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1 회: Part 3. A China Aster for Me -- >
"바쁘신 근위대장께서 어찌 이런 외진 곳까지 행차하셨습니까."
미리 기다리던 볼토 트라우제 장관이 베흔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사뭇 밝은 표정으로 셔틀에서 내려선 베흔은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47층 규모의 타르서스 지방정부 청사 겸 장관 관저인 거대한 타르서스 별궁을 잠시 빙 둘러보았다.
타르서스 망명정부시절 세나우스 2세의 명으로 세워진 이 별궁은 40여년간 황제가 직접 머물렀던 궁전답게 서부풍의 호화로움이 주변을 둘러싼 누런 사막의 황량함을 압도하고 있었다.
볼토는 그때까지도 허리를 굽힌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굽신거리는 장관의 모습을 짐짓 못본 척 딴청을 피우던 베흔은 한참 후에야 고개숙인 볼토에게 머리를 한 번 까딱 해 보였다.
"환대 감사합니다. 별궁의 위용에 놀라서......싹 고치셨군요?"
"특별히 고쳤다기보다는......지난 봄에 모래바람으로 망가진 것을 손본 것일 뿐입니다."
트라우제 장관의 변명아닌 변명에 한 번 씨익 웃어보인 베흔은 장관의 인도를 따라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듣자하니 여전히 이쪽은 여전히 시끄럽던데......"
"타르서스인들이 원래 좀 그렇지요......언제는 조용했습니까."
장관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의 골아픈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베흔이 능글맞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쯧쯧......장관도 타르서스인이신데......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시겠군요."
별궁 접객실에 들어선 베흔은 미리 차려져있는 화려한 만찬석상에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파란빛 벽화로 가득히 채색된 거대한 돔은 1번 도시의 주궁에 비해서도 크게 떨어지지 않을만큼 화사한 색채를 자랑하고 있었다.곱게 단장한 미녀 한 명이 다가와 베흔의 어깨에서 망토를 끌러 받아들고는 자리를 당겨주었다.
"역시, 상인 출신이신 트라우제 장관이시라 접대준비는 대단하시군요."
"기꺼이 받아주시니 감사하옵니다."
베흔과 나란히 앉은 볼토 트라우제 장관은 앉은 자리가 영 가시방석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최대한 애쓰며 좌우에 앉은 수에보과 쿠베에게도 한번씩 눈인사를 던져보였다.
"타르서스의 미녀들은 야성적이고 섹시한걸로 유명하던데......장관은 왜 프라임 여자하고 결혼하셨는지 참 신기하구려."
베흔이 자신의 시중을 드는 미녀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며 무례한 언사를 늘어놓았지만 볼토는 난처한 얼굴로 옆에 앉은 부인의 눈치를 보는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보시다시피 빼어난 미녀들이 많습니다. 필요하시다면......원하시는만큼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후훗, 장관께선 제가 가디언이란 걸 잊으신 모양이군요,"
볼토가 베흔의 능청스런 대답에 또한번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즐기는데 가디언이고 누구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오늘밤 묵으실 처소에도 특별히 고른 최고의 미녀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런이런, 이러다가 제가 음탕한 짓 하러 여기 온 걸로 오해받겠습니다. 허나......뭐, 장관께서 원하신다면 황궁에 데려가 시녀로 쓸 미녀들 얼마간 정도는......"
볼토의 눈짓에 대기하던 세닌이 미리 단장시켜두었던 삼십여명의 미녀들을 데리고나와 베흔에게 인사를 하게 했다. 트라우제 장관의 뜻밖의 선물에 기분이 한결 더 좋아진 베흔은 모두에게 술잔을 권하며 그다운 넉살을 있는대로 발휘하고 있었다.
공식 만찬이 끝나고 관계없는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자 더 좌불안석이 된 볼토는 물을 한 컵 들이키며 숨을 가다듬었다. 이제 베흔이 무슨 생각을 품고 왔는지가 슬슬 드러날 순간이었다.
"이정도 단장하는데 돈이 얼마나 드셨죠?"
결국 베흔이 기다리던 말을 시작하자 볼토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베흔이 오늘 찾아온 목적이 '돈'이라는 생각이 이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친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약 천만정도....."
"흠......이 별궁이 황실재산이라는 건 아시고 계시죠?"
베흔의 한마디에 장관은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띵 해졌다.
"......저도 전임자에게서 그냥 물려받은거라서......"
볼토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베흔은 그가 채 변명할 시간도 주지 않고 계속 몰아붙였다.
"지방장관 공식관저는 별궁 밑에 이미 있는 걸로 압니다만."
"하지만 그곳은 너무 협소하고......팔백명이나 되는 관리들이 일하기는 턱없이 작아서.....어쩔수없이 이곳을......"
"그러시군요."
베흔이 얼핏 수긍한 듯 씨익 웃어보이며 술 한모금을 들이켰다.
"듣자하니 지난번에 황실에 바치신 기부재산때문에 타르서스인들로부터 비난이 말이 아니라던데......"
잔뜩 긴장한 볼토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베흔이 여전히 웃는 낯으로 중얼거렸다.
"장부상에는 이 별궁 사용료를 매년 황실에 내고 있는 걸로 되어있다구요?"
할 말이 막혀버린 볼토가 꺼질 듯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사실을 해명하는 문제가 아닌, 도대체 얼마 정도면 입막음을 할 수 있을지를 따지는 무수한 숫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매년 천만이나 되는 그 장부상의 사용료는 다 어디로 사라진건지......참으로 궁금하군요."
"하지만.......아시다시피......그건 근위대 지시로 직접 전달......"
"어허, 지금 저희 근위대를 매도하시려는 겁니까?"
베흔의 날카로운 눈이 볼토를 똑바로 향했다. 잠시 마음을 다잡은 장관은 베흔에게나 겨우 들릴듯말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나......필요하십니까?"
그제야 기다리던 말이 나오자 베흔이 싱글벙글 웃으며 사과 한 개를 집어들고 씹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단사용한 비용에......뭐, 구차하게 이자같은 건 무시하고......아참, 수리비용을 지출하셨다니 그것도 생각해 드린다면 5억 정도."
볼토의 숨이 탁 막혀왔다. 5억 골드라면 엔간한 작은 제후가의 1년 총 예산에 육박하는 막대한 금액이었다.
"그건......도저히......"
"장관님 하시는 사업 연 매출이 10억을 넘는다면서요. 각지에 보유하신 부동산만도......"
베흔이 미소까지 지으며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정신이 아찔해온 장관은 눈을 감은 채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베흔이 술잔을 들이키며 나즈막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타르서스인 출신 장관이 넷이나 있었는데......사고로 죽은 한명만 빼고......모두 같은 타르서스인의 폭동이나 암살로 죽었다죠.......프라임 출신 장관에게는 한번도 불상사가 없었는데......거, 참......재밌는 민족이군요."
듣다못한 볼토가 결국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다만......당장 그런 큰 돈을 마련하기는......2개월 후에 드리겠습니다."
"1개월."
베흔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다시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였던 장관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릴수밖에 없었다.
"자아, 그럼 전 이만,"
사과 한 개를 더 집어든 베흔이 자리를 툭툭 털며 일어나자 볼토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어, 영빈관에 숙소 마련해뒀는데......"
"아뇨, 오늘밤에 할 일이 많아서. 호의는 나중에 받도록 하죠. 나오실 필요 없습니다."
함께온 쿠베에게 받은 선물과 미녀들을 챙기라며 눈짓을 보낸 베흔은 만류하는 볼토를 뒤로하고 별궁 접객실을 냉랭한 태도로 나서고 있었다.
어느새 휑 해져버린 접객실에 멍 하니 선 볼토는 지끈지끈 아파오는 이마를 싸쥐며 자기도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내 이 망할 관직이라는 걸 탐내는 게 아니었는데......"
당장이라도 통곡을 터뜨릴 듯한 주인의 침울한 모습을 바라보며 측근인 세닌 역시 잠시 말을 아껴두고 있었다.
"가능한가? 세닌?"
주인의 떨리는 목소리에 장부를 들고있던 세닌이 힘없이 대답했다.
"가진 채권을 모두 내다팔아도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건 2억이 고작입니다. 부동산들은 모두 담보가 설정되어 있는 상황이라서......매각해도 남을 돈이 없습니다."
"차관을 내면?"
"3억의 차관에 대한 이자비용이 너무 큽니다. 안그래도 요즘 경기도 그렇고.....상당한 위험을 감수하셔야......"
절망적인 대답들에 볼토의 입에서 또한번의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천천히 고개를 치켜든 볼토는 무언가 다짐한 듯 그 검은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바로 옆에 선 세닌을 돌아보았다.
"별 수 없군."
타르서스에서의 일이 생각대로 잘 풀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베흔에게 오늘따라 황궁에서 자신을 맞아주는 제파의 얼굴이 평소보다 두배는 더 이뻐보이고 있었다.
"낮에 출발한 파견군 1진 2만명이 방금 도착했습니다. 황궁 광장에 대기중입니다."
"좋아, 좋아,"
베흔이 기분이 좋은지 손뼉을 짝짝 치며 대답했다. 제롬에게서 동의를 받자마자 즉각 출동명령을 내린 베흔은 최대한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첫 공세의 성공에 있어 관건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아직 장비나 시설물, 보급품들의 이동도 전혀 되어있지 않은, 말 그대로 보병들의 개인병기와 갑주, 몸뚱아리만 데려온 상태였지만 이정도로도 ㅤㅋㅞㄹ크의 그 귀찮은 똥파리같은 게릴라 녀석들을 1차로 작살내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 베흔은 방금 도착해 군기가 확실히 들어있는, 파견군의 어마어마한 위용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지난 두 번의 페로에 대한 공격에서 변변한 수확도 거두지 못한 베흔은 이제 한동안 페로를 다시 건드리기는 꽤나 껄끄러운 상황이었다. 안그래도 동부제후들이나 서부의 몇 안되는 하급제후들이 근위대의 '과잉대처'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이 와중에 총리인 페로보다는 '산악 게릴라무리'인 코아 전사단놈들이나 두들기며 자위하는 것이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었다.
"제파, 수에보."
"예!"
뒤에 대기하던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각각 만명씩의 병력을 주겠다. 머뭇거릴 필요도 없다. 지금 곧바로 ㅤㅋㅞㄹ크 동북부의 녀석들 본영을 강습한다. 1차 목표는 병신된 카렐과 세네피스 황후다. 수에보가 일대를 압박하고 제파가 중앙을 타격한다. 셈과 카인은 각각 300씩의 가디언을 이끌고 강변의 하역시설이나 관측소 등 녀석들의 주요 시설물을 기습 파괴한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제파 네가 ㅤㅋㅞㄹ크 토벌군 사령관이다. 자금이 충당되면 곧 토벌군도 8만까지 증원될 것이니 네가 책임지고 그 파리떼같은 전사단 놈들을 다 잡아내도록 해."
"예!"
제파가 힘있게 대답했다. 동기생이며 그간 근위대 2인자였던 시로가 카렐 쪽으로 가버리면서 새로운 2인자로 부상하게 된 그로서는 처음으로 맡은 무게감있는 임무에 내심 흐뭇해하고 있었다. 만 명이 넘는 정예 가디언을 거느린 세력가 페로를 공격하는 것보다 3만의 오합지졸 정규군을 거느린 카렐 쪽을 공격하는 쪽이 어쨌든 훨씬 부담은 덜 되는 일이었다. 제파는 이번에야말로 '해 볼 만한 임무'를 받았다고 내심 다행스러워하며 베흔의 앞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만여명의 근위대를 실은 오십여대의 병력수송 셔틀은 정글의 컴컴한 어둠을 뚫고 무서운 속도로 전사단의 본영이 있는 ㅤㅋㅞㄹ크 북서부 밀림으로 들이닥쳤다. 선두의 셔틀에 타고있던 제파가 자신의 새 부하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려는 듯 방송을 열고 큰 소리로 말했다.
"5대대는 외곽에 상륙해 반경 50스타디아의 간이에너지장벽을 설치한다! 1, 2대대는 나와 함께 마을 동서방향에 각각 강습해 중앙으로 조여가며, 3, 4대대는 외곽을 포위한다! 알겠나!"
"예!"
갓 도착한 병사들이어서 그런지 그 목소리부터 힘이 넘치고 있었다.
"네피나 시로, 조페와 같은 고등급 가디언과 마주칠시는 공격을 받아줄 가디언 지휘관과 함께 10명 정도가 사방에서 동시에 공격을 개시하도록. 아무리 날고뛰는 재주를 가진 녀석이어도 그 많은 공격을 일시에 당해내지는 못한다."
황제령에서의 실전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이들 파견군 근위대들은 모두 사기가 하늘에 닿는지 제파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큰 소리의 함성으로 화답해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태도에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며 제파가 일장 연설을 이어갔다.
"녀석들의 정규군은 훈련이 부족한 오합지졸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녀석들에게는 약 3백 정도의 잘 훈련된 기병대가 있다. 하지만 지금 전투를 벌일 지역은 깊은 산악 정글이기 때문에 그들은 도리어 우리보다 불리하다. 따라서 그쪽도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알겠나!"
근위대 병사들이 다시 큰 소리로 답해보이자 만족한 표정을 지어보인 제파는 멀리 보이기 시작한 ㅤㅋㅞㄹ크의 정글을 바라보았다.
"5분 후 도착합니다!"
조종사의 보고에 제파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잠시 후, 불빛이 드문드문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어느순간 제법 큰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에보의 부대는 이미 상륙을 시작했다는 보고도 들어왔다.
"착륙합니다."
조종사의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셔틀에 덜컹 하는 진동이 전해져왔다. 모두 줄을 맞춰 선 근위대원들은 문이 열리고 그 앞에서 자신들을 맞닥뜨릴 적병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각자 무기를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개방!"
"이아아!!!!"
가디언 지휘관들을 선두로, 수천의 근위대들이 큰 함성을 지르며 쏟아져나갔다. 제파역시 그들과 함께 밖으로 기세좋게 달려나갔다.
"다 죽여!"
칼을 치켜들고 달려나간 제파는 함께 나서는 근위대 병사들의 선두에 직접 나서며 도끼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엉?"
정글을 뒤흔드는 무시무시한 함성과 함께 몇십보 달려나갔던 선두부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파를 돌아보았다.
"저어.......여기 맞습니까?"
선두부대 지휘관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제파에게 물어왔다. 제파 또한 당혹스런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군데군데 흩어진 3백여채의 집들 사이에서 멍 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아이들이나 원주민인 듯한 허름한 옷차림의 무장도 않은 어른들 외엔 군인은 아무곳에서 보이지 않았다.
바로 두세 시간 전 있었던 정찰대의 보고도 카렐의 전사단 무리들이 별 동요없이 이곳에 처박혀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던 터였지만 지금 이곳은 그냥 조금 큰 정글 마을일 뿐이었다.
"매복이 있는지도 모르니까.......1대대 주변을 경계하고 2대대는 집들을 샅샅히 수색해!"
눈앞이 막막해진 제파는 일단 마을 한쪽의 얕은 언덕 있던 마을회관 건물로 무조건 달려올라갔다. 마을회관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노인들 서너명이 마치 적진에 쳐들어가는 듯 때려부술 기세로 밀고들어온 제파와 그를 둘러싼 십여명의 근위대원들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누구슈?"
"여기 있던 녀석들 다 어디숨었어!"
"아하, 그 전사단 양반들? 아까 방금전에 어딘가 가던데?"
제파가 무언가로 얻어맞은 듯 멍 해져버렸다.
"어디로 갔지?"
"글쎄......그건 잘 모르겠고......뿔뿔이 흩어져서 가는 모양이었는데.....우리가 알 게 뭐유, 우리야 터 빌려줬으니 약속대로 소나 받았으면 된 거지. 근데, 댁들은 누구유?"
허탈해진 제파는 무거운 걸음을 질질 끌고 마을회관 밖으로 나설수밖에 없었다. 기세좋게 상륙했던 근위대원들이 저마다 멍 한 표정으로 서로 무언가 수군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정찰로 내보냈던 가디언이 달려와 보고를 올렸다.
"적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빠져나간 모양입니다!"
내심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제파였지만 어쨌든 멍 한 얼굴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병사들 앞에서 신경질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언가 한마디 하기는 해야 했다. 목소리를 조금 가다듬은 제파는 그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녀석들은 우리의 기세에 놀라 멀리 내빼버렸다! 녀석들 천하의 겁장이들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곳을 근거지로 녀석들을 토벌한다!"
허탈해진 병사들이 마지못해 함성을 질러주었지만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제파는 한숨을 내쉬며 멀리 펼쳐진 끝도없는 산과 정글을 맥없이 바라보았다.
어쨌든 근위대가 맘먹고 시작한 정글의 토벌전은 그 시작부터 우스운 꼴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에너지장벽......칠까요?"
5대대장의 조심스런 질문에 제파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집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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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내용연결을 위해 외전인 파트 4를 건너뛰고 파트 3 이후 바로 파트 5로 접어들려 합니다. 파트 4는 언제 심심해질 때(?)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