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118화 (118/1,132)

< -- 118 회: Part 6. 피빛 장미 위의 사마귀 -- >

.

.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세나우스 2세 황제의 붕어와 함께 베흔의 앞에는 이제 그 원수같은 로노 장태자 녀석을 황제로 밀어줘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를 당장 결정해야 하는 난처한 판단이 놓여있었다.

시간을 두고 녀석을 차츰차츰 파멸시켜가려던 베흔의 당초 계획은 황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완전히 망가져버렸고, 그렇다고 녀석을 무작정 축출했다가는 제일 걱정스런 주페 태자가 황제에 오를 판이었다. 적당히 멍청한 세째 오넬론 태자 역시 생각해볼만 했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그 태자빈이 어딘지 찜찜했다. 어쨌든 베흔으로서는 일생일대 최악의 골칫거리를 떠안은 순간이었다. 그로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베흔이 더 뻔뻔스러웠다면, 더 사악했다면 그리고 더 무자비했다면 그는 기꺼이 네페티 부인에게 있었던 참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로노 태자를 황제로 밀어주는 가장 손쉬운 길을 택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지껏 단 한번도 이런 개인적인 감정에 굴복하지 않았던 이 강철같은 사나이는 결국 사사로운 감정을 위해 대의를 희생하는 결단을 내리고 말았다.

자신만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로노 장태자의 뒤통수를 치면서 베흔이 생각한 구도는 간단했다. 장태자의 후계권을 근위대가 부인하고 나서면 나머지 5명의 태자들이 굶주린 하이에나떼처럼 제위를 향해 몰려들 것이 확실했다.

베흔이 그 사실을 확신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세나우스 2세가 '정실' 문제에 있어 기분에 따라 줏대없이 오락가락했던 탓에 황제와의 사이에 아이를 가졌던 4명의 남편들이 모두 자신이 정실이라 주장하고 있던 것이 당시의 황당한 현실이었다.

적서의 규정이 확실히 자리잡은 지금은 부인이 여럿 있는 경우는 정실부인에서 난 자식만, 남편이 여럿 있는 경우에는 모든 자녀가 적생자가 되는 것으로 그 원칙이 확립되었지만, 그 제도가 확립되기 전이었던 당시에 그들 4명의 남편들이 자신의 자식이 적생자라며 으르렁거리고 싸우는 것이 이상한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부계 쪽으로는 장태자인 로노는 조금 불리한 입장이었다. 장태자의 부계인 클라투스 가문은 동부의 별볼일없는 하급제후가문이었고 2차 혼란기 와중에 세나우스 1세 피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참수당한 16제후중의 한명이 그의 큰아버지였다. 베흔이 그의 후계권을 부인한 근거 역시 '반역자의 피가 섞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로노 태자의 가장 큰 힘이 되어주어야 할 그의 친아버지는 이미 황제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가버린 후였다.

게다가 문제는 부계 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미혼인 주페 태자를 제외하면 나머지 태자들은 모두 '빽있는 처가 혹은 시가'하나 정도씩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지금까지 로노 태자에게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해왔던 것은 그가 장자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배후에 막강한 근위대가 있다는 그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사라진다면, 그들이 비어있는 제위, 그리고 황후위라는 이 일생일대의 큰 먹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어쨌든 태자들이 아웅다웅거리고 싸우기 시작하면 중간에서 근위대는 느긋한 기분으로 싸움의 분위기를 살펴가면서 캐스팅보트를 휘두를 수 있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베흔의 예상 밖으로 벗어나는 사건이 4가지나 발생했다.

첫째로는, 여섯째 태자인 막내 레곤 공주가 일찌감치 '새 황제에의 복종'을 선언하고 제위싸움에서 발을 빼버린 것이었다.

세째 오넬론 태자와 같은 아버지를 둔 레곤 공주 입장에서는 다른 태자들의 아버지가 정실이 아니라고 주장해봤자 그에게는 돌아올 실익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도덕군자인 주페 태자를 제외하면 제위에 눈멀어있는 나머지 언니오빠들 중 누가 새 황제가 되건 즉위 뒤에 저항세력에 대한 어마어마한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라는 사실은 뻔한 노릇이었다.

이 모든 사실을 놓고 저울질한 모사 푸아킨의 권고를 받아들인 레곤 공주는 동종오빠인 세째 오넬론 태자를 공개지지하라는 아버지의 요구를 무시하고 제위의 향방이 결정나기 전에 일찌감치 몸을 낮추고 살 길을 찾아간 셈이었다. 물론 푸아킨은 이 덕에 한때 자신의 주군가문이었던 카파키 가와 한동안 서먹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는 소문도 떠돌곤 했다.

하지만 베흔 생각에는 유난히 큰 배포에 나름대로 매력있고 성격좋은 레곤 공주는 굳이 인물만으로 따지자면 천재 주페 태자에 이어 가히 두번째로 꼽을만한 '재목'이었고, 그의 곁을 지키는 푸아킨 역시 조금만 욕심을 냈더라면 '킹메이커'가 될 충분한 자질을 가진 뛰어난 모사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남부 3제후 호지 가 출신의 아버지를, 4제후 세닉 가 출신의 남편을 둔 그는 배경 또한 나무랄데가 없었다. 어쨌든 그가 자신이 벌려놓은 진흙탕 싸움에서 교묘하게 몸을 빼버린 건 베흔으로서는 꽤나 아까운 노릇이었다.

둘째 사건은 주페 태자의 갑작스런 약진이었다.

답답하고 짜증나는 원리주의 유학자였지만 실질적 힘은 쥐지 못하리라 믿고있던 그가 어느순간 갑자기 원리주의 유학자들과 서부제후들---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부계인 세호 가만을 제외한---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무서운 존재로 등장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주페 태자의 개인보좌관으로 파예드 아카데미 수찬이던 40대의 젊은 천재 코리온 대군이 들어갔다는 것도 이 둘째 태자가 적당히 몸만 사리고 있으리라고 믿었던 베흔으로서는 기겁을 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 '천재 보좌관'은 칼한번 쓰지않고 이모인 다섯째 태자 타니토 공주를 간단히 굴복시켜버리는 엄청난 수완까지 발휘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사실 주페 태자 본인은 '로노 형님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공식적인 주장을 단 한번도 굽히지 않았고, 가는곳마다 그런 의사를 확인시켜주곤 했지만, 문제는 제국민 중 그의 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태자 본인이 서부제후들을 쫓아다니며 '제발 형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를 따르던 30여만명의 원리주의 유학자들조차 그의 이런 행동을 유별난 겸손 탓으로 치부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주페가 진심으로 원했는지 아니었는지간에 그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유력한 제위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베흔으로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주페 태자의 부계가문인 서부 2제후 세호 가가 제위싸움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태자의 아버지가 이 똑똑한 아들을 지지해줄 것을 가문에 호소했다지만 엔간해서는 모험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이 기회주의 가문은 이번에도 역시 그 전통을 깨뜨리지는 않았다.

세째는 장태자의 지지세력 또한 생각외로 막강했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심복이라 믿었던 시로 녀석이 근위대 최정예 부대인 '아메샤 스펜타' 군단 3만과 가디언 2천을 이끌고 로노 태자 쪽으로 가 버린 건 베흔으로서도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게다가 동부제후 대부분이 똘똘 뭉쳐 그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선언하면서 지역별로 부분적인 지지밖에 얻어내지 못한 나머지 태자들에 비해 군사력으로는 가히 최강을 달리게 되면서 북부를 등에업은 세째 오넬론 태자와 막상막하의 세력을 견주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일부 남부제후의 지지를 받던 네째 태자 모디아크 공주의 군대가 시로가 이끄는 근위대 '장태자군'에 대패하면서 그 위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결국 그 전과에 절망한 모디아크 공주가 독을 먹고 자살하면서 제국 역사상 최초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태자로 기록되게 되었다. 물론 슈로 기사단의 촉망받는 무장이던 그가 기껏 한번의 패전 정도에 자살했다는 데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베흔을 놀라게 한 건 카파키 가의 재빠른 대응이었다. 카파키 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오넬론 태자가 '적장자'임을 선언하고 나섰고, 20만에 육박하는 북부제후 연합군을 즉시 결성해 로노 태자에 필적하는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이 북부연합군의 구성이었다. 상식대로라면 군사방면의 문외한인 아버지를 대신해 당연히 북부연합군의 총사령관을 맡았어야 할 제국 최고의 명지휘관 오르마즈 경 대신 단순우직한 카파키 가 가신 토로 로버넬 경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한 베흔이 알아본 바로는 오르마즈 스스로는 황제 시해사건 당시 입었던 중상---독이 몸으로 번지기 전에 서둘러 왼팔을 잘라냈던---때문이라고 둘러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접 전장에 뛰어들 것이 아닌 바에야 한팔이 절단된 정도로는 총사령관을 맡아 지휘하는 데 큰 지장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잘렸던 팔이 완전히 회복되었을 5달 이후에도 이 유능한 지휘관은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로 돌아오지 않았고, 심지어 공개석상에 단 한번도 모습을 보이지조차 않았다.

세간에 떠돌던 투르케스크와 오르마즈 부녀간의 불화설이 사실인지 아니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어쨌든 그의 유별난 강직함을 잘 아는 베흔으로서는 무언가 의혹을 느끼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베흔이 예상했던대로 태자들간의 진흙탕싸움으로 간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네째와 다섯째태자가 힘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로노 태자와 주페 태자에게 무릎을 꿇어버린 건 베흔에겐 실망스럽기가 짝이없었다. 그로서도 '실질적 제위다툼'을 벌이게 된 3명, 로노와 주페, 오넬론이 모두 '탐탁치않은 인물'들인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베흔으로서도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이런 와중에 수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던 둘째 주페 태자가 갑자기 로노 장태자와 연합군 구성을 위한 협상을 하겠다고 나섰다는 소식에 베흔은 기겁을 하고 놀랄수밖에 없었다.

베흔이 정보망을 통해 입수한바로는 여동생인 네째 모디아크 태자의 자살로 충격을 받은 주페 태자가 그동안의 '평화적 해결' 주장을 접고,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최대한 빠른 해결을 시도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 협상을 가만히 놔둔다면 주페 태자와 손잡은 로노 태자가 다음번 황제가 되는 것은 불을보듯 빤한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뜻대로 로노 태자가 다음번 황제가 된다면 그를 배신했던 베흔에게는 종말이 선고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주페 태자의 모사인 코리온이 장태자와의 연합을 극력 반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페 태자의 의지는 확고해보였다.

주페 태자는 일단 칼만 잡는다면 가히 오르마즈와도 쌍벽을 이룰 제국 최고의 무장이었고, 심지어 아버지, 동생과 등을 돌린 오르마즈 역시 주페 태자 편에 서 있다는, 확인할 수 없는 아찔한 정보까지도 들려오고 있었다.

베흔으로서는 더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는 오천여명의 근위대 가디언들과 2만명의 정규군을 비밀리에 황궁 주변에 집결시켰다. 그로서도 이젠 어쩔 수 없었다. 찜찜하지만 세째 오넬론 태자를 새 황제로 밀어주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생도들의 퇴교시간이 한참 넘어간 파예드 아카데미 교사는 북적거리는 기숙사 건물과는 달리 쥐새끼 한마리 얼씬하지 못할 정도로 적막했다. 하지만 2차 학란 이후로 확실히 경계가 강화된 학교 주변에는 적어도 2천명은 넘어보이는 플레렌 가 제후군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펼치고 있었고, 이전보다 많이 증강된듯한 교내 치안대 병사들이 구석구석에 배치되어 전보다 살벌해진 학교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학교를 둘러싼 제후군들을 어렵지않게 통과한 카렐은 강당건물의 뾰족한 첨탑에 기대서서 건너편에 보이는 '사단의 탑'을 바라보았다. 코리온이 있을 탑의 꼭대기층에는 다행히도 불이 꺼져 있었다. 대신 계속해서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는 아랫층 강당에는 불이 휘황하게 켜있는 것을 보아 무슨 행사라도 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발밑에는 교내 치안대 복장을 한 십여명의 병사들이 교대로 탑 주변을 도는 모습이 들어왔다. 학란 전의 교내 치안대라면 단창으로 무장하고 있던 것이 정상이었지만 이들은 시미터에 방패로 무장한데다가 경갑주까지 챙겨입고 있었다.

'끌어다붙였군,'

카렐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카데미 체면상 제후군을 직접 안으로 들일수는 없었을테니 플레렌 가 제후군 경보병 중 일부를 데려다가 치안대로 옷만 갈아입힌 것이 확실했다. 탑 주변에 경비병을 온통 깔아놓은 것을 보아서 코리온 그녀석도 나름대로 겁나는것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검은 수트에 검은 복면을 한 카렐은 첨탑을 미끄러지듯 내려가 고운 잔디가 자란 마당에 소리없이 사뿐히 내려섰다. 그의 존재를 눈치챈 건 바로 옆에 있던 토끼 한마리 뿐이었다. 카렐은 놀라 도망가려는 토끼의 뒷다리를 냉큼 움켜잡았다.

몸을 낮춘 채 탑에 잽싸게 접근한 카렐은 토끼를 멀리 던지며 엉덩이를 한 번 세게 꼬집었다. 기겁을 한 토끼가 펄쩍펄쩍 뛰며 반대편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경비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리자 카렐은 그들의 등뒤를 가로질러 '사단의 탑' 벽을 타고 뛰어올라 순식간에 사람 키 네다섯배는 될 정도의 높이에 매달렸다. 벽에 달라붙은 카렐은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토끼임을 확인한 경비병들은 이상한 것이라도 없는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상대가 이미 탑의 3층 높이에 달라붙어있으리라고 생각할 리는 없었다.

벽을 어느정도 기어오른 카렐은 탑에 뚫린 창으로 안쪽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제길'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계단에도 곳곳마다 병사들이 서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한 카렐은 40층 높이의 탑을 바깥에서 낑낑대며 기어오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나마 미끄러운 황궁의 외벽에 비하면 흑갈색 벽돌로 마무리된 이 벽은 고속도로나 마찬가지겠지만 한쪽 팔까지 다치고 피까지 많이 흘렸던 상황에서 카렐로서도 힘든 건 사실이었다.

카렐은 아직 온전치않은 왼팔로는 겨우 중심만 잡으며 오른팔과 두 다리만으로 탑을 기어올라갔다. 기껏 삼분의 이 정도 오른 카렐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어쨌든 카렐의 몸은 제상태가 아니었다.

"휴,"

창틀 위에 몸을 기댄 카렐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가 기대고 선 창밖으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나오기 시작했다. 전에 들어본 바 있던 하심 예킨터스 교수의 유난히 가는 목소리가 제일먼저 귀에 들어왔다.

"학장님 혼자 계신 모양이 별로 보기 안좋아."

"플레렌 응교님이 종가에 가시고 나서 전보다 부쩍 말씀도 줄으셨고......"

"쉿, 무슨소리 하는거야."

"뭘, 우리 셋만 있는데."

셋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리가 없던 카렐이 알 수 있는 건 코리온이 전에 비해 기분이 엉망이라는 것과 머시기 응교인지 하는 작자와 꽤 친한 사이였다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런 인간이 기분이 좋아봤자 해해거리고 다녔을리도 없을테지만 어쨌든 코리온의 제대로 웃는 얼굴을 한 번 상상해보려 무진 애를 쓰던 카렐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연설 끝나실려면 멀었나?"

"글쎄, 벌써 30분째인데, 대단하셔. 저런 열변을 30분이 넘게 계속할 수 있다니, 나라면 5분도 못하고 나가떨어질걸."

"요즘 계속 무리하시는데 몸이나 안상하시려나 몰라."

"워낙 강건하신 분이니까 괜찮겠지."

대화를 마친 셋의 발걸음은 다시 아랫쪽으로 멀어져가고 있었다. 다행히 코리온이 방 안에 없는 모양이었다. 카렐은 힘을 내 다시 벽을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이미 한 번 와 본 일 있던 학장실 창문 앞에 도착한 그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 안으로 재빨리 몸을 집어넣었다.

++++++++++++++++++++++++++++++++++++++++++++++++++++++++++++++++++++++++++++++++++++++++++++

여기서 짧게 축약되어 서술된 4차 혼란기 부분은 후에 꽤 자세하게 다시 등장합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