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1 회: Part 6. 피빛 장미 위의 사마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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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유시프 장군."
라호르에 돌아온 카렐은 즉시 사람들을 집결시켰다. 거실에 둘러앉은 일행들이 모두 긴장된 얼굴로 카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이곳의 행성 에너지장벽 체계가 궁금한데."
고개를 조금 갸웃거린 유시프 장군이 설명을 시작했다.
"256개의 포스트위성에 의해 작동됩니다. 충분한 여유공간을 가지고 배치되었기 때문에 위성 중 절반 이상이 파괴될때까지는 정상작동됩니다."
"통제센터는?"
"위도와 경도 45도마다 한군데씩 위치해 있고 역시 한군데가 파괴되어도 인근 통제센터에서 즉시 위성들의 통제권을 인수합니다. 중앙통제센터는 북극에 있습니다."
"한마디로 저희들만의 힘으로는 불가능이군요."
제네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자 카렐은 이번엔 우베 쪽을 돌아보았다.
"혹시 장사꾼들이나 밀수업자들은 방법을 알지 않을까? 이런 일은 그녀석들이 더 도통할텐데."
"옛날 동업자들한테 당장 알아보죠."
우베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밖으로 사라졌다. 카렐은 한쪽에서 맥없이 앉아있는 푸아킨 경에게 갑자기 눈짓을 보냈다.
"저하고 얘기 좀 하시죠."
저으기 긴장한 얼굴로 방 안에 따라들어온 푸아킨 경은 문을 단단히 닫으며 카렐이 가리킨 자리에 단정히 앉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카렐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죽은 주페 태자와 리쿠 학장의 관계에 관해 말씀해주시지요."
순간 푸아킨 경의 표정이 창백해지다못해 백짓장이 되어버렸다. 푸아킨 경은 얼굴에서 흐르기 시작한 식은땀을 닦아내며 잠시 머뭇거렸다.
"그.....그건......"
"혹시......연인사이였습니까?"
카렐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더이상 피할 도리가 없음을 깨달은 푸아킨 경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한숨을 내쉰 카렐이 다시 물었다.
"그럼......주페 태자가 어머님과의 결혼을 거부한 것이......그것 때문이었습니까?......소문처럼......학업이나 친구 때문이었다는 게 아니고....."
"......그런 걸로 압니다."
어렵게 대답한 푸아킨 경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머뭇거리던 카렐이 더듬거리며 질문을 계속했다.
"두 사람이 잘 어울릴 사이인 건 잘 알지만......명백하게 근친간인데......아무리 수명개조 이후에 근친혼이 늘었다지만.......대공주께서도 그걸 아셨습니까?"
"주페 태자저하 사후에 알게되셨습니다. 대군마마께서 주페 태자저하의 시신을 직접 거두셔서 장례를 치러주시면서......부부의 예를 따르셨기에......다 지나간 후니 뭐라고 나무랄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만.....그 뒤로 대공주저하께서 대군마마를 제대로 결혼시켜서 빨리 안정시켜야 한다는 거의 강박관념에 빠지셨죠. 다 소용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푸아킨 경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럼.....주페 태자가 처형당할 때 상식대로라면 최측근이었던 리쿠 학장도 당연히 함께 처형되었어야 하는데......어떻게 혼자 사면받았던 거죠?"
카렐이 질문을 계속 이었다. 푸아킨은 카렐의 계속된 질문에 난처한 표정으로 겨우 대답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건......세네피스 황후폐하께 특별히 사면하신 걸로 압니다.....그래서 황후폐하 명으로 대군마마께서 목숨을 건지셨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군마마께선 혼자 살아남은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태자저하의 장례 후에 몇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셔서 대공주께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죠."
카렐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홀로그램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던 코리온의 비통에 잠긴 그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푸아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가까이하시는 남자도 있으신 줄 압니다."
"플레렌 응교인지 하는 그사람입니까?"
"아셨군요."
"그게 누굽니까?"
"네페티 부인의 사촌남동생이고......플레렌 가 직계 상급귀족입니다. 황실 관료로도 있었고 타르서스 직할군 사령관으로도 있었던 꽤 훌륭한 남자입니다. 실의에 빠져계셨던 대군마마께 그동안 힘이 되어주었던 헌신적인 사람이죠."
푸아킨이 고개를 더 숙여붙였다.
카렐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물었다.
"그럼 그동안 도망갔다는 부인들은 도대체 뭐죠? 응교인지 뭔지 그정도 조건이면 학장의 배우자로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왜 대공주께선 관심도 없을 여자들만 데려다가 억지결혼을 시키신 겁니까?"
카렐의 당연한 질문에 푸아킨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을 내놓았다.
"주페 태자저하와의 일 때문인지......샤드니 경을 싫어하시는건지......이유는 모르겠지만 대군마마께서 남자를 가까이하시는 것에 극도로 반감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도 샤드니 플레렌 경과 정식 혼인을 시켜드리는 편이 낫다고 몇번이나 말씀드렸지만......아직까지도 대군마마께서 남편이 되실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페로로부터 카렐 일행이 아직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ㅤㅋㅞㄹ크의 전사단 본부에서는 오랫만의 웃음이 오가고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기뻐하는 당사자는 딸의 행방불명소식에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던 세네피스 황후였다. 페로로부터의 전문을 들고온 아메스는 황후와 슈벨 수반, 토로 경, 네피, 라손, 조페, 카토까지 모두 모아놓은 자리에서 큰 소리로 세부내용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금 아켐 4번 행성은 행성 에너지장벽이 가동되어 완전폐쇄된 상황이라고 합니다. 파예드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모임에서 43명의 개혁파 유학자들이 살해당했지만 다행히 하크로딘 단장님은 무사하시다고 하고......최고제후였던 네페티 부인은 사촌동생인 두겐에 의해 축출되었고 두겐이 새 서부 최고제후가 되었다는군요."
"그여자가 쫓겨났다고 그랬나?"
세네피스 황후의 눈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 하고 솟았다. 아메스는 황후답지않은 약간 거친 말투에 내심 놀랐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예. 거의 저항한번 못해보고 밀려났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가문 일을 사촌동생에게 맡겨두었던 탓에....."
황후의 입가에 보일듯말듯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메스의 옆에 있던 네피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솔직히......전에 내가 좀 못되게 굴긴 했는데.....사람은 무지하게 착해보이더만.....안됐네."
"게다가 끝내주게 미인이기까지 하죠. 캬아, 그정도 미인에 미망인이기까지 하니.....뭐, 서부 최고제후 아니어도 누구 더럽게 운좋은 놈이 거두긴 거두겠네."
조페가 손바닥을 비비며 키득거리자 그 위로 세네피스 황후의 신경질섞인 목소리가 깔렸다.
"쓸데없는 소리들 하지 말게."
평소의 황후답지않은 감정섞인 말투에 네피가 눈을 쫑긋거리며 조페에게 속삭였다.
"질투하시나봐."
눈치없이 지껄여대는 네피를 향해 경고의 헛기침을 한 번 한 아메스가 전문을 계속 읽었다.
"사막에 버려져 죽을뻔한 부인을 전하께서 구해내 보호중이시라 합니다. 부인께서 전하께 공식적으로 보호를 요청하셨고 차후에도 타르서스 별궁에 처소를 마련해 계속 보호하실 것이라 합니다."
"말도 안돼."
갑자기 얼굴이 굳어진 세네피스 황후가 딱 잘라 대답했다.
"아들이 있으니 남부로나 가라고 해."
"전하께서 보호요청을 받아들이셨답니다."
아메스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하자 세네피스 황후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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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흔의 기대(?)대로 세나우스 3세는 충분히 멍청한 황제였다. 정사에는 관심없이 여자 혹은 파티에만 탐닉하는 이 새 황제를 대신해 사실상 황실을 주무르게 된 건 다름아닌 황후 세네피스였다. 황제 역시도 자신을 대신해 훌륭하게 황실을 이끌고 나가는 황후의 존재에 힘이라도 얻었는지 시간이 갈수록 더 정사에서는 멀어져가고 있었다.
새 황후의 능숙한 일처리를 말없이 지켜보던 베흔은 그 '알수없던 여자'의 정체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세네피스 여제'라는 귀족들의 비아냥거림 혹은 찬사를 굳이 들먹거리지 않아도 이 여자의 리더쉽과 카리스마는 직접 황제를 하고도 남음이었다.
중도파 지도격 유학자라는 그 전력이 의심스러울정도로 원리주의부터 개혁파까지 여러 학파의 유학자들을 두루 포용하는것은 물론이었고, 한때 자신과 북부에 칼을 겨누었던 동부나 서부, 남부제후들에게도 옛날에 싸웠던 사실이 정말로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으로 화해의 손길을 뻗고 있었다.
게다가 즉위하고 나면 곧바로 자신에게 으르렁거릴 줄 알았던 카파키 가 출신의 이 새 황후는 어찌된 일인지 1년이 가까와오도록 자신을 극히 사무적으로 대하며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의 즉위 후 베흔과 벌인 유일한 충돌은 로노 장태자를 지지한 혐의로 거열형에 처할 예정이었던 가디언 시로를 전격 사면해 근위대에 복귀시킨 그것 한가지 뿐이었다.
그것이 근위대에도 자신의 인물을 심기 위한 황후의 사전포석임을 베흔은 물론 잘 알고 있었지만 황후는 그 외의 일에 대해서는 베흔에게 놀랄정도로 협조적이었고, 베흔으로서도 황후의 그정도의 지시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새 황제 등극 후 처음으로 각지역 최고제후들이 황궁에 모이는 큰 행사가 열렸다. 표면적으로는 각지역에서 나온 선물들을 황제에게 바치는 연례행사의 일환이었지만 이번의 행사는 그보다는 3년간의 제위전쟁으로 서먹해진 각지역 최고제후들과 황실간의 화해의 모임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오랫만입니다. 테번 공."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세네피스 황후는 나이 순서에 따라 제일 먼저 단상에 올라온 남부 최고제후 테번 공에게 그 특유의 인자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진주빛 대리석으로 만든 훌륭한 조각품을 가져온 테번 공은 선물을 바치고는 새 황제와 황후에게 큰 절을 올렸다.
"역시, 윤택하신 남부답게 이렇게 세련되고 멋진 선물을 준비하셨구려. 감사히 받겠습니다."
테번 공에게 직접 그린 서화를 내린 황후는 한때 적이었던 그에게도 깍듯한 예의를 잊지 않았다. 그런 황후의 태도에 저으기 안심한 테번 공은 밝은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두번째로 올라온 건 세네피스 황후의 아버지이기도 한 북부 최고제후 투르케스크 카파키 공이었다.
"국구께선 어서오시오."
황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북부에서 만든 최고급 보검을 가져온 투르케스크 공은 다른 최고제후들처럼 황제 부처에게 깊은 절을 올렸다. 아버지의 절을 받은 세네피스 황후가 조금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일어선 그의 손을 꼭 붙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대하는 황후의 태도는 절대 다른지역 최고제후들의 '수준'을 넘어서지는 않고 있었다.
세번째로 올라온 동부 최고제후 샤자한 공은 로노 장태자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던 사람이었다. 부담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하는 샤자한 공 앞에서 무표정하게 있는 황제와는 대조적으로 세네피스 황후는 자신의 아버지에게보다 더 큰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가 바친 도자기를 기꺼이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샤자한 공. 고아한 동부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나는군요."
웃음짓는 세네피스 황후를 옆에서 바라보며 베흔이 내심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표정연기가 대단하시군. 직접 황제를 하시지.'
샤자한 공이 사뭇 밝아진 얼굴로 물러나자 마지막으로 서부 수베르산 명마를 가져온 서부 최고제후 네페티 부인이 황제 부처 앞에 절을 올려보였다.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가까이 마주한 이 아름다운 최고제후의 자태에 황제가 잠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고맙구려, 네페티 부인. 선물 고맙게 받겠소이다."
남편의 추태를 바라보는 세네피스 황후는 도리어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띤 채 별 말이 없었다. 하지만 베흔은 네페티 부인을 바라보는 황후의 눈빛에 묘한 살기가 어려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파티를 성공적으로 끝낸 각 지역 최고제후들은 영빈관으로 모두 안내되었고 황제 부처는 평소처럼 서로의 얼굴은 거의 바라보지 않은 채 149층과 150층에 위치한 각자의 처소로 향하고 있었다.
사실 이 둘의 금슬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건 황궁 내에서 알 사람은 다 알고있었다. 어딘지 모자라보이는 저 황제는 자신에 비하면 너무나 잘난 이 황후를 부담스러워하다못해 꺼리고 있었고, 황후 역시 매번 같이 있어봤자 분위기에 안맞는 헛소리나 해대는 그의 저열함과, 남의 정사장면 지켜보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사는 그의 한심한 '사생활'에는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형편없는 부부생활에도 불구하고 이 황후는 이후에 등장할 누구와는 달리 자신의 황후라는 지위를 이용해 다른 남자들을 끌어들이지도 않았고, 그 정숙함과 포용력, 기품으로 온몸을 철저히 무장하고 '국모'의 품위를 완벽하게 지켜오고 있었다.
"근위대장."
엘리베이터에 황제와 나란히 서 있던 세네피스 황후가 등뒤에 있던 베흔에게 갑자기 입을 열었다.
"예."
베흔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황후는 그 묘한 회색빛 눈동자를 앞쪽으로 고정시킨 채 무표정하게 말했다.
"내 며칠 전부터 악몽으로 기분이 안좋은데 하룻밤만 내 침소를 지켜주겠나?"
베흔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황후가 철천지 원수인 자신의 칼 앞에 몸을 내놓고 자겠다는 황당한 제안이었다. 악몽이 문제가 아니고 같이있는 것 자체가 악몽일수도 있었다. 베흔으로서는 영 찜찜하기 짝이없었지만 거절할만한 명분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황후가 149층에 내려서자 미리 대기하던 이십여명의 수행 시녀들과 십여명의 근위대 가디언들이 일제히 황후를 따라 침실로 향했다. 위엄과 기품이 넘친다고 소문이 자자한 이 북부출신 황후를 앞에서 인도하면서 베흔 역시 묘한 두려움이 드는 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오늘밤은 지옥같은 기억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붉은 빛이 도는 삼각형 문이 열리고 황후 침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의 큰 연못 겸 욕탕을 중심으로 주변을 빙 둘러 낮은 나무들과 화초들이 잘 가꾸어져 있었고 그 바깥으로 거대한 깃털 침대와 옷장들, 서재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 화려한 공간은 원래대로라면 황제와 황후만의 은밀한 시간을 위한 공간이었겠지만, 사실 황제는 즉위 이후 이곳에 단 한번도 발을 들여놓은 일이 없었다.
황후를 따라들어온 네 명의 시녀들이 황후의 갈아입을 옷과 잠자리를 정돈해주고 있는 동안 베흔은 삼면으로 둘러쳐진 큰 전창을 통해 발아래 보이는 1번 도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고있던 화려하고 거추장스러운 옷을 모두 벗고 가벼운 원피스로 갈아입은 황후는 시녀들을 모두 내보내고는 잠시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창가에 서 있던 베흔은 줄곧 곁눈질로 이 무서운 황후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머리에 쓰고있던 작은 금제 레이스를 끌러놓은 황후는 목에 걸고있던 은목걸이를 끌러 화장대 한옆의 비취빛 꽃무늬로 장식된 화려한 보석상자에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챙겨넣었다.
'웬일이지?'
베흔이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그의 행동을 계속 살폈다. 그가 시녀들을 통해 들은 바로는 황후가 끔찍하게도 아끼는 저 은제 목걸이는 황후가 잠잘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목욕할때도 절대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다는 그런 물건이었다. 한번은 황후의 옷을 입혀주던 시녀 한 명이 실수로 저 목걸이에 손을 댔다가 길길이 날뛰는 황후의 명으로 참수당할 뻔 했다는 황당한 소문까지도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매화가 새겨진 새끼손가락만한 저 길쭉한 펜던트는 그냥 여염집 아낙네들이라면 모를까 제국의 '황후'가 차고 다니기에는 사실 지독하게 볼품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저 황후는 파티석상에 나갈때도 저 위에 화려한 목걸이를 덧차는 한이 있어도 저놈을 몸에서 떼어놓은 일은 단 한번도 없다는 것이 시녀들의 보고였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이유엔지 저 목걸이를 끌러놓은 것이었다.
잠시 얼굴을 매만지던 황후는 자리를 옮겨 서재에서 책 한권을 꺼내들었다.
"알려줄게 있네. 근위대장."
"예?"
"테번 공은 뭐가그리 바쁜지 파티가 끝나자마자 어딘가로 또 가버리더군."
소스라치게 놀란 베흔은 이 걱정스런 여자가 왜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든 경우의 수를 뽑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일인지 그의 머릿속에는 '최악의 경우'만이 맴돌고 있었다.
"네페티 부인은 34층 영빈관에 또 혼자있을게야......장소가 장소니.....좀 겁나겠군."
베흔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여자의 태도는 '최악의 경우'에 점점 가까와지고 있었다. 저 여자의 의도가 무엇이든 베흔으로서는 더 이상 밀릴 이유가 없었다. 베흔은 최대한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연극은 그만하시죠. 황후폐하."
서재 탁자에 앉아 책을 읽고있다가 베흔을 힐끗 돌아본 세네피스 황후가 갑자기 씨익 웃음을 지었다.
"고맙네. 나도 내 연극이 지겨워 죽을지경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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