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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71화 (71/1,132)

< -- 71 회: Part 3. A China Aster for Me -- >

전날 평소보다 많이 무리를 했던 카렐은 아침부터 잘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약해질대로 약해진 몸은 물론이었고, 오랜 시간의 워프비행에 식사도 저녁에 아메스가 주방에서 훔쳐다가 눈치로 챙겨준 양 간 한덩어리가 고작이었다. 게다가 ㅤㅋㅞㄹ크에 비해 갑자기 추워진 코윈의 날씨도 한몫 거든 것이 분명했다.

"역시 이곳까지 오신 건 무리였던 모양입니다. 의사들 말을 들었더라면......"

난방장치도 모자라 벽난로에 땔감을 열심히 넣으며 우베가 한숨을 내쉬었다.

"곧 나아지겠지."

두꺼운 이불을 코밑까지 뒤집어쓰며 카렐이 쉰 소리로 대답했다. 옆에 서 있던 아메스가 카렐의 이마를 만져보고는 기겁을 하며 손을 떼었다.

"그래도.....이럴 줄 알았더라면 어떻게 해서든 오시는 걸 말렸을 텐데. 어휴, 열이 불덩이같네요."

"베흔이 와 있을지도 모르니까. 시로에게 베흔은 무리야."

"세상에, 그럼 이몸을 하고 싸울 생각으로 오셨다는 건가요? 그것도 베흔하고요?"

아메스가 흥분한 듯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물론 그뿐만은 아니지."

잠시 아픈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던 카렐이 억지로 몸을 조금 일으켰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선 푸아킨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셰니 펠머슨 경이 저녁때 황후폐하께 문안을 온다고 합니다."

우베가 약간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카렐을 돌아보았지만 카렐은 예상했다는 듯 묘한 웃음만을 짓고있을 따름이었다. 카렐이 자리에서 몸을 조금 더 일으키며 말했다.

"재밌군.....녀석들이 이렇게 빨리 반응을 보이다니 말이야....."

"근위대 수작일까요?"

푸아킨이 조심스럽게 물어오자 카렐이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글쎄, 아직은 모르겠고......시로가 직접 황후폐하를 호위하도록 하게. 그리고 푸아킨 자네가 만찬장에 함께 들어가주어야겠어. 들어가거든 셰니 그 작자를 약간만 겁줘놓게. 아주 조금만 말이야. 지금쯤 근위대하고 손을 잡을까말까 고민중일테니 우리가 불쌍한 근위대를 좀 도와줘야지."

카렐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우베가 웃음을 터뜨렸다. 카렐이 들고있던 물잔에 체리 한 알을 떨어뜨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자리에 가만히 있는 맹수를 구덩이에 빠뜨릴 수는 없지않겠는가."

세네피스 황후에게 공손히 절을 올린 셰니 펠머슨 경의 등 뒤에는 속이 비칠 듯 말듯한 관능적인 튜닉을 차려 입은 매력적인 미소년 네 명이 서 있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황후에게 셰니 경은 미리 준비해간 한 상자의 귀금속을 내놓았다.

"세네피스 레즐린 카파키 황후폐하의 귀향을 저희 가문을 대표해 진심으로 환영하옵니다. 저희 가문에서 준비한 약소한 성의이오니 받아주십시오."

"고맙소. 참으로 오랫만이구려. 내가 이곳을 떠날 때만 해도 풋풋한 청년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동안 이렇게 늠름하게 자라셨군요."

"황공하옵니다. 제 뒤에 선 녀석들은 저희 가문에서 특별히 키운 미모의 남자노예들이옵니다. 모두 한번도 여자의 손을 탄 적이 없는 깨끗한 녀석들이오니 황후폐하의 몸종으로 쓰시옵소서."

"후훗, 역시 북부제후다운 선물이구려. 셰니 경. 고맙소,"

잘생긴 미소년 노예를 선물받은 것이 과히 기분 나쁘지만은 않은지 한 번 빙긋이 웃어보인 황후는 셰니 경에게 직접 쓴 한 폭의 서화와 황제령에서 가져온 수에니산 최고급 비단 몇 필을 내렸다.

잠시 후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긴 황후의 옆에는 방금 셰니 경이 선물한 미소년이, 셰니 경의 곁에는 카파키 가의 미모의 여시종이 앉아 시중을 들고 있었다.

둘의 중간에 앉아있는 푸아킨은 워낙에 익숙한 '북부 스타일'의 접대자리---사실 이정도면 꽤 고상한 수준에 속하는 것이었다.---인지라 평소와 별다를바 없었지만 황후의 뒤에 선 시로는 이런 분위기가 조금 익숙치 않은지 애써 무표정함을 유지하며 서 있었다. 항상 근엄하기가 추상같던 황후가 미소년의 묘한 스킨쉽을 즐기고 있는 광경을 보며 시로는 경악스러움을 애써 감추고 있던 차였다.

셰니 경이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황후 폐하 뒤에 선 가디언의 체격이 대단하옵니다. 등급이 어떻게 되는지요?"

"하하, 이런 유명한 가디언을 모르시는구려? 세상에나, 한때 근위대에서 베흔 바로 밑에 있었던 특급가디언 시로라오. 제국 안에서 가히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최강의 가디언이요. 이자리엔 없지만......우리쪽엔 시로 대장 말고도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카렐, 베흔과 쌍벽을 이루는 네피, 정규군에 조페 대장까지 쟁쟁한 특급가디언들이 포진했다오."

황후가 기다렸다는 듯 자랑인지 협박인지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뒤에 서 있는 자기 가디언을 힐끗 돌아본 셰니 경이 약간 기분이 상한 듯 입을 씰룩거리고 있었다.

그가 애써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이었다.

"그럼 황제령에서 황후폐하께서 이끌고계신 총 병력이....."

야채조각을 입에 넣던 황후가 푸아킨에게 눈짓을 보냈다. 푸아킨은 카렐에게 지시받은 대로 냉큼 대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글쎄요, 황후폐하께서 이끌고 계신다고 하긴 뭣하지만......폐하를 위해 싸워줄 병력은 가디언이 천명이 넘고 정규군은 5만정도. 그리고 충성스런 귀족 기사단이 천 명이 훨씬 넘습니다.

뭐 푸아킨 경의 대답은 맞자면 맞을수도, 틀리자면 틀릴수도 있는 것이었다. '가디언 천 명'은 지난번 북극전투에서 생포되어 아직 전향교육중인 백여명을 모두 끌어들인다면 얼추 채울 수 있을테고, 정규군과 기사단은 아직 돈이 없어 갑주와 무기조차 지급받지 못한 3만여 지원자들에게 모두 지급이 완료된다면 비슷하게는 만들 수도 있는 전력이었다.

어쨌든 아직 전사단의 정확한 규모라는 게 전사단 내부사람도 정확히 모르는 요지경속이다보니 그것을 셰니 경이라고 알 턱이 없었다. 불안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셰니 경이 다시 물었다.

"그럼 이번 행차에는 얼마나 데려오신 겁니까? 북부민들에게 부흥의 기치를 보이려면 황후폐하의 당당한 군세를 자랑하는 것도 좋을진대......"

"후훗, 역시 충성스런 셰니 펠머슨 경이시오. 그래도 고향에 돌아오는데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뭐있겠소. 여긴 내 집안인 카파키 가가 있고, 날 지지하는 셰니 경같이 믿음직한 북부제후들이 있는데 말이요. 난 그냥 몇명의 수행원과 십여명의 가디언만 데리고 온 것 뿐이요."

"아하, 그러시군요."

셰니 경이 여전히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황후는 자신의 어깨를 어루만지던 소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셰니 경에게 묘한 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넌 몇 살이냐?"

황후의 질문에 소년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열 일곱이옵니다."

"이런이런, 한참 좋은 나이로군. 후훗, 고향에 오니 이런 좋은 선물도 받고....나도 어쩔 수 없이 놀기 좋아하는 북부인인가보구려."

소년의 귀 밑에서 풍겨오는 향수 냄새에 지그시 눈을 감으며 세네피스 황후가 짐짓 환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시로로부터 만찬장 분위기를 전해들은 카렐은 그만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카렐의 심각하지않은 태도에 시로가 잔뜩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웃긴 왜 웃으십니까. 전 난처해서 죽는 줄 알았는데. 어휴, 차라리 실리페 황후 바람 피는 잠자리 옆 지키는 게 낫지. 세상에, 세네피스 황후폐하께서 갑자기 저러시니까 얼마나 당황스럽던지.....설마, 오늘밤 잠자리라도 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시로의 불평에 카렐이 능청스런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뭐, 하시면 좀 어떠신가. 그렇게 오랫동안 외롭게 사셨으면 이제 좀 즐기실만도 하지. 17살짜리 꽃다운 미소년 안아보는 게 쉽게 찾아오는 기회는 아니잖나? 그러는 자네들은 언제 나한테 꽃다운 미소년이나 미소녀 한번 잡아다가 선물해본 적 있나?"

카렐은 여전히 웃으며 시로의 불평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결국 푸아킨과 아메스가 큭 하고 참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시로의 황당해하는 표정을 바라보며 카렐이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긴 북부야. 시로. 누구보다 북부를 잘 아시는 황후폐하도 북부식으로 뜻을 보이신게야. 그 자리에서 황후폐하가 근엄하게 앉아계셨으면 그만큼 긴장하고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시는 것 아닌가? 물론, 덩달아 즐길 수도 있다면 일석이조겠지. 그런데 내 확신하지만 어머님 성격에 절대 그러시진 않으실게야."

카렐이 손가락을 흔들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는 푸아킨을 다시 돌아보며 신중한 말투로 당부했다.

"조만간 3, 4, 5제후도 찾아올 것이니 그들에겐 최대한 호의적으로 대하도록 하시오. 본보기로 길들이는 건 한 가문이면 충분하니까.....손 좀 써 주시오."

"알겠사옵니다. 맡겨주십시오."

그때 막 문을 열고 들어오던 우베가 머리를 숙여보였다.

"아, 돌아왔군. 어머님께선?"

"셰니 경 배웅하시고 지금 침소에서 서화를 그리고 계십니다."

"것들 보라구. 그러실분이 아니시라니까."

카렐이 키득거리며 모두를 둘러보자 우베가 약간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응?"

"소년들에게 화조도 그려주고 계신줄로 압니다"

시로가 뒤로 벌렁 자빠지며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뭐 그럴수도......있지......."

난처한 얼굴로 어영부영 얼버무린 카렐은 부하들과 가볍게 술과 음료를 한잔씩 나누고는 모두 숙소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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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회가 아무래도 너무 긴것같아 둘로 쪼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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