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208화 (208/1,132)

< -- 208 회: Part 10. 시들은 드라세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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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얀 시 북쪽의 서부제후군 낙타병 숙영지에서 제일먼저 달려나오던 이십여기의 낙타병들이 눈앞에 불쑥 모습을 나타내자 300여 궁기병을 이끌고 돌격하던 탈란이 반사적으로 쥐고있던 자리드를 내던졌다.

"저녀석들부터 잡아!"

근거리에서 날아간 중투창에는 낙타병의 중장갑도 별 소용이 없었다. 남부 중장기병들을 말에서 우수수 떨어뜨리던 그 자리드의 위력은 그들보다 속도까지 느린 낙타병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소대장을 향해 묵직한 위력으로 날아간 날아간 탈란의 자리드를 시작으로 무려 삼백여발의 투창의 일제표적이 된 그들 스무 명의 낙타병은 궁기병에게 미처 접근도 못 해본 채 어두운 하늘을 뚫고 까맣게 쏟아지는 수백발의 투창비에 낙타와 함께 온몸이 고슴도치가 되어 마른 땅바닥에 나딩굴고 말았다.

"돌파합니다!"

2백여기로 이루어진 돌격진형 선두의, 유일하게 마갑을 갖춘 이십여명의 돌격조가 전차를 앞세우고 한덩어리가 되어 숙영지 입구의 장애물들을 때려부수며 아직 진형을 미처 갖추지 못한 낙타병들의 숙영지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 안에는 이제서야 갑주를 갖춰입고 달려나오고 있는 80여기의 불운한 낙타병들이 있을 뿐이었다. 십여명이 그 와중에 입구의 장애물에 굴러떨어지며 말에서 나동그라졌지만  평생을 말과 함께 살아온 그들에게 낙마 역시 일상사나 마찬가지였다. 후미의 궁기병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들을 추스려 뒤에 싣고 행렬에 따라붙었다. 1백여기의 나머지 궁기병들은 적 부대 외곽에 흩어져 밖으로 도망쳐나오는 적병들을 하나하나 쏘아죽이고 있었다.

"보이는대로 다 죽여!"

탈란의 고함소리가 없어도 그들 궁기병들은 적병을 철저히 말살하는 자신들의 임무를 이미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동서가 긴 장방형 숙영지의 서쪽으로 진입한 2백여 궁기병들은 동서축을 가로질러 북동쪽으로 눈 깜짝할새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폭발적인 기습에 운좋은 몇몇을 빼고는 살아남은 병사들은 그다지 많지않았다. 그 때 탈란의 할룩스로 카렐의 목소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적 지원병 셔틀이 오고있다. 바얀 시 북쪽 10스타디아 전방에 셔틀이 대기할테니 당장 퇴각한다. 최대한 빨리!"

"예! 알겠습니다!"

낙타병부대보다 조금 남쪽에 위치한 서부 보병부대도 3백여 중기병을 이끌고 몰아친 라손의 손에 이미 살육이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4백여명의 비무장 사역병들과 5백여 보병들이 뒤엉킨 그곳에 돌격해들어간 중기병들은 온몸에 아귀처럼 피를 뒤집어쓴 채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는 서부 보병들을 말 그대로 '학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카렐의 퇴각령을 받은 그들은 숙영지 곳곳에 아직 남은 적 보병들을 놔둔 채 빠른 속도로 그곳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미리 빠져나와 기다리던 탈란의 궁기병 후미에 라손의 중기병이 합류하자 다시 한덩어리가 된 6백여 바툴 가 기병들은 퇴각용 셔틀이 기다리고 있을 북쪽으로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아, 앗!"

궁기병부대를 이끌고 기병 선두에서 달리던 탈란은 전방에 대기중이던 바툴 가 퇴각용 셔틀들이 갑자기 이륙하는 모습에 아연질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노란빛을 번득이는 플레렌 가 기동셔틀이 내려서고 있었다.

"제기랄! 다시 남쪽으로 이동해! 돌아가겠다!"

북쪽에 내려선 셔틀에서 장창과 큰 방패를 쥔 서부 경보병들이 우루루 내려서고 있었다. 북쪽으로 정신없이 달려온 바툴 가의 6백여 기병들은 탈란의 명령으로 남쪽으로 급히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뒤이어 셔틀 조종사의 급박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보병대 숙영지에 남아있던 적 보병 잔여병력 200여명이 남쪽에서 대형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쪽은 위험합니다!"

"그럼 서쪽으로 가!"

"그곳에도 적 셔틀이 내려서고 있습니다!.....적 중장기병들이 내려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미에서 백여기가 넘는 낙타병들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급히 스캐너를 작동시킨 라손은 서쪽에 착륙한 셔틀에서 몰려나오고 있는 백여기의 기병들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동쪽은 오아시스로 막혀 있으니 사실상 사방이 순식간에 모두 가로막힌 셈이었다.

탈란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제길! 그럼 가만히 있을테니 여기라도 오란 말이야!"

"착륙할테니 엄호해주십시오!"

탈란의 명령으로 중간에 셔틀이 착륙할 공간을 남겨둔 채 기병들이 일제히 흩어지고 있었다. 그 때, 투창을 쥐고 사방을 경계하던 탈란의 눈에 서쪽에서 무서운 기세로 몰려내려오는 백여기의 서부 중장기병들이 들어왔다. 원래대로라면 녀석들에게 투창을 던지고 달아나야 하지만 셔틀이 내려설 곳을 지켜야 하는 이 상황에서 궁기병 특유의 기동성은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었다. 라손이 이끄는 3백여 중기병들이 궁기병들의 서쪽과 북쪽 전방을 급히 막아섰다. 남쪽에서 패잔병을 수습해 뒤늦게 몰려오는 적 보병들보다 방금 도착한 이녀석들이 문제였다.

"녀석들은 본대가 올 시간을 벌려 할 겁니다! 저희 부대가 지킬테니 그쪽 먼저 빠져나가십시

오!"

"총대장이 먼저 도망치다니 말도 안되오. 바툴 가 전사라면."

궁기병 중대장들에게 퇴각을 지시한 탈란은 스스로 투창을 움켜쥐고 라손과 함께 중기병 선두에 직접 나섰다. 첫번째 셔틀 입구가 열리자 탈란에게 지시받은대로 궁기병들이 제일먼저 그곳에 오르기 시작했다. 북쪽과 남쪽에서는 보병들이, 서쪽에서는 기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몰려오고 있었고 등뒤는 오아시스의 물로 가로막혀 있었다. 기병들과의 거리를 가늠한 탈란이 큰 소리로 외쳤다.

"발사!"

탈란의 명령과 동시에 중기병들을 엄호하던 궁기병들이 사방의 적들을 향해 투창을 날렸다. 가장 가까이 접근해있던 서부 기병들 십여기가 투창에 명중해 말에서 떨이지고 있었다.

"저놈이 대장이군,"

기병 선봉에서 달려오던 녹색빛 갑주 차림의 적 지휘관을 발견한 탈란이 그를 향해 있는 힘껏 투창을 날렸다. 하지만 두 마리의 뱀 문양이 새겨진 자신의 은빛 방패를 치켜든 그 무장는 엔간한 중장기병이라면 나동그라질, 아니 방패로 막았다해도 그곳에 박혀서 주인을 꽤나 난처하게 만들 그 묵직한 투창을 능숙하게 옆으로 쳐내버렸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탈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누군지 모르지만 상대는 그냥 평범한 무장이 절대 아니었다.

"돌격 준비!"

라손의 명령과 함께 바툴 가 중기병들이 자신의 창을 일제히 겨드랑이에 끼며 몰려오는 서부 기병들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이백여기의 경기병들을 실은 첫번째 셔틀이 이륙하고 두번째 셔틀이 그 자리에 내려서고 있었다.

"제기랄! 망할 놈!"

잔뜩 흥분해있던 탈란이 창을 쥐고 혼자 뛰쳐나간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창끝은 부하들 앞에서 자신을 민망하게 만든, 녹색빛 갑주 차림의 적 대장을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그 무모한 공격에 깜짝 놀란 라손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그의 뒤를 ㅤㅉㅗㅈ아 달려갔다.

"그만둬요! 탈란!"

"바툴 가 놈이군."

자신을 향해 이성을 잃고 달려들어오는 탈란의 어깨에 달려있는 늑대문양 방패를 본 샤드니가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긴 창을 단단히 꼰아잡았다. 탈란이 내지르는 길지않은 창을 가볍게 쳐낸 샤드니는 창을 공중에서 한바퀴 빙 돌려 그의 어깨를 무서운 힘으로 내리찍었다. 자신의 창을 들어 샤드니의 무서운 공격을 받아낸 탈란은 그 묵직한 충격에 자기도모르게 악 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그의 창을 밀어내며 앞으로 쭉 뻗어나간 샤드니의 묵직한 장창은 경갑주를 입고있던 탈란의 한쪽 가슴과 겨드랑이를 그대로 베고지나갔다.

"아악!"

가슴을 베인 탈란이 비명을 지르며 반사적으로 말을 뒤로 잡아뺐다. 뒤에서 탈란을 ㅤㅉㅗㅈ아 달려오던 라손은 상대방의 놀라운 창솜씨에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가슴을 베이고 흐느적거리던 탈란에게 어느새 바싹 다가선 샤드니는 그의 얼굴을 건틀렛을 낀 주먹으로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저항력을 상실한 탈란을 생포하려는 수작임에 틀림없었다. 날이 돋은 건틀렛에 얼굴을 제대로 얻어맞은 탈란은 피투성이가 된 채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떨어져!"

탈란의 갑옷 끄트머리를 움켜쥔 샤드니가 그를 말 옆으로 힘껏 동댕이쳤지만 유목민의 본능 덕분인지 탈란은 자신을 낙마시키려는 샤드니의 무서운 팔힘에 가까스로 저항하며 악을 쓰고 매달려 있었다.

"이새끼 뭐야!"

저항하는 탈란의 뒤통수를 또한번 후려치려던 샤드니는 자신의 옆을 치고들어오는 라손의 빠른 창날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몸을 돌렸다. 펄럭이는 그의 녹색 망토에 수놓인 두 마리의 뱀 문양을 발견한 라손은 그제서야 상대방이 누군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날갯죽지를 돌려치는 샤드니의 반격을 가까스로 받아낸 라손은 뒤로 조금씩 물러나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라손과 그 휘하 중기병들의 돌격으로 가까스로 부하들의 손에 목숨을 건진 탈란은 퇴각셔틀 쪽으로 서둘러 옮겨지고 있었다. 옆구리를 내려찍는 샤드니의 공격을 쳐낸 라손 역시 빨리 달아나야 할 상황이었지만 쉴새없이 몰아치는 샤드니의 강력한 공격에 몸을 돌릴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네번째 셔틀이 내려서자 최후까지 이곳을 지키던 중기병들이 우루루 몰려타기 시작했다.

"순서대로! 순서를 지켜! 5소대는 나와함께 남아 퇴로를 지킨다!"

라손이 샤드니가 내지르는 묵직한 창을 가까스로 쳐내며 악을 썼다. 남쪽과 북쪽에서 보병들을 저지하던 중기병들이 먼저 올라타자 서부 근위기병들과 접전중이던 중기병들이 마지막으로 셔틀에 오르고 있었다.

"일단 이륙해서 위에서 대기해!"

이대로는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은 라손이 일단 마지막 퇴각셔틀에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명령대로 달려드는 서부 보병들을 뿌리치고 공중으로 떠오른 셔틀은 오아시스 물 위로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20여기의 기병들과 함께 뒤처지면서 입안이 바싹 타들어가던 라손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리쿠 학장 죽었다며?"

"뭐, 뭐?"

샤드니가 움찔 하는 새 그의 창을 쳐낸 라손은 말을 휙 돌려 오아시스를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속았음을 깨달은 샤드니가 창을 내지르며 결사적으로 ㅤㅉㅗㅈ았지만 작은 체구의 라손이 탄 말은 건장한 샤드니가 탄 말과 조금씩 거리를 벌리며 도망쳐가고 있었다. 말까지 갑옷를 걸친 중장기병이 아닌, 사람만이 갑주를 걸친 중기병들인지라 일단 속도에서는 조금씩 저들 서부기병들을 벌려놓고 있었다. 하지만 사방이 가로막힌 절망적인 상황이기는 매한가지였다.

말을 타고 도망치던 라손은 탁한 오아시스 물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옛 흔적에 갑자기 눈을 크게 부릅떴다.

"내 뒤를 따라와! 다른 길로 가지 말고 내가 가는 길만 밟아라! 알았나!"

마지막 퇴각로를 지키던 20여기의 기병들이 라손의 뒤를 따라 일제히 오아시스 물 속으로 뛰쳐들었다.

"제발, 옛날 그대로 있어라!, 제발,"

라손의 뒤를 이어 사방으로 물을 튀기며 달리던 중기병들은 자신들이 달리고 있는 곳이 오아시스 밑바닥이 아닌, 지금은 물에 잠긴 옛 포구의 작은 선착장 돌바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라손이 달리고 있는 길을 벗어났을 때 돌아올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아쿠!"

물로 뛰쳐든 라손의 뒤를 ㅤㅉㅗㅈ아 제일먼저 물에 덤벼들었던 십여기의 서부 기병들이 사람 키를 훨씬 뛰어넘는 그 엄청난 깊이에 놀라 비명과 함께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말 무릎 정도 되는 깊이로 알고 무작정 뛰쳐들었던 다른 서부 기병들 역시 순식간에 물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에 고함을 지르며 급히 말을 돌렸다.

"속지말고 저녀석 간 길을 그대로 ㅤㅉㅗㅈ아가란 말이다! 빨리!"

샤드니가 악을 쓰고 고함을 지르며 라손의 뒤를 되밟아 달려갔다.

"와이어 내려!"

선착장의 거의 끝에 도착했다고 판단한 라손이 공중에 아직 대기중인 셔틀에 대고 급히 팔을 휘저었다.  그의 명령에 바로 다가온 셔틀에서 십여개의 강습용 와이어가 내려오자 라손을 비롯한 이십여명의 마지막 기병들이 타고온 말을 버리고 케이블에 급히 벨트를 걸었다. 결국 그들까지 모두 건져낸 퇴각셔틀은 급히 기수를 북쪽으로 돌리며 곧 적 주력군들이 몰려올 바얀 오아시스에서 빠져나가버리고 있었다.

"제길,"

뒤늦게 선착장 끝에 도착한 샤드니가 피묻은 창날을 물에 털며 투덜거렸다. 그 콩알만한 기병녀석만 아니었으면 바툴 가 녀석을 하나 잡아 심문해 정보를 캐낼 수 있었을텐데 꽤나 아까운 노릇이었다.

"계곡쪽은?"

호안으로 돌아온 샤드니의 질문에 함께 온 부장이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뭐?"

"웬 시커먼 괴물놈이 달려들어서 장갑보병들이 손쓸새도없이 당했다고 합니다."

"시커먼 괴물?......설마......큰 키에 긴 갈색머리 여자......"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휘하시던 교위님도......"

"녀석도 그년 손에 당했나!"

순간적으로 흥분한 샤드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커지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바툴 가의 웬 녀석이 던진 투창에 맞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위력이 어찌나 강했던지 그분 방패를 뚫고들어와서 얼굴에 명중해 손쓸 방법도 없이 당하셨다고 합니다."

할 말을 잊은 샤드니는 무심결에 자신의 방패를 돌아보고 있었다. 비록 운좋게 쳐내기는 했지만 방금 전 자신을 향해 날아온 투창 역시 위력은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가문에서 하사받은 그의 은빛 방패 중심을 가로질러 방패 두께의 절반은 됨직한 꽤 깊은 홈이 반대편까지 길게 나 있었다.

돌아오는 셔틀에서 할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제대로된 칭찬을 들은 베아트릭스는 종가에 내리면서도 기분이 꽤나 좋아보이고 있었다. 절벽 위를 강습한 장갑보병들에 ㅤㅉㅗㅈ겨 급히 퇴각하던 궁병들의 후방을 카렐과 함께 지킨 그는 선두에서 쳐오던 적 교위급 지휘관을 자리드 한발만으로 쓰러뜨리면서 서부의 최고정예보병인 장갑보병들을 순식간에 혼란에 빠뜨려버렸던 터였다. 물론 워낙에 무뚝뚝한 그 성격탓에 드러내고 웃어보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입술에 잔뜩 들어있던 힘이 풀어진 것만으로도 그의 기분은 족히 짐작하고도 남음이었다.

어쨌든 적에게 큰 치명타를 안긴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이 작은 승리로 바툴 가는 일단 이곳의 주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이름값은 한 셈이었다.

"샤드니 플레렌 그녀석이 직접 나왔다고?"

종가에 돌아오자마자 먼저 도착해있던 부상병들부터 둘러보고 있던 카렐에게 탈란의 머리맡을 지키던 라손이 보고를 올렸다. 얼굴을 살짝 찡그린 카렐이 겨드랑이를 봉합하고 있는 탈란을 힐끔 돌아보았다.

"적 사령관을 상대로 목숨을 건진 것만도 대단하구려. 탈란. 그자는 하지즈 장군과 함께 서부 제일의 맹장 중 한명이요."

꽤 길게 베인 상처를 꿰매고 있는 탈란은 카렐의 위로에도 여전히 치욕스러움을 버릴 수가 없는지 조금 일그러뜨린 얼굴로 신음소리 한마디 없이 단검자루만을 꽉 악물고있을 따름이었다.

"마취는 안 하셨소?"

카렐의 질문에 카이두 경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것도 전사의 수련이지요. 탈란도 명예로운 전장의 흔적을 하나 얻었으니."

아니나다를까 가슴만을 가까스로 가리고 있는 탈란의 몸 곳곳에는 탈라스 유목민임을 상징하듯 그 아버지처럼 꽤 여러개의 흉터가 널려있었다. 게다가 바툴 가 전사답게 군살없이 다부진 흠잡을데없는 몸매는 그 조카인 베아트릭스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정도였다. 그는 인두로 상처를 지지는 그 와중에도 얼굴만 찡그릴 뿐 신음소리 한마디 내지 않았다.

"휴, 탈란도 몸이 정말 좋군요. 베아트릭스도 그렇더니, 집안 혈통인거요?"

"베아트릭스 몸은 또 언제 보셨습니까?"

카이두의 느닷없는 질문에 갑자기 할말이 막혀버린 카렐이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단검을 물고있던 탈란의 무서운 시선이 갑자기 카렐 뒤에 서 있던 베아트릭스를 쏘아보고 있었다.

"본 게 아니고......업고 절벽을 오르다보니 어쩌다가 조금 만지게 되었을 뿐이요."

카렐답지않은 조금은 궁색한 답변에 라손이 웃음이 흘러나오는 입을 얼른 가리고 있었다. 카렐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얼른 말을 돌리고 있었다.

"그럼 탈란도 오늘밤 몸조리 잘 하시오. 내일 봅시다."

카렐이 두 팔을 뻗어 병상에 누워있던 탈란을 품에 가볍게 껴안았다. 처음으로 카렐의 품에 안긴 탈란의 표정이 약간 붉어져 있었다. '소원대로' 카렐의 등을 만지게 된 탈란은 사람의 근육같지 않은, 묘하게 단단한 느낌에 흠칫 놀라고 있었다. 탈란을 병상에 다시 눕혀준 카렐은 서두른다싶을 정도로 허둥지둥 겔을 빠져나갔다.

"무사히 돌아왔구나,"

병영에서 걸어나오는 카렐의 가슴을 무작정 껴안으며 세네피스 황후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북부 경기병들이 훈련받고 있던 초원에서 소식을 듣고 허둥지둥 돌아온 황후는 지난번 남극성당 태학전 옥상에서 헤어진 이후 수십일만에 처음 마주한 이 반가운 자식의 모습을 올려보기도 하고,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살내음도 맡아가며 조금은 민망할 정도로 카렐을 반겨주고 있었다.

"네 아버지는 키 때문에 내가 안길수가 없었는데......넌 내가 이렇게 푹 안길 수 있어서 너무 좋구나."

"아버님도 작은키는 아니셨죠. 어머니가 좀 크실 뿐이죠."

장난스럽게 대꾸한 카렐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얼굴도 거들떠보지 않으셨다면서 안기고 싶긴 하셨나보죠?"

갑자기 허탈한 웃음을 지은 세네피스 황후는 카렐의 가슴을 놓아주고 한 발 물러나며 새삼스레 또한번 웃음을 지었다.

"이젠 네가......남편의 자리를 채우고 있으니 무얼 더 바라겠냐. 이렇게 든든한 자식을 두었으니......기다림이 헛되지는 않았지."

황후와 함께 걷던 카렐은 자신의 겔 앞에서 두 손을 단정하게 모은 채 웃음띤 얼굴로 기다리던 솔의 모습에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무사히 돌아오셨네요,"

"내 오늘밤 태자와 함께할 얘기가 있으니 넌 네 숙소에 가 있도록 해라."

아니나다를까 솔에게 대뜸 쌀쌀맞게 쏘아붙인 세네피스 황후는 뒤따라온 우베와 카토에게도 가 보라는 눈짓을 던지고는 카렐과 함께 겔 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훗, 저렇게보면 황후폐하가 진짜 황후같지 않아?"

"무슨소리야? 세네피스 황후폐하가 언제는 가짜 황후셨어?"

우베의 뚱딴지같은 질문에 카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말이 아니고......꼭 두분이 부부같아보이시지 않아? 황후폐하가 우리 전하를 꼭 남편 대하듯 하시는 것 같지 않냐구. 전하 여자들 질투하시는것도 그렇고......"

"풋, 무슨 말도안되는 소리를......"

우베에게 얼굴을 찡그려보인 카토가 혀를 쑥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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