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176화 (176/1,132)

< -- 176 회: Part 8. 떡갈나무 언덕에 홀로 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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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단장으로 첫 전투니까 그냥 넘어가는 것인 줄 알게."

호된 질책을 받고 있는 당사자는 다름아닌 베아트릭스였다. 찢어져 피가 흐르는 머리를 채 추스릴새도 없이 곧바로 사령관 막사로 불려온 베아트릭스는 다른 병단 단장들이 보는 앞에서 사령관 헤즈 경으로부터 꾸지람을 듣는 치욕을 감수하고 있었다.

"종가도 절반밖에 태우지 못했고, 창고도 3분의 1밖에 태우지 못했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놈들 주력이라고 다 빠져나간 거기서 가문 소년단 시켜도 그보다는 나았을거야."

"이유는 모르겠으나 녀석들의 숙영지에 3천명의 동부 유목민 경기병들이 집결해 있었습니다. 녀석들 때문에 시간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베아트릭스가 아직까지 얼굴에 엉겨붙어있는 피를 털어내며 상황을 설명하려 애쓰고 있었다.

"유목민?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나? 훈련도 못받은 그 떠돌이 야만인들 3천 때문에 정규군 경기병 5천명이 작전을 제대로 수행 못했다고?"

"동부 유목민들은 떠돌이 야만인들이 아닙니다. 녀석들은 하나하나가 잘 훈련된 거친 전사들입니다. 제대로만 지휘될 수 있다면 가히 무서운 전력을....."

"시끄러워. 말도 안되는 소리는 듣기도 싫으니."

헤즈 경이 얼굴을 찡그리며 베아트릭스의 변명을 틀어막아 버렸다. 나머지 지휘관들의 태도도 비슷했지만 그들 중 한명, 기사단 사령관 히르직스만은 베아트릭스의 마지막 변명에 잔뜩 귀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베아트릭스의 가치를 이곳의 그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사사건건 반항적인 저 망할 녀석에 대한 개인적으로 안좋은 감정은 접어두고라도.

헤즈 녀석의 관심은 정작 엉뚱한 곳에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웬 녀석하고 제대로 싸웠다며, 누군가?"

"자이센 가의 황소문장을 지닌 녀석이었습니다. 여자 목소리였던 것으로 보아 자이센 총리의 딸로 짐작됩니다."

좌중에서 일제히 휘파람소리와 환호성이 울려나왔다. 헤즈 경이 목소리를 잔뜩 죽이고 물었다.

"죽였나?"

"메이스로 머리를 쳐서 투구를 부쉈습니다만 녀석의 가디언들 때문에 확인사살은 하지 못했습니다. 피를 많이 흘리면서 말에서 떨어졌는데 생사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푸헷, 뒈졌으면 아주 제대로 맞아 뒈진거구만. 메이스나 프레일맞아 죽는 건 나도 정말 사양인데."

'메이스'라는 말에 중보병단장 케세크 경이 키득거리며 옆에 선 히르직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케세크 경의 말장난에 얼굴을 살짝 찌푸린 헤즈 경이 베아트릭스에게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그년을 죽였다면 모를까 확인도 못했다면 아직 공훈이라고도 못하겠군. 뭐 녀석이 다히르 녀석같은 지휘관도 아니고......"

헤즈 사령관이 히르직스를 힐끗 돌아보자 그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 보였다. 물론 다 잡은 다히르를 놓친 건 아깝기 짝이없는 노릇이지만 그건 호송을 맡은 병신같은 경보병녀석들 탓이었고 녀석들의 기병사령관을 더이상 전장에 못나오게 만들어놓은 정도였으면 죽인것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큰 공훈이었다.

베아트릭스는 고개를 다시 떨구었다. 피범벅이 된 뺨을 따라 흘러내린 피 한 방울이 턱에서 떨어져 막사 바닥에 얼룩을 그리고 있었다. 그의 검은 얼굴 때문에 붉은 피빛이 덜 두드러져서 그런 탓인지 아무도 베아트릭스의 상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헤즈 앞에서 무안하게 돌아나온 그는 막사를 나서자마자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는 이 마랄루의 요새를 한 번 빙 둘러보았다. 적군들이 기물들을 모두 파괴하고 떠난 이곳에는 쓸만한 서류쪼가리 한장 남은것이 없었다. 행성을 공격하면서 만일을 대비해 장벽 통제소 쪽을 제일 먼저 공격하는 건 공격군의 정석중의 정석이었지만 퇴각하면서 모두 철저히 파괴하는 것 또한 패배시의 정석이었다. 6번 행성을 함락시켰을때와 달리 이번에는 하나 남김없이 파괴한 그 철저함에 베아트릭스는 이번의 적 지휘관 중에는 누군가 '꽤 제대로된 놈'이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경기병 막사가 만들어진 요새 입구 부근에서는 사역병들이 아군 시신들을 챙기느라 꽤나 분주했다. 얼핏 보기에도 아군 시신의 절반 이상은 불쌍한 '기마병받이 소모품'으로 죽어간 경보병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창에 찔리거나 칼에 베인 상처가 아닌, 둔기에 의한 타격흔으로 보이는 큰 상처로 머리가 부서져 죽어있었다. 백병전에서도 창을 즐겨쓰는 동부 기병들이 철퇴류를 쓰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것을 잘 아는 베아트릭스는 그들이 도망치다가 아군 참수대의 손에 죽은 녀석들임을 쉽사리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텅 비어있는 자신의 칼집과, 허리에 매달려있는 피묻은 메이스를 한 번 바라보았다.

"제길할."

그는 다시한번 피를 털어내며 경기병단 막사쪽으로 향했다. 줄을 맞춰 늘어져있는 경보병들의 시체가 연병장을 꽉 채우고 있지만 시체 때문에 길이 좁아졌다며 내심 투덜대고 있는 그에게 그다지 쇼킹한 장면도 아니었다. 어차피 이번 전쟁을 준비하면서 일찌감치 대규모로 뽑은 신병들의 적응훈련도 조만간 끝나 우루루 들어올 것이 확실했다. 그들 중 경력이나 조건이 되는 일부 녀석들은 중장보병단으로 가겠지만 그 축에 들지 못한 대부분의 병사들은 경보병대에 편성될 것이 뻔했다.

플라칼 가에서는 경보병은 중보병이 되기 위해서는 거쳐가야 할 교육 정도로 여기고 있으니 헤즈 사령관이 경보병을 '헤프게 써버리는 것'에 이유없는 그의 심술탓을 할 노릇도 아니었다. 헤프게 쓰건말건 다른 제후군의 1.5배나 되는 봉급 혹은 철없는 공명심, 아니면 다른 제후군에서도 공히 인정하는 '확실한 경력' 덕택에 플라칼 가에서 신병을 뽑는데 어려움을 겪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얼핏 돌아본 요새 밖에는 흰 방부제가 잔뜩 뿌려진 시체인지 밀가루덩어리인지 분간못할 것들이 산처럼 잔뜩 쌓여있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최소한 자신들을 분류하고 꼬리표까지 달아주는 친절한 사역병들이 있는 아군 전사자는 꽤나 행운아라고 여기고있는 것이 지금 베아트릭스의 머릿속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자신이 동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있었다.

누군가 어깨를 치는 느낌에 베아트릭스가 뒤를 홱 돌아보았다.

"머리 상처 빨리 치료해야겠군."

자신을 쫓아나온 히르직스의 이 과잉친절이 결코 그답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아는 베아트릭스였지만 그는 짐짓 미소까지 지으며 대답했다.

"병단 막사에 군의관이 와있을테니 가봐야죠."

하지만 히르직스는 베아트릭스의 이런 웃음이 무안할 정도로 곧바로 본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는 손으로 한쪽의 냉동캡슐에 포장되고있는 '귀족 시신'들을 가리켰다.

"보이나?"

"기사단 전사자군요. 그런데요?....."

무어라 말을 더 이으려던 베아트릭스의 입술이 딱 멈추었다. 그들 기사들의 몸에는 하나같이 자신이 쓰는 것과 같은 검은색 자리드가 박혀있었다.

당혹해하는 베아트릭스의 표정을 즐기듯 묘한 미소를 지은 히르직스가 중얼거렸다.

"카이두라는 야만족 거인이 너희 외가 종장인가?"

그대로 굳어버린 베아트릭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툴 가에서 궁기병 2천을 파견한 모양이야. 궁기병 장비를 갖추고도 웬만한 경기병들은 다 때려잡을정도의 창술까지 보였다던데.....3기사단에서 천 이백이나 죽었어. 단장 웰시 경도 당했더군."

베아트릭스는 지금 이 상황이 좋아해야 하는것인지 그 반대인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외가가 멸문을 피한 댓가로 2천명의 정예전사를 파견한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표적은 바로 자신임에 틀림없었다.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던 베아트릭스의 주변을 한바퀴 빙 돈 히르직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내가 얼마나 슬퍼할지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군. 웰시 그녀석.....한 달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한솥밥 먹던 가족이었는데......"

히르직스가 웰시 경을 못잡아먹어 평소에 얼마나 안달이었는지를 모를 턱이 없는 베아트릭스는 그의 황당한 태도에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그까짓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번 공세땐 자네가 그 야만족 거인을 잡아내는 광경을 보여주면 더 바랄 게 없겠네."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베아트릭스의 앞을 스쳐 멀어져가는 히르직스의 모습은 지금 그의 관심 밖이었다. 저 밉살머리스러운 기사단 사령관의 말마따나, 다음번엔 외할아버지인 카이두와 정면대결을 펼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베아트릭스는 자신의 기구한 출생과, 그 모든것의 근원이 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을 또한번 저주하고 있었다.

학장실에 누워있던 코리온은 팔을 주물러주는 샤드니의 부드러운 손길에 힘없이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샤드니의 푸른 눈동자를 우두커니 올려보던 코리온은 조금 쉰 목소리로 첫 입술을 떼었다.

"녀석은......행성을 빠져나갔나?"

"예. 학장님 내려드리고 곧바로 행성을 빠져나갔습니다......녀석이 병력 파견을 말아달라고 부탁하러 온 겁니까?"

코리온은 별 대답없이 다시 눈을 감았다. 학장의 묘한 태도에 갑자기 걱정이 들기 시작한 샤드니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두겐 공께서 3만 병력 지원을 약속하셨고 세호 가에서도 제 예상대로 2만 병력을 약속했습니다. 발 가가 아직 아무 반응이 없지만 5제후까지만 합쳐도 충분히 6만 대군을 만들 수 있습니다. 군소제후까지 합치면......"

한참을 말이 없던 코리온이 흐릿하게 눈을 뜨며 물었다.

"언제까지 집결가능한가?"

"군소제후를 제외하고 상급제후들의 6만 병력은 10일 이내에 가능합니다. 집결이 끝나면 곧바로 동부 탈라스를 공격할 겁니다. 지휘권은....."

"네가 사령관을 맡도록 하고......세호 가에서 부장을 내야겠지.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코리온이 별 말 없이 자신에게 전권을 부여하자 샤드니가 웃음을 지으며 코리온의 차가와진 손을 꼭 붙들었다. 하지만 코리온의 이유없이 시무룩한 얼굴에 그 웃음도 곧 사라져 버렸다.

"힘을 내십시오. 학장님께서 바라던 세상이 가까와오고 있지 않습니까. 학장님께서 이렇게 다시 일어서신 것을 알면 돌아가신 주페 태자저하도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카렐이 자신에게 덮어주었던 두꺼운 모포에 몸을 깊이 파묻으며 코리온은 왼손에 끼워진 페리도트 반지를 또한번 어루만지고 있었다.

"우와, 나도 이런 저택에서 다 자보네,"

자이납이 호사스런 침대 위에서 한바퀴 데구르 구르며 환호성을 올렸다. 코윈의 경치가 살벌하고 멋대가리없다며 계속 툴툴대던 자이납은 막상 하룻밤을 지내게 된 카파키 종가의 대단한 위용에 잠깐새 그 불평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 했다. 그 큰 침대 위에 큰대자로 누워있던 자이납은 옆에 선 우베를 돌아보며 마지막 불평을 털어놓았다.

"근데, 젠장, 침대만 크면 뭐하냐구요. 옆에 누워 잘 근사한 남자가 있어야지.....아까 리쿠 학장님을 아카데미에 내려드리지 말고 여기로 그대로 모셔왔으면.....흐흐흐. 오늘밤이 얼마나 환상적이었을까."

자이납이 베개를 껴안고 또한번 딩굴고는 넋나간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베가 그의 얼굴을 나머지 베개로 한 대 내리치며 투덜거렸다.

"또시작이네. 저체온증걸려 파랗게 덜덜 떠는사람 데려다가 뭐하게?"

"햐아.....모성본능을 자극하는 그 핏기없는 얼굴에......힘들어하는 표정에......떨리는 손끝에.....온몸을 바쳐서 몸을 덥혀드렸을텐데. 으음~ 학장님을 품에 안고계시던 전하는 얼마나 황홀하셨을까."

"우엑, 그런 남자가 밤일이나 제대로 치렀겠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그짓'만 생각하기는...... 여자가 진짜로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자이납이 입을 삐죽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가방에서 웬 검고 긴 천을 꺼내들었다.

"그게 뭐야?"

"푸헤헤, 아까 말리려고 널어놨던 것중에 하나 슬쩍 했죠. 학장님 속두루마기에 둘렀던 허리띠 같던데.......맘같애선 무명포나 용무늬 머플러 훔쳤으면 했는데 그건 너무 티가나서.....히야......이 달콤한 살내음이라니.....난 역시 가디언 혈통이 섞여서 너무 다행이야."

띠를 껴안고 한껏 냄새를 들이킨 자이납이 침대 위에서 한바퀴 구르며 혼자 넋이 나가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우베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젠장할, 어쩌자구 우리동네엔 변태 여자들 투성이야? 어떤인간은 자이센 총리 손수건을 몇달째 빨지도않고 껴안고댕기질 않나, 여긴 또 남자 허리띠 슬쩍하는 변태가 다 있었네. 왜? 아예 속옷 훔치지? 살내음 확실할텐데."

"맞다, 내가 왜 그생각을 못했지?"

자이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우베가 자이납의 뺨에 얼굴을 바싹 들이대며 음험한 목소리로 말했다.

"듣자하니까 리쿠 학장 오리지날 숫총각이래. 여자는 털끝만큼도 관심 없다던데? 그보담은 차라리 내가......"

"주책이야 정말. 약혼자도 있는 주제에."

자이납이 떠미는 힘에 나가떨어진 우베가 바닥에 그대로 나딩굴렀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우베가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후폐하 명으로 왔습니다."

생각없이 문 쪽을 바라보던 자이납과 우베의 앞에 이곳 집사와 곱게 단장한 미남청년 한명이 함께 들어왔다. 집사가 자이납을 바라보며 꽤 친절하게 입을 열었다.

"황후폐하께서 자이나브 카메네이 님을 북부식으로 접대해드리라 하셨습니다."

'북부식'이란 것이 무슨 뜻인지 잠시 어리둥절해져 있는 자이납에게 집사가 옆에 선 미남 청년을 눈짓해보였다.

"저, 저도요?"

눈이 휘둥그레진 우베가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급히 묻자 집사가 다시한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우베 님과 베네루스 님은 카렐 지도자님께서 방에 가서 각자 혼자 조용히 주무시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서부에서 저지르신 댓가라 알려주면 아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무슨 말인지를 눈치챈 자이납이 침대 위를 데구르르 구르면서 깔깔대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완전히 울상이 되어버린 우베가 자이납과 청년을 번갈아 쳐다보며 망연자실해져 있었다.

"말씀하신 게릴라무리는 지금 바하칼리에 있는 33번 컴플렉스 부근에 있습니다."

상석의 카렐의 발밑에 단정하게 꿇어앉아 보고를 올리는 케스난을 반대편에 서 있는 세네피스 황후가 그다지 곱지않는 시선으로 드문드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황후를 철저히 못본 척 하며 케스난이 보란듯이 카렐에게 색기어린 미소를 보냈다.

"하임달의 결전 이후에 포로로 잡혀서 상당수는 노예로 신분이 격하되어있는 상태입니다. 원래는 천 7백여명에 달했지만 5차 혼란기 노예폭동에 가담하면서 9백여명만이 살아남았고 지금은 7백명만이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황후폐하께서 조직을 재건하고 계시다는 소식에 그들 전원이 만장일치로 전사단에 지원키로 약속했습니다. 지휘관은 당시 오르마즈 경의 부장 중 한명이던 갈라크 도비치라는 자입니다."

"자네가 보긴 그들 분위기가 어떻던가?"

"저같은 천것이 뭘 알겠습니까마는......오르마즈 경 휘하의 정예 경기병 결사대 일원이었으니만큼......궁지에 몰린 지금은 '악' 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규군보다 한술 더 뜨는 엄격한 기강으로 무장하고 있어보였습니다. 슈로 기사단에 있던 동지들이 기사단을 이미 재건했다는 소식에 많이 고무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고개를 끄덕거린 카렐이 파일을 한 장 넘기며 다시 물었다.

"당시 무장해제된 기병들도 찾아보라지 않았나?"

카렐의 질문에 이번엔 시르트 카파키가 대신 대답했다.

"당시에 오르마즈 경께서 가문 사람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종가에 남겨두고 떠나셨던 근위경기병 5백여중 백여명은 전사했고 나머지 4백여명은 지금 저희가 그대로 데리고있으니 필요하시다면 부대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열흘 후에 전사단 수송선을 보내줄테니 그들 모두를 탈라스 2번 행성에 집결시키도록 하게. 그곳에서 동부기병들과 합류해 훈련에 들어갈테니. 게릴라부대도 마찬가지고."

천여명의 충성스러운 북부 경기병들을 확보했다는 사실에는 카렐도 나름대로 꽤 만족하고 있었다.

페로에게 지난번 말했던대로, 전사단 경기병대를 조직하기 위한 수순은 차근차근 진행되어가고 있었지만 카렐에게는 여전히 불만거리가 남아있었다.

"갈라크 도비치라는 자의 성향은?"

카렐은 방 한쪽에서 이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어머니 세네피스 황후를 의식하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카렐의 의중을 이해한 케스난이 그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한마디로.....전형적인 북부 또라이죠."

케스난의 얼핏 가벼운, 하지만 너무도 확실한 의미전달에 카렐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표정을 추스린 카렐은 굳은 얼굴로 팔걸이를 연신 두들기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경기병대 조직을 위한 병력은 어느정도 긁어모았지만 이대로 놔둔다면 북부 위주로 편성된 경기병대는 자칫 어머니인 황후의 사병화될 우려도 있었다.

카렐은 자신을 여전히 지켜보고 있는 세네피스 황후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또한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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