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100화 (100/1,132)

< -- 100 회: Part 5.  흰 국화 한송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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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지......부인이라도 살렸으니....."

자리에서 일어선 카렐은 유시프 장군을 비롯한 8명의 장교들을 빙 둘러보았다. 그 한구석에는 낙타병 분대장 자이납이 조금은 풀죽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카렐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중얼거렸다.

"자이납, 넌 이제 돌아가도 좋아."

"하지만....."

"아무도 널 나무라지 않을테니까."

카렐이 낙타 등에 다시 오르며 자이납에게 가 보라는 손짓을 다시 보냈다. 카렐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자이납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전우와 싸우고싶지는 않지만......저기 남고싶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돌아가도 군법회의감이니......차라리 절 데려가주십시오."

자이납의 검고 큰 눈이 햇빛아래 반짝거리고 있었다. 유난히 웃음이 많은 저 낙타병분대장의 선한 눈빛에 카렐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좋아, 그럼 네가 두번째 낙타를 몰아라."

아직 뜨거운 태양이 빛나고있는 노란색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 카렐은 유시프 장군에게 지시를 내렸다.

"1마리에 2명 혹은 3명씩 모두 낙타에 올라라. 도망은 불가능하다. 녀석들 포위망 형성이 끝나면 내가 앞서서 정면돌파해 병력수송셔틀을 탈취하겠다. 내가 셔틀을 탈취할동안 너희들은 입구를 막고 적들을 막아라. 잠깐, 몇십초면 된다."

남부에서 15명의 부하를 허망하게 잃었던 그 사건을 상기한 카렐은 결단을 내릴수밖에 없었다. 이 상태로 포위망을 일시적으로 뚫는다해도 결국 셔틀이 다시 뒤쫓아올 것은 뻔했다. 설사 절반 이상을 잃는 한이 있어도 지금 당장 결판을 짓지 못하고 질질 끈다면 결국 모두를 잃게 됨을 잘 알고있었다. 카렐은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 9명을 빙 둘러보았다. 이들 중 몇 명이 끝까지 살아 자신의 뒤를 쫓아올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었다.

"다행히 녀석들은 아직 내 존재를 모른다. 내 왼쪽에 있는 저 셔틀이 그나마 제일 작으니 저걸로 하자. 내가 앞장서 길을 뚫을테니 싸울생각 말고 무조건 내 뒤만 쫓아라. 관건은 시간이다. 알겠나?"

"예!"

어느새 낙타에 올라탄 그들 9명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카렐의 예상대로 500명이 넘는 제후군 병사들이 자리에서 꼼짝도 않는 이 일행을 큰 대원을 그리며 에워싸고 있었다. 1, 2열의 헐거운 포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들은 아직 이쪽에 카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얕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100여명의 낙타병들과, 20명을 이끄는 분대장급인 장갑보병들이 든 할버드를 빼면 다행히도 대부분의 보병들은 모두 시미터와 방패로 무장한 검병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큰 포위망 뒤로 입을 쩍 벌린 채 세워져있는 4대의 병력수송셔틀이 있었다.

보병 열 명 정도마다 한명씩의 낙타병들이 그 정면을 막아서며 일사불란하게 일행을 포위한 그들은 갑자기 조금씩 이쪽을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카렐은 그들의 포위망이 한쪽으로만 우그러들도록 낙타를 천천히 셔틀 방향으로 움직였다. 처음부터 돌진해들어가면 녀석들이 눈치를 채고 셔틀을 출발시켜버릴 위험이 있었다. 중대형셔틀은 이륙준비시간이 길었다. 그것은 카렐에게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강습 혹은 철군에 사용하기 위해 최적화된 저 멋대가리없는 긴 상자형의 병력수송셔틀은 꽤 높은 랜딩보드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일시에 많은 병력을 내보내기 위해 정면에 급한 경사의 램프형으로 된 큰 출입구가 있었고 위급상황을 위해 꽤 강력한 장갑으로 감싸여져 있었다.

카렐이 장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셔틀 조종할 줄 아는사람 있나? 아무도 없으면 내가 해야 하지만.....난 입구를 지켜야 할 테니 다른 사람이 했으면 좋겠다."

"2급 면허가 있습니다. 스페이스형은 못 몰지만 도메스틱형 셔틀은 몰 수 있습니다."

흑인 지휘관 한 명이 손을 들어보였다. 언젠가 자신을 페나페 오난이라고 소개했던, 깡마르고 키큰 보병대 교위였다.

"좋아, 자넨 내 뒤에 타게."

자신의 뒤에 그를 옮겨태운 카렐은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서두르지 않는 카렐의 교묘한 움직임으로 녀석들의 포위망은 목표삼은 셔틀 쪽으로만 좁아들고 있었다.

"준비 됐나?"

카렐이 유시프 장군을 돌아보며 낮게 묻자 장군이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카렐은 셔틀과의 거리를 눈으로 어림하고 있었다.

"출발!"

카렐의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4마리의 낙타가 일제히 셔틀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카타나를 치켜든 카렐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창을 내질러오는 성급한 낙타병의 목을 그 낙타의 목과 함께 공중으로 날려버렸다. 그 낙타명의 창을 순식간에 빼앗아든 카렐은 그 길고 무거운 기병용 장창을 한손으로 거세게 휘둘렀다.

"제기랄! 셔틀을 노린다! 빨리 움직여!"

지휘관인 듯 한 자가 말을 타고 달려오며 고함을 지르다가 카렐의 창끝에 그대로 머리가 산산조각나며 한참을 날아가 떨어졌다. 얇게 포위망을 펴고 있던 제후군들은 낙타 위에서 한손에는 장창을, 한손엔 카타나를 움켜쥐고 내달려오는 저 시커먼 망토를 두른 괴물같은 무사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유시프 장군도 낙타고삐를 꽉 붙든 채 카렐과 거리를 두지 않고 최대한 가까이 달라붙어 따라갔다.

원형의 헐거운 포위망은 선두에서 달려온 카렐에게 그 한쪽이 어처구니없이 뚫리고 있었다. 2명의 낙타병과 1명의 기마 지휘관을 쓰러뜨린 카렐은 자신과, 일행을 향해 날아오는 많지않은 투창을 창과 칼로 힘껏 쳐내며 낙타에 더욱 박차를 자했다. 기껏해야 시미터를 쥔 병사들은 낙타의 무서운 질주에 기겁을 하며 양쪽으로 갈라질수밖에 없었다.

"비켜!"

셔틀 출입문 앞을 지키던 3 명의 베테랑 장갑보병이 위협적인 할버드를 쳐들고 돌격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들이 셔틀로 들어서는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그대로 낙타 등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카렐은 어어 하는 이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공중에서 몸을 180도 돌려 이 둘의 목과 어깨를 단칼에 갈라버리고 말았다. 잘린 몸뚱아리에서 솟구쳐오른 엄청난 피가 먼지투성이의 카렐의 얼굴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뒤이어 머리를 공격해오는 할버드를 가볍게 피하며 몸을 한바퀴 돌려 힘껏 올려친 카렐의 칼에 세번째 장갑보병의 투구와 얼굴이 두동강나고 말았다.

"빨리! 빨리 와!"

카렐이 2번째의 자이납과 3번째의 유시프 장군의 낙타를 가리키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이, 씨!"

자이납이 몰던 두번째 낙타가 어깨에 투창이 명중하면서 그만 자리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쓰러지는 낙타에서 그 놀라운 순발력으로 잽싸게 먼저 뛰어내린 자이납은 함께 떨어져 비틀거리는 거구의 교위 한 명을 한손으로 대뜸 어깨에 짊어지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 믿기지않는 광경에 기겁을 하고 놀란 카렐이었지만 당장은 그것을 따질 시간이 아니었다. 자이납의 등뒤로 날아오는 투창을 칼로 힘껏 쳐낸 카렐은 그를 셔틀 안으로 힘껏 떠밀었다.

마지막 네번째 낙타를 몰고오던 장교 3명은 앞서간 3개의 팀들만큼 운이 좋지는 못했다. 측면을 공격한 낙타병의 장창에 낙타의 옆구리가 찔리면서 그들 모두가 보병들을 채 돌파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죽여!"

누군가의 격한 고함소리와 함께 그들의 주위로 보병들이 우루루 몰려들었다. 무참하게 난자당하는 그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사막을 울렸지만 카렐로서도 도리가 없었다. 카렐이 입구를 잠시 지켜주는 새 자이납과 유시프 장군 일행은 떨어져있는 방패들을 주워들고 비어있는 셔틀의 램프를 급히 뛰어올라갔다.

"입구를 잠시만 지켜!"

카렐의 명령을 받은 5명의 장교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유시프 장군의 지휘하에 방패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1차로 날아온 수십발의 투창에 뒤이어 무서운 기세로 램프로 쳐올라오는 병사들의 위력적인 돌격을 고함을 지르며 있는 힘껏 막아냈다. 다만 자이납은 차마 같은부대 전우들과는 싸울 수 없는지 자칫 넘어갈뻔한 장교들을 한 발 뒤에서 양 어깨로 받쳐주고만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했었다면 저들 역시 별도의 셔틀 저지용 장비나 전자무기를 준비했겠지만 얼떨결에 셔틀을 점거당해버린 상황에서 무작정 머릿수로 밀어붙이는밖에는 당장은 다른 도리가 없었다.

조종을 맡을 지휘관과 함께 조종석으로 달려간 카렐은 한참 이륙준비를 하던 조종사와 병사 두 명의 목을 그대로 베어 내던지고는 째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 출입문부터 닫아! 난 밑을 지킬테니!"

"알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카렐은 날랜 동작으로 다시 셔틀의 앞쪽 출입문으로 뛰쳐내려왔다. 유시프 장군을 비롯한 장교들은 바깥에서 몰려드는 보병들의 엄청난 기세에 안쪽으로 계속해서 밀려나고 있었다. 기껏해야 두 사람 누울만한 폭의 셔틀 출입구를 결사적으로 막아선 4명의 장교들과 이곳을 향해 몰려드는 수백의 제후군들과 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채 이십 초나 될까말까한 짧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적병들이 계속 몰려들면서 힘에서 밀린 이쪽 장교들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해보고 조만간 밀려나 밟혀죽을 판이었다.

"으악!"

제일 왼쪽을 지키던 교위 한 명이 누군가가 던진 투창에 가슴을 찔리며 자리에 주저앉자 기회를 잡은 제후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그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옆에 있던 한 명도 측면이 노출되면서 순식간에 4명의 병사의 협공을 받고 있었다. 뒤에서 차마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고 망설이던 자이납이 결국 칼을 뽑아들며 두 사람의 위치로 뛰어들었지만 이미 두 사람은 모두 시체가 되어 병사들의 발에 짓밟히고 있었다.

카렐이 조종석에서 뛰쳐내린 건 그때였다.

"꺼지란 말이야!"

유시프 장군의 옆에 뛰쳐든 카렐이 큰 소리를 지르며 칼을 힘껏 휘두르자 무려 2명의 목과 방패가 동시에 산산조각나며 램프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거친 기계음을 내며 셔틀이 천천히 떠오르자 급해진 제후군들의 공격도 더 거세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

우르릉 하는 묵직한 진동과 함께 램프가 치켜올라가며 조금씩 닫히기 시작했다.

"제발 오지 좀 말란 말이야!"

긴 시미터를 쥔 자이납이 기합소리와 함께 자신을 향해 칼을 내지르던 제후군 비장의 머리를 칼등으로 힘껏 내리쳐 쓰러뜨렸다. 동료를 죽이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었지만 사실은 죽이는것보다도 더 어려운 기술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일개 낙타병 분대장 정도의 실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엔간한 중급가디언과 맞먹는 강력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입구 왼쪽을 막아선 자이납은 오른쪽을 지키는 카렐과 함께 몸 곳곳에 부상을 입고 뒤로 밀려난 장교들의 자리를 어느새 대신하고 있었다.

이륙하는 셔틀 입구 부근은 죽어 쓰러진 제후군 병사들의 시체들과 이를 짓밟으며 다시 몰려드는 살아있는 병사들로 난장판이 연출되고 있었다. 셔틀이 천천히 떠오르면서 이미 반 쯤 접혀들어간 정면의 램프에 제후군 병사들이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제기랄! 빨리 떨어져! 썅! 뒈질려고 환장했냐!"

자이납이 악을 쓰며 그들을 사정없이 걷어차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잠시 후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셔틀 문이 완전히 닫혔다. 이들에게는 너무도 길었던, 채 1분도 되지 않을 악몽같은 시간이었다.

군데군데 적병의 피인지 자신의 피인지를 뒤집어쓴 유시프 장군이 그대로 탈진해 바닥에 뻗어버렸다. 여하간에 탈취하는 데 성공한 이 중형셔틀은 저주스러운 19번 통제구역의 자갈바닥을 박차고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칼을 떨군 카렐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새삼스레 다시 세어보고 있었다. 자이납과 유시프 장군, 그와 함께 램프를 지켜낸 거구의 발리 힐거 교위, 그리고 셔틀을 조종하고 있을 오난 교위까지, 모두 4명 뿐이었다.

"이녀석들....."

유시프 장군이 바닥을 딩구는 동료들의 망가진 시체를 붙들고 터져나오는 눈물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처음 사막에 버려ㅤㅈㅓㅆ던 12명의 장교들 중 겨우 3명이 살아남은 셈이었다.

"이제 보내주시죠."

유시프 장군의 손에서 시신들을 넘겨받은 자이납이 셔틀 한구석의 자그만 토출구를 열고는 그 유해들을 밑으로 다시 던져버리고 있었다.

"뭐하는 짓이야?"

당황한 카렐의 질문에 자이납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서부에서는 죽은 곳이 새로운 안식처지요. 저희는 원래 시체를 거두지 않습니다."

자이납이 구멍을 도로 닫으며 그의 행동을 멍 하나 바라보고 있던 카렐에게 중얼거렸다. 자이납이 떨어뜨린 죽은 장교들의 유해는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넘실대는 이 통제구역의 사막 흙 속에 파묻히고 있었다.

누렇고 끔찍한 사막에 버려진 동료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유시프 장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의 시체를 거두지 마라, 내 이곳에서 원수의 죽음을 행복하게 지켜볼 터이니."

유시프 장군이 어느새 충혈되어버린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와, 함께앉은 발리 힐거 교위의 매서운 눈매는 약속을 내던지고 떠나버린 베흔과, 이 저주스러운 상황에 대한 지독한 분노로 젖어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5명으로 또다시 줄어버린 일행은 이 느려터진 병력수송셔틀에 몸을 싣고 지난 3일간의 끔찍한 기억이 남은 적도의 통제구역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카렐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메디스 시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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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00회~~~ 자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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