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8 회: Part 2. 나를 잊지 말기를....... -- >
숙소로 돌아온 세네피스 황후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긴장한 표정을 애써 감추고 있는 아메스와, 그를 이곳까지 데려온 슈벨 수반이었다.
"페로 자이센 총리각하의 외동따님이신 아메스 로퍼크 자이센 님이십니다. 이번에 총리께서 보내주신 백만골드 상당의 황금과 20여명의 노예들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오만한 표정의 세네피스 황후가 제일 안쪽에 자리잡고 앉자 아메스가 그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아메스의 귀 밑에 새겨진 역삼각형의 선명한 상급귀족문과 자이센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머플러가 곁들여진 고급스러운 비단포는 그의 격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었다. 세네피스 황후가 슈벨 수반에게 나가보라며 손짓을 보냈다.
"먼저 문안드렸어야 하였사오나 아버님께서 보내주신 노예와 선물의 처리문제에 관해 공식적인 논의를 하느라 늦어졌사옵니다. 결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아메스가 황후에게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그의 세련된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황후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사실 싸움꾼과 거친 가디언들이나 득시글대는 이 정글 한구석에서 황후의 학식과 세련됨에 맞춰줄만한 '수준높은' 명문가 귀족이 있었을 턱이 만무했다.
간만에 격이 맞는 명문가 자제와 자리를 함께하게 된 세네피스 황후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이가 몇인가?"
"올해 30살이옵니다."
"집안은......"
"아버님 페로 슈트란 자이센은 현 총리대신이시고, 조부님이신 슈막 자이센 경께선 타르서스 지방장관을 지내시다가 퇴직하시어 수련장 운영에 힘쓰시던 중 돌아가셨습니다. 조모님이신 네베드 슈트란 부인께선 동부 최고제후 슈트란 가 직계셨으며, 어머님 마리안 세호 로퍼크 부인께선 20여년 전 돌아가셨으며, 외조부님이신 카를 로퍼크 경은 황실 개발국장 재직도중 돌아가셨고 외조모님이신 뤼렌 세호 님은 서부 제2제후 세호 가 종장님의 친여동생으로 현재 서부에서 살고계시옵니다."
"흠.......그정도면 완벽하지는 못해도 나무랄데는없는 가문이군."
더할나위없는 명문가 피를 고루 물려받은 자신에게 '완벽하지는 않다'는 사족이 왜 붙었는지 아메스는 잘 알고있었다.
중앙의 상급귀족가문 중 전공을 인정받아 가장 마지막으로 상급귀족가 승인을 받은 자이센 가문은 아이러니하게도 노예 출신이었다.
물론 단순히 벼락출세를 한 가문이라고 치부하기는 조금 어폐가 있는---옛 국제연합 친위군 소속 고위급 장성으로 가문의 시조였던 제수스 자이센이 포로 신분으로 몰락하면서 그 일가와 함께 노예로 전락했으니 노예치고는 꽤나 억울한 경우이기는 했다.---것이 사실이었지만, '노예출신 신흥가문'이라는 꼬리표는 아직까지도 이 잘난 가문에 묘한 컴플렉스로 남아있었다.
"잠깐,"
황후가 고개를 갑자기 조금 갸웃거렸다.
"어머니 이름이 뭐라했지?"
"마리안 세호 로퍼크. 로퍼크 가의 유일한 직계상속인이셨습니다. 현재는 소인이 로퍼크 가의 종손을 맡고 있사옵니다......그리고......솔의 생모이시기도 합니다."
솔 이야기에 황후가 얼굴을 조금 찌푸렸다.
"그래......그렇게 된 거군.....상급귀족 피가 섞였다더니.....그럼 너와는 이종자매 사이로군."
"그러하옵니다."
황후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바닥을 똑똑 두들겼다. 황후 나름대로 이 묘한 관계에 대한 이해를 따져보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런 험한곳에 자네같은 명문가 자제가 머무르긴....."
"태자전하와 함께할수만 있다면 사막 한중간이라도 못가겠사옵니까."
아메스는 스스로 내뱉는 말이 꽤나 유치하고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 유치함이 제역할을 발휘할 순간이었다. 그는 기왕 시작한김에 제대로 유치해지기로 맘먹었다.
"그분과 함께있으면 제 작은 가슴이 떨려올 정도이니 이곳에 머무는것이 어찌 고통스럽다 하겠습니까."
말을 하는 아메스 스스로도 그 표현의 저급스러움에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였지만 뭐, 원래 사랑타령하는 것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남이 들으면 그 유치함에 치를 떠는 것이 이상할것도 없었다. 아메스는 남극성당 재학중에 '남들 노는 만큼 놀아본 것'을 내심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어쨌든 세네피스 황후 역시 아메스의 말이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황후가 또다시 책상을 똑똑 두들기며 아메스의 위아래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물론 아메스는 이 순간 써먹을 카드 또한 가지고 있었다.
아메스는 옆에 내려놓았던 칠보상자---남극성당 학표가 새겨져있는---를 조심스럽게 들어 황후의 무릎 앞에 바쳤다. 학표를 본 황후의 표정이 확실히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 아메스가 바라던 대로였다. 잠시 말이 없던 황후가 약간 나즈막하게 아메스에게 물었다.
"네가 이곳과 무슨 관계가 있지?"
"십경과정 박사 생도였사옵니다."
순간 아메스를 바라보는 황후의 시선이 조금 떨리기 시작했다. 황후는 아메스에게 좀 더 가까이앉으라 손짓해보였다. 아메스는 미소띤 얼굴로 황후의 바로 앞에 마주앉았다.
"네 나이가 이제 겨우 서른이라면서, 벌써 박사생도라니.......대단하구나."
"소인의 아버님께서도 그곳에서 육서과정을 단 9년만에 마치셨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리고 소인의 작은할아버님이신 헤데론 자이센 경께서는 현 남극성당 대제학이시옵니다."
'노예출신 가문'이라는 황후의 드러나지 않는 멸시를 만회하려는 듯 아메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는 상자를 가리키며 다시한번 말했다.
"상자를 열어보시옵소서."
무심코 상자를 열었던 황후가 입을 조금 벌리고 아메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율서 총 8권이옵니다. 소인이 5년 전 남부에서 운좋게 구한 진품이옵니다. 선지자 리 리쿠께서 지으신 몇 안되는 유작중의 하나이며 표지에 수결도 되어있으니 소장가치가 충분할 것입니다. 황후폐하께 바치옵니다."
황후는 아메스가 바친 책들에 잠시 넋을 빼앗겨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메스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그런 황후의 앞에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싶던 황후가 칠보상자의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태자가 지금 술을 마시고 혼자 자고 있는 것 같더구나. 네가 가서 감기라도 들지 않게 오늘밤 잘 챙겨주거라."
동부제후들과 몇 중앙귀족들을 모아놓은 페로는 꽤 한참동안 아무말도 없었다. 다만 그의 옆에 앉은 페로의 작은아버지인 남극성당 대제학 헤데론 자이센이 분을 참지 못하고 계속 무어라 투덜대고 있을 따름이었다. 유학자들의 최고봉이라는 직위에 어울리지 않게 거구의 험상ㅤㄱㅜㅊ은 인상에 다혈질의 전형적인 '자이센 가문 사람'인 그는 남극성당에서 개혁파들을 쫓아내고 있다는, 카렐이 말했던 그 '꼴통' 대제학이었다.
원래 유학자라는 지위가 상무적인 기질의 자이센 가 사람들에게 꽤나 어울리지 않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유학자의 길을 밟을수밖에 없었던 건 그의 아버지이며 페로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가문 중시조 투모카프 자이센 경의 강요 때문이었다. 노예폭동 지도자에서 노예폭동 진압의 영웅으로, 그리고 제국 총리대신으로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었던 그는 '노예핏줄'이라는 가문의 이미지를 최대한 희석시키기 위해 둘째아들인 그를 반 강제로 유학자의 길에 들어서게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베흔 그 썩을새끼가 우리 자이센 가를 멸문시키겠다고 했다며? 망할녀석.....기껏 가디언 주제에......감히......"
"진정하십시오, 작은아버지. 어차피 언제 터져도 터질 일이었습니다.
"그래도말이야, 썅,"
"작은아버지!"
페로가 학자답지못하게 체통없이 구는 헤데론에게 대뜸 언성을 높였다. 헤데론은 그제서야 장조카 페로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입을 다물었다.
"카렐이 도움을 주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동부 최고제후 슈트란 가문의 보벤 슈트란이 약간 조심스럽게 물었다.
페로의 6촌 재종형이기도 한 그는 동부 최고제후 샤자한 슈트란 공의 장손자이기도 했다. 페로를 지원하는 동부측에서 가문 장손자까지 급파할 정도였으니 이번 기습사건은 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무너지면 자기들이 타겟이 되니까 자기네 잇속으로 도와준거지 내가 요구한건 아냐."
카렐의 도움을 최대한 평가절하한 페로가 사뭇 쌀쌀맞게 대꾸했다. 보벤 경이 질문을 이었다.
"아메스를 그리 보내셨다고 하던데......앞으로 녀석과 교류를 하실 예정입니까?
"손해볼건 없겠지.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페로는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로 창밖을 문득 바라보았다.
"엘러가 죽고 카인녀석이 배신해서 타격이 커. 일단 잘 구슬러 써먹은 다음에 나중에 적당한 때 버리면 되겠지. 그쪽엔 카렐, 네피, 조페에 이번엔 시로까지.....쟁쟁한 녀석들이 포진했으니......"
"하지만 영 명분이......그쪽은 도망가디언 무리에 옛 북부 반역자 패거리까지......"
보벤 경이 조금은 불만스런 얼굴로 중얼거렸다.
"북부 반역자 패거리라....."
갑자기 코웃음을 친 페로가 보벤 경을 힐끔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남부-서부가 친하고 북부-동부가 친하다는 단순한 인식은 사실 따져보면 문제가 조금 많았다. 북부가 세나우스 3세를 황제로 만들어냈을 때 동부는 로노 장태자를 지원하는 패착을 두었고, 북부가 근위대에 몰락할 때 동부는 그들의 지원요청을 묵살하면서 확실한 복수를 했던 터였다. 어쨌든 북부와 동부의 사이는 북부의 몰락 이후로는 도리어 조금 나쁘다고 하는 편이 정확했으니 보벤 경이 세네피스 황후의 세력들을 '북부 반역자'라고 서슴없이 부르는 것도 별로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절반만 동부인인 페로에게는 그까짓 제후들간의 알력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페로가 옆에 앉은 미녀가 올린 술잔을 받아들며 대꾸했다.
"그쪽은 무식한 노예폭동 패거리들하고는 질이 달라. 평민계급이 주축이고 선대황제 전기때 관료를 지낸 엘리트 귀족들이 수뇌부를 이루고 있어. 게다가 누가봐도 구린내 풀풀 나는 음모때문에 유폐되었던 전 황후까지 모시고 있지......명분 운운하면서 무시할수는 없는 세력이란 말이야. 특히나......녀석들이 돈많은 북부와 줄이 닿을 수 있다면 무섭게 도약할 게 확실해."
"그 약아빠진 돈버러지 북부녀석들이 몰락한 황후 편을 쉽사리 들어주겠습니까? 게다가 그쪽에는 내세울 제위 후보도 없고."
동부제후들이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자 페로는 술 한모금을 들이키고는 방금전보다 단호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겐 다행 아니겠는가. 자기네 세력도 내 밑에서 한자리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야 북부에 콩고물이라도 달라고 손내밀 수 있을테니. 뭐 지금 당장으로서는 양쪽이 크게 손해볼건 없잖나. 근위대하고는 기왕 터져버린 싸움이니."
페로의 미간에 약간 주름이 잡혔다. 들릴듯말듯 한숨을 내쉰 페로는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쨌든 오늘 저녁엔 근위대 녀석들을 물리친 기념으로 남측 대청에서 큰 잔치가 있을 것이니 여러분들 모두 참석해주시게."
페로의 건재함을 확인한 동부제후들과 중앙귀족들이 기쁜 얼굴로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자리에 혼자 남겨진 페로는 약간 심난한 듯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아프신가요?"
페로를 수발하던 미녀가 옷자락으로 그의 코 밑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병풍에 기대앉은 페로는 자신의 넓은 어깨에 뺨을 기댄 채 가슴을 자극적으로 어루만지고 있는 그 갈색머리 노예미녀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살폈다. 페로가 그답지않은 미소를 지으며 여자의 턱을 쓰다듬었다.
"오늘저녁 내 침소에 들어라."
순간 깜짝 놀란 미녀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남쪽 안채에 5백여명의 미남미녀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하렘를 거느린 페로가 정작 자신의 미녀들과 잠자리에 드는 날은 그리 많치 않았다. 그들의 주 목적은 페로 관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면 와보고싶어 안달할' 곳으로 만드는 그것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페로는 어딘지 이상했다.
미녀의 갈색빛 고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페로가 한마디 덧붙였다.
"머리칼이 정말 예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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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에 대한 '엉큼한 생각'으로 며칠을 전전긍긍하던 페로는 결국 하루를 잡아서 숙소를 찾아가기로 맘먹었다. 옆 숙소를 쓰는 다룬과 네피를 이런저런 임무를 주어 멀찌감치 내보내버린 페로는 하루 일과를 끝낸 카렐이 들어와 쉬고있을 저녁시간을 골라 '지도가디언 숙소'를 몰래 찾아갔다. 멀쩡한 자신의 집 안에서 몰래 움직인다는 게 꽤나 웃긴 일이기는 했지만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옛말에서 페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카렐의 옛 물건들이 가득 담긴 검은 상자를 껴안고 카렐의 숙소에 도착한 페로는 상자를 일단 문 밖에 내려놓고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누군가?"
욕실 안에서 들리는 카렐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페로가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나야."
무슨 이유엔지 욕실 안에서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문을 완전히 닫고 안에 들어선 페로는 욕실 문 앞에 벗어져있는 카렐의 옷가지들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카렐의 꽤나 당황한듯한 목소리가 뒤이어 들려왔다.
"나......지금 목욕하는데......"
"걱정 마. 안볼께. 나올때 얘기해. 불 꺼놓을테니까."
가디언답지않게 부끄럼을 타는 카렐의 모습에 페로가 또다시 웃음짓고 있었다.
페로는 단출하게 정리된 카렐의 방 안을 빙 둘러보았다. 제일 안쪽의 단정한 이부자리와 무기장, 그리고 오늘 아침 남부에서 도착했다는 카렐의 개인 짐들까지 수납장에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꽤 많은 마른 꽃잎병들과 작은 병에 들어있는 씨앗들, 그리고 화초에 관한 꽤 많은 책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어릴때와 다름없는 그 모습에 페로가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유학 책이 꽤 많네?"
"으, 응,"
욕실 안의 카렐은 여전히 자신의 존재에 꽤 당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지금 나갈건데.....내 옷 좀 안에 넣어줘....."
"괜찮다니까. 나와서 입어. 안 본다니까. 불 꺼놓을께."
정말로 불을 끈 페로는 뒤로 휙 돌아섰다. 욕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물을 질척거리며 카렐이 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보지 마."
"보이지도 않아. 걱정 마."
말로는 그러면서도 페로는 자신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온갖 '저질스런 생각들'에 온몸이 꿈틀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욕실에서 나온 카렐이 몸에서 물기를 닦아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페로는 가디언인 카렐은 이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움직임을 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다. 약속을 어기고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오는 페로의 모습에 카렐이 질겁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오지 말라니까."
"괜찮아. 한번만 안아보고 싶어서 그래."
"옷만 입거든, 제발,"
속옷도 미처 다 챙겨입지 못한 카렐이 급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나......난......."
"정말이야, 그냥 안아보고 싶은 것 뿐이야."
자신의 뻔한 거짓말에 카렐의 마음이 약해진 틈을 타 페로가 어둠 속에서 실루엣만 보이는 카렐의 허리를 와락 부둥켜안았다.
"어, 엇......"
순간적으로 움찔 한 페로가 카렐의 허리를 돌려안았던 손을 확 놓아버리고 말았다. 어둠속에서 만져진 카렐의 몸의 감촉은 절대 사람 몸의 그것이 아니었다. 온기라고는 없는 싸늘한 그 몸은 마치 돌처럼 딱딱했고 혈관과 근육이 우둘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가슴 또한 전혀 없었다.
"뭐야......이건 도대체......"
페로의 태도에 충격을 받은 카렐이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하듯 말했다.
"제발, 페로 물러서 줘,"
"이게 뭐냐구!"
페로는 자신이 카렐의 가장 예민한 컴플렉스를 건드리고 말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할 실수를 또한번 저지르고 말았다.
"불!"
아직 옷을 미처 챙겨입지 못한 카렐이 갑자기 켜진 조명 아래서 경악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파랗게 질린 페로의 눈앞에는 충격스런 모습의 카렐의 몸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굵은 핏줄들과 붉은빛 근육이 그대로 드러난, 해부학 책이나 아이들 동화책에 괴물로나 나옴직한 끔찍한 모습이 그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난......몸이 이래서......"
카렐이 몸을 움츠리며 바닥에 꿇어앉아버렸다. 더이상의 말이 입밖으로 도저히 나오지 않는지 카렐은 입만 오물거리고 있었다.
"너......너 사람 맞아?"
말을 뱉는 순간까지도 페로는 자신의 무책임한 말이 카렐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페로에게서 내심 '이해'를 바랐을 카렐은 믿었던 페로가 보인 너무나 뜻밖의 태도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됐어......잘 자......나 가볼께."
바닥에 주저앉은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있는 카렐을 방 안에 그대로 버려둔 페로는 문을 열고 허둥지둥 가디언 숙소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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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어떤 분의 질문에 대한 답변 드립니다. 황후, 태후에 대한 호칭은 '폐하'가 맞습니다. 사극에서 황후마마, 태후마마라고 일상적으로 많이 나오지만 잘못된 고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황제폐하'라는 호칭도 3인칭에서는 '황상'이라는 표현이 더 일상적이라고 합니다. (황상=황제 폐하 이므로 황상폐하는 동어반복으로 틀린 표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제후국 수준에서 호칭이 통일되었으므로 호칭 역시 한단계식 하향되어
주상 = 국왕 전하 ===> 위에서 적은 것과 같은 이유로 '주상 전하'는 틀린 표현입니다.
세자 저하
대군
황제국에서는 다음과같이 호칭하였습니다.
황제, 황후, 태후 -> 폐하
황태자 -> 전하 (제 글에서는 장태자와 황후 바로 아래의 황비가 이 호칭을 받습니다.)
태자 -> 저하
제 글에서의 호칭과 계급체계, 역사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이후 글에서 조금씩 서술될 예정이지만 혹시라도 호기심이 있으신 분은 [작가공지]에 있는 내용을 참고하시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