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3 회: Part 3. A China Aster for Me -- >
26.
수에니 반도는 지리적으로는 타르서스에 속하지만 육로는 남쪽의 거대한 타르서스 사막에 가로막혀 있어 실상 북쪽 해협건너의 프라임 지역에 더 가까운 지역이었다. 적도에 가까운 반건조지역인 수에니 반도는 실제로도 프라임지역이나 각 제후지역의 부유한 부호들의 별장이나 향락시설이 밀집한 최대의 해양휴양지이도 했고, 사치품 생산을 위해 황실이 지정한 경제특구이기도 했다.
땅딸망한 작은 체구에 사나와보이는 외모, 곱슬머리를 특징으로 하는 '타르서스인'을 이곳에서 본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고급주택의 하인이나 청소부, 향락시설의 창녀들이나 남창들, 기껏해야 그 포주 이상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이곳에서 무장한 셔틀에 올라탄 트라우제 장관의 측근, 세닌의 행동은 조심스러울수밖에 없었다. 눈에 띄지 않게 한밤중에 펜션 옥상에 착륙한 셔틀에서 재빨리 먼저 내려선 사복차림의 호위병들은 주변을 확인하고 나서 세닌에게 나오라 손짓을 해보였다. 긴장한 표정의 세닌은 큰 가방을 든 네 명의 부하들을 대동하고 재빨리 펜션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좀 늦으셨구려."
사복차림의 쿠베가 키득거려보이며 앞의 비어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여전히 굳어있는 표정의 세닌은 부하들이 가져온 4개의 상자를 탁자 위에 순서대로 올려놓았다.
"말씀하신 금액입니다. 확인해보시지요."
근위대 회계관이 쿠베의 눈짓에 가방을 열고 내용물을 하나하나 확인해보았다. 묵직한 4개의 가방 안에는 무기명 채권과 약간의 현금이 들어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확인하는 회계관의 손놀림이 꽤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4억 5천만. 맞습니다."
회계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닌이 한마디 덧붙였다.
"어쨌든 이건 별궁 사용료 명목이니......저희도 반대파에게 보일 명목도 필요하고......전에 말씀드린대로 그에 대한 증서를 남겨주셨으면 합니다."
근위대 회계관이 미리 준비해왔던 영수증서를 그에게 내놓았다. 베흔과 수우의 서명이 확실히 되어있는 증서를 꼼꼼히 확인한 세닌은 그것을 가방에 챙겨넣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볼토 트라우제 지방장관은 공식적으로는 별궁 사용료를 완납한, 깨끗한 상태가 되는 셈이었다.
세닌이 탄 셔틀이 남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한 쿠베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뒤따라온 근위대원들에게 가방을 챙길것을 지시했다. 수에니 근위대 지부장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이 자금도 저희가 관리합니까?"
"당연하지."
쿠베가 쌀쌀맞게 대꾸하며 손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수에니는 황실 지정 경제특구인만큼 이곳 근위대 수에니 지부가 군부대가 아닌, '자금관리소'라는 정도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돌아가자."
쿠베를 비롯한 5명의 상등급 가디언들과 십여명의 경호원들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4억 5천만골드의 거액이 들어있는 돈가방은 큼직한 타르서스의 보석상 상호가 붙은 차에 차례대로 실려졌다.
쿠베가 탄 차는 수에니 반도의 기분좋은 해안가를 마치 드라이브라도 하듯 달리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조금은 험한 바위해안이 펼쳐져 있었고 적도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새벽바람은 내륙인 황궁에서 맡아보는 공기와는 사뭇 그 차원이 달랐다.
밤을 꼬박 샌 후유증인지 자리에서 잠시 꾸벅꾸벅 졸던 쿠베는 앞자리에서 들려온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아쿠!"
꽤나 요란스런 충격이 쿠베가 타고가던 차를 덮친 건 순간이었다. 도로에 놓인 장애물을 피해 바닷가 쪽으로 곤두박질친 차는 얕은 바닷물에 코를 처박은, 흉물스런 몰골로 자리에 멈춰서 있었다.
"썅! 뭐야,"
차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온 쿠베는 도로 반대편에 숨어있다가 일제히 달려나오는 허름한 차림새의 녀석들의 모습에 혀를 차고 말았다. 저 한심한 도적떼, 아니 노상강도들은 상대를 잘못짚어도 단단히 잘못짚은 셈이었다.
"재수없으려니까. 씨발, 두 놈 남아 안쪽 지키고 모두 나와!"
쿠베의 명령에 일제히 차에서 쏟아져나온 근위대원들에게 이십여명의 도적떼 따위는 상대가 될 바가 아니었다. 겁없이 달려드는 두 명의 도적을 단 한칼에 두토막을 내버린 쿠베는 그 우두머리인 듯한 한 녀석의 뒷덜미를 거칠게 잡아 바윗덩이 위에 내동댕이쳤다.
"너희새끼들 뭐야? 누가 이딴 짓 시켰어?"
"제발, 제발, 저흰 그냥......보석상 차길래......"
도적떼라기보다는 사기꾼이 어울림직한 유난히 길쭉한 얼굴을 한 그 자그만 타르서스인 녀석은 그제서야 무언가 일이 잘못된 것을 눈치챘는지 울며 싹싹 빌어대기 시작했다. 이녀석을 단번에 죽여버릴까 말까를 잠시 고심했던 쿠베는 일단 칼을 내려놓았다.
이십여명의 도적떼, 아니 노상강도떼를 단 1분도 되지 않을 시간동안 피떡을 만들어놓은 근위대들은 아침부터 벌어진 짜증스러운 사건에 얼굴을 잔뜩 찡그려붙이고 있었다.
"이새끼는 데려다가 심문해봐야겠다. 혹시 배후가 있는지도 모르니까."
쿠베가 그 타르서스 녀석의 그다지 잘생기지도 않은 얼굴을 발로 짓밟으며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시내로 달리던 쿠베의 차는 꽤나 웃긴 꼴로 바위와 바닷물에 반쯤 걸쳐져 있었다.
"제길할, 재수가 없으려니까."
바닥에 흐뜨러진 노상강도떼의 시체를 바라보며 쿠베가 침을 한 번 내뱉었다. 녀석들이 거액의 현금수송사실을 알고 덮친건지, 아니면 하필이면 '보석상' 상호를 달고 있는 이 차를 덮친 운없는 강도들인지는 사로잡은 녀석을 족치면 나올 내용들이었다.
"차 도로 끌어올려. 혹시 모르니까 지원군들 좀 부르고."
"예."
쿠베까지 5명이나 되는 건장한 가디언 정도면 엔간한 기중기 한대의 힘은 내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그들은 도로에 신경쓰이는 다른 차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일제히 차에 달라붙어 도로로 다시 밀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에서 돈가방을 지키던 2명의 경호원들 역시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잠시 차 안을 비울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차를 번쩍 들어올린 그 순간, 갑자기 바닷물 속에서 적어도 열 명은 되는 괴한들이 복면을 쓴 채 불쑥 튀어나왔다.
"뭐야!"
상대가 누군지 미처 파악할 새도 없이 기습을 받은 쿠베와 근위대들은 기껏 들어올렸던 차를 다시 바닥에 떨구어버리고 말았다. 요란스런 소음을 내며 나딩군 차는 해안가의 둥글둥글하고 큰 바윗돌에 부딪히며 깨지는 소음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수갑이 채워진 채 한구석에 묶여있던 그 노상강도 녀석이 온몸을 웅크리며 비명을 질렀다.
"이 새끼들은 또 뭐냐!"
방금 전과는 수준이 다른, 가디언임에 틀림없는 녀석들의 돌격에 쿠베가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과 싸움에 정신이 없는 새, 물 속에서 튀어나온 또다른 두 명이 문이 열린 채 버려져 있는 차 안에서 돈가방을 나꿔채 도로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듯 반대편에서 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1차 공격으로 차를 전복시키고, 2차에서 주의가 흐뜨러진 틈을 타 가방을 도둑질한 이 수법으로 보아 절대 우발적인 공격이 아닌, 사전에 미리 치밀하게 의도한 기습임에 틀림없었다. 쿠베는 순간 머릿속에서 피라는 피는 다 빠져나가버린 듯한 아찔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놈 잡아!"
소리를 지르려던 쿠베는 옆에서 그를 거세게 들이받는 웬 녀석에게 밀려 나동그라질 뻔 하고 말았다. 동료가 가방을 나꿔채기가 무섭게 물에서 튀어나왔던 그 정체불명의 괴한들 역시 싸움을 바로 접고 무기를 내버린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썅!"
멀어져가는 차를 필사적으로 쫓아 달려가던 쿠베는 숨을 헐떡거리며 자리에 털석 주저앉고 말았았다. 도대체 어떤 놈 소행인지, 쿠베로서도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무려 4억 5천만 골드, 근위대 파견군 6만을 1년간 먹여살릴 그 거금이 어처구니없이 사라져버린 기가막힌 사건이었다. 베흔에게서 떨어질 불벼락을 머리에 떠올린 쿠베는 자신의 목이나 제대로 건사할 수 있을지 어질어질해오고 있었다.
"어쩌죠?"
쿠베와 함께 달려온 가디언들도 결국 지쳐 도로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까 잡은 그 강도놈은 잘 있겠지?"
"그게......"
"그게 뭐!"
가뜩이나 흥분한 쿠베의 목소리가 쩌렁 하며 울리고 있었다.
"머리가 쪼개져 있었습니다. 입막음하고 달아난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의 수에니의 유난히 파랗고 맑은 하늘이 그순간 쿠베에겐 샛노랗게 보인 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자리에 꿇어앉은 쿠베는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바닷물이 울렁일 정도의 째지는 비명인지 고함인지를 지르고 있었다.
"그깟 강도새끼 계속 살려둘 필요도 없죠."
ㅤㅋㅞㄹ크로 돌아온 우베가 술잔을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우베가 보냈다고 하니까 죽기 직전에 그 표정이 걸작이던데."
조페가 큰 양고깃덩어리를 우걱거리고 씹으며 대꾸했다.
"그새끼하고 옛날에 무슨 일 있었던거야?"
"동업하자고 접근해놓고서는 서부로 밀수하던 보석을 몽땅 다 가로채버렸었죠. 그덕에 20년동안 보따리장사꾼해서 모은 돈 쫄딱 다 날렸고."
우베가 장난기스러운 그 앳된 얼굴에 조금은 어울리지 않을듯한 묘한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그 차에 10만골드어치 보석이 있다는 소식에 솔깃해서 덤볐겠죠. 이번 계획에서 백미는 누가 훔쳐간건지 모르게 해야 한다는 거니까. 전과만 100번이 넘는 그 날강도새끼 정도면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기는 충분하죠."
다시 태연하게 대꾸한 우베는 조페가 먹다남긴 양고기를 입안에 냉큼 쑤셔넣었다.
"어쨌거나 이제 여유가 좀 생겼으니 장비도 더 구매하고 훈련도 제대로 실시할 수 있겠네요. 훗, 맘같애선 그 4억5천만 다 먹어치우고 싶지만 아버지가 2억은 돌려준다고 하셨다니......"
'병참부장' 아메스가 술상 위에 놓인 돈가방을 툭툭 두들기며 깔깔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훔친 현금을 가지고 ㅤㅋㅞㄹ크로 돌아온 일행의 앞에는 슈벨 수반과 세네피스 황후가 마련해놓은 작은 술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전사단 간부들에게 술 한잔씩을 내린 세네피스 황후는 볼일이 있다는 핑계로 그들에게 파티를 넘기고 토로 경과 함께 자리를 비워주고 난 후였다. 동쪽에 위치한 수에니와의 시차 때문에 지금 이곳은 별까지 총총하게 떠 있는, 술자리 가지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한밤의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따져보면 세네피스 황후폐하 좀 안되신 건 사실이야."
시로가 독한 술 한 컵을 통째로 들이키며 말했다.
"이런 좋은 날 우리하고 마음놓고 어울려 술을 마실만한 위치도 아니시고, 그렇다고 여기 별다른 친구가 있으신것도 아니고. 지금도 보나마나 전하한테 가셨겠지. 뭐, 거기밖에 더있으시겠어."
"세네피스 황후폐하도 다른 황후들처럼 따로 정부 같은 거 없으셨을까?"
술기운이 잔뜩 오른 제네르가 평소같은 근엄함은 어디다 다 내버렸는지 시로의 어깨에 기댄 채 흐느적거리며 말도안될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무슨 그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시로가 당혹스런 얼굴로 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를 일으켜주었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누가알아, 지금껏 황후위에 있던 사람치고 안놀아난 사람이 어딨었다구. 막말로 황제라고 백명 이백명씩 마누라에 남편들 두고 있었는데 그런생각 안할 황후가 어딨었겠어. 뭐 실리페 황후도 잘생긴 귀족들 번갈아 애인삼았던 건 알 사람은 다 아는데......"
"푸하하, 그래도 애인은 있어봤네요, 누구처럼 애인하나 없이 저나이먹도록......"
술취한 조페가 제네르를 가리키며 깔깔대기 시작하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제네르가 대뜸 그의 얼굴에 먹다만 바나나껍질을 집어던졌다.
"전하는 나중에 어떡하실까?"
조페가 갑자기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입을 열자 시로가 껄껄대며 대꾸했다.
"글쎄, 이바닥에서 혼인이라는 게 반 쯤은 거래다 보니까 어디 내가 좋다고 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내가 싫다고 안할수도 없는거지. 신기한건 그렇게 순 지들 잇속으로 만나도 몇 운없는 커플 빼고는 살긴 또 어떻게 잘들 살어. 참, 나."
시로의 한마디에 아메스가 갑자기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말을 뱉어놓은 시로는 그제서야 실수를 눈치챘는지 재빨리 네피의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완전히 고주망태가 된 네피는 시로의 말을 듣고있지도 않았다.
제네르가 바나나를 씹으며 끼어들었다.
"어쨌든 전하도 원하시던 원하시지 않던 4명은 채우셔야겠지, 포고령에 황후 하나, 황비 하나, 황빈 둘까지 최소 4명은 두고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1명은 외롭고, 2명은 싸우고, 3명이 있으면 한 명이 따돌림당하고, 4명이 가장 좋다. 이게 누가 한 말이었지?"
"알 게 뭐야. 난 하나라도 있어봤으면 좋겠다."
"븅신, 그 전에 복원수술이나 해라."
마치 안주감인 양 저질스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깊은 밤의 술자리는 조금씩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한참 소란스러워지는 술자리를 살그머니 빠져나온 아메스는 마을 한쪽의 카렐의 오두막으로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거의 한달동안 거의 쓰지 않으면서 굳어버린 카렐의 팔을 주물러주고 있던 솔은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방금전 이곳을 다녀간 세네피스 황후에게서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는, 밑도끝도없는 잔소리를 들었던 솔은 그 무서운 황후가 또 찾아온 것이 아닌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자이센 부장입니다."
솔이 그제서야 안도하며 병상에 누워있는 카렐을 내려다보았다.
얼마 전 목에 꽂았던 보조호흡장치를 뽑아낸 카렐은 이제 말 몇 마디를 하고 자리에 앉아 몸을 가눌 수 있을 정도의 상태로 호전되어 있었다. 그새 잔뜩 여위어진 얼굴은 이전의 그 '등급없는 가디언'이 맞나 싶을 정도의 모습이기는 했지만 소매없는 흰 모시원피스 사이로는 여전히 소름끼칠듯한 목과 팔의 형상이 드러나 있었다.
"들어오세요."
카렐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솔이 대신 입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아메스가 카렐의 곁을 지키고 있던 솔에게 능글맞을 정도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솔은 이전 노예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메스에게 허리까지 굽혀보이며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짐짓 난처한 표정을 지은 아메스는 허리굽힌 솔을 급히 다시 일으키며 그의 두손을 꼭 붙들었다.
"인사는 무슨 인사야, 어차피 자매지간에. 이젠 존칭 붙이지 말고 그냥 언니라고 불러."
"정말 그래도 되나요?"
솔이 카렐의 눈치를 힐끗 보았지만 카렐은 딴곳으로 시선을 돌린 채 이쪽은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알았어요......언니."
솔이 얼굴을 붉히며 냉큼 대답했다. 아직 천진난만한 그의 태도에 씽긋 웃음지은 아메스가 또 한마디 덧붙였다.
"이 언니가 전하하고 공적인 일로 상의드릴 게 있는데......잠깐 좀 비켜주겠니?"
"아, 그럼요, 그래야죠,"
솔을 내보낸 아메스는 병상에 무력하게 누워있는 카렐의 모습을 미소띤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술기운 때문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아메스의 눈자위가 약간 붉어져 있었다. 카렐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웬일이십니까."
"이미 아시면서."
아메스가 히죽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명문가에서 남부럽지않게 자라온 아메스가 이 덥고 짜증나는 정글 생활을 기꺼이 감내하는 이유는 바로 이 한 사람, 아니, 이 한 사람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자신의 야심 때문이었다.
"이게 바로 그 황족문이군요."
아메스가 카렐의 어깨에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검은 용무늬의 뚜렷한 황족문을 손톱 끝으로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게 공적인 일입니까?"
카렐의 다분히 무뚝뚝한 반응에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아메스는 한손으로 카렐의 목을 쓰다듬으며 그의 황족문에 아직 술냄새가 풍기는 그 얇은 입술을 가져갔다.
꽉 악문 카렐의 턱에서 힘줄이 바싹 곤두서고 있었다. 한 달 동안 굳어져있던 모든 신경을 일시에 흔들어 깨우는 듯한 소름끼치는 자극에 카렐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리고 말았다.
"이런 몸매를 누가 끔찍하다고 했죠? 제가보긴......타부를 자극하는 묘한 광경인데요?"
알콜의 자극이 섞인 아메스의 속삭임이 카렐의 귀 밑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카렐이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내 몸매가 자극적입니까? 아니면 내 황족문이 자극적입니까?"
"그렇게 쌀쌀맞게 대하지 마시라구요. 전......아버지와 전하께서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니까. 어차피 두 분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셔야 할테니. 결국 대안은 저 뿐이죠."
카렐의 눈이 그제서야 아메스를 향했다. 아메스는 그의 시선을 교묘히 피하며 카렐의 귓불에 혀끝을 살짝 들이댔다. 그의 속삭임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은 카렐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메스가 언젠가 이런 제안을 해오리라는 것 역시도.
떨리는 카렐의 회색빛 눈동자에서 그의 변화를 느낀 아메스는 귓불을 간지럽히는 자신의 혀와, 그가 무심결에 토해낸 낮은 숨소리에서 오는 자극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었다. 아메스가 내뱉은 깊고 긴 숨소리가 카렐의 목을 타고 흘러내려가 그의 차가운 가슴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알고계세요, 이 대안에 저도 적극 찬성하고 있다는 걸."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 아메스는 미소를 띠어보이며 카렐에게 평소처럼 인사를 하고는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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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분 삭제할까 말까 하다가 조금만 손보아 그냥 올립니다. 지나치다 싶으시면 지적해주십시오. 고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분이 물으셨는데요,
제 글은 하렘물 맞습니다. 페로도 500명의 남녀로 만들어진 하렘을 거느리고 있고, 최고제후들은 보통 정실과 소실까지 10명 내외의 배우자를 가지고 있으며, 제후들 역시 5명 내외의 부인이나 남편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나우스 2세 황제는 기록적인 2백여명의 남편을 거느리고 있었고, 아들 세나우스 3세는 그보다 한결 나아진 백여명의 부인을 거느렸습니다. 여러 배우자를 두는 것이 하렘물의 정의라면 제 글은 틀림없는 '공식적인' 하렘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