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외전 ― 오작교보단 청룡교임 (2)
열흘이 지났다.
“수고하셨습니다!”
호성과 청룡 2조는 삼척에 나타났던 A급 던전의 토벌을 마치고 채굴꾼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부우웅 ―
2주라는 커트라인보다 무려 4일이나 일을 일찍 끝낸 호성과 청룡 2조.
“…….”
봉고차 조수석에 앉은 호성은 심란한 표정으로 그저 차 시트에 몸을 맡긴 채 말없이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우웅 ―
3대의 봉고차에 나뉘어 탄 청룡 2조.
3대의 봉고차 중 맨 앞의 차에 탄 호성은 사이드미러를 통해 뒤따라오는 다른 두 대의 봉고차를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차창 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쿠우우…….”
호성과 함께 탄 2조원들 중 몇몇이 뒷자리에서 잠들었는지 얕은 숨소리를 냈다.
틱 티디딕 ―
몇몇 2조원은 깬 상태로 핸드폰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흘깃 ―
운전대를 잡은 2조원이 운전석에서 곁눈질로 살짝 호성의 눈치를 살폈다.
이번 토벌 내내 묘하게 어두워 보이는 호성의 기분이 신경 쓰였던 탓이었다.
“저… 부길드장님?”
“…왜.”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호성의 대답.
하지만 호성의 목소리를 들은 2조원들은 모두 똑같은 생각을 했다.
‘무슨 일 있네.’
‘있네, 있어.’
‘집안 문제인가……?’
다행히 호성이 혜지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은 천용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
그 사실을 모르는 2조원들은 그저 돌아가는 길 내내 호성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부우웅 ―
차가 얼마나 도로를 달렸을까.
봉고차 3대가 청룡길드에 거의 다 도달했을 때쯤,
“헐.”
뒷자석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던 2조원 중 하나가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왜? 뭐 신기한 거라도 봤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2조원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감탄사를 내뱉은 2조원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혜지 언니, 선보러 간다는데?”
“뭐어?!”
이혜지가 선을 본다는 소식에 깨어 있던 2조원들이 단체로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
그리고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던 호성의 두 눈도 순간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심하게 떨렸다.
“서, 선이라니? 아니, 소개팅도 아니고 선이라고? 이 실장님이?”
다른 2조원의 말에 소식을 전한 2조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긴… 혜지 언니도 이제 서른 중반이잖아. 단순히 소개팅할 나이는 아니시긴 하지…….”
“와, 벌써 이 실장님이 서른 중반…….”
“그러고 보니 시간 참 빠르네…….”
다른 2조원들이 꽤나 충격을 받은 듯 말끝을 흐렸다.
함께한 세월이 대부분 10년이 넘어가고 있는 사이.
새삼 서로가 나이를 먹었다는 걸 실감하고 있는 듯했다.
모두가 그렇게 서로의 세월에 충격을 받은 가운데, 호성은 홀로 다른 포인트에 꽂혀 있었다.
“…그 상대는 누구래?”
호성의 물음에 2조원은 아무렇지 않게 말해주었다.
“상대방은 아직 모른대요. 블라인드 선이라고 하셨다는데?”
“…하셨다고?”
2조원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중매해준 사람이 누군데?”
“길드장님이 해주셨다는데요?”
“헐!”
“대박!”
천용이 만들어준 선 자리라는 사실에 모두가 놀란 듯이 입을 벌렸다.
“와… 길드장님… 결혼하시더니 정말 행복하신가 보네.”
“하긴… 맨날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추천하시잖아.”
“아! 나도 결혼해야 하는데… 나도 길드장님한테 부탁할까?”
“길드장님이 소개해주는 사람이면 믿음이 가지?”
“음음! 그렇지.”
다들 평소 천용에 대한 신뢰가 대단한 듯 결혼 생각이 있는 조원들은 자신도 천용에게 부탁해볼까 하며 우스갯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2조원들의 사이에서,
부르르르 ―
호성은 아무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 * *
척 ― 척 ― 척 ― 척 ―
콰앙!
청룡 길드장실의 문이 거칠게 열어젖혀졌다.
“…뭐야?”
천용의 두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감히 길드장실, 그것도 청룡 길드의 길드장실문을 이런 식으로 열어젖히다니.
코드 제로 외에는 그 누구도 천용의 사무실을 그런 식으로 열어젖힐 수 없었다.
하지만,
“형!”
지금 이 순간 그런 행동이 가능한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
씩 ― 씩 ― 씩 ―
바로 청룡 길드의 부길드장, 민호성이었다.
“…레이드 다녀왔으면 보고하러 와야지. 지금 나랑 싸우러 올라왔어?”
천용은 호성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화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래. 싸우러 올라왔다.”
호성은 정말 싸우러 올라온 듯했다.
“어떻게 형이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콰앙!
어지간히도 화가 난 듯 호성은 천용의 책상 앞까지 다가가서 그의 책상을 거세게 내리쳤다.
우직…….
마력을 담지 않았다지만 무려 S급 헌터인 호성의 손바닥이었다.
원목으로 제작된 딱딱한 천용의 책상이 단숨에 금이 쫙쫙 갈라졌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천용은 호성의 행동에 슬슬 분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세계급 헌터인 그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나며 길드장실 전체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그극……!
호성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어떻게… 어떻게 이 실장한테 형이 선을 주선하냐고!”
눈이 돌아간 호성이 천용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
이런 행동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 천용의 두 눈이 살짝 커졌으나,
“…….”
곧바로 다시 눈빛을 가라앉히며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는 호성의 두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열받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호성이 울컥하여 천용의 멱살을 더욱 거세게 틀어쥐려는 그때,
탁 ―
천용의 손이 호성의 손을 단번에 쳐냈다.
“내가 말하지 않았냐? 그렇게 주위에서만 어슬렁거리다간 다른 놈이 채간다고.”
“다른 놈이 채가는 거랑, 형이 직접 자리를 만드는 건 다른 거지!”
호성의 울분 섞인 외침을 들으면서도 천용은 짧게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는데.”
“…뭐?”
“막말로, 이 실장이 네 여자친구라도 돼?”
“……!”
천용의 반박에 호성의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그야 그와 혜지는 단순한 직장 동료일 뿐 아무 관계도 아니었으니까.
“네가 짝사랑하고 말고는 네 자유고, 내가 이 실장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든 말든 하는 것은 내 자유야. 그리고 그 자리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이 실장의 자유지. 근데 얻다 대고 와서 행패야?”
상황이 단숨에 역전되었다.
콰악 ―
이번에는 천용의 손이 호성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당장 꺼져. 이 한심한 새끼야. 숨어서 바라보기만 할 줄 아는 주제에 어디서 집착질이야?”
파악 ―
멱살을 쥐었던 천용의 손이 호성의 몸을 거칠게 밀쳤다.
“보고서는 2조장에게 받을 거다. 가.”
휘휘 ―
천용의 매몰찬 손이 호성을 마치 참새 쫓듯이 쫓아버렸다.
쿵 ―
차갑게 닫혀버리는 길드장실의 문.
“…….”
그 앞에서 호성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 * *
선 당일.
혜지는 오랜만에 제대로 꾸미고 길을 나섰다.
밝은색 원피스에 옅은 갈색의 컬러렌즈까지.
그리고 평소 묶기만 하던 머리는 길게 늘어뜨려 끝에 살짝 웨이브를 주었고, 얼굴에는 평소 숨겨두었던 그녀의 화장 기술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한 상태였다.
항상 검은 정장에 안경을 걸치고 있던 그녀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
가까이서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일한 동료들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확 바뀐 그녀의 이미지였다.
“선이라…….”
선 자리로 나서는 길.
하지만 정작 그녀의 표정은 작정하고 힘을 주어 꾸민 뒤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그다지 기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야 그녀가 원해서 보는 선이 아니었으니까.
이번 선 자리는 그녀의 부모님이 천용에게 부탁해서 강제로 마련된 자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혜지야, 엄마가 부탁해놨다.
―응? 뭐를? 누구한테?
―맞선 상대, 네 길드장님한테.
어머니에게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어, 엄마? 뭐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얘는… 엄마가 맨날 말했잖아. 네가 안 찾아보면 엄마가 찾아볼 거라고.
―엄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걸 왜 길드장님한테……!
―엄마가 아는 사람 중 주변에 제일 괜찮은 남자가 천용 씨인 걸 어떡하니? 근데 천용 씨는 장가를 갔으니 적어도 그 사람이 괜찮게 생각하는 남자를 소개받아야지. 안 그래? 오호호호!
―아! 엄마아아아!
―시끄러워 이 계집애야. 잔말 말고 나가.
그렇게 어영부영 성사된 선 자리.
심지어 천용은 맞선 상대는 비밀이라며 상대에 대한 정보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이 실장님. 제가 봐온 사람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저만 믿으시라니까요.
혜지는 사람 속도 모른 채 태평하게 웃고 있는 천용이, 청룡 길드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원망스러웠다.
게다가 그래도 맞선 자리인데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알려주지 않겠다는 천용에게 강짜를 부릴 순 없어 포기한 채 이렇게 선 자리에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래. 그래도 길드장님이 추천하는 사람인데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냥 식사만 하고 나오면 그뿐.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한 혜지는 천용이 미리 예약해놓았다는 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깔끔하게 차려입은 웨이터가 혜지를 맞이했다.
“예약하신 분 성함을 말씀해주시겠어요?”
“김천용 씨요.”
청룡 길드장의 이름이 혜지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웨이터는 흥미로운 듯 눈에 살짝 이채를 띠며 그녀를 안내했다.
웨이터가 안내한 자리는 레스토랑 안에서도 따로 마련된 별실.
우아하면서도 고즈넉하게 꾸며진 인테리어는 그 장소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럼 상대 남자분께서 오시면 여기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네.”
아직 남자 측은 오지 않았는지 혜지는 비어 있는 별실 안으로 들어갔다.
혜지가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하긴 했으니까.
스윽 ―
혜지는 마련된 자리 한쪽에 조심스레 앉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와아…….”
이렇게나 화려하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은 처음인 혜지의 두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역시 길드장님은 돈이 많으시구나.’
그녀의 재산도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기본 자리 예약비만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레스토랑.
아무리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돈을 많이 버는 혜지여도 그 정도의 금액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액수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약속 시간까지 10분 정도 남았을 즈음,
똑똑 ―
별실 문밖에서 웨이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남자분 오셨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네!”
아직까지도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고 있던 혜지가 살짝 놀라 대답했다.
스륵 ―
문이 부드럽게 열리면서,
뚜벅 ―
검은 구두를 신고 캐주얼한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별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친 순간,
“…어?”
“…어?”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스륵 ―
두 사람의 분위기를 살피며 웨이터가 부드럽게 문을 닫고 나간 뒤.
몇 초간의 정적 이후, 두 사람의 입이 동시에 떨어졌다.
“혜지 씨?”
“부길드장님?”
호성과 혜지의 눈빛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협회 직원이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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