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153화 (153/1,132)

< -- 153 회: Part 8. 떡갈나무 언덕에 홀로 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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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식당의 한구석에서 혼자 아침을 먹던 제네르에게 밥상을 든 시로가 다가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이런 시로의 옆을 아메스가 아침상을 직접 들고 신나게 지나가더니 제네르의 앞에 털석 자리를 잡았다.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 시로는 조심스럽게 아메스의 옆에 상을 내려놓았다. 워낙 많은 손님들이 한번에 다 모이는 큰 행사인지라 각 가문 종장들이나 페로와 같은 몇몇 귀한 손님들 외에는 임시로 만들어진 이 공동식당에 모여 노예들과 하인들의 접대를 받고 있었다.

"헤헤, 어떠셨어요?"

속모르는 아메스가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뭉개진 발음으로 제네르에게 물었다.

"홀아비나 과부들이 더 인기좋은 게 괜히 그런게 아니라던데, 헤헤. 뭐, 혼담 뒷배경 따위는 접어두고 남자 하나만 보면 뭐, 괜찮아보이던데요. 음.....키만 좀 크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원래 동부사람들 체구 작은 건 유명하니까......어땠어요? 잠자리에선?"

아메스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제네르에게 계속 질문을 퍼부었지만 제네르는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밥만 먹고있었다. 아메스는 그제서야 자신의 옆에서 밥을 먹는 애꿎은 시로를 갑자기 째려보았다.

"아이씨, 남자가 옆에 있으니까 단장님이 얘기를 못하시잖아요."

"그, 그래?......그럼 딴데 갈께."

시로가 갑자기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상을 들고 일어섰다. 제네르가 그제서야 작게 입을 열었다.

"그냥 있어, 시로......제발."

"부끄럼타시나봐."

아메스가 키득거리며 밥 한숟가락을 다시 입에 넣었다.

"동부 남자들이 체구는 작아도 정력은 최고라던데, 킥킥, 사실이예요?"

제네르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아직 호기심이 넘칠 나이인 아메스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아이씨, 난 생각할수록 억울하네. 난 왜 약혼까지 했는데 이런기회 한번 못가진거지? 황후폐하는 다리놓아주시기는 커녕 옆에서 초만 치고 계시니, 휴, 정말 부러워요."

아메스가 입을 삐죽거리며 밥 한숟가락을 다시 입에 털어넣었다.

"괜찮으시죠?"

망설이던 시로가 결국 입을 열자 제네르가 고개를 조금 끄덕거렸다.

시로가 얼마나 문댔는지 번들번들해진 큰 배 한 개를 주머니에서 꺼내 제네르의 식탁위에 올려주었다.

"새벽에 주방 옆에서 슬쩍 했어요."

"고마워."

제네르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제껀요?"

아메스가 입을 삐죽거렸다.

"쳇. 총리각하하고 같이 식사할 줄 알고 준비 안했지. 그쪽 밥상이 훨씬 비까뻔쩍할거아냐. 누가 여기 와서 먹으래?"

"하긴 그렇긴 하네. 내가 왜 여기왔지?"

아메스가 자신의 밥상을 문득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 때 무언가를 느낀 시로의 날카로운 시선이 문득 입구쪽으로 홱 돌았다. 슈트란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머플러를 두른 단정한 차림새의 네자드 경이 침착한 모습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누굴 찾기라도 하는지 식당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문득 고개를 든 제네르와 네자드의 시선이 가볍게 부딪히자 난처한 표정을 짓는 제네르에게 네자드 경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약간의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내내 시큰둥하던 어제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네자드도 동료들과 함께 앉아있는 제네르에게 굳이 다가와 난처하게 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는 멀찍이 떨어진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쳇, 끝까지 얘기 안해주시네. 재미없어."

아메스가 입안에 밥을 퍼넣으며 투덜거렸다. 식사를 끝낸 제네르가 시로가 내민 배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따가 제례장에서 보자."

혼자 터벅거리며 식당을 나서는 제네르의 뒤를 네자드 경이 급히 따라가고 있었다. 숙소 쪽을 향하던 제네르의 앞을 갑자기 막아선 네자드가 웃음띤 얼굴로 말을 건넸다.

"아침에 깨보니 안계셔서.....잠결에 나가신다는 말을 들은 건 같았는데....."

"말씀 드리고 나왔는데 다시 주무셨군요."

제네르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피곤해서.....너무 깊이 잠들었나봅니다."

네자드가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는 자신보다 키가 조금 큰 제네르의 얼굴을 문득 올려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제네르는 자신의 옆에 누워 잠든 이 남자의 얼굴을 보며 느꼈던, 지난 새벽의 그 황당한 죄책감에 다시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 남자는 누구처럼 잠자리만 들어가면 돌변하는 형편없는 놈팽이도 아니었고,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이 예비약혼자를 마치 정실부인 정도로 대해줄 정도로 충분히 세심한 사람이기도 했다.

"당신을 보고싶어 서둘러 나왔습니다."

네자드 경이 어제와는 사뭇 다른, 따뜻한 톤으로 말했다. 제네르는 아찔해오기 시작한 정신을 가까스로 추스리며 그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는 아직 순진하기 짝이없는 시로를 정말로 볼 낯이 없었다. 그는 손에 쥐고있던 맨들거리는 배를 멍 하니 바라보았다.

슈트란 종가 남쪽의 시가지를 향해 죽 뻗은 주작대로는 도시의 반대편 끝에 위치한 사당까지 이어져 있었다. 슈트란 종가에 모인 1제후부터 5제후까지의 상급제후가문 사람들은 가문별로 열을 지어 도보로 사당까지 가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초원을 가로지르고, 시가지를 지나 사당까지 가야 하는 그 거리가 만만치않은 것이 사실이었지만 추모와 패전에 대한 속죄의 의미를 갖는 대제례에서 최고제후나 종장들이라도 그 원칙을 빠져나갈수는 없었다. 이미 보병들이 완전통제해놓은 이 넓은 대로는 오백여명의 보병들과 7기의 근위기병의 호위를 받는 동부 최고의 귀족들의 행진로로 이용될 예정이었다.

행렬을 호위하는 근위기병의 수가 단 7기밖에 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마민족의 후예인 동부 제후들은 항상 백여기가 넘는 기병들의 호위를 받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도보로 행진해야 하는 대제례에서 수백여기의 기병들의 양면호위를 받는다면 기병들 중간에 '끼어 걷는' 제후들의 품위가 망가질 것이 뻔하다는 말이 되는것 같기도 하고 아닌 듯 하기도 한 이유 때문이었다.

슈트란 가 종가를 대표하는 거대한 남문은 사실 1년 내내 거의 열리는 일이 없는, 요란스런 장식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1년중 그 남쪽 대문이 열리는 유일한 날이 바로 오늘, 대제례 개막일이었다.

백여명의 노예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사람 키의 족히 열배는 됨직한 거대한 철문을 여는 광경은 이 대제례의 시작을 알리는 최대의 장관이기도 했다. 열린 문으로 옛 동부 연합군의 거대한 군기를 치켜들고 말에 오른 기수를 선두로 각 가문을 상징하는 머플러를 두른 귀족들이 그 서열에 따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장관을 보기 위해 인근에서 모여든 평민들, 인근 유목민들을 비롯한 수만명의 구경꾼들이 새벽부터 이 종가 앞에 운집해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상급귀족문을 지닌 이들 최고위급 제후들을 눈앞에서 본다는 건 평생에 한번 있을까말까한 대단한 일이었다. 물론 제후들의 양옆을 철통같이 지키는 보병들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지만 색색의 머플러와 화려한 복장으로 장식한 수백명의 이들 '특별한 인간'들은 멀리서 바라보는 그 자체로도 제법 근사한 구경거리였다.

그들의 선두에 선 페로와 최고제후 샤자한 공은 물론 최고의 관심거리였다. 평소처럼 화려한 복장의 페로는 길거리를 둘러선 많은 구경꾼들의 넋나간 시선을 단연 독차지하며 그에 대한 동부인들의 열렬한 인기를 또한번 확인하고 있었고 샤자한 공 역시 매년 이 행사에 참석해주는 이 귀한 손자의 존재에 내심 자부심을 느끼며 앞장서가는 슈트란 가의 그 전통깊은 맹호 문장이 새겨진 큰 깃발을 따라 걷고 있었다.

페로의 뒤를 걷는 아메스는 난생처음 직접 참석해보는 이 요란스런 행사에 약간 얼떨떨해진 표정으로 아버지와 행여나 떨어질까 종종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만일을 대비해 2기의 무장한 근위기병이 페로와 샤자한 공의 양옆을 약간 떨어져서 호위하고 있었다.

2백여명의 슈트란 가문 사람들의 양옆으로 조금 뒤처져서 역시 2백여명씩이 참석한 2제후 트라티누스 가와 3제후 하크로딘 가 사람들이 가문의 깃발과 종장을 각각 앞세우고 걷고 있었다. 기수까지 포함해 2기의 기병들의 호위를 받는 샤자한 공과 달리 2제후부터 5제후까지의 종장들 곁은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큰 깃발을 든 기병 기수 한명씩이 지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상급귀족문이 새겨진 먼 친척들의 사이로 하급귀족인 제네르가 여전히 풀죽은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붉은 비단포에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머플러는 원칙적으로 직계 상급귀족들에게만 허용되는 복장이었지만 종장 플로브 경의 강요에 못이긴 제네르는 결국 군복 대신 이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재밌네요, 뭐."

옆에서 함께 걷는 시로가 시무룩해져있는 제네르에게 과장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무슨 가장행렬도 아니고 헤헤."

너무 큰 웃음소리에 제네르의 앞을 걷던 하크로딘 가 친척 하나가 시로를 대뜸 째려보았다. 당황한 제네르가 시로에게 조용히 하라며 손짓을 해 보였다. 이 자리는 축제자리가 아니고 제사였다. 분위기파악을 잘못한 것을 깨달은 시로가 결국 무안하게 입을 다물었다.

종가 남문을 출발한 제사단 행렬은 양쪽으로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주작대로를 따라 걸으며 10스타디아정도 떨어진 시가지를 향하고 있었다.

"예상대로군."

베아트릭스가 긴장을 풀려는 듯 고개를 한번 좌우로 비틀어보았다. 보병들의 경호는 꽤 삼엄했다. 미늘창를 쥔 보병들은 호기심에 찬 평민들과 유목민의 접근을 엄격하게 차단하고 대로를 걷는 자신들의 주군 가문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가 믿는 것은 단 두가지였다. 적의 기병이 겨우 손으로 꼽을 정도 뿐이라는 것과, '죽으려고 덤비는 놈은 아무도 못막는다'는 옛 격언이었다.

그에게 있어 걱정거리는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죽음을 당한 후에 몸통에서 잘려나가 잘 보이는 곳에 걸리게 될 자신의 머리를 보고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는 불상사라도 생기는 것이 그로서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행여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괘씸한 하급제후 바툴 가를 저들이 그냥 놔둘리가 없었다. 최악의 중죄를 저지른 씨를 낸 자신의 외가는 저 무시무시한 상급제후들의 손에 일가가 전멸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설사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는다해도---자신만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그 혐오스러운 시가를 떠났을---어머니는 동부의 친정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고 동부인을 죄인 취급하는 남부에서 남은 평생을 남편도 없이 이방인으로 보내게 될 것이 뻔했다.

베아트릭스는 눈에 익은 푸른 초원과 맑디맑은 하늘을 다시한번 올려보았다.

키큰 호마에 올라탄 그들은 군중들 사이에서도 단연 높이에서 두드러지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진짜 유목민들'이 군데군데 보이기는 했지만 대개가 키작은 과하마에 올라탄 그들은 군중들 사이에서 상체 정도나 겨우 드러나있을 따름이었다. 눈에 띄기 쉬운 호마를 타기로 한 것도 베아트릭스 자신의 결정이었다. 어차피 모든것은 초반 몇초에 결정날 터였다. 부하들은 자신의 이 결정을 '빠른 말로 무사히 달아나기 위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지만 베아트릭스는 탈출 따위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최고의 시야를 확보해서 제대로된 1격을 날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정도 거리에서, 조준을 위한 궁기병용 스코프도 없이 감각에 의한 저격으로 저 많은 행렬 중앙에 서 있는 한 표적을 맞춘다는 건 보통 사람들에게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겠지만 베아트릭스와, 그를 따라온 정예 궁기병들에게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예정대로 진행한다."

베아트릭스가 부하들의 어깨를 하나하나 짚어주며 말하자 고개를 끄덕여보인 부하들이 일제히 맡은 위치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키큰 백마에 올라탄 선두의 기수가 큰 군기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지만 무거운 깃발을 드느라 무장이라고는 칼 하나를 찬 것이 고작인 그녀석은 그다지 신경쓸바가 아니었다.

기수의 뒤로 제일 화려한 복장의 두 남자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파일에 따르자면 키크고 제법 뺀질하게 생긴 저녀석은 자신들의 제1타겟인 페로 자이센임이 분명했고 그 옆의 나이가 조금 들어보이는 녀석은 제2타겟인 샤자한 공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둘의 양옆을 기병이 호위하고 있었지만 그 중 하나는 역시 깃발을 들고 있으니 시야를 가리는 것 빼고는 있으나마나한 놈이었다.

문제는 나머지 한 명, 자신과 같은 투창으로 무장하고 창을 지닌, 7명의 근위기병 중 유일하게 제대로 무장한 녀석이었다. 죽을 귀족녀석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하게도 대장인 자신의 타겟은 바로 저녀석이었다. 같은 궁기병인 저녀석을 제일먼저 거꾸러뜨리지 않으면 각각 2개씩의 타겟을 할당받은 부하들이 1번 이상의 저격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그리고 제대로된 사이클롭스도 장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주로 제대로 무장한 기병을 단 1발로 확실히 제압해 낙마시키는 것은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도보로 걷고있는 손쉬운 '진짜 타겟'을 잡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자신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베아트릭스는 말 오른쪽 어깨에 달려있던 퀴버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고 손에익은 자리드의 감촉을 확인했다. 옆에 서 있던 구경꾼 한 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지금 이순간 어차피 누가 보건말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페로의 옆을 걷던 페다이가 갑자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왼쪽에 모여있던 군중들 사이에서 갑자기 큰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왕좌왕하는 군중들 사이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경호하는 보병들의 머리 위를 스쳐 날아왔다.

"자객이다!"

페다이의 고함소리와 함께 검은색 자리드가 샤자한 공의 옆을 걷던 경기병의 투구와 경갑 사이, 그 조그만 틈새를 마치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그대로 꿰뚫었다. 급소를 직격당하면서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한 기병은 그 어마어마한 힘에 밀려 말 옆으로 튕기듯 떨어져버렸다. 가히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정확한 일격이었다.

"공격!"

왼쪽에서 호마를 탄 4명의 유목민이 큰 고함을 지르며 경호를 맡은 보병들을 짓뭉개고 달려나왔다. 서둘러 칼을 뽑아든 페다이가 페로와 샤자한 공 앞을 급히 막아섰다. 그의 앞으로 달려오고 있는 건 2명의 유목민 기병이었다. 페다이는 적당한 거리 대로 달려들면 뛰어올라 녀석들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릴 참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손에 들린 건 그냥 창이 아니었다.

"으앗!"

뜻밖의 투창 공격에 페다이는 순간적인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나는 샤자한 공, 하나는 페로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를 막는다는 건 나머지 한명의 죽음을 뜻했다. 결심을 굳힌 페다이가 뒤로 홱 돌아섰다.

"으아악!"

비명을 지른 페다이가 페로와 샤자한 공을 동시에 껴안은 채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의 어깨를 꿰뚫은 자리드가 샤자한 공의 오른쪽 뺨을 찢으며 바닥에 세차게 내리꽂혔다.

"페다이!"

페로가 피를 쏟는 자신의 가디언을 껴안으며 고함을 질렀다. 페다이에게 깔려 넘어진 페로는 그의 어깨 너머로 다시 자리드를 치켜든 자객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썅!"

슈트란 가의 깃발을 들고있던 기수가 무작정 기를 휘둘러 그 유목민의 머리를 그대로 후려치자 녀석은 미처 자리드를 던져볼 여유도 없이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깃발 끝의 창날로 그의 가슴을 찌르려던 기수는 군중들 사이에서 또다시 날아온 자리드에 목의 급소가 명중하며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튕겨나가더니 깃발을 떨어뜨리며 그대로 숨이 끊어져버렸다.

그사이 페다이가 떨어뜨린 행거를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페로가 아직 중심을 잡지 못한 그 자객에게 돌진해 그의 오른팔을 힘껏 내리쳐 버렸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녀석의 팔과 옆구리가 잘려나가자 그제서야 녀석의 주변으로 보병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나머지 한 명의 자객에게도 보병들이 돌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거의 맨손으로 그 말탄 유목민 자객의 말에 달려든 보병 한 명이 급한나머지 말 어깨에 달려있던 퀴버를 끌어안았다. 말발굽에 짓밟히며 비명을 지르는 보병과 함께 아직 몇 개의 자리드가 더 들어있는 퀴버가 뜯겨져나가버렸다. 무기를 잃은 자객은 급한나머지 창을 꼰아잡고 귀찮은 보병들에게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행거를 든 페로가 군중 속을 돌아보았다. 그 중앙에 있던 또한명의 유목민---지금까지 두 명의 기병들을 쓰러뜨린 장본인인 듯한---이 이번엔 자신을 향해 그 무시무시한 자리드를 겨누고 있었다. 페로의 얼굴이 순간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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