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60화 (60/1,132)

< -- 60 회: Part 3. A China Aster for Me -- >

25.

남반구 타르서스는 황제령에 속하면서도 황제의 직접지배는 받지 않는 약간 묘한 곳이었다. 크기만으로는 북반구의 프라임 지역에 맞먹는 넓은 지역이었지만 실상 땅덩이의 절반을 차지하는 북부는 황량하기로 소문난 타르서스 대사막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온화하고 비옥한 지역인 동북부 해안의 수에니 반도 역시도 황실의 경제특구로 프라임 지역 출신의 부유한 귀족들이 몰려사는, 빈곤한 타르서스 사람들과는 '딴세상'일 따름이었다.

그나마 살만하다는 남부지역도 해안가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반건조지역으로  프라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도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군데군데 오아시스나 호수를 중심으로 흩어진 고만고만한 마을들이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한때 이 행성의 원주민이었던 타르서스인들의 독특한 근성은 '한명이 있을때는 투사, 두명이 있으면 깡패, 세 명이 모이면 하나는 죽고, 넷이 모이면 하나도 안남는다'는 프라임 사람들의 놀림처럼 거칠고 난폭하지만 단합이라고는 도무지 되지를 않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했다.

결국 이 행성이 황제령으로 선포되면서 비옥한 프라임지역을 이주민에게 넘겨주고 이 황량한 땅으로 쫓겨나게 되었음에도 변변한 저항 한 번 벌여본 일이 없었다는 것이 이들에게 별로 이상한일도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프라임 지역에서 파견된 지방장관이 있을때는 도리어 조용하다가도, 드물게 같은 타르서스인이 장관에 오르기라도 하는 날에는 갖은 폭동과 범죄, 비난이 판을 치는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곤 하던 터였다.

현 타르서스 지방장관인 볼토 트라우제도 이런 타르서스인들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는 있었지만, 타르서스인인 그 자신도 지금까지의 이런 '역사'에서 별로 자유롭지는 못했다.

무역으로 큰 돈을 번 대상인으로 알려진 그는 귀족이 아닌 평민출신의 최초의 장관으로도 유명했지만 정작 같은 타르서스인들에게는 황실을 돈으로 매수해 장관에 오른 부패한 인물이라는 비난부터 시작해서, 프라임 사람을 부인으로 두었다는 사생활문제는 물론이고, 상권을 키우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기 경쟁해야 했던 악의에 찬 옛 경업자들이 퍼뜨리는 갖은 얼토당토않은 헛소문들까지 그의 지위를 계속해서 괴롭혀오고 있었다.

게다가 세나우스 3세 황제의 서거 직전 장관에 오른 그는 황제의 갑작스런 죽음과 거물들의 제위다툼에 괜히 그 불똥이 자기지역으로 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느라 하루하루가 말 그대로 지옥같은 나날들이었다. 이러던 그에게 황궁에서 갑자기 날아온 친서는 그야말로 '간이 콩알만해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근위대장이 여길 온다니......내내 조용하더니......도대체 무슨 꿍꿍일까요?"

측근 세닌이 침울한 표정의 장관의 눈치를 힐끗 보았다.

"모르긴몰라도 썩 유쾌한일은 아니겠지. 그것도 오늘 저녁이라니....."

한숨을 한 번 내쉰 볼토는 오아시스가 내려다보이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만일을 대비해.....우리 재정상태 미리 파악해두도록 해. 최대한 동원가능한 여유자금 알아보고. 그리고.....파티준비하고 챙겨줄 선물 잊지말게."

"일단 비상체계를 구축합니다."

카렐을 면회하고 나온 우베가 전사단 간부을 모아놓고 입을 열었다. 마을회관에 모인 전사단 간부들이 저으기 걱정스런 표정으로 지난번의 슈벨 수반 등용에 이어 이번엔 또 무슨 '깜짝배치'가 나올지 한마디씩 나누고 있었다. 특히나 지난번의 전투에서 페로에게 호되게 당했던 토로 경은 이번에 행여 최악의 이동이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우베가 적어나온 메모를 읽기 시작했다.

"구완 슈벨 경은 내무대신으로서 계속 전사단의 운영를 총괄합니다. 또한 전사단의 내무조직은 변화없이 그대로 운영합니다."

구완 경이 내심 안도하며 주변사람들에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내무를 담당해오던 인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비상체계'의 핵심은 군 조직이라는 뜻이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그들을 돌아본 우베가 입을 열었다.

"기사단, 가디언과 정규군 제도를 총괄할 통합조직인 병부를 신설하며, 그 총책임자인 병부대신에는 토로 로버넬 경을 임명합니다."

강등이 아니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던 토로 경은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네르와 네피가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보일듯말듯 얼굴을 조금 찌푸리고 있었다.

"병부대신 밑에는 직속으로 군의 지원조직을 운영할 병참부를 설치하며 병참부장은......아메스 로퍼크 자이센이 맡습니다."

뒷꽁무니에 말없이 서 있던 아메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렐의 뜻을 제일먼저 눈치챈 제네르가 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군의 야전을 총괄할 군령부를 두며, 대군령으로는 가디언 네피를 임명합니다. 군령부의 핵심조직인 슈로 기사단장에는 제네르 딜라코프 하크로딘 경을 임명하며, 경은 대군령의 참모를 겸임합니다."

아메스에 이어 제네르의 파격적 승진에 자리에 모인 몇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슈로 기사단이 구귀족인 토로 경의 손을 떠나 카렐의 새 오른팔인 젊은 제네르의 손에 들어오게 된 셈이었다.

지금까지 기사단을 키워온 토로 경은 자신과 별다른 친분도 없는 일개 마궁수 출신의 유학자에게 기사단이 넘어가게 된 데 섭섭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페로에게 망신을 당하고 난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함부로 그런 기분을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조페가 옆에 선 시로의 귀에 대고 킬킬거리며 속삭여주었다.

"토로 경은 빈껍데기만 먹었군."

"그동안 가디언 네피가 이끌던 가디언부대는 이제 가디언 시로가 담당합니다. 가디언 조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군령부 최대조직인 정규군 부대장을 담당합니다. 이상입니다."

드디어 공식직함을 얻게 된 시로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시로와 정규군 지휘를 나누어먹어야 하는것이 아닌지 내심 걱정하던 조페도 자리를 지킨 데 나름대로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메스가 새로 상관이 된 토로 경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여보이며 공손히 말했다.

"아낌없는 지도편달 부탁드리옵니다."

아메스의 이 공치사가 채 절반도 진실이 아니라는 건 알 사람은 다 알 사실이었다. 전사단 내에서 사사건건 참견하려 드는 구귀족세력에 대한 카렐의 길들이기가 드디어 시작된 것은 확실했고, 그 첫번째 목표가 된 것이 안그래도 지난번 북극전투에서 미운털이 박힌 토로 경이 된 셈이었다.

그래도 참수형을 당해도 부족했을 판에 명분만이라도 건졌으니 토로 경 입장에서도 일단은 수긍하는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꿰차고앉은 제네르를 돌아보며 한숨을 한 번 내쉬었을 따름이었다.

"결국 병부는 전하께서 사실상 완전장악하신 셈이군."

제네르가 아메스에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메스도 웃음띤 얼굴로 고개를 조금 끄덕거려보였다.

지난번 페로 관에서 카렐에게 당했던 황당한 사건 이후 내내 의기소침했던 수우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거의 바깥출입도 하지 않은 채 황궁의 화려한 침실 안에서 미녀들과의 환락에 몸을 내맡긴 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에 가장 분통을 터뜨리는 건 다름아닌 그의 형 제롬이었다.

"망할새끼!"

무심코 수우를 찾았던 제롬 공은 대낮까지 침대 위에서 두 명의 여자들과 알몸으로 딩굴던 동생의 한심한 모습에 소리를 버럭 질러버리고 말았다. 상복차림의 제롬은 여자들을 쫓아버리고는 동생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난생 처음 형에게 얻어맞은 수우는 잠시 황당한 표정으로 멍 하니 주저앉아있었다. 제롬은 동생에게서 풍기는 지독한 술냄새에 이를 드러내며 고함을 질렀다.

"지금이 어느때인지 알기나 하는거야!"

"죄송합니다.....형님......."

"네가 페로 그새끼 절반만큼만 잘났어도 이미 황제가 열번은 됐을거다! 망할 놈."

풀죽은 수우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흐느끼며 말했다.

"전......황제같은 건 되고싶지 않아요......"

"닥쳐!"

제롬이 대뜸 언성을 높이며 동생의 목을 움켜잡았다. 크고 당당한 체구의 제롬의 손에 목을 붙들린 수우는 마치 어른에게 멱살잡힌 어린애의 몰골이나 다름없었다. 수우가 버둥거리며 숨을 캑캑거렸다.

"아버지가 널 제위후계자로 만들려고 얼마나 많은 재산을 쏟아부었는지 알기나 하는거야? 닥치고 내 말 똑똑히 들어. 난 이제 남부최고제후가 됐다. 이제 네가 황제만 되면 우리 델루지 가가 사실상 제국을 지배하는 거야. 이건 네가 좋아하고 말고가 아니고 가문의 명령이다. 알았냐! 통치하기 싫어? 그래, 그럼 내가 대신 해주지. 황제가 되어주기만 하면 그걸로 네 역할은 끝이야."

동생을 침대 위에 내동댕이친 제롬 공은 숨을 씩씩거리며 한심한 몰골의 동생을 째려보았다. 뒤에서 이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베흔이 천천히 나서 흥분한 제롬 공의 어깨를 붙들었다.

"진정하십시오. 지금 아버님을 잃으신 충격에 잠시 그러신 것이오니 전하께 마음을 다잡을 시간을 주심이 옳을것이옵니다."

"한심한 새끼,"

제롬 공이 씩씩거리던 호흡을 가다듬으며 한심한 동생에게서 고개를 휙 돌려버리고 말았다.

"근위대장은 웬일이야?"

"두분과 상의할 문제가 있사옵니다."

"뭘?"

베흔은 여전히 툴툴거리고 있는 제롬에게 몇 장의 서류를 내보이며 말했다.

"지금 황제령의 분위기로 보아서는 제후지역 파견군들을 다시 불러들여야 할 것 같사옵니다. 아시다시피 ㅤㅋㅞㄹ크의 군세가 점점 막강해지고 페로와 제대로 연합한다면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그런데 파견군에서 얻는 수입이 지금 황실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고 하던데.....그리고 13만이나 되는 파견군을 다 불러들이면 그 운용비용도 다 황실이 부담할 수 있는건가? 그건 어떻게 감당하려고?"

"예. 그게 문젭니다. 그래서 공께 상의드리려 하는 것 아닙니까. 파견군 13만 중에 8만이 남부와 서부제후지역에 배치되어있으니......그들 중 일부만이라도 불러들이려 합니다."

제롬이 의심이 그득한 얼굴로 베흔이 내민 서류를 받아들었다.

"현재 황실 예비예산이 4억입니다. 추경예산을 빼고 이 돈으로는 파견군 8만을 불러들이면 겨우 9개월정도 지탱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게다가 이들을 뺄 경우 남부와 서부에서 황실에 바치는 세금 중에 3억이 감소하기 때문에.....실상 6개월을 버티는것이 고작입니다."

"결론부터 말하게. 돈이 필요하다는건가?"

제롬 공이 떨떠름한 얼굴로 베흔을 돌아보았지만 베흔은 약간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물론 직접적으로는 아닙니다."

"그럼?"

"대신 남부와 서부에서 제후군 7만을 근위대에 빌려주십시오. 근위대가 물러난 자리를 그녀석들로 메우겠습니다.

"큭, 밑의돌 빼서 윗돌 메우는건가? 완전 말장난이군."

"남부와 서부 제후군이 황제령에 함부로 들어왔다가 큰 전쟁으로 번지는것보다는 낫지요."

베흔의 거의 협박에 가까운 한마디에 빈정대던 제롬이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어차피 공께서도 지역의 치안권까지 장악할 수 있는 기회니 손해만은 아닐텐데요......서부 최고제후 플레렌 가의 수장은 명목상 네페티 부인께서 맡고 있사오니 공께서 결단만 내려주시면 서부는 자연히 따라올 것이옵니다. 황제령에 진주한 7만의 군비는.....제가 다른 수를 강구하는 중입니다."

"토로 경은 적당히 체면만 살려줬고......네피도 싸움은 잘하지만 그다지 전략에 밝은 사람은 못되니......대군령이란 직위도 결국 싸움에 앞장세울 그저그런 명목이겠군......사실상 군권을 잡은 건......제네르라......성을 보니까 동부제후가문 출신같던데, 유명한 개혁파 유학자라는 것밖에 몰라. 자네 혹시 아나?"

자리에 앉아 아메스가 보내온 보고서를 살피던 페로가 앞에 앉은 보벤 경에게 물었다. 북극에서의 사건 이후 수척해졌던 페로도 며칠새 전같은 혈기를 회복해 있었다.

"개인적으로 남극성당 1년 후배이옵니다."

"그래?"

페로가 탁자에 바싹 붙어앉으며 보벤 경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3제후 하크로딘 가 4대손으로 알고있습니다. 종가와는 촌수가 먼 하급귀족이라고 하더군요. 4차 혼란기때 로노 태자군의 일원으로 지원해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서 남부하고 북부제후지역에서 꽤 오래 억류생활했다고 들었습니다. 나이는 250살 정도 될겁니다. 그나이까지 결혼 한번 안한 거 보면 좀 괴상한 여자죠."

말하던 보벤 경이 말하는 자기도 조금 기가막힌지 눈을 쫑긋거렸다.

"풀려나면서 남극성당에 늦깎이 생도로 들어왔는데 이름만 귀족인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서 학비마련한다고 별 잡일 다하기로 유명했었죠. 보수가 제일 많은 화장실하고 주방청소만 도맡아서 동기들이 '구정물통 제네르'라고 놀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전혀 안그래보이던데. 근데.....250살이나 된 여자가 아직 한번도 결혼도 안했다고? 거 참......혹시 몰래 연애질이라도 했던 거 아냐?"

페로의 질문에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던 보벤 경이 어깨를 으쓱 하며 어영부영 넘어가고 있었다.

"그게......실은......아닙니다. 병법학 전공으로 경세지학 상급교수까지 올랐다고는 하던데, 윗사람한테 독설이 심해서 10년도 못가 짤렸다고 하더군요. 개혁파 유학자들의 지도자격인 인물입니다만 좀 유학자답지않게 구는 면이 있긴 하죠."

"훗, 그런 것 같긴하더군. 어쨌든......그쪽에서 제일 쓸만한 인물같긴 했어......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었군.......그럼, 우베인가 하는 쬐끄만 녀석은?"

가지고있던 자료를 뒤적거린 보벤 경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우베 마르코스. 159세. 타르서스의 평민계급 출신입니다. 타르서스 중부 소도시의 가난한 상인집안 아들이고, 정규학력은 어릴때 지방 자선학교에서 6년간 수학한 것이 고작입니다. 이인간 전력이 정말로 화려한데....."

보벤 경이 파일에서 뭐 대단한 것이라도 발견했는지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말을 이었다.

"스무살때부터 약 이십년정도 낙타몰이꾼으로 일하다가.......삼십년정도 제후지역을 떠돌며 보따리장사를 했다고 하는데 꽤 잘나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탕' 벌리다가 강도떼를 만나서 쫄딱 망했다고 하는군요. 그 '한탕'이 무언지는 절대 얘기 안하는것으로 보아서 썩 합법적인 일이었던것같지는 않습니다."

그 뻣뻣하던 페로가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뒤로 자주성가해서 고향에 돌아와 이십년 정도 부모 장사를 물려받아서 했다고 하는데, 부패한 지방관료에게 뇌물을 제대로 안바친덕에 가게가 군인들한테 박살이 나서......친구들을 모아 의용군을 조직해서 그 관료를 습격했다가 쫓기는 신세가 됐다고 합니다. 그 뒤로 서부제후지역으로 도망가서 사십년정도 가명으로 다시 보따리장사를 해서 돈 꽤나 모았다는데.....슈벨 경을 만나 그쪽 비밀조직 일원에 자금줄 노릇을 하다가 조직이 근위대에 와해되면서 또 쫄딱 망해서 슈벨 경과 함께 네피 무리에 가담한 모양입니다. 어디가도 굶어죽지는 않을 놈 같습니다."

"별......희한한 놈들이 다 모였군......."

페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신봉자인 페로는 노예만 아니라면 신분 같은 건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저런 '해괴한' 전력을 가진 녀석까지 수하로 둘 생각은 해 본 일이 없었다.

"음.....출신은 좀 그렇지만 두뇌가 대단히 명석하고 상황판단이 빠른데다가 평소에도 이것저것 공부하는 학구파라고 합니다. 뭐, 그다지 학문적인 건 아닌 듯 하지만....어쨌든 한 번 믿음을 준 사람에게는 절대충성하는 완고한 면도 있다는군요."

페로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벤 경이 내민 자료를 뒤적거렸다.

보벤 경이 머리를 숙여보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특이한 건 이번에 아메스 아씨가 중용된 점입니다."

"이상할것도 없지."

페로가 ㅤㅇㅑㅍ으로 약간 삐딱하게 앉으며 중얼거렸다.

"지원이란 게 결국 우리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일이니......우리하고 손발을 맞추기 위한 것일테고......나중에 토로 경이 다시 좀 기가 살아나서 좀 휘둘러보려고 나설 때 거기 휘둘리지 않을 젊고, 배짱있고, 적당히 싸가지없는 그런 녀석이 필요할테니까.....아메스한테도 좋은 경험 쌓을 기회지."

페로의 뜻밖의 어휘사용에 보벤 경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페로가 약간 작은 목소리로 보벤 경에게 다시 물었다.

"카렐의 병세에 관한 정보는?"

"글쎄요. 그쪽 정보는 워낙 틀어막고 있어서.......아메스 아씨 말씀으로는 10일째 측근 보좌관 우베와 황후 외에는 아무도 만나고있지 않다고 합니다.

"훗, 이기회에 측근들의 충성도를 테스트해보려는 모양이지."

페로가 자료들을 읽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회복이 많이 더딘 모양입니다. 게다가 그쪽 형편에 제대로된 치료를 할만한 상황도 아닐테니...."

회복이 더디다는, 그다지 좋지않은 소식에 페로가 어두운 얼굴로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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