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171화 (171/1,132)

< -- 171 회: Part 8. 떡갈나무 언덕에 홀로 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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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동부 기병들의 측면을 1기사단과 함께 맹공하던 히르직스는 후방을 기습한 적 기병부대를 페로가 지휘하고 있다는 소식에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중장보병이나 경보병들과 연계해 기습부대를 쫓아내는 정도라면 기사단 5천으로 가능할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일이 꼬이면---같은 아군의 입장에서 조금 아이러니하지만---망할 세째남편 녀석이 페로나 그밖의 중요인물들을 잡는 큰 공훈을 세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쨌든 당장으로서는 녀석들의 주력부대인 기병들을 박살내는 것이 선결과제였다. 3기사단이 후방으로 빠져나가면서 적의 창병들이 기사단의 측면을 나름대로 몰아붙이고는 있었지만 피해는 미미했고 녀석들 중앙은 기병과 보병이 뒤엉켜 엉망진창이 따로없었다.

후방에서 쳐오기 시작한 플라칼 가 중장보병 팔랑크스들이 삼면이 포위당한 적 기병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하면서 다히르 녀석이 이끄는 저 유명한 '동부기병'도 조만간 무너질것이 확실해보였다. 포위당해 속도를 잃은 기병은 어찌보면 보병보다도 못한 존재인 것이 사실이었다. 어쨌든 이번에도 저 천하의 겁장이 헤즈 녀석의 전술이 먹혀들어갔다는 것을 그로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히르 녀석입니다!"

부장의 고함소리에 히르직스가 그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오십여기의 호위기병들에게 둘러싸인 다히르 경이 어쩔줄을 몰라하며 휘하 기병들을 계속 무엇이라 몰아붙이고 있었다. 측면을 돌아 보병들의 후미 쪽으로 막 빠져나가려던 그는 양쪽에서 몰려든 1기사단과 2기사단의 협공으로 또다시 퇴로가 막히자 잔뜩 화가 나 있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진형 중간에 있었다면 조금이나마 나았을 것을 어설프게 빠져나오려 버둥거리다가 적들 앞에 기병 사령관인 자신이 고스란히 노출된 셈이었다.

"똥줄이 타겠군."

씨익 웃어보인 히르직스가 투구의 사이트를 내리며 평소의 그다운 냉소섞인 웃음과 함께 내뱉은 말이었다. 대장이 직접 돌격준비를 하고 있음을 눈치챈 기사단 사령관 직할 기병들이 창을 굳게 꼰아쥐었다. 오백여명으로 구성된 사령관 직할 기병들은 남부 기사단에서도 나름대로 추려뽑은 정예용사들이었다. 지난번 5번 행성에서 세베토 경을 잃으면서 당한 '망신'이후로 이들도 명예회복의 기회를 단단히 노리고 있었다.

"명색이 기병대장을 맡고있는데 나정도는 나서줘야 격이 맞겠지?"

창을 치켜든 히르직스의 큰 고함소리와 동시에 돌격진형을 이룬 5백여기의 직할기병은 다른 남부기사들 사이를 무서운 기세로 헤치며 다히르 경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사령관 히르직스를 선두로 정연하게 돌진하는 앞에서는 진형이 망가진 채 흩어진 동부기병은 개개가 제아무리 잘나도 별 소용이 없었다. 족히 백여기가 넘는 동부 기병들이 그 세찬 돌격에 말에서 떨어지거나 맥없이 튕겨나가 쓰러지고 있었다. 어느새 다히르의 거의 코앞까지 도달한 히르직스가 선두에 불쑥 나서며 창을 치켜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남부 제2제후 플라칼 가 기사단 사령관이며 황제령 쉐너 가와 타마르 가의 아들 히르직스다! 너희 기병대장인 다히르라는 똥개는 어디있나!"

제네르로부터 히르직스의 '명성'을 이미 들은 바 있던 다히르는 순간적으로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의 무시무시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다히르의 일기투 실력도 형편없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저런 최고수를 상대할 정도는 못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자신들의 사령관이 위험에 처했음을 깨달은 그의 호위기병들이 급히 다히르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히르가 안쪽으로 급하게 몸을 피하고 있었다.

"누구같은 겁쟁이놈이 여기 또있었구나!"

창을 꼬나잡은 히르직스가 앞을 가로막는 두 명의 기병들을 눈깜짝할새 말에서 떨어뜨리며 다히르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사령관이 직접 앞장서자 힘을 얻은 남부 기사단이 일제히 그의 뒤를 따랐다. 히르직스와 그를 따르는 오백여 직할기사들을 선두로 동부 기병들의 우측 방어선이 무참하게 붕괴되고 있었다. 절망한 다히르 경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또한번 하늘을 가르며 날아온 한 떼의 투창에 이미 저항력을 상실한 플라칼 가 3기사단 기병들이 흙바닥에 무참하게 나딩굴렀다. 지금까지 족히 절반의 부하들이 죽거나 부상으로 전력을 상실한 후였다. 웰시 경은 방패를 내려다보며 다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계속 걸르적거리는 방패지만 지금같이 투창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는 버릴수도 없었다.

기사단의 뒤를 쫓아오던 보병들을 산산이 흩어놓은 슈로 기사단이 다시 3기사단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웰시 경이 다시 힘겹게 방패를 치켜들었다. 이번에 그의 앞으로 달려오고 있는 녀석은 방금전의 그 야만인 족장정도는 아니지만 거의 가디언만한 큰 거구에 투구 뒤로 반짝이는 은발이 삐죽히 튀어나와있는, 겁나게생긴 녀석이었다. 생전 처음들어보는 괴성을 지르며 장창을 내질러오는 녀석을 향해 웰시 경이 가까스로 방패를 가져갔지만 도저히 중심이 맞출 수가 없었다. 굉음과 함께 그의 방패를 직격한 창끝이 옆으로 미끄러지며 웰시 경의 어깨를 무참하게 가격하고 있었다.

"으악!"

치명타를 입은 웰시 경이 큰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리고 있었다. 찢겨져나간 견갑 밑으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지만 어느정도의 부상인지는 스스로도 알 도리가 없었다. 휘청거리는 단장의 앞을 호위기사들 몇이 막아섰지만 그들로서도 또다시 하늘을 덮고 날아오는 2천여개의 자리드를 모두 막을 도리는 없었다. 고통에 물든 참담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자리드를 멍 하니 쳐다보던 플라칼 가 제후군 제3기사단장 웰시 경은 얼굴을 꿰뚫는 무시무시한 투창의 힘에 밀려 말 뒤로 나동그라지며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어쨌든 세째 남편을 눈엣가시같이 여기던 히르직스의 소원은 그럭저럭 이루어진 셈이었다.

단장을 잃은 제3기사단은 허겁지겁 도주하기 시작했다. 바툴 가 경기병 2천여명이 그들의 뒤를 맹렬히 쫓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제네르가 투구의 비버를 치켜올리면서 먼지가 잔뜩 앉은 목에 낀 침을 바닥에 뱉어냈다.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쓴 제네르의 몰골 역시 말이 아니었다.

"이번엔 제대로 한건 했군."

피묻은 창을 치켜들고 의기양양하게 다가오는 부장 발리의 모습에 제네르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뒤이어 다가온 페로가 제네르의 말발굽 밑에 늘어져있는 시체를 창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누구야?"

"망토로 보아서 제 3기사단장 같습니다. 웰시 경이라고 플라칼 가 종가 사위 중 한명이죠."

얼굴을 가볍게 찡그린 페로는 주력군이 분전중인 북서쪽 언덕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영 역부족인걸. 주력군이 저렇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으니 우리만으로는 아무리 애써도 적진을 교란할수가 없어. 주력군과 합류하는수밖에 없겠어. 퇴로라도 벌어줘야지. 썅,"

평소처럼 무어라 육두문자를 늘어놓으려던 페로는 귀에 꽂고있던 할룩스에서 울린 화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제기랄,"

"뭡니까?"

"다히르 경이 고립된 모양이다. 아군 우익쪽이라는데."

페로가 투구의 사이트를 내리며 급히 앞장서 말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페로의 오백여 가디언들과 슈로 기사단, 후방공격을 포기한 바툴 가 경기병대가 일제히 그 뒤를 따랐다.

뒤로 빠지려 어지럽게 뒤엉켜있던 동부 보병들에 잠시 휩쓸렸던 다히르 경은 얼마못가 자신이 히르직스의 토끼몰이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들의 삼면포위망을 빠져나왔다고 안도하던 다히르 경과 3백여명의 호위기병들 앞에 족히 5백여기는 되는 1기사단 중장기병과 장창을 쥔 경보병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이, 이....."

이를 악문 다히르 경의 뒷쪽으로 무려 오백여기의 정예 기병들을 거느린 히르직스가 여유만만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도 족히 5백여기는 되는 또 한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정중하게 대결한번 부탁드리죠. 다히르 슈트란 경."

히죽거리며 웃어보인 히르직스가 창을 치켜들었다. 절망해버린 다히르 경이 창을 꼰아잡고 뛰쳐나가려는 것을 휘하 기병들이 결사적으로 뜯어말리고 있었다.

"쯧쯧.....끝까지 제대로된 대결은 못나오겠군. 그나마 명예롭게 죽여주려 했건만....."

혀를 끌끌거리며 차던 히르직스는 다히르 경을 둘러싼 자신의 천여명의 기병들을 돌아보며 창을 치켜들었다. 일제돌격이 올 것임을 깨달은 동부기병들과 다히르 경이 굳은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돌격!"

히르직스의 고함소리와 함께 히르직스와 그 직할기병 오백여명이 3백여명에 불과한 다히르 경과 호위기병대를 덮치고 있었다. 배후를 지키는 또다른 기병들 때문에 다히르 경으로서는 달아날 구멍조차 없었다. 다히르 경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히르직스를 향해 창을 뻗었다.

"불쌍한 녀석!"

히르직스의 째지는 고함소리와 함께 그의 창을 받아낸 다히르 경이 그대로 말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그를 호위하던 백여명의 기병들 중 수십이 1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물론 남은 얼마 안되는 기병들에게도 무자비한 다른 기병들의 협공이 가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히르직스는 말에서 떨어진 다히르 경의 목을 향해 창을 겨누었다. 투구의 비버가 떨어져나갔을 정도로 심한 충격을 받은 다히르 경은 누운 자리에서 고개도 가누지 못한 채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가쁜 숨만 몰아쉴 뿐이었다.

"명색이 최고제후 아들이니 몸값이 상당하겠지? 절반은 내차지니까.....나도 오늘 한몫 잡았군."

쓰러져 신음하는 다히르 경을 웃으며 바라보던 히르직스는 왼쪽에서 들려오는 거친 말발굽 소리에 고개를 홱 돌렸다. 왼쪽의 얕은 언덕을 넘어 달려오고 있는 일군의 중장기병들의 모습은 어딘지 히르직스의 눈에 익었다. 2중으로 된 견갑과 무광처리된 단단한 흉갑, 나머지부분을 감싼 찰갑, 그 특수한 복합갑주는 바로 그가 130년 전 슈로 기사단에서 입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양쪽으로 거의 야만인에 가까운 이천여명의 경기병들이 자리드를 꼰아잡고 달려오고 있었다. 히르직스는 빠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저 개새끼들,"

"적 보병들을 맡아주시오! 다히르 경이 저기 계시니 조심해 공격하시오!"

"알겠소!"

제네르의 부탁대로 선두에서 대사를 움켜쥔 카이두와 휘하 경기병들이 보병들을 '쓸어내며' 기사단이 돌진할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히르직스를 비롯한 오백여 직할기병들, 그리고 오백여기의 1기사단 중장기병들과 경보병들이 일제히 창을 치켜들었다.

"네깟놈들이 감히 슈로 기사단을 사칭해!"

분노에 이글거리는 히르직스가 제일 먼저 뛰쳐나갔다. 이미 다히르 경을 쓰러뜨린 그의 창이 겨누고 있는 건 기사단 정면에서 '감히' 용이 새겨진 단장의 붉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풋나기 녀석이었다. 각각 5백여기씩으로 이루어진, 쐐기꼴 돌격진 3개가 히르직스의 부대를 선봉대로 정연하게 합쳐지면서 거대한 삼각형 돌격진 1개를 이루고 슈로 기사단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면으로 달려오는 것이 다름아닌 히르직스임을 눈치챈 제네르는 소수의 근위기병을 이끌고 급히 선봉대 뒤로 빠져나왔다. 자신의 존재 자체에 '반쯤 미쳐버렸을' 저녀석과 정면대결하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않으리라는, 그다운 판단이었다. 그리고 선두의 그 자리를 부장인 발리가 대신했다.

"저 겁장이녀석!"

히르직스가 으르렁거렸다. 천여기의 남부 중장기병들과 역시 비슷한 숫자의 슈로 기사단이 굉음을 울리며 충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를 어느새 빠져나온 제네르와 카이두 경, 그리고 이삼십기의 기병들이 적 보병들에게 포박되어 끌려가는 다히르 경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새 남부 기병들과 슈로 기사단과의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귀찮은 놈!"

상대의 실력이 만만치않음을 깨달은 히르직스가 신경질적으로 창을 내질렀다. 제네르를 대신해 히르직스와 상대하는 위험한 일을 맡은 발리는 지난번 하지즈 장군과의 일기투에서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섣부름을 또다시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번 상대는 하지즈 장군보다도 도리어 한수 위임에 틀림없었다. 제대로된 공격 한 번 해 보지 못한 발리가 계속 뒤로 밀려나자 보다못한 라손이 창을 꼰아잡고 싸움에 끼어들었다. 라손 역시 그 특유의 빠른 공격으로 일기투에서도 엔간해서는 밀리지 않는 실력이었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제길!"

둘의 연합공격을 창과 어깨에 고정시킨 방패를 이용해 동시에 쳐내는 히르직스의 놀라운 몸놀림에 라손이 자기도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당황하고 있는 라손의 창을 쳐낸 히르직스의 창이 빠르게 원을 그리며 그의 얼굴을 향해 밀고들어오고 있었다. 라손이 크게 놀라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조금 늦은 후였다. 목을 스쳐 올라온 창날이 그의 투구 술을 그대로 잘라내며 스쳐지나갔다. 그 아찔한 순간에 라손은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릴 지경이 되어 있었다.

중심을 잃은 라손을 마지막으로 몰아붙이려던 히르직스는 언덕을 넘어오는 오백여명의 가디언들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단 공격을 접고 뒤로 물러났다. 어물거리고 있다가는 기사단 사령관인 자신이 적들에게 포위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퇴각! 퇴각한다!"

히르직스의 명령에 슈로 기사단과 난전을 벌이던 남부 기병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본진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페로의 가디언부대와 합류한 슈로 기사단이 이번엔 페로의 지휘하에 그들의 뒤를 맹렬히 쫓기 시작했다.

적군에게 잡혀가고 있는 다히르 경을 쫓아 제일 앞서 달려가던 카이두 경이 앞을 가로막는 적 기병의 몸통을 순식간에 두동강내고는 십여명의 경보병들을 향해 이미 피로 범벅이 된 대사를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제네르가 칼을 뽑아들고 말에서 뛰어내려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적 보병을 걷어차 쓰러뜨리고는 그 가슴에 칼을 힘껏 찔러넣었다.

"괜찮으십니까!"

제네르가 단검으로 급히 포박을 잘라냈지만 가슴과 어깨,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다히르 경은 도저히 더이상 걷기조차 힘든 지경이었다. 그는 너무도 반가운 '며느리감' 제네르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한팔로 그를 와락 껴안고 말았다. 제네르는 칼로 자신의 전포자락을 찢어내 그의 가슴과 어깨의 상처를 단단히 동여맸다. 뒤이어 말에서 뛰어내린 카이두 경이 다히르 경을 번쩍 안아들고 방금 죽인 기병이 타고있던 말 위에 앉혀주었다.

"저희 뒤만 따라오십시오. 사방에 적 기병이 널려있어서 위험합니다."

말 목을 껴안은 다히르 경이 고통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페로의 지휘로 우익의 퇴로가 뚫리자 적들의 포위망 안에서 결사의 사투를 벌이던 기병대들이 제일먼저 우루루 몰려나왔다. 일단 퇴각은 하고 있지만 그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주력군인 기병대는 거의 삼분의 일에 가까운 병력이 전사 혹은 부상을 입어 전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기병대에 뒤이어 플로브 경이 이끄는 보병들 역시 통제소의 요새를 향해 퇴각을 시작했다. 진형이 완전히 붕괴된 이상 더이상의 요격전은 의미가 없었다. 일부 진형을 유지한 기병들과 슈로 기사단, 바툴 가 경기병대의 엄호를 받으며 허겁지겁 요새로 숨어버린 동부 연합군은 이제 농성전에 기대는수밖에 없었다.

마랄루의 요격전은 이번 전쟁들어 최악의 패배를 기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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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에서의 남부기병들의 돌격진은 중세 비잔틴 제국의 유명한 근위기병대였던 카타프락토이(Cataphractoi)의 타그마타(Tagmata)진을 따르고 있습니다.

(남부기병이 유럽 중세 기사와 흡사한 면이 많은만큼 원래는 그들의 진형(?)을 따르고자 했으나 그네들은 당시 유럽의 상황에만 초점을 맞춰 개인 돌격위주로 한 기형적 형태로 발전된 병종인지라 ‘진형’의 개념도 발전하지 못했고, 전혀 다른 스타일의 군대가 맞붙는 제 글에서 따르기는 무리가 많더군요.)

타그마타의 경우 콘투스(Kontus)로 무장한 창기병과 활로 무장한 궁기병을 섞어 편제한 기병 500기가 기본편제로 짜여집니다. 기본진형은 삼각형 돌격진형입니다.

선두에 3~5명 정도의 창기병을 두고 그 뒷열로 갈수록 3~5명씩이 증가해서 최후열은 150 ~ 200기 정도로 이루어집니다. (종심의 깊이에 따라 이 배치는 어느정도 유동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돌격시에는 창기병, 궁기병이 함께 돌격하며, 충돌 직전에는 궁기병들은 뒤로 빠질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함께 돌격하기도 합니다.

500명으로 편제된 1개 타그마타의 폭은 상황에 따라 변화는 있겠지만 좌우 약 2백~5백미터 정도로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타그마타 하나가 쓸고 지나가면 그정도 폭이 쑥대밭이 된다는 뜻이죠.

그리고 상황에 따라 이들 타그마타 3개, 총 1천 5백기가 모여 앞에 한 부대, 뒤에 나란히 두 부대를 배치하면 또다시 큰 삼각형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중간에 역삼각형의 큰 빈공간(?)이 생길겁니다. 이 부분은 지휘관이 위치하던지, 혹은 궁기병을 밀집시키는 등의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제 글에서는 남부가 궁기병과 중장기병을 혼합한 편제를 아직은 사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일단 편제 자체는 그것을 따르도록 구성했습니다.

*동부기병은 금과 요, 당의 기병 편제를 많이 따르고 있습니다. 많은 고대, 중세 국가들에서 기병은 선두보다는 보병의 양측면을 맡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으나 금의 경우 기병이 선봉을 맡는 것이 교범화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스타일을 중세 유럽에서도 볼 수 있으나 사실 그 이유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유목민족으로 시작해 정주국가화된 금의 경우 보병전력에는 문제가 많았고, 명목상 보-기 혼합군 편제는 되었으나 그 주된 전력은 기병이 계속 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궁기병이 기병 전력의 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선봉 역할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1차 궁기병돌격, 원거리공격 -  2차 중장기병 돌격, 중군 보병진 격파, -  3차 보병돌격, 잔여병력 처리, 기병은 도망병 추격의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글의 마랄루 전투처럼 초반부터 보병과 기병이 뒤섞여버리면 최악의 상황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시종을 달고다니면서 싸웠던 기형적인 서구기병은 제외합니다.) 하지만 미리 치밀한 계획하에 보병은 정연한 진형을 이루고 그 주변을 기동성있는 기병들이 엄호하면서 싸우는 경우는 전사에서 종종 찾을 수 있습니다.

* 카이두 경이 쓰는 무기인 ‘대사’는 중세 러시아와 동유럽 보병대에서 쓰였던 창의 일종입니다. 전체길이는 2~3미터 정도에 1.5미터 정도의(!!) 긴 도끼날이 한쪽에 달려있는 이 무지막지한 무기는 기병이 쓰기는 너무 큰 관계로 원래는 보병의 전용무기입니다. 하지만 2미터가 훨씬 넘는 거인 카이두에게는 이만큼 어울리는 무기가 없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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