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7 회: Part 2. 나를 잊지 말기를....... -- >
20.
외계에서 도착한 이천여명의 페로 휘하 순회군 가디언들이 페로 관 주변을 정돈하고 위치를 잡을때까지 채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정리가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지자 카렐은 예정을 앞당겨 오후 늦게라도 출발하도록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물론 '이상한 눈빛'을 보이기 시작한 아메스와 빨리 떨어지려는 의도도 함께 들어있었지만 정작 카렐이 출발을 앞당겼다는 소식을 네피로부터 전해들은 아메스 자신은 무슨 이유엔지 별 반응도 없이 알았다며 고개만 끄덕여보였을 뿐이었다.
막사를 정리하고 분주히 떠날 채비를 차리던 카렐 앞에 아메스가 다시 나타난 건 출발시각을 겨우 몇분 앞둔 때였다. 새하얀 준마에 올라타고 무려 오십여명의 하인들과 노예, 3대의 화물차량까지 동반한 아메스의 차림새를 본 카렐이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님께서 이번 일에 감사하신다면서 슈벨 수반과 세네피스 황후폐하께 약간의 선물을 보내시기로 하셨습니다."
아메스가 차량과 노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 지원군에 대한 페로의 감사표시의 대상이 자신이 아닌, 슈벨 수반과 어머니 세네피스 황후라는 사실에 카렐이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페로의 그 지독한 자존심은 이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제게 그 전달을 맡기셨습니다."
"그런거면......그 험한 곳에 굳이 직접 가실필요 없이 그냥 저희에게 주셔도 됩니다."
카렐이 말의 안장끈을 묶으며 짐짓 냉랭하게 대답했다. 카렐의 그런 태도에도 아랑곳없이 아메스가 입가에 잔뜩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제가 전사단과 아버님 사이의 연락책으로 그곳에 계속 상주할 수 있도록 말씀드리라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드디어 전하와 교류하실 생각을 가지신 모양입니다."
카렐은 말고삐를 붙든 채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좋아해야하는 일인지 아닌지 머릿속이 심하게 혼란스러웠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다면 '왠지 부담스러운' 아메스를 어쩔 수 없이 ㅤㅋㅞㄹ크로 데려가야 할 판이었다. 곁에 있던 토로 경이 밝은 표정으로 카렐을 돌아보며 머리를 조아렸다.
"모든 게 전하 뜻대로 되어갑니다."
고개를 조금 끄덕여보인 카렐은 말에 훌쩍 올라탔다. 떠날 차비를 마친 기병들과 가디언들, 정규군들이 열을 맞춰 서서 지휘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출발!"
선두에 선 토로 경의 큰 함성소리와 함께 천 오백여명으로 이루어진 대행렬이 카렐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렐의 바로 양옆을 토로 경과 네피가 지켰고 그 바로 뒤로 제네르와 아메스가 따랐다. 말을 탈 줄 모르는 우베는 아메스 일행에 포함된 화물차 짐칸에 올라 페로가 일행에 붙여준 '미녀 노예'들을 구경하느라 넋이 나가 있었다.
서문 옆을 지나던 카렐의 눈에 약간 안쪽에서 이 행렬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실리페 황후가 들어오자 그는 공손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세네피스 황후의 충복인 토로 경이 그 광경에 당연히 눈살을 있는대로 찌푸렸지만 실리페 황후는 꽤나 만족스런 표정으로 가볍게 손뼉까지 쳐 주었다.
"페로는 배웅 안오는거야?"
네피가 귀에 대고 속삭이자 카렐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바랄 걸 바래."
떡갈나무 언덕 위에 도착한 카렐은 문득 말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덧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페로 관 주변에는 새로 설치한 조명이 페로 관의 위용을 보이듯 빛을 뿜고있었다. 그리고 카렐의 좋은 눈은 사랑채 마루 위에서 약간 멍 한 표정으로 이 행렬을 바라보고 있는 '옛 친구' 페로를 똑똑히 구분하고 있었다.
"페로......"
들릴듯말듯 중얼거리는 카렐의 입술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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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 관에 도착한 첫날, 저녁식사시간이 거의 다되어 북쪽 사랑채를 찾아간 카렐은 옷을 단정히 하고는 안에 대고 말했다.
"카렐입니다."
"들어와."
책을 읽던 페로가 오전처럼 밝은 표정으로 카렐을 맞았다.
"방은 맘에 들어? 맘같애선 안채나 사랑채에 묵게하고 싶은데.....눈치도 있고, 대신 여긴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돼."
"괜찮습니다. 주인님."
페로에 대한 존대 여부와 호칭을 놓고 꽤나 한참을 고심하던 카렐이 일단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페로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이런, 말이 그게 뭐야, 주인님이라니.....둘만 있을땐 그냥 전같이 이름 불러. 부담스러워서 싫어."
페로가 앞에 멀찍이 꿇어앉은 카렐에게 좀 더 가까이오라 손짓해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페로는 카렐의 무릎 바로 앞에 바싹 다가앉아 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사람들 말하는 헛소문같은거 난 안믿어. 뭐 니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던지, 피를 빨아먹는다느니, 내장을 파먹는다던지 하는 말도안되는 소문들 말이야. 너 원래 어떤 성격인지 잘 아는데 그딴말에 현혹될 내가 아니지. 뭐, 넌 어쨌든 가디언이고 필요할땐 사람을 죽일수도 있겠지. 때로는 잔인하게 굴어야 할 때도 있었을테고. 그런거 다 이해해. 그런다고 너에대한 내 생각이 달라지는 건 아냐. 어차피 앞으로는 날 위해 그렇게 싸워줄거 아냐? 그러니까 아무 걱정 안해도 돼. 알았지?"
페로가 나름대로 힘을 준다고 하는 말에 틀림없었지만 옛 기억에서 그다지 자유로울 수 없는 카렐은 순간 숨이 탁 막혀오고 있었다.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던 그는 이를 악문 채 고개만 조금 끄덕여보였을 따름이었다.
"각하! 황궁에서 웬 물건이 왔습니다."
마당에서 들려온 로카의 목소리에 페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카렐과 함께 마루로 나선 페로는 사랑채 앞 대청에 놓여있는 잘 포장된 큰 상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뭐지?"
상자 위에 쓰여진 짤막한 글을 읽은 로카가 페로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근위대장 베흔이 가디언 카렐에게 보내는 선물이라고 합니다. 저녁식사에 쓰라고 되어있는데 내용물은 잘 모르겠습니다."
'내용물'이 무엇인지 눈치챈 카렐이 또한번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필 이런 때 페로는 그답지않게 바보스러울정도로 눈치없이 굴고 있었다.
"네 선물이라니 네가 풀어봐라. 송별기념선물이라도 준건지."
"송구스럽지만......되돌려보냈으면 합니다만......베흔에게는 더이상 아무것도 받고싶지 않습니다."
카렐이 떨리는 목소리로 페로에게 고개를 숙이며 간곡하게 말했다.
"되돌려보내? 그건 실례일텐데. 그것도 딴데도 아니고 황궁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선물을 말이야......"
"아시다시피 베흔은 워낙 제게 악감정이 많아서 무슨 황당한 수작을 부렸을지.......제발 각하........"
카렐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 영문을 알 리 없는 페로는 막 저녁식사를 하러 대청에 들어서던 네피를 손짓해 불렀다.
"예?"
"네가 저 상자 좀 열어봐라. 황궁에서 카렐에게 보낸 선물인데 카렐이 그쪽에 앙금이 많아서 뜯어보기도 싫다하는구나."
페로의 지시를 받은 네피가 아무렇지않은 표정으로 상자에 다가갔다. 다음에 벌어질 일을 예상한 카렐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도끼를 등에 걸고 상자에 손을 가져간 네피는 실링을 벗겨내고 꽤 큰 뚜껑을 번쩍 들어올렸다.
"으익!"
네피가 뚜껑을 떨어뜨리며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상자 안을 들여다본 로카 역시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대청 구석으로 도망쳤다.
"뭐냐?"
페로가 얼굴을 조금 찌푸리며 물었다. 약간 당황한 네피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시체......이옵니다."
"뭐야?"
페로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옆에 선 카렐을 돌아보았다. 결국 보다못한 카렐이 대청으로 내려가 직접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사형수 낙인이 남아있는 시체의 머리부분은 마치 소, 돼지처럼 완전히 해체된 몸뚱아리 위에 고이 얹혀있었다. 너무나 당혹스러워진 카렐이 입을 감싸쥐며 뒷걸음질쳤다. 베흔의 저주는 황궁을 떠난 이곳까지 끈질기게 따라오고 있었다. 행여 눈치빠른 페로가 사실을 알게되지 않을까 가슴이 털컥 내려앉은 카렐이 핏기가 가신 얼굴로 페로의 눈치를 보았다. 창백해진 카렐의 표정을 본 페로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듯 대뜸 언성을 높였다.
"망할 베흔새끼, 이젠 별 지랄을 다떠는구나, 로카! 뚜껑 닫아서 당장 근위대에 돌려주고 와!"
카렐의 첫날이라며 페로가 특별히 준비한 만찬식탁에 그득하게 쌓인 음식들을 보고 네피의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시체상자 사건 이후로 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있던 카렐은 식탁에 앉아서도 여전히 어두운 얼굴이었다.
"너 생각보다 겁쟁이구나."
큰 양고기덩어리를 신나게 뜯던 네피가 옆에서 멍 하니 젓가락만 놀리고있는 카렐을 보며 키득거렸다.
"너 그런시체 처음봤냐? 우리 신세에 맨날 눈에 달고사는게 시첸데, 뭐 듣자하니까 1등급 녀석 하나를 순식간에 9토막 낸 일도 있다며, 그거 헛소문이야?"
"......시체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카렐이 식탁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딴에는 진수성찬이라고 차려준 이 풍요로운 식탁에서 카렐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나마 나온 구운 쇠고기 약간을 먹고 난 카렐은 밥에도, 채소에도 전혀 손을 대지 못한 채 난감해하고 있었다.
수심에 잠긴듯한 카렐의 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던 페로가 짐짓 웃음을 띠며 말했다.
"베흔 그새끼한테 그간 많이 당해서 이번일로 상심이 클거다. 하지만 이젠 내 밑에 있으니 옛일은 신경 안써도 된다."
페로의 '도무지 안어울리는' 다정한 위로에 네피가 맞은편에 앉은 다룬을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 해보이고는 페로에게 들리지않을만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저게 지금 우리 주인님이 가디언한테 쓰신 문장 맞아?"
다룬도 묘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하고 있었다. 그들을 한 번 쏘아본 카렐은 마지못해 앞에 놓여있던 과일을 집어 입에 넣었다.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운 네피는 여전히 그대로인 카렐의 밥그릇을 보고는 킬킬대며 침묻은 숟가락을 얼른 찔러넣었다.
"안먹을거면 나나 줘."
"그래......다 먹어. 난 반찬이나 먹지....."
자기에게 꽂히는 페로의 곱지않은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피는 카렐의 밥그릇을 통째로 빼앗아 신나게 먹고있었다.
"너 정말 비싸게 논다. 고기만 먹기냐?"
카렐의 식탁에서 비어있는 몇 되지 않는 접시를 바라보며 네피가 여전히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날아오는 무수한 밥알을 가까스로 피하며 카렐이 짐짓 태연하게 대답했다.
"귀한몸이라 난 비싼것만 먹어."
카렐의 대답에 입가에 미소를 지은 페로는 하인을 시켜 자기 앞에 있던 농어요리를 카렐에게 가져다주게 했다.
"비싸기로는 그게 제일 비쌀거다."
밥을 퍼먹던 네피는 하마터면 먹던 밥을 도로 토해낼 뻔 했다. 저 쌀쌀맞은 페로가 가디언에게 저렇게까지 정성을 보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닭고기를 뜯던 다룬도 충격을 받았는지 닭날개를 쥔 채 잠시 멍 하니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페로는 아무렇지않은 흐뭇한 얼굴로 자기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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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이구나."
카렐과 마주앉은 세네피스 황후는 이번 원정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보고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렐은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뭣 씹은듯한 잔뜩 불만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후는 그런 카렐의 표정을 짐짓 못본 척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마중나와 기다리던 솔과 반가움을 나누려던 카렐은 그보다 먼저 선수를 친 황후에게 손목이 붙들려 만사 제쳐두고 이곳 오두막까지 '끌려' 올 수밖에 없었다.
"혼자마시니 영 재미가 없구나. 너도 들고라도 있거라."
세네피스 황후가 독한 리커를 잔에 조금 담아 카렐에게 내놓았다. 잔을 받아든 카렐은 단단히 삐졌는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8월 말에 제후회의가 있다. 내 이번에 북부로 돌아가 최고제후임을 확인시키고 와야겠다. 잘만 하면 북부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얻어낼수도 있을거다. 우리에겐 좋은 기회니 남은 3달동안 세를 최대한 불려놓아야 할 거다. 나중에 버릴 땐 버리더라도 일단은 페로 그자와 손을 잡는것도 좋겠지. 어쨌든 그쪽은 네가 잘 하고있을줄로 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오......"
황후가 잠시 말꼬리를 흐리며 여전히 뾰로통해져 있는 카렐의 눈치를 살폈다.
"황제는 최소 4명의 비빈을 두는 것이 원칙이니 미리 준비를 해 두어야겠구나. 내 북부에 가거든 그것도 알아보고 오마."
"벌써 그 이야기를 꺼내심은 시기상조인 듯 합니다. 아직 저희 세력은 미미하고......"
황후가 솔을 자신에게 떼어놓으려는 심사로 이 이야기를 미리 꺼냈음을 깨달은 카렐이 잽싸게 휘갑을 쳤지만 그 수법이 통할 황후가 아니었다.
"그래, 우리 세력이 미미하니 지금부터 준비를 하자는거다. 혼인을 통해 네 지지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니겠느냐. 아직 네 곁엔 변변한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4자리 모두가 비어있구나. 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솔은 아예 배제해버리는 황후의 태도에 순간 발끈 한 카렐의 턱에 힘줄이 곤두서고 있었다. 그런 카렐의 태도에 쐐기를 박듯 황후가 말을 이었다.
"1명의 황후와 1명의 황비, 2명의 황빈이 필요하되 이 4명은 모두 귀족이어야 한다. 넌 어차피 복원수술도 불가능하니 남자보다는 아이를 낳아줄 수 있는 여자가 좋겠구나."
"......"
가까스로 부아를 죽인 카렐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포고령 2차 추가령 98조에 따르면 황후위는 전혼(前婚)이 있어서는 아니되며, 자녀가 있어서도 아니되며, 부모 모두 귀족인 세습귀족에 한한다고 되어있다."
황후가 마지막 말에 특히 힘을 주어 말했다. '세습귀족'이라는 이 한마디에서 일단 솔은 탈락이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카렐이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힘없이 대답했다.
"알고있습니다."
"황후감을 고르는 건 네가 앞으로 큰 뜻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걸 명심해라. 뭐니뭐니해도 네게 큰 세력을 선사해줄 수 있는 막강한 뒷배경을 가지고있어야겠지. 황비와 황빈은 귀족이기만 하면 무방하다만 그 역시도 내게 힘이 될 가문과 지위를 가진 사람이어야 할거다."
카렐이 어머니의 얼굴을 갑자기 빤히 바라보았다. 바로 세네피스 황후 자신이 세째태자였던 오넬론을 세나우스 3세로 만들어준 그런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북부 최고제후 카파키 가의 막강한 힘을 이용해 남편을 황제에 올려주고 스스로도 황후에 올랐던 그는 이제 그 일을 입장만 바꾸어 다시 시도하라는 셈이었다.
"어머니같은 사람을 찾으라는 말씀이시군요."
카렐의 한마디에 갑자기 쓴웃음을 지은 세네피스 황후가 술잔을 기울였다.
"나만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으면 찾아보려무나. 솔 그런 천박한 것은 말고......"
세네피스 황후가 갑자기 묘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카렐은 손에 들고만 있던 술잔을 갑자기 치켜들고는 벌컥 들이켜버리고 말았다. 카렐의 이 돌발행동에 황후는 별로 놀라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없이 앉아있었다. 갑자기 얼굴이 검붉어진 카렐은 가슴을 움켜쥐며 천천히 옆으로 무너져내렸다.
"그래, 잘 자거라. 이 맹랑한 녀석."
황후가 흐뜨러진 테이블을 손수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독한 술기운에 그대로 정신을 잃은 카렐은 바닥에 깔린 대나무 돗자리 위에 침을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자신과의 속터지는 이야기를 더이상 이어가지 않겠다는 카렐의 소극적인 저항임을 모를 리 없었지만 어차피 할 말은 다 해버린 황후로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털가죽 담요를 가져다가 잠든 카렐의 몸에 정성껏 덮어준 세네피스 황후는 오두막 밖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토로 경의 호위를 받으며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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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이 급한 성격을 도대체..... 파트 2부터는 하루 1연재를 하려고 했는데 자꾸 2연참을 하고 있으니...... (혹시 연재속도가 너무 빠른 건 아닌지??)
파트 2 엔딩까지는 약 10회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파트 3, 4는 조금 짧습니다.
'혈맥'이라는 제목값을 본격적으로 하게 될 파트 5, 6까지는(실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이 등장하는 ^^;;; ) 빨리빨리 나가긴 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