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4 회: Part 1. 디모르포세카, 음지에 피다. -- >
11.
황제령 대륙 서부 적도에 걸쳐져있는 거대한 정글지대인 ㅤㅋㅞㄹ크는 북쪽의 프라임 지역, 남쪽의 타르서스와 함께 대륙을 이루는 3개의 큰 축 중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 역시 타르서스와 마찬가지로 중앙정부가 비교적 관심을 두고있지 않은 '저개발지역' 으로 방치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나마 별도의 지방장관이 파견되어 제한적인 자치정부나마 들어서있는 사막지역 타르서스와는 달리 이곳은 사실상 통제 자체가 불가능한 지역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타르서스인들은 그나마 유사점이 많은 단일민족이었고 거주지역도 오아시스나 몇몇 개발된 소도시로 한정되어 있었지만 ㅤㅋㅞㄹ크는 전 주민의 무려 7할이 존재여부조차 파악이 안되는 정글 원주민들이었고, 특유의 무덥고 위험한 정글이라는 환경은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결국 중앙정부에서도 '황제령의 허파' 운운하며 아예 개발사업 자체를 포기해버린 곳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제국 내에서 반란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그 패잔병이 마지막으로 숨어드는 은신처가 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게릴라전을 벌이는 그들과 근위대와의 숨바꼭질같은 추격전이 반복되고 있었다. 하지만 원주민 자신들은 기본적으로 정치문제 따위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순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이런 그들의 특성을 잘 아는 근위대들도 괜히 말잘듣는 그들을 들쑤셔놓은 바보짓은 피하는, 나름대로 현명한 공존방식을 택하고 있는 셈이었다.
조금 더 쉬고 가라며 붙드는 모렌 박사를 뒤로하고 페로 관을 다시 빠져나온 카렐은 바로 이곳 ㅤㅋㅞㄹ크의 동부 정글 초입에 도착해 있었다. 차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좁고 가파른 산길을 마주한 카렐은 하는 수 없이 차를 한구석에 잘 감춰두고 도보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제기랄, 되게 머네."
카렐이 덥고 답답한 망토를 벗어 팔에 걸며 연신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주하기로 되어있는 마을에 꽤 가까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들리는 야생동물의 부시럭거림 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한 카렐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할 무렵, 멀지않은 곳에서 느껴져오는 인기척을 깨달은 카렐이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뭐지?'
거추장스러운 카타나 대신 짤막한 와카자시를 뽑아 한손에 움켜쥔 카렐은 문제의 수상한 움직임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으엑!"
짧은 비명을 지른 한 녀석이 갑자기 달아나기 시작했다. 카렐이 그 빠른 발로 뒤를 쫓기 시작하자 놈은 사방을 지그재그로 틀며 카렐의 추격을 따돌리고 있었다. 상대가 자신보다 지리에 능숙하다는 것을 깨달은 카렐은 급히 자리에 멈춰섰다. 어디에 함정이 설치되어있을지 모를 이런 정글 속에서 달리기 솜씨만 믿고 도망치는 상대를 무조건 쫓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뭐지?"
나무 위로 잽싸게 기어오른 카렐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신없이 달아나던 허름한 옷차림에 작은 칼을 차고있는 한 녀석이 나무 뒤에서 머리를 조심스레 내밀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생김새로 보아 이곳 ㅤㅋㅞㄹ크 원주민은 틀림없이 아니었다.
'어디까지 도망가나 보자.'
심술ㅤㄱㅜㅊ게 웃음지은 카렐이 큰 열매 하나를 꺾어 녀석의 바로 옆으로 힘껏 집어던졌다. 놈이 다시 가던 방향으로 죽을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카렐은 굵은 나뭇가지를 겅중겅중 뛰어넘으며 녀석과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쫓아달렸다.
"으익!"
깜짝 놀란 카렐이 급히 나무 뒤로 몸을 감추었다.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그물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썩은 흙무더기와 나뭇잎들을 공중에 온통 흩뿌렸다. 도망치던 녀석의 동료인듯한 한 녀석이 머리를 삐끔히 내밀었다.
"잡혔냐?"
"제기랄, 놓쳤어."
카렐을 유인하며 도망치던 녀석이 흙투성이가 된 옷을 털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도대체 뭐였지?"
"몰라, 시커멓고 무지하게 빠른 게 표범이나 퓨마 같던데. 썅, 잡혀 죽는 줄 알았네."
"병신, 카렐인가 그놈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라."
"씨발, 카렐이었으면 이미 죽었지 내가 살아있냐?"
나무 위에서 그들의 대화를 훔쳐듣던 카렐은 자신을 마치 '적'처럼 묘사하고 있는 미심쩍은 대화내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 원주민도 아니고, 자신이 온다는 것도 알고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네피 무리에 소속된 녀석들임에 틀림없었다. 순간 지난번 대사막 고원마을에서의 전투 때도 들었던 불길한 예감이 카렐의 머릿속을 또다시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네피가 중상을 입으면서 이곳 새 정착지의 방어 총책임을 맡게 된 체이호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물론 그래봤자 얕으막한 언덕이 고작이었지만--- 구석에 위치한 마을회관 쪽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손목에는 근위대 출신 가디언임을 뜻하는 금빛의 팔찌가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대나무로 세운 뼈대에 흙벽, 바나나잎으로 지붕을 얹은 길쭉하고 멋대가리 없는 마을회관 앞에 선 체이호는 이런 촌구석, 아니 최악의 오지에 살게 된 자신의 한심한 신세를 되새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페 다 그놈 때문이야."
혼잣말을 중얼거린 체이호가 등에 메고있는 묵직한 다오와 단검을 다시한번 확인했
다.
근위대 정규군 훈련책임자로 있던 체이호는 10년 전, 동료였던 조페의 꼬임에 근위대를 도망쳐나와 네피의 무리에 합류했던 터였다. 하지만 황궁에서의 화려한 생활과, 수만의 최정예 근위병들을 수족처럼 부리던 그 '좋았던 시절'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그의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번의 결단을 내린 것도 그것때문이었다. 단검을 뽑아든 체이호는 밖에서 보이지 않게 오른쪽 옷소매 속에 칼을 잘 감추고는 다시한번 숨을 가다듬었다.
"조페! 조페!"
마을회관 문을 확 열어젖힌 체이호가 조금은 수선스런 목소리로 안에 있던 조페를 불렀다. 중상을 입고 치료중인 네피 덕택에 이곳 마을에 새로 정착하는 일을 혼자서 다 처리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쁘던 조페는 짜증스런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왜?"
"정찰병들이 마을 북쪽에 수상한 동굴을 하나 발견했는데 아무래도 근위대 비트인 것 같애. 잘못하면 위험하겠는걸?"
"정말?"
마을 주변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체이호의 보고에 조페가 기겁을 하며 들고있던 서류들을 내려놓았다.
"한번 같이 가보자."
조페가 평소 쓰는 두 개의 시미터를 냉큼 허리에 차며 먼저 문을 열고 자리에서 나섰다. '같이 가자'고 말하려던 체이호는 조페 녀석이 도리어 먼저 나서자 일이 잘 풀린다며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마을회관을 나선 조페는 수하 하나 없이 홀몸으로 체이호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뜻을 같이하기로 맹세한 체이호의 심복 가디언 또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앞장서는 가디언과, 뒤따라오는 체이호에게 앞뒤를 둘러싸인 조페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 모두를 돌아보았지만 별다른 의심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후우,"
일행이 어느정도 마을에서 벗어나자 체이호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단검을 쥔 손에 조심스레 힘을 주었다. 조페 녀석은 자신의 앞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작은 냇물을 뛰어건넌 일행은 어느덧 크지않은 파파야 나무 밑에 도착해 있었다.
"조페,"
"응?"
체이호의 부름에 조페가 뒤를 문득 돌아보았다. 그와 동시에 소매 속에서 단검을 빼든 체이호가 그의 옆구리를 향해 칼날을 힘껏 내질렀다. 순간, 찌이익 하며 듣기싫은 쇳소리가 모두의 귓청을 때렸다.
"어, 엇......"
당혹한 체이호가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조페의 찢어진 옷 틈새로 두툼한 금속판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뒤로 돌아서며 반사적으로 휘두른 조페의 단검에 체이호의 배에서는 이미 피가 배어나고 있었다.
"에익!"
앞서가던 다른 가디언이 조페를 향해 돌아서며 허리에서 칼을 번쩍 뽑아들었다. 하지만 풀숲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옆머리에 깊숙히 박힌 큰 단검은 거의 투척도끼정도의 위력으로 두개골을 반토막내놓은 후였다.
"것봐, 내가 이놈이라고 했지."
귀에 거슬리는, 듣기싫은 쉿소리같은 목소리에 체이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왼손에 와카자시를 움켜쥔 카렐이 어두운 풀숲에서 천천히 모습을 나타내자 기겁을 한 체이호가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망할 놈!"
성이 머리끝까지 돋은 조페가 피가 흐르는 배를 움켜쥐고 정신없이 도망치던 체이호를 몇발짝만에 냇물에서 따라잡았다. 체이호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쥔 조페는 자신을 배신한 이 괘씸한 옛 동료를 얕은 냇물 위에 거칠게 동댕이쳐 버렸다.
"미, 미안해, 조페, 난 그냥......이런 곳에 살기 싫었을 뿐이야, 정말이야....."
조페라면 몰라도 카렐을 떨굴 수는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체이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카렐과 성난 얼굴의 조페를 번갈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빌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줘. 다시는 안이럴께, 응? 절대로 안이럴께, 제발."
비굴해보이기까지 하는 그 모습에 카렐이 비웃음을 섞어가며 냉랭하게 내뱉었다.
"가디언 망신 다 시키는 저 한심한 꼬락서니 좀 보게."
"하지만......"
카렐의 차가운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마음약한 조페는 자신이 억지로 이곳까지 끌고온 체이호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이를 악문 채 계속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이렇게까지 비는데 그냥......"
조페가 카렐의 눈치를 힐끔 살피며 중얼거리자 카렐이 그의 어깨를 탁 짚으며 말했다.
"믿지 않으려거든 쓰지를 마라. 쓰고 나서는 의심하지 마라. 쓸만한 고사성어지. 이런 상황에서는."
"조페, 제발, 제발,"
카렐의 살기어린 시선에 겁먹은 체이호가 조페의 발목을 결사적으로 붙들며 계속 빌었다. 그로서는 잔혹하기로 유명한 카렐보다 조페가 유일한 기대였다. 하지만 카렐의 무자비한 발길질이 그런 체이호의 얼굴을 그대로 냇물의 바위 위에 짓이겨버리고 말았다.
"카렐 네가 알아서 해."
한숨을 내쉰 조페가 뒤로 돌아서며 혼자 마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체이호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카렐에게라도 목숨을 빌어보려던 체이호는 하지만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비로울 정도로 서슴없이 그의 목젖을 꿰뚫어버린 카렐의 와카자시는 그대로 90도 비틀리며 피와 체액을 얕은 냇물 위로 토해냈다.
"난 너같은 놈은 필요없다."
들릴듯말듯 작게 중얼거린 카렐은 피묻은 칼을 쓰러진 체이호의 옷자락에 태연하게 닦고는 마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몸은 좀 어때? 참을만 해?"
붉은 꽃 한다발을 들고 네피의 병실을 조용히 찾아온 카렐이 힘든 표정으로 누워있던 네피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겨드랑이와 가슴을 깊이 베인 네피는 적어도 열흘 이상은 도끼를 들지 못한다는 것이 의사의 진단이었다.
"쳇, 며칠새라고 그새 이렇게 신세가 뒤바뀌다니,"
네피가 그다운 퉁명스런 말투로 중얼거리자 카렐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병상의 네피를 돌보아주고 있던 솔은 약속대로 다시 돌아와준 카렐의 모습에 연신 입가에서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필요하거든 부르세요. 밖에 나가있을께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카렐은 밖으로 나가는 솔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나간 것을 확인한 카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실은......할 말이 있는데."
"나도 있는데 잘됐군."
네피가 끄응 소리를 내며 병상에서 몸을 조금 일으켜 물 한모금을 들이켰다. 카렐이 그답지않은 자신없는 투로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얘기하지. 네가 꼭 알아야 할 게 있어......"
"뭔데."
"너하고 마리안 부인 말이야......"
카렐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네피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버렸다.
"네가 마리안 부인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잘 알아."
"갑자기 옛날얘기는 왜하는데?"
얼굴을 잔뜩 찌푸린 네피가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무려 20여년 전의 '옛 여자' 이야기는 네피가 가장 듣기도, 하기도 싫어하는 것이었다.
"부인이 죽기전에 너한테......사랑한다는 말 꼭 전해주랬어."
"퍽이나 일찍도 전해준다."
네피가 짐짓 퉁명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지만 카렐은 눈물이 맺힌 채 약간씩 떨리고있는 그의 짙은 눈썹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혹시......마리안 부인이 임신중이었다는 거 너도 알고있었어?"
네피가 갑자기 멍 해진 표정으로 카렐을 휙 돌아보았다. 얼굴이 약간 붉어진 카렐은 그런 네피의 시선을 조심스럽게 피하며 중얼거렸다.
"그때 3개월이었어."
네피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고개를 돌렸던 네피는 카렐의 옷자락을 붙들며 그답지않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해줘......마리안이 어떻게 죽었는지......"
"네가 아는대로야."
그 우락부락하던 네피의 눈에 눈물이 어느새 가득 고였다. 그는 앞에 앉은 카렐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민망한지 입술을 굳게 깨문 채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네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누구......아기였지?"
"부인은 몇년간 남편하고 잠자리를 한 적이 없었어."
"망할!"
큰 소리를 지른 네피가 대뜸 카렐의 턱을 후려갈겼다. 카렐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네피의 분노에 찬 일격을 그대로 얻어맞고 말았다. 카렐은 탁자와 의자를 산산조각내며 그대로 마루바닥에 딩굴렀다. 갑자기 괴력이라도 솟았는지 병상에서 벌떡 일어선 네피가 입에서 피를 흘리는 카렐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카렐이 지금껏 이 이야기를 네피에게 차마 해주지 못한 건 바로 이 사실 때문이었다.
"뭐예요?"
방 안에서 벌어진 소란에 놀라 달려들어온 솔이 카렐의 멱살을 쥐고있는 네피의 굵은 팔을 결사적으로 떼어내려 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카렐에게 고함을 쏟아냈다.
"나도 잘 알아. 그래, 나라도 그랬겠지. 마리안은......고통을 덜어주려고 그랬다는 걸 알아! 하지만 아기가 무슨 죄야! 넌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리안을 네 손으로 죽였다는 거야? 내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는 걸 알면서도?"
카렐이 네피에게 멱살을 잡힌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기는 내가 집행일 전날 채취기로 몰래 빼냈어."
카렐의 멱살을 쥔 네피의 손에서 순식간에 힘이 빠져버렸다. 네피가 두 손을 벌벌 떨며 물었다.
"그럼, 지금......살아있어?"
카렐이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피의 절망스런 표정을 바라보던 카렐은 고개를 완전히 떨구고 말았다.
"널 닮은 남자아이였지......내가 몰래 수련장 가디언목록에 등재시켰어. 이름도 내멋대로 포프라고 지어붙였고. 훌륭한 전사 재목이었는데......첫 데뷔로 재산전에 나갔다가 1등급 녀석한테 당하고 말았어.....미안하다.....내가 지켜주지 못했어."
충격을 받은 네피가 얼굴을 감싸쥐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을 감싼 굵은 마디의 손가락 사이로 네피의 거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 네피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카렐이 말라붙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물을 주체못하는 네피에게 카렐이 다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쌍둥이 여동생은 살아있어."
네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디?"
카렐이 잠시 대답을 망설이자 네피가 다시 카렐의 멱살을 붙들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어디있냐고! 당장 데리러갈테니까 빨리 말해! 빨리!"
네피의 거친 손을 조용히 짚은 카렐은 이 둘의 싸움아닌 싸움을 발만 동동 구르며 바라보고 있는 솔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움직였다. 파르르 떨리는 네피의 다갈색 눈동자 역시 카렐을 따라 솔에게 가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