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0 회: Part 6. 피빛 장미 위의 사마귀 -- >
.
.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49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주페 태자는 내내 침통한 표정이었다.
황후 알현실 문이 열리자 고개를 조금 숙인 주페 태자가 굳은 얼굴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들어선 알현실 안에는 낯익은 사람 한 명이 세네피스 황후와 얼굴을 붉히며 한참 말다툼중이었다. 성난 얼굴로 동생과 실랑이중이던 오르마즈 카파키 경은 눈앞에 나타난 주페 태자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마치 죄라도 지은 양 그답지않은 풀죽은 얼굴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몸이 안좋다는 이유로 황제 즉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그는 꽤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오르마즈의 옆에는 자신의 아내가 될 뻔했던, 그 아름다운 여인이 화려하고 당당한 자태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남자의 방문에 세네피스 황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입가에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주페가 오르마즈 경을 힐끗 바라보며 들릴듯말듯 말을 건넸다.
"죄송하지만.....황후폐하와 독대하고 싶습니다만."
조금은 난감한 얼굴로 태자에게 다시한번 공손히 인사를 올린 오르마즈 경은 동생인 황후에게는 눈인사 한 번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뒤돌아 집무실에서 나가버렸다.
크지않은 황후 알현실에는 새 황후인 세네피스 카파키와 주페 태자만이 서로의 눈동자를 똑바로 주시하며 서 있을 따름이었다.
"코리온 조카를 만나고 오셨군요."
억지웃음을 지은 세네피스가 주페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주페 태자의 검은 무명포 곳곳에는 그가 다녀온 곳을 말해주듯 피얼룩과 흙이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절 야속하게 여기시겠지만......태자저하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애라면.....당신을 위해선 버텨내줄 줄로 믿었죠."
알현실 문을 잠그고는 주페에게 바싹 다가선 세네피스가 작게 속삭였다. 주페는 어느새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이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 자신이 거부했던 이 여인은 이제 제국의 당당한 황후가 되어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주페 태자가 한숨을 내쉬며 낮게 중얼거렸다.
"제게 원하시던대로......해드리겠습니다."
주페 태자의 한마디에 세네피스 황후의 회색빛 눈동자가 조금씩 꿈틀거리면서 특유의 무지개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대신......"
그의 다음번 말을 이미 예상한 황후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못할것도 없죠. 하지만......"
세네피스 황후가 코앞에 마주선 주페 태자의 암갈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저도 부탁하나 드려도 될까요?"
황후의 낮고 음험한 목소리에 주페 태자가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서로의 숨소리까지 느껴질만큼 바싹 다가선 황후가 태자의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이젠 거부할 수 없으실테니."
세네피스 황후가 고개를 조금 돌리고있던 그의 뺨과 귀를 차례대로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주페는 자신을 향해 그 고혹적인 미소를 던지는 세네피스의 눈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문잠긴 이 알현실 안에서 어떤 일이,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그 뒤로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두 명의 당사자들만 제외하고는.
황궁 앞 공개처형장에 나온 베흔은 상석에 황제와 함께 앉아있는 세네피스 태자빈, 아니 새 황후를 힐끗 돌아보았다. 약혼식이나 결혼식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표정은 최소한 겉으로는 온화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베흔은 인자한 회색 눈동자 속에 감추어진 그의 속을 전혀 읽을수가 없었다. 아버지, 동생과의 불화설이 사실인지 확인도 할 겸 베흔이 특별히 초대했던 오르마즈 경은 오늘도 몸이 좋지 않다며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황궁 앞의 거대한 초승달형 광장 중심에 위치한 이 큰 단은 '큰 죄인'들의 처형에 자주 쓰여온 탓에 일반인들에게는 '황궁 처형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세나우스 3세'가 일반인들에게 처음으로 황제로서 모습을 드러낸 건 혈육들을 처형하는 이 끔찍한 자리에서였다.
모래밭 중앙에 큰 돌모루가 놓이고 큰 우리와 함께 처형을 맡은 노예가 거대한 도끼를 들고 성큼성큼 나타났다. 그 우리 안에는 '주모자'들 외에도 그들 태자들을 지지했던 무려 105명의, 오늘 참수당할 나머지 종범들도 실려있었다.
"집행해라."
새 황제 오넬론의 손짓과 함께 보통의 처형 순서에 따라 종범들부터 차례대로 끌려나와 죄상이 불리운 후, 노예의 큰 도끼에 목이 잘려나갔다. 처형장 상석에 남편인 황제와 나란히 앉아있던 세네피스 황후는 그 많은 죽음들을 지켜보며 줄곧 차가운 표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다만 가끔 들릴듯말듯 내뱉는 한숨과, 드문드문 목걸이를 더듬거리는 그의 불안한듯한 손길이 베흔의 눈길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는 황후다운 침착성을 단 한번도 잃지 않고 있었다.
2차 혼란기 이후 벌어진 최대규모의 이 대대적인 처형은 종범들의 참수에만 무려 2시간이 소요되었다. 105명의 종범들이 모두 목이 잘린 모래밭 위에는 이미 끈적해진 피와 살점들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1차 처형이 끝나자 노예들이 달려들어 모루의 피를 닦아내고 피로물든 모래밭을 갈아엎었다.
작업이 끝나자 집행전문 황궁노예가 다음번 죄수를 내보내라는 듯 도끼로 모루를 탁탁 두들겼다.
"노예는 심했군,"
세네피스 황후가 베흔을 바라보며 뚱딴지같이 입을 열었다.
"최소한 가디언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역모의 도당들에게 가디언의 칼놀림은 과분하옵니다. 황후폐하."
베흔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황상의 형제네. 격이 있지않은가. 노예는 들여보내게."
세네피스 황후가 뒤에 서 있던 카파키 가 무장 중 한 명을 손짓해 불러내자 베흔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 처형의 주관은 어디까지나 근위대였다. 처형을 카파키 가 무장이 담당한다면 태자들은 카파키 가의 손에 죽는 것이 되는 셈이었다. 어찌보면 집행 전문 황궁 노예의 손에 죽느니보다 태자들로서는 더 치욕스러울수도 있었다.
어쨌든 시작부터 이 황후에게 주도권을 빼앗길수는 없었다.
"제파! 네가 해라!"
베흔의 명령에 제파가 자신의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들며 노예를 대신해 돌모루 옆에 섰다.
"세네피스 황후폐하의 은총으로 노예가 아닌 가디언의 손에 참수당하게 된 것을 기뻐하라!"
세네피스 황후의 뒤에 서 있던 토로 경이 시민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목을 벨 때 엔간해서는 실수라는 것이 없는 가디언의 손에 참수당하는 것은 죄인에게는 그나마 가장 큰 은사에 속하는 것이었다.
노예 집행자는 종종, 아니 꽤 자주 실수를 저질러 죄수의 숨통을 한번에 끊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경우는 목을 완전히 잘라낼때까지 5번이 넘는 도끼질을 할 때도 있었다. 게다가 흉악범이나 근위대 눈밖에 난 인물의 경우는 그런 경우가 '희한하게도 많아서' 고의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특히나 죄수가 지위가 높은 고귀한 사람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 경우가 많았다.
새 황후의 '자비로운 은사'에 구경꾼들이 함성을 올리기 시작했지만 잘난 '태자'들의 끔찍한 최후를 구경하기 위해 온 몇몇 사람들은 들릴듯말듯 야유를 하기도 했다.
'주범' 중 첫번째 처형대상인 로노 장태자가 양팔을 붙든 근위대 병사들에게 거칠게 저항하며 끌려나오고 있었다. 그의 발악을 지켜보던 베흔은 이자리에 네페티 부인이 있었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차피 그 순해터진 여자가 이런 끔찍한 광경에서 통쾌감을 느낄 턱이 없었다. 베흔은 세네피스 황후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조금 내리깐 채 아무 표정도 없었다. 하지만 베흔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작은 중얼거림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추하기는......"
온몸에 오싹함을 느끼며 베흔은 다시 처형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형장에서 죄수가 저항하는 것은 드물지않게 있는 일이었지만 로노 태자는 황후 말마따나 추할 정도로 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자녀들과 정실부인까지 모두 저세상에 가버린 상황에서 자포자기할만도 했지만 저 거친 태자는 황제와 황후에게 무슨 소리인지 분간도 되지 못할 거친 욕을 계속 늘어놓고 있었다.
세 명의 근위대 병사들이 달려들어 그의 우람한 몸통과 팔을 붙들고는 가까스로 모루에 들이댔다. 평소같으면 죄수의 몇마디 유언 정도는 용납해준 후 참수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그의 거센 저항을 보다못해 칼을 급히 치켜든 제파는 서슴없이 그의 뒷덜미를 내리쳐버렸다. 그와 동시에 구경꾼들 사이에 비명과 탄성이 함께 올랐다.
몸통에서 떨어져나간 로노 태자의 머리를 보면서 지난번의 네페티 부인 강간사건을 머리에 떠올린 베흔의 가슴 속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방금전까지 거칠게 저항하던 그의 머리없는 우람한 몸통은 모루에 걸쳐진 채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노예들이 그의 시체를 옆으로 치워놓고는 피범벅이 된 모루 위에 물을 한 번 뿌렸다.
다음에 열린 창살문 안에서 끌려나온 건 다름아닌 주페 태자였다.
전통에 따라 사형수 스스로가 선택한 복장은 여느때처럼 검은 무명포와 네 개의 줄이 새겨진 파예드 아카데미 머플러였다. 처참하게 죽어있는 형의 시체를 보며 깊은 한숨을 지은 주페 태자는 주변을 둘러선 수만의 구경꾼들을 한 번 죽 둘러보았다. 그리고 구경꾼 무리의 제일 앞쪽에서 파예드 아카데미 생도들의 부축을 받으며 가까스로 이동의자에 앉혀져 있는 긴 머리의 청년을 잠시 바라보았다.
관자놀이에 인공센서를 부착한 코리온은 온몸을 고정시킨 프레임은 물론이었고 입에서 흘러나오는 침을 받기 위한 턱받이까지 댄 처참한 몰골이었다. 그는 스스로 고개도 거의 가누지못하며 무언가를 혼자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세네피스 황후의 명으로 이틀 전 전격적으로 석방된 코리온은 병원을 절대 떠나지 말라는 의사의 경고도 무시한 채 샤드니와 하심을 비롯한 수하 생도들의 손을 빌어 어제 저녁부터 밤이슬을 맞으며 처형장 제일 앞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죄인은 명에 따르라!"
토로 경의 고함소리와 함께 근위대 병사 중 한 명이 태자의 등을 칼자루로 후려쳤다. 신음소리를 토하며 자리에 주저앉은 태자는 자신의 앞쪽, 높은 상석에 앉아있는 이젠 황제가 된 동생과, 자신의 아내가 될 수도 있었던 그 여자를 한 번 올려보았다. 세네피스 황후의 저으기 긴장한 얼굴을 바라보며 주페 태자가 갑자기 실없는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베흔은 다시 세네피스 황후의 눈치를 보았다. 황후의 회색빛 눈동자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고 그의 턱에는 어느새 선명한 힘줄이 서 있었다. 저 얼음같은 여자에게도 어쩌면 자신의 남편이 될 수도 있었을 이 똑똑하고 현명한 남자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는 베흔은 자기도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지만 주페 태자를 지켜달라던 세나우스 2세 황제의 피어린 마지막 유언을 어길수밖에 없는 베흔의 속내 역시 그다지 편치는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생각없이 주페 태자쪽으로 시선을 돌렸던 베흔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 시선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눈을 보는 것은 대담한 베흔에게도 꽤나 기분나쁜 일이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암갈색 눈동자 속에서는 보통의 다른 사형수에게서 보이는 지독한 공포감 대신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이 어려 있었다. 베흔의 온몸이 무슨 이유엔지 갑자기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자리에 주저앉은 주페 태자를 병사들이 모루 앞으로 거칠게 잡아끌자 태자가 그들을 뿌리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소인배 앞에서 어찌 고개를 숙이겠는가! 이대로 있을테니 목을 치던지 말던지 너희 뜻대로 하거라!"
죽음을 코앞에 둔 사형수의 거친 몸부림에 두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 무서운 기세에 압도당한 근위대 병사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태자는 모래밭에 당당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새 황제와 황후를 똑바로 올려보았다.
저항하는 그의 목을 강제로 모루로 끌어내리려는 제파에게 세네피스 황후가 손을 뻗었다.
"유학자의 기개를 어찌 꺾겠는가. 그대로 집행하게."
"예?"
제파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베흔도 깜짝 놀랐지만 황후의 결정에 감히 토를 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침통하게 고개를 떨구는 세네피스 황후를 다시 올려본 주페 태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은 그대가 날 이곳으로 몰았으나 머잖아 그대 역시 이자리에 서게 될지도 모르겠소."
세네피스 황후는 아무 표정도, 대꾸도 없었다. 다만 그는 목에 걸고있는, 은색의 새끼손가락만한 펜던트를 손에 꼭 쥔 채 몸을 가늘게 떨고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주페의 목젖 역시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같은 유학자로서......약속은 지킬 줄로 믿겠소."
마지막으로 고개를 조금 돌린 주페 태자는 센서로나마 자신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는 그 아름다운 조카를 향해 삶의 마지막이 될 웃음을 지어보였다.
"천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하였으나......내 지금은......"
차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주페 태자는 약지에 끼고있던 연두색 페리도트 반지에 조용히 입을 맞추며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공중으로 솟구쳤던 제파의 칼이 날렵한 곡선을 그리며 주페 태자의 목을 정확히 갈랐다. 잘린 그의 목에서 터져나온 피처럼, 꽉 악문 세네피스의 입술에도 어느새 붉은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잘린 태자의 머리는 한참을 날아가 떨어졌지만 가부좌를 하고 앉은 그의 몸은 그 자세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가슴에 꼭 품고있던, 페리도트 반지를 낀 그의 왼손도 힘없이 바닥에 늘어졌다.
다섯째 태자인 타니토 공주 또한 떨리는 발걸음으로 스스로 형장 앞으로 나섰다. 모루 앞에 멍 하니 서서 왕좌에 앉아있는 야속한 오빠를 올려다본 공주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앞에는 큰오빠와 둘째오빠의 시체가 목이 잘린 채 나란히 눕혀져 있었다. 남극성당 수찬이며 중도파 유학자로 있던 그에게도 오빠들과 같은 이런 참혹한 운명은 예외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것을 각오한 듯, 공주는 두 손을 모으며 단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베시오."
눈을 감은 공주는 별다른 유언도 없이 얼굴을 하늘로 향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제파의 거친 기합소리와 함께 공주의 가는 목 역시 먼저간 그 오빠들과 마찬가지로 피를 내뿜으며 모래밭에 나딩굴고 말았다.
이날은 3명의 태자가 한번에 죽은 비극적인 날이면서, 동시에 4차 혼란기의 종말을 고한 경사스런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사적인 장소를 함께한 코리온은 자신을 대신해 죽어간 숙부이며 스승이었고 다정한 연인이던 '그'의 마지막 모습을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되새기며 언젠가 다시올지도 모를 다음번의 혼란기를 기약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구경꾼무리 한쪽의, 상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말없이 어깨를 떨고있는 또 한명이 있었다. 날씬하지만 다부진 체격, 긴 카타나를 차고있는 전사적인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붉은 뺨은 이미 눈물로 젖어들어 있었다. 검은 클록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그 키큰 여자의 아름다운 그레이오팔 눈동자는 어쩌면 그 자신이 속한 가문의 가장 경사스러운 날일지도 모를 이 날이 잉태하고 있는 미래의 비극을 암시하는 듯 붉게 충혈된 채 말없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