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9화 (9/1,132)

< -- 9 회: Part 1. 디모르포세카, 음지에 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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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에서 돌아온 페로는 방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가끔 술 더 가져오라고 페로가 질러대는 고함을 빼고는 북측 사랑채는 침묵 속에 빠져들어 있었다. 가디언들도 그의 방문 앞에 읍하고 선 채 서로의 눈치만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흥분한 페로의 고함소리가 사랑방 안에서 또다시 터져 나왔다.

"이 싸가지 없는 년! 내가 죽으라고 명령했는데! 감히 살아있다니! 씨발!"

페로는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바닥을 서성거리며 술을 들이켰다. 멀쩡한 모습으로 눈앞에 다시 나타난 카렐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그를 버린 스스로에 대한 처절한 원망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비통함이 그의 가슴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그 망할 것......잡히면 사지를 갈갈이 찢어죽일테다! 썅!"

페로는 마지막 술병을 거칠게 창밖으로 내던졌다. 형편없는 몰골로 바닥에 나동그라진 페로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아무 의미 없는 큰 고함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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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간의 엄숙하기까지 한 시간을 깨 놓은 것은 집사 로카였다.

아들과 단 둘이 함께 한 점심식사 후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던 페로의 아버지 슈막 자이센에게 로카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이제 곧 성징이 나타날 테니 교육을 시켜야 될 듯도 합니다."

"무슨 교육?"

"뭐, 다 아시는......오늘이 카렐의 10번째 생일입니다."

"그 애가? 벌써 그렇게 되었나?"

슈막이 약간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로카가 옆에 말없이 앉아있는 페로를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카렐은 페로 도련님과 동갑입니다."

아들 페로는 아무 말 없이 땅콩차를 마시며 그들의 대화에는 짐짓 관심이 없는 척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가르쳐도 돼."

슈막이 싱긋 웃음을 지었다. 주인의 황당한 생각에 로카가 조금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그 앤 이제 겨우......"

"10살에 그렇게 예쁜 아이는 드물지. 후훗......예쁜 계집애 데리고 희롱하면서 노는 것도 나름대로 재밌거든."

슈막 자이센이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 보이자 로카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시다면,"

"오늘밤에 내 방에 들여보내. 딴 녀석이 먹기 전에 내가 먹어야하지 않겠어? 안채에 방 하나 깨끗이 치워두는 거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로카가 인사를 꾸벅 하고 밖으로 사라졌다. 소년 페로는 아버지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밖으로 재빨리 빠져나왔다. 아직 나이 어린 페로였지만 오늘밤에 아버지가 친구 카렐에게 무언가 나쁜 짓을 하려 든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다 그 여자들 때문일 거야,"

'그 여자들'에게 얼토당토않은 죄까지 멋대로 모두 뒤집어씌운 페로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항상 자신을 노리는 못된 '여자들'과 무관심한 아버지에게 어린 페로가 이제 더 이상 미련을 두고있을 필요는 없었다. 페로는

자기 방으로 달려가 가방을 꾸리기 시작했다. 옷가지에 돈, 선물로 받은 보석들이며 있는 대로 모두 집어넣고는 급히 방에서 달려나왔다.

"카렐 봤어?"

페로가 견습가디언 숙소로 달려가 경비에게 물었다.

"아까 점심 먹고 나가더니 아직 안 들어왔는데요?"

"에이, 씨,"

짐을 둘러멘 페로는 집을 빠져나와 뒷동산으로 뛰어올랐다. 카렐이 가서 놀 곳은 어차피 페로 관 주변에서 가장 많은 꽃을 볼 수 있는 그곳밖에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양지바른 떡갈나무 언덕 꼭대기 위에 꽃 속에 파묻혀 혼자 놀고있는 조그만 카렐이 보였다. 카렐은 등에 큰짐을 둘러메고 언덕을 달려 올라오는 페로에게 이를 드러내고 웃음을 지었다.

"이것 봐라, 디모르포세카라는 꽃이거든. 저어기 뜨거운 곳에서만 나는 건데 여기 피었다. 희한하지? 볕도 아니고 그늘인데 말야."

카렐이 나무둥치에 핀 희고 작은 꽃 한 송이를 가리키며 페로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카렐은 행여나 그 여린 꽃이 밟히기라도 할까 조심조심하며 거친 잡초들로 꽃을 잘 감추었다.

하지만 무기 이야기라면 모를까 낯간지러운 꽃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페로에게 카렐의 이런 유별난 행동은 꽃이라면 환장하는 저 별난 계집아이의 유별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참참, 이것 봐."

카렐은 그 꽃을 그대로 둔 채 주머니에서 긴 풀잎을 꺼내 입술에 대고 무언가 삑삑 하는 소리를 내 보였다. 딴에는 풀피리라도 불어보려 하는 모양이었지만 듣기 싫은 바람 빠지는 소리 정도가 고작이었다. 카렐도 자신의 형편없는 솜씨를 잘 아는지 눈앞에서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서 있던 페로에게 머쓱한 웃음을 또 한번 지었다.

"이거 지난번에 부엌에서 빵 굽는 노예아저씨 풀 갖고 부는 거 봤어. 되게 이쁘더라. 나도 연습해서 그 아저씨처럼 나중에 멋있게 불어볼께."

웃는 카렐의 모습을 잠시 넋놓고 바라보던 페로가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카렐의 하얀 손을 거칠게 홱 붙들었다. 카렐이 피리를 불던 길다란 잎새가 펄럭거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가자. 빨리."

"어딜?"

카렐이 해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페로에게 되물었다.

페로가 최대한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여기 있으면 우리아빠가 잡아먹을 거야."

"거짓말."

"참말이야."

"난 사람인데?"

"아빠가 오늘밤에 너 잡아먹는다고 했어. 우리아빠 너같이 예쁜 여자아이들 가끔 잡아먹는단 말야. 아빠한테 잡아먹힌 여자아이들 다 없어졌어."

"너 거짓말하는 거지?"

카렐의 표정이 당장 울 것같이 일그러들었다.

"참말이라니까. 정말 없어졌어. 빨리 날 따라와, 도망가자, 응?"

"싫어, 무서워,"

"너 여기 있음 죽는다니까."

"도망가믄 어른들도 없이 어떻게 살어?"

"나하고 살면 돼."

페로가 들고 온 가방을 가리키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카렐은 그런 철없는 페로를 나무라듯 쏘아붙였다.

"너도 어린애잖아."

"그럼 여기서 죽을래?"

버럭 화를 내는 페로의 모습에 평소처럼 주눅이 들어버린 카렐이 고개를 떨구었다.

"빨리 가자, 날 따라와."

페로가 카렐의 손을 붙들고 억지로 잡아끌었다. 버둥거리며 끌려가던 카렐은 언덕 아래 보이는 집 쪽을 멈칫멈칫 돌아보았다.

"추워?"

페로가 옆에 나란히 쭈그려 앉은 카렐에게 묻자 카렐이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바위틈에 웅크려 앉은 둘은 서로 몸을 바싹 붙인 채 체온만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두 어린아이들의 입김이 하얗게 공기 속으로 퍼져나갔다.

별다른 대책도 없이 가출해버린 둘은 '검은 숲'을 지나가면 도시가 나온다는, 언젠가 들었던 말에 의지해 무작정 숲 속을 걸어온 터였다.

하지만 몇 시간 걸어가면 도시가 딱 나타나줄 줄로 믿었던 순진한 꼬마들에게 이 '검은 숲'의 반경이 걸어서 꼬박 3, 4일은 걸릴 거리인 1천 스타디아가 넘는다는 사실까지 자세히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배고파?"

카렐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페로가 짐에서 커다란 어른 외투와 빵 한 조각을 꺼내 카렐에게 내밀었다.

"먹어."

"넌?"

"난 먹고 나왔어."

페로가 무관심한 척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자 카렐은 건네 받은 빵을 한 조각 떼어 입에 집어넣었다. 때맞춰 고개를 돌리고 있던 페로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울리자 카렐이 무안해하는 페로의 손을 얼른 붙들었다.

"배고프지?"

"아니라니까. 이씨,"

페로가 카렐의 유난히 큰 손을 억지로 뿌리치며 뒤로 돌아앉았다.

"이건 내일 아침에 나눠먹자."

빵을 반으로 가른 카렐은 그 반쪽을 다시 가방에 우겨 넣고는 외투를 집어들었다.

두 꼬마는 큰 어른 외투 속에 자그만 몸들을 구겨 넣은 채 아무 말 없이 빵 반쪽을 뜯어먹고 있었다. 가디언인 카렐이야 그렇다 치고 아버지와 함께 지금껏 호화롭고 기름진 식사만 해오던 페로는 이런 형편없는 거친 빵이 목구멍에서 넘어가지 않는지 자꾸 끅끅거리고 있었다.

어린 카렐은 페로가 솟구치는 울음을 애써 참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 하고 있었다.

빵을 말 그대로 입에 '우겨 넣은' 둘은 일단은 서로에게 몸을 바싹 붙였다. 아직 어린 꼬마들이었지만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지 만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페로가 손을 뻗어 조그만 카렐의 어깨를 꼭 품어 안았다.

"잘 자. 카렐."

"너도 잘 자, 페로."

달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페로의 겨드랑이에 기대 잠들었던 카렐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페로,"

"으, 응?"

잠에서 깬 페로가 눈을 부비며 카렐을 내려보았다.

"뭐가 있어."

"뭐가?......아무 소리 안 나는데?"

"몰라......뭔가 있어......"

자리에 웅크린 카렐은 주변을 둘러보며 혼자 무서워하고 있었지만 페로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 저기......"

카렐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보일 성 싶지도 않았지만 카렐은 그쪽을 가리킨 채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여지껏 카렐을 '가디언'으로는 단 한번도 생각지 않아 온 페로였지만 지금 이 순간 보통 사람의 4배에 달한다는 가디언의 탁월한 시력과, 고양이의 발걸음도 짚어내는 그들의 놀라운 청력이 아직 어린 페로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 아이는 정말로 무언가를 느끼는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페로가 옆에 떨어져있던 부러진 나뭇가지를 집어들고 자리에서 조심스레 일어섰다.

순간, 덤불 건너편에서 들려온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보통 시민'인 페로의 고막까지도 울리기에 충분한 정도의 크기였다. 움찔 한 페로는 한 발 뒤로 물러나며 카렐과 바싹 붙어 섰다.

"내가 지켜줄께."

페로의 큰소리가 떨고있는 카렐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힘을 주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더 커지고 있었지만 겁에 질린 두 소년소녀는 서로 바싹 붙은 채 떨고있을 따름이었다. 페로가 딴에는 지켜준다며 막대기까지 들고있었지만 그 역시도 또래보다 조금 큰 열살 짜리 꼬마에 불과했다.

그리고 눈앞에 무언가 하얀 물체가 확 튀어나왔다.

"악!"

카렐이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엉금엉금 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덤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엄청나게 큰 은색 늑대였다. 그리고 그 뒤로 그보다 약간 작은, 한 마리의 검은 늑대가 또 있었다. 다 큰 어른은 공격하지 않는 늑대들이었지만 숲 속에 숨어있는 이 자그만 두 꼬마는 이들의 손쉬운 먹이감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검은 숲'은 주변 사람들이 시체를 내다버리는 장소였고, 이곳의 늑대들은 사람고기를 먹는데 별다른 거부감도 없는 녀석들이었다.

두 개의 손쉬운 먹이감을 발견한 이 늑대들은 잠시 탐색하려는 듯 주변을 맴돌았지만 '다행히도' 그 공포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곧바로 울음소리와 함께 흰 늑대가 페로에게 달려들었다.

"으악!"

제대로 저항도 못해 본 페로는 늑대가 덮친 충격에 몇 발을 밀려나 바닥에 거칠게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 은색 늑대의 큰 턱이 페로의 아직 여린 목을 으스러뜨리기 위해 쩍 벌어졌다.

"떨어져! 가! 가!"

늑대에 깔려 바닥에 쓰러진 페로가 온몸을 버둥거리며 거의 울부짖듯 소리를 질렀다. 페로의 목을 향해 세차게 밀어닥쳐 오던 늑대의 큰 턱에 덥석 물린 건 다행히도 가녀린 목뼈가 아니고 그의 오른쪽 손목이었다. 늑대의 강력한 턱에 물린 페로의 손목에서 으드득 하며 뼈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아, 으악!"

고통을 참을 수 없던 페로가 미친 듯 비명을 질렀다. 왼손으로 바꿔든 몽둥이를 필사적으로 휘저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은색 늑대에 뒤이어 검은 늑대가 페로의 허벅지 살을 물어뜯었다.

"악!"

생살이 찢겨나가는 지독한 고통에 강타 당한 어린 페로의 머릿속에서는 차라리 일격에 목이 부서져 죽는 것이 낫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절망 섞인 기대가 흘러가고 있었다. 저 두 마리의 늑대는 조그맣고 '먹을 것도 없는' 카렐에게는 관심조차 없는지 발을 동둥 구르는 카렐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은색 늑대가 페로의 급소를 향해 다시 입을 벌렸다.

모든 것을 포기한 페로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페로! 페로!"

페로가 위험에 처했음을 깨달은 카렐이 째져라 소리를 질렀다. 페로의 목을 물어뜯어 숨을 끊으려는 은색 늑대와, 급소만은 지키려는 피투성이의 페로가 필사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고, 검은 늑대는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페로를 놔둔 채 차마 도망칠 수 없던 카렐은 얼굴을 감싸쥔 채 맥없이 울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는 어느 순간인가부터 묘한 떨림이 섞인 가쁜 호흡소리로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었다. 무력하게 울고만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지독한 환멸이 이 어린 여자아이의 머릿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잔혹한 본능은 눈앞의 늑대의 피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자신이 광기에 사로잡혀가고 있음을 채 깨닫기도 전에, 그는 이미 그것을 판단 내릴 이성을 거의 잃어가고 있었다.

지금껏 공포에 떨고있던 카렐이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 카렐의 작은 이에서는 빠드득 하며 소름끼치는 마찰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단단히 움켜쥔 바싹 마른 두 주먹에서 파랗고 선명한 힘줄이 불끈 솟아났다.

"죽어버려!"

큰 소리를 지른 카렐이 갑자기 서있던 자리에서 튀어나갔다. 열살배기 어린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발놀림이 페로의 목을 막 깨물던 은색 늑대의 옆으로 돌진해 들어왔다.

"죽어!"

악을 쓰며 내리찍은 카렐의 주먹에 늑대의 머리에서 순간 쩍 하는 소리가 나며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허, 헉......"

가늘게 뜬 페로의 눈에 들어온 건 머리 한쪽이 함몰되어 눈알이 튀어나온 늑대의 끔찍한 모습이었다. 이 놀라운 상황에 할말조차 잊어버린 페로는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그 계집아이가 이 큰 늑대의 목뒤를 내리찍어 단번에 꺾어버리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멍해져 있었다.

"뒤, 뒤에!"

페로가 카렐에게 지른 외침이 끝났을 때, 카렐은 이미 자신의 등뒤를 습격해온 검은 늑대 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썅! 네놈도 죽어!"

덤벼드는 늑대의 정수리를 손으로 그대로 내리찍은 카렐은 깽 소리와 함께 나동그라진 늑대에게 달려들어 한 손으로 몸통을, 한 손으로 머리를 붙들었다. 그리고는 단 0.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늑대의 목을 옆으로 아드득 소리가 나게 비틀어버렸다.

"헉, 헉."

이 질긴 늑대가 조금씩 몸에서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에 대뜸 이를 드러낸 카렐은 갑자기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쓰러져있던 페로가 본 건 지금껏 단 한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입을 벌린 카렐은 쓰러진 늑대의 목을 꽉 물더니 그 급소의 살점 한 덩이를 미친 듯 찢어냈다. 잘려나간 상처로 아직 신선한 피가 분수처럼 확 치솟아 카렐과 얼굴과 옷을 온통 붉게 물들여버렸다.

"카렐......카렐......너,"

페로의 온몸이 경악으로 떨리고 있었다. 뼈가 부서진 손도, 살점이 떨어져나간 허벅지의 고통도 지금 페로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보다 더 끔찍하지는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치켜 뜬 카렐의 광기 어린 회색빛 눈동자에서는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붉은 광채가 번득이고 있었다.

카렐은 자신의 손바닥에서 뚝뚝 떨어지는 선혈을 말없이 핥고있었다.

"카렐!"

페로의 필사적인 고함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을 퍼뜩 차린 카렐은 멍해진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상을 입을 채 쓰러져있는 주인집 아들 페로와, 두 마리의 끔찍하게 죽은 늑대의 시체가 그의 앞에 있었고, 카렐의 손은 물론이고 얼굴, 옷까지 모두 피로 범벅이었다. 갑자기 두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 카렐이 머리채를 움켜쥐며 고개를 거칠게 가로 저었다.

"아아아아악!"

눈가에서 붉은 빛이 사라져버린 카렐은 갑자기 다리가 풀린 듯 잠시 휘청거리더니 맥없이 바닥에 털썩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검은 숲에 쓰러져 탈진해가던 이 두 어린아이가 슈막이 보낸 수색대에 발견된 건 다음날 아침의 일이었다. 그리고 현장의 그 끔찍한 상황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아버지의 추궁에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은 어린 페로는 아버지가 그 소식에 왜 그리 희색이 만연해졌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리도 흥분한 목소리로 근위대에 연락을 보냈는지 그때까지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카렐은 더 이상 이전의 카렐로 남아있을 수가 없으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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