다…….”
“이 상태로 이렇게 오래 있는 것도… 참 오랜만… 쿨럭!”
두 사람이 차마 자가회복을 하지 못하고 드러누워 있는 이유였다.
“끄응……!”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가부좌 자세를 취했다.
이 던전을 빠져나가려면 몸을 회복해야 했으니까.
마지막에 마력 수치를 아낀다고 자가회복을 사용하지 않았더니 몸 여기저기가 죄다 골절되고 피부가 찢어져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마력호흡으로 마력 여유분을 조금 더 만들고 자가회복해야 할 것 같았다.
마력호흡에 들어가기 전, 태성이 호백에게 말했다.
“야. 정호백.”
“…왜.”
호백이 통증으로 인해 괴로운 듯 표정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여기서 나가면 낚시 한번 더 하자.”
“……!”
호백이 살짝 놀란 눈으로 태성을 쳐다보았다.
그가 먼저 낚시하자고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태성은 그런 호백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괜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
“뭘 꼬나봐. 이 새끼야. 네가 내 고기 잡아버렸잖아.”
마주치기만 으르렁거리던 원수 사이에서 어느덧 찐친 바이브를 풍기고 있는 두 사람.
피식 ―
호백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고 눈을 감았다.
“지가 처자놓고는.”
“푸핫!”
처얼썩 ―
고요한 여수 밤바다.
그 바다 위에 생긴 작은 게이트.
그 안에서 두 명의 세계급 헌터가 동시에 탄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읍… 후우…….”
자존심 센 두 호랑이가 마침내 친구가 된 순간이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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