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25화 (25/1,132)

< -- 25 회: Part 1. 디모르포세카, 음지에 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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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의 명을 받은 카렐이 네피와 함께 마리안의 집을 찾았을 때 집안은 이미 거의 폐가에 가까운 황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때는 노예들와 하인들이 버글거렸을 수십간의 집들과 마당은 한두명의 늙은 충복들만이 고집스레 자리를 지키고있을 따름이었다.

페로에게 진 거액의 빚과 그의 무서운 협박에 시달리다 못한 카를 로퍼크 경은 거의 죽음을 맞이하는 심정으로 그와의 재산전에 나섰음에 틀림없었다. 재산전은 남의 재산을 빼앗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빚을 갚지 못한 괘씸한 채무자에게 이렇게 무서운 피의 복수를 하는 '합법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그리고 페로의 기대 그대로, 카를 로퍼크 경과 그의 가디언들은 4번 도시의 황무지에서 모두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4번 도시 외곽에 위치한, 주인을 잃은 이 호사스런 저택 주변엔 벌써부터 피냄새를 맡은 도적떼들과 빈민들이 마치 하이에나처럼 약탈의 기회만을 노리고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페로가 카렐과 네피를 먼저 보낸 것도 그 도적떼들이 자신의 훌륭한 전리품에 감히 먼저 입을 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카렐이 안채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자이센 총리각하의 명으로 왔소!"

아버지의 부고에 안채 마루에서 어머니와 껴안고 눈물을 훔치고 있던 마리안은 갑자기 들이닥친 이 서슬퍼런 가디언들의 모습에 허둥지둥 구석으로 물러났다.

카렐이 이 가여운 모녀를 매정하게 쏘아보며 언성을 높였다.

"아다시피 카를 로퍼크 경은 페로 경과의 재산전에 패해 우리 가디언에게 피살당했소. 이 재산일체는 이제 자이센 가의 소유로 넘어가게 되었으니 당장 집을 비워주시오. 빨리!"

"하지만......친척들도 모두 제후지역에나 있는데......재산까지 모두 동결됐으니 여비도 없고.......지금 내 친정에서 친척들이 데리러 오는 길이라 하니 제발 잠시만......저 밖에 폭도들 때문에 지금 나갈 수가 없으니......"

카를 로퍼크 경의 미망인인 뤼렌 세호 부인이 함께들어온 네피의 옷자락을 붙들고 애원했지만 무표정한 카렐은 장에서 그들의 살림살이들을 꺼내 사정없이 마당에 내던졌지고 있었다. 마음약한 네피는 그렇게 인정사정없이 구는 카렐을 차마 말리지도 못한 채 물끄러미 바라만보고 있었다.

그런 카렐을 처음 붙들은 건 다름아닌 딸 마리안이었다. 크지않은 키에 드물게 빼어난 외모를 갖춘, 아직 앳티가 채 가시지 않은 젊은 마리안은 이 잔혹한 살인자의 팔을 붙들며 마지막 자비를 호소했다.

"제발, 우린 나가면 죽게 돼요, 제발, 외가 사람들이 올 때까지만 있게 해 주세요."

갑자기 이를 드러넨 카렐이 마리안을 대뜸 무서운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그리고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칼을 뽑아들었다. 순간 깜짝 놀란 네피가 카렐의 팔을 허둥지둥 붙들었다.

"딸까지 죽일필요는 없잖아! 도대체 왜그래? 진정 좀 해!"

네피를 뿌리친 카렐이 마리안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자신의 피묻은 큰 손을 펼쳐보였다.

"내가 당신 아버지와 가디언 셋을 죽인 사람이요. 지금 여기 묻은 게 당신 아버지 목에서 터져나온 피고! 당신 모녀까지 죽이고 싶어지기 전에 일초라도 빨리 여기서 나가시오. 알겠소?"

카렐의 살기어린 태도에 겁먹은 마리안이 부들부들 떨며 몇발짝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카렐은 마리안과 그 어머니의 멱살을 붙들고 거칠게 집 밖으로 끌어냈다.

"총리께서 은총을 베푸셔서 당신들의 목숨을 살려주게 한거니 더 군소리 하지 마시오. 빨리 떠나라고!"

반 쯤 정신이 나간 듯한 카렐의 모습을 보다못한 네피가 재빨리 마리안을 카렐에게서 떼어내 몸으로 막아섰다.

"왜그러는거야! 이 인정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

"모르면 닥쳐! 네피! 내가 명령권자야!"

네피에게 고함을 지르며 옆으로 거칠게 밀쳐낸 카렐은 다시 마리안의 멱살을 붙들고는 문 쪽으로 질질 끌고가기 시작했다.

"뭐하는건가! 아직 꾸물거리고있나! 저 밖에 도적떼들 안잡고 뭐하는거야!"

째지는 목소리와 함께 킵이 문을 때려부수며 집안으로 들어오자 그 뒤를 이십여명의 호위를 받으며 페로가 당당히 들어섰다. 카렐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때까지 마당에서 떠나기를 거부하던 모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 여자들은 뭐야!"

페로가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치자 네피가 쭈삣거리며 대답했다.

"카를 로퍼크 경의 처자입니다."

"이것들을 쫓아내지 않고 뭐하는건데?"

페로가 뤼렌 부인을 오만하게 내려보며 중얼거렸다.

"바깥에 도적들 때문에 못나가고 있답니다. 지금 서부에서 친정 사람들이 오고 있다고......"

네피가 눈치를 보며 대답하자 페로가 아무렇지않게 신경질을 부렸다.

"뒈지든 말든 지사정이지. 이젠 다 도망갔을테니까 눈앞에 있지 말고 빨리 꺼져 이년들아!"

솟구치는 울분을 애써 삼킨 뤼렌 세호 부인이 아직까지도 망연한 얼굴로 맨바닥에 앉아있는 딸 마리안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그 스스로도 서부 제2제후 세호 가 종장의 여동생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대단한 신분인 그가 새파랗게 젊은 저 깡패같은 총리에게 이런 수모를 당했으니 이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어도 시원치않은 상황이었지만 그에게는 지켜주어야 할 아직 나이어린 딸 마리안이 있었다.

"빨리 가자, 따라와, 얘야."

마당에 딩구는 소지품들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멀어져가는 두 모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페로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잠깐......카를 로퍼크 경이......로퍼크 가의 종손자리를 놓고 싸우고 있었지? 아마?"

페로의 질문에 함께있던 로카가 냉큼 파일을 펼치며 대답을 내놓았다.

"지금 그 쌍둥이 형제와 서로 형이라고 법정공방중이었습니다. 이번에 카를 경이 죽었으니 나머지 한 놈이 싸울것도 없이 종손이 되겠죠."

한손으로 턱을 붙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페로가 킵을 손짓해 불렀다.

"저년들 다시 데려와."

순간 아연질색한 네피가 그제서야 카렐의 뜻을 깨달은 듯 문 옆에 말없이 서 있던 카렐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막 마당을 빠져나가려던 모녀는 거친 가디언들의 손에 옷자락이 붙들린 채 다시 페로 앞에 질질 끌려올수밖에 없었다.

"맞아. 바로 이년이로군."

마리안에게 바싹 다가선 페로의 입가에 대뜸 음산한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깜빡 잊고있었어......로퍼크 국장의 외동딸이 소문난 미인이었다는 걸.......지금보니 그게 거짓은 아니었나본데. 정말 죽여주게 생겼는걸?"

페로가 마리안의 뺨과 턱을 가만히 쓰다듬자 마리안이 놀라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페로가 그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지자 마리안은 입술에서 피를 흘리며 그대로 흙바닥에 나동그라져 버렸다. 카렐이 그쪽에서 고개를 돌리며 들릴듯말듯 한숨을 내쉬었다.

"독기까지......정말 맘에 들어. 네피!"

"예......"

네피가 그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이년은 우리집에 데려다놓고, 뤼렌 부인은 내 셔틀편에 친정인 세호 가에 모셔다드려. 잘 모시도록 해. 내게 중요한 분이 되실 테니까."

페로의 '판결'에 마리안 모녀의 얼굴에 공포섞인 암운이 조금씩 드리우고 있었다.

그날밤 페로의 침실을 지킨 네피와 카렐은 아버지의 살인자와 악몽같은 잠자리를 가지며 흐느끼는 마리안의 처절한 신음소리를 그대로 들을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를 함께하고있는 자신의 처지를 끝없이 원망하던 마음약한 네피는 함께있던 카렐이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난생 처음 보고 말았다.

다음날 페로는 대뜸 마리안을 정실부인으로 맞겠다며 선언을 했다. 너무나 뚱딴지같은 행동이었지만 상급귀족가 종장 중 유일한 미혼자이며 제국 제일의 신랑감으로 손꼽히던 그가 중앙귀족 명문 로퍼크 가문과, 서부 2제후 세호 가의 피가 섞인 미모의 훌륭한 신부감을 얻었다는 점에서 얼핏 조건만으로는 그다지 이상할것도 없는 혼인이었다. 물론 신부의 아버지 카를 로퍼크 경이 페로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그리고 그것으로서 페로를 부마로 삼아 황실 후계자로 삼으려는 황제의 계획 또한 완전히 망가진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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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대로 돌아왔으니 오늘분 올립니다. 올려놓고보니 용량이 다른 회보다 좀 작네요. -.-

(이미 보신분도 있으니 다시올릴수도 없고.....) 어쨌든 오늘중으로 파트 1 완결해 올리겠습니다.

<즐겁게 보셨으면 코멘트와 추천으로 아마추어 작가에게 힘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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