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9 회: Part 8. 떡갈나무 언덕에 홀로 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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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것봐. 내가 에너지장벽이 먼저 작동될거라 그랬지."
헤즈 경이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것을 과시하듯 의기양양하게 웃음을 지었다. 기사단 사령관 세베토 경과 나란히 선 경기병단장 히르직스는 헤즈의 어처구니없는 태도에 보일듯말듯 경멸의 미소를 지었다. 행성 에너지장벽 정도는 자폭셔틀 이백여대만 동원한다면 한두시간이면 뚫을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시간벌기용이지 궁극적인 방어수단은 결코 아니었다.
어쨌든 히르직스가 보기에 이번 공격은 별 의미 없는 무력시위나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놈들에게 반격을 준비할 시간여유를 주는 것일수도 있었다.
'겁장이새끼.'
히르직스가 신중함이 지나쳐보이는 저 사령관을 내심 조소하며 도크에 열을 맞춰 서서 출동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휘하 경기병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들 한쪽에는 베아트릭스가 지난 9년간 직접 키워낸 천오백여명의 궁기병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대장이 동부제후들을 상대로 어마어마한 전공을 세웠다는 사실에 이미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하지만 병실에 누워있을 베아트릭스 자신은 스스로의 신상이 이미 아군은 물론이고 적에게 모두 공개되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터였다.
"안됐군."
말의 목을 가볍게 두들기며 마음을 가다듬던 히르직스는 갑자기 뒷통수가 간지러운 느낌에 옆을 돌아보았다. 바로 옆에 선 기사단 사령관 세베토 경이 조금은 긴장한 듯한 모습의 자신을 힐끗 돌아보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경기병단장으로는 첫 전투지? 잘해보게나."
의미만으로 따지면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흔한 격려사였지만 그 저면에 깔려있는---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묘한 비아냥거림에 히르직스의 부아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저 잘난 기사단 사령관의 번쩍이는 중갑주와 화려한 망토, 잘생긴 얼굴을 새삼스레 째려보았다. 무슨 이유엔지 중장기병대의 저 번쩍이는 갑옷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의 못난이도 당당한 기사로 우러러보이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가문 최고의 절륜남으로 꼽히는 저 남자야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게다가 5천여명씩으로 이루어진 3개의 기사단을 휘하에 거느린 대장군급의 '기사단 사령관' 직위는 중장보병단장과 함께 플라칼 가 제후군에서 누구나 선망하는 가장 핵심 요직이기도 했다.
히르직스는 자신의 가벼운 갑주와 튀지않는 행색, 평범한, 아니 조금 나이들어보이기까지 하는 얼굴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는 오르마즈 경, 슈엘러 경, 제롬 공 등등의 쟁쟁한 거물들과 당당히 어깨를 함께했던, 꽤 잘나갔던 옛 슈로 기사단 시절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도크 앞에 달린 큰 스크린에 5번 행성에 진입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10대의 대형 수송선이 5번 행성의 대기권을 뚫고 빠른 속도로 진입해들어가고 있었다. 보병은 만 오천명씩, 기병은 7천씩을 실은 수송선은 계획대로 5번 행성에 위치한 트라티누스 가 제후군 제3군단과 4군단을 공격해들어가고 있었다. 녀석들도 바보가 아니라면 이미 진형을 갖추고 이 침입자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확실했다.
"3, 4군단 좌표 6809, 1586 베하라 요새에 집결해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헤즈의 참모가 스캐너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농성으로 시간을 끌어보겠다 이거군."
세베토 경이 손바닥을 비비며 낄낄대기 시작했다. 적이 농성을 한다면 기병들로서는 일단은 별다르게 할 일이 없었다. 후방 기습을 노릴지도 모를 적 기병들을 경계하면서 뒤에서 별구경이나 하면서 기다릴 일이었다. 제국 최강의 기병을 자랑하던 동부가 요격전을 포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니 급하기도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었다.
"추정병력은 중보병 4천, 경보병 6천, 중장기병 천과 경기병 천오백입니다."
"히르직스 자네 궁기병부대가 한번 해줘야겠군."
헤즈 경이 히르직스를 힐끗 돌아보았다. 명령을 받은 히르직스는 궁기병대 부지휘관인 달리 플라칼 교위에게 알아서 하라는 눈짓을 보내고 있었다.
기사단에서 이쪽으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는 히르직스 자신은 사실 투창 따위는 전혀 던질줄도 몰랐고, 경기병이니 궁기병이니 하는 따위에 대해서도 그다지 자세하게는 아는바가 없었다. 궁기병대장인 베아트릭스가 없어도 그냥 저희들끼리 잘 알아서 할 것을 믿을 뿐이었다.
오른쪽 어깨에 힘을 최대로 받기 위한 보조 탄력장치--궁기병들 스스로는 '사이클롭스'라고 부르는---와 말 위에서 서서 던질 수 있도록 특수하게 설계된 안장과 등자, 광학 조준장치가 달린 특수한 스코프를 쓰고 있는 궁기병들은 그 외모에서부터 다른 경기병들과는 완전히 구별되고 있었다. 저 장치를 달고 마상에서 속도를 받아 던지는 경투창은 1스타디아가 넘게 날아가 경보병의 얇은 장갑 정도는 쉽사리 뚫을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보이곤 했다.
한번은 각 부대의 장기를 보이는 행사중에 베아트릭스가 1스타디아 밖에서 던진 자리드---가벼운 경투창도 아니고 무거운 중투창인---가 방패를 뚫고 모조 중보병의 흉갑을 박살내버리는 광경에 사람들이 경악을 한 적도 있었다. 근접전을 중시하던 플라칼 가에서 작으나마 궁기병부대를 만든 것도 그 광경에 '감명받은' 가문 수뇌부의 결정 때문이었다.
약간의 진동과 함께 수송선이 바닥에 착륙했다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그와함께 병력 수송선의 하부 바닥이 통째로 밑으로 내려가면서 십만여 병력은 동시에 이 낯선 동부의 땅을 딛고 서 있었다. 한번에 모든 병력을 내보내기 위한 병력수송선만의 특이한 하선방법이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착륙한 10대의 수송선에서 무려 10만의 피에 굶주린 플라칼 가 제후군들이 우루루 몰려나왔다.
밤이 늦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든 페로는 얼마 못가 갑자기 들려온 큰 고함소리에 누워있던 따뜻한 온돌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상을 입어 페로 관으로 돌려보낸 페다이를 대신해 저녁에 막 도착했던 다룬이 페로의 방 문을 거칠게 두들기고 있었다.
"뭔가?"
페로가 잔뜩 짜증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샤레이 행성계에 플라칼 가 병력수송선 10대가 진입했다고 합니다!"
"썩을!"
페로가 두꺼운 명주이불을 옆으로 차내며 잠옷 바람으로 벌떡 일어섰다. 그는 채 눈곱도 떼지 못한 채 겉옷만 겨우 챙겨입고 다룬과 함께 사랑채로 달려갔다. 페로와 마찬가지로 자다가 겨우 깨어난 각지역 제후들이 피곤한 모습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물론 누구보다 가장 긴장한 당사자는 제2제후 제르베 트라티누스 경이었다.
"부하들에게 농성하며 시간을 끌라고 지시했습니다. 수도인 6번 행성을 직격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5번 행성쪽을 쳐와서......대비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제르베 경이 주변을 둘러선 제후들을 죽 둘러보았다. 유목민 용병대와 제후 연합군은 내일 정식으로 출동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한 박자를 빼앗긴 셈이었다. 게다가 유목민 용병대는 공식적인 편제과정을 거치려면 실전 투입까지 며칠 더 소요될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농성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 지금당장 비상출동해야겠습니다."
페로가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다. 제후 연합군을 맡은 플로브 경 역시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다말고 출동령을 받은 제네르는 어깨에 감고있던 붕대를 그대로 풀어버리고 급히 갑주를 챙겨입었다. 슈로 기사단장을 상징하는 은색의 화려한 갑주를 갖춘 제네르는 밖으로 나서 아직 어두컴컴한 초원의 하늘을 문득 올려보았다. 네 마리의 용이 새겨진 망토까지 모두 두른 제네르는 종자가 내민 자신의 창을 받아들고 자신의 얼룩무늬 키큰 준마에 훌쩍 올라탔다.
"페로 경께선 이미 수송선으로 출발하셨습니다."
종자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인 제네르는 말을 타고 슈트란 가 종가 밖으로 천천히 향했다. 종가의 동문 밖에는 떠나는 일행들을 배웅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군데군데 보이고 있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제네르의 부모님도 말에 오른 딸의 손을 잡아주며 애써 웃음을 지어보렸다. 한쪽에서는 흰 백마에 올라탄 아메스가 묘하게 비장해보이는 주변 광경을 구경하며 히죽거리고 서 있었다.
화려한 흉갑과 스케일 갑옷이 조합된, 귀티가 풍기는 고급스런 기병용 갑옷을 입은 아메스의 모습에 제네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보는 갑옷인데. 어디서났지?"
"아르군 경께서 입으시던 거라고 하네요. 최고제후님이 입으라고 주시더라구요. 저한테는 조금 커서 줄이느라 애먹었죠."
아메스가 처음 입어보는 갑옷이 약간 쑥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 했다. 한쪽에서는 이번 연합군의 기병사령관으로 떠날 예정인 샤자한 공의 차남 다히르 경을 배웅하는 슈트란 가 사람들이 모여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간에는 다히르 경의 세째아들인 네자드 경의 모습도 보였다. 그쪽에서 급히 시선을 돌린 제네르는 혼자 수송선 쪽으로 말을 몰았다.
누가보기에도 눈에 확 띄는 슈로 기사단장의 화려한 갑옷를 입은 제네르가 슈트란 가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을 턱이 없었다. 게다가 말 엉덩이에 실린 삼각형의 반투명한 황실 문장 방패에는 일기투에서 제네르가 이미 꺾은 바 있는 하지즈 장군과 플레렌 가 문장이 킬마크를 뜻하는 붉은 사선과 함께 그려져 가뜩이나 더 사방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제네르는 일기투 직후 자신의 새 방패에 이 마크를 신나게 새겨넣어준 친구 라손을 처음으로 원망하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멀리에서 그를 알아본 네자드 경이 제네르에게 허둥지둥 달려오고 있었다.
"무사히 돌아오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웃음을 지어보인 네자드 경이 제네르의 창 손잡이에 미리 준비해온 붉은색 술을 직접 달아주고는 그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다.
"감사합니다."
제네르가 마지못해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보였다.
말에 올라 수송선 입구에 말없이 서 있던 페로는 여기저기 모여있는 제후가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2제후 트라티누스 가문 사람들은 이미 셔틀로 다 떠난 후였고 나머지 상급제후가문 지휘관들이 가족들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번쩍이는 중갑주에 큰 화극을 든 페로의 당당한 모습은 멀리서도 눈에 확 띄고 있었다.
"아메스!"
아버지의 외침에 멀리 있던 아메스가 급히 말을 몰아 아버지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우렁찬 목소리에 페로를 돌아보는 또한명의 여자가 있었다. 전장으로 떠나는 두 자녀를 배웅하기 위해 나와있던 4제후 나람 눌레딘 부인이 딸의 갑주를 꼼꼼하게 살펴주는 아버지 페로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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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잔뜩 들뜬 페로는 슈트란 가 종가를 가로질러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잘하면, 아니 엔간하면 9년간 질질 끌어온 나람과의 결혼문제가 해결될 것이 확실했다. 남극성당 박사과정 졸업을 코앞에 둔 페로는 졸업과 동시에 나람과 혼례를 올리기위해 그동안 나름대로 꽤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40대 중반 정도면 결혼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었지만 눌레딘 가 쪽에서는 페로의 나이를 들먹거리며 택일을 미루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 수법도 통하지 않을것이 확실했다.
눌레딘 가가 왜 택일을 미루는지 페로도 익히 짐작은 하고 있었다. 조만간 황제령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던 페로의 동부 생활은 이미 26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결국 남극성당의 생도생활 전부를 샤자한 공의 도움으로 마친 셈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슈막은 여전히 페로를 외면하고 있었고, 페로가 하루빨리 자이센 가 후계자 자리로 복귀해주기를 바랐을 눌레딘 가에서는 여전히 안개속에 있는 페로의 지위를 불안하게 느끼고 있음이 확실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었다.
슈트란 가 종가 사랑채에 도착한 페로는 큰 소리로 이름을 고하고는 샤자한 공이 있는 방 안에 뛰쳐들어섰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샤자한 공이 평소답지않게 분주해보이는 이 외손자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갑자기.....무슨 일이냐?"
"할아버님께서 눌레딘 가에 택일을 권고해주셨으면 하옵니다."
납죽 절을 올리며 말하는 페로의 목소리에는 평소보다 두배는 넘는 힘이 배어나고 있었다.
"그건......이미 전에도 몇번 했었는데?"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샤자한 공에게 페로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람이 임신을 했습니다."
"뭐.....뭐? 정말이냐?"
샤자한 공이 입을 떡 벌린 채 물었다.
"아, 아니......나람도 주기가 멈춰 있었을 것인데......어찌......"
샤자한 공의 의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수명개조 이후의 정상적인 여자라면 평소에는 모든 주기가 정지되어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있는 것이 당연했다. 임신을 하기 위해서는 배란을 위한 특수한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드물게 약도없이 배란을 하는 경우가 있는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히죽거리며 웃고있는 페로의 음흉하기까지 한 표정은 그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샤자한 공의 의심을 확실히 다져주고 있었다.
애써 웃음을 참고 있는 페로를 바라보며 샤자한 공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 응큼한 녀석.....약을 몰래 먹였구나."
"나람에겐 절대 이야기하지 마시옵소서."
페로의 능청스런 표정을 보며 웃음지은 샤자한 공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개월이냐?"
"2개월입니다. 아무런 이상 없는 건강한 사내아이랍니다."
"축하한다. 너도 이제 아버지가 되겠구나. 내 눌레딘 가 쪽에도 알리마."
자리에서 일어난 샤자한 공이 페로의 어깨를 힘있게 두들겨주었다.
샤자한 공을 만나고 나온 페로는 다시 반대편에 있는 종가 의무실로 달려가고 있었다. 막 의무실에서 나오던 나람이 헐떡거리며 달려온 페로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에, 그리고 9년동안 기다려온 나람과의 정식 혼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페로와는 달리 나람은 갑작스런 임신에 충격을 받은 기색이 역력했다. 페로가 그런 나람의 손을 꼭 붙들어주며 말했다.
"최고제후님께 알려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무척 기뻐하시더군요."
입이 귀에 걸린 페로는 나람의 어깨를 꼭 품어안고 자신이 묵는 별채가 있는 서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어떡할까요? 양쪽이 다 적장자 신분이니......나람 쪽 나이가 더 많으니까......그쪽 성을 먼저 따르는 게 좋겠네요."
나람은 페로가 성 문제에서 별 이의없이 양보하자 기분이 조금 풀린 듯 억지스러우나마 미소를 지었다.
"대신 이름은 제가 짓죠. 사내아이라니까......돌아가신 제 할아버지 이름을 받아서 투모카프로 하죠. 투모카프 자이센 눌레딘? 괜찮죠?"
"괜찮네요."
나람이 마지못해 웃음을 지으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딸이면 돌아가신 어머님 아명을 받아서 아메스로 할려고 했는데. 후훗, 다음번엔 딸을 낳는 게 좋겠네요. 그럼.....둘째는 아메스 눌레딘 자이센이 되겠네요?"
여전히 잔뜩 들떠있는 페로는 조금은 시무룩해져있는 나람의 기분은 아랑곳않고는 그답지않은 수다를 계속 늘어놓고 있었다. 페로가 동부에 온 이래로 가장 행복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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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주가 잘 어울리는구나."
페로가 자신을 빼닮은 야무진 딸의 뺨을 툭툭 두들기며 중얼거렸다. 샤자한 공이 갑주와 함께 선물한 긴 사모창을 쥔 아메스는 처음 나가보는 대규모의 전투에 약간 흥분되었는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넌 위험한 곳에 직접 나설 생각은 말아라."
"하지만....."
젊은 아메스가 아버지의 주의가 별로 맘에 들지 않는지 무어라 대꾸하려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페로의 무서운 시선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넌 아직 실전경험이 한번도 없다. 무슨 뜻인지 알겠냐?"
"지난번에 집에서 근위대와....."
"글쎄 칼은 곧잘 쓰는 것 같기는 하다만 아직 기마술도 서투르고 창술도 부족해. 내 옆이나 제네르 경의 옆에서 떨어지지 말거라. 다룬이나 시로가 지켜줄테니."
아버지의 단호한 태도에 아메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플로브 경을 따라 전장으로 떠나는 두 자녀를 배웅하기 위해 나와있던 나람 눌레딘 부인은 그런 페로에게서 조용히 시선를 돌리고 있었다.
"놈들이 5번 행성 베하라 요새에 공격을 개시했다고 합니다."
다룬의 보고에 페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출발하고는 있지만 어차피 페로가 이끄는 용병대는 물론이고 정규 지원군도 오늘 당장 전투에 참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플로브 경과 다히르 경이 이끄는 4만의 정규 지원군이 집결을 끝내고 반격준비를 갖추는 데 소요될 최소 하루나 이틀 이상의 시간을 5번 행성에서 벌어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초원을 박차고 오른 슈트란 가 소속 수송선은 결전이 준비중인 샤레이 행성계로 기수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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