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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233화 (233/1,132)

< -- 233 회: Part 11. 누가 수국을 좋아하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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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릭스에게서 시선을 돌린 우베가 갑자기 과장섞인 큰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이번에 근위대에서 전하께 건 현상금을 대폭 인상했다는 굿뉴스네요."

"참이나 굿뉴스다."

이번엔 시로에게 머리를 쥐어박힌 우베가 대뜸 입을 삐죽거렸다. 내내 무표정하던 카렐이 그제서야 관심을 보이며 우베를 돌아보았다.

"이번엔 얼마길래?"

"2억골드."

"휴우~"

자이납이 휘파람을 불었다.

"누구든 전하 목만 가져오면 그간의 모든 죄는 없었던 걸로 하고 돈도 준대요."

키득거리며 웃음지은 카렐이 자기 머리를 똑똑 두들기며 말했다.

"비싼 머리니 잘 보관해야겠는걸. 자네중에 누구 이거 탐나는 사람 있나?"

"탐은 나는데 2억골드 받아봤자 돈쓰기 지겹고 불안해서 남은 인생이 고달파지겠네요. 포기하렵니다."

라손이 태연한 얼굴로 대꾸하자 몇 사람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우베가 무언가 생각난 듯 한마디 덧붙였다.

"파예드 아카데미에서도 전하께 현상금 5천만 골드를 걸었다던데요?"

"뭐에쓰게? 학교가 무슨 사람 목에 현상금을 걸어? 그돈은 다 누가내고?"

제네르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물었다.

"뭐, 구체적인 건 안밝히고......대신 이쪽은 산 채로 잡아오면 5천만이고 시신을 가져오면 2천만이래요. '목'은 쓰고나서 돌려준다니까 근위대하고 현상금 따블로 받으라는 말이겠죠? 어디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요즘 거기놈들 근위대하고 죽이 착착 맞네요."

"미친놈들."

오만상을 찌푸린 아메스가 카렐의 어깨에 뺨을 부비며 중얼거렸다. 그런 아메스의 어깨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카렐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쓰려는지는 대강 짐작이 가는군."

카렐의 생각외의 태연한 표정에 제네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리쿠 학장의 집착이......도가 지나치군요.....아무리 그런 일이 있었다지만......피가 섞인 사촌누이를......."

"오죽 한이 맺혔으면 저러겠나......결국 그 책임이 모두 내게 돌아올수밖에 없는 것을......"

코리온의 편을 드는듯한, 카렐의 희한한 태도에 제네르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눈을 반 쯤 치켜뜬 카렐이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리쿠 학장은 결코 힘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사람이 아니네. 함께있어본 제네르 자네가 더 잘 알겠지만."

카렐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제네르를 빤히 쳐다보았다. 문득 고개를 떨군 제네르는 꽤 오래되어보이는, 반쯤 잘려나갔던 선명한 흉터가 남아있는 자신의 오른쪽 팔꿈치 부근을 자기도모르게 더듬고 있었다.

"바툴 가 종가를 찾아내긴 했지만 결국 한발 늦었군요."

적도 슈카른 계곡에 동부연합군 1진 3만 5천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샤드니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북부용병대 5천과 탈라스 궁기병대 5천, 에키트족 경보병대 3천, 마랄루 경보병대 5천, 슈로 기사단 2천하고 슈트란 가 근위기병대 천까지......"

"정예병력을 제일먼저 파견했군요. 훗, 소름끼치는 놈들,"

함께있던 플라칼 가 선발대장 릴라크가 리커 한 모금을 삼키며 사령실 밖을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던 코리온 쪽을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귀걸이를 한쪽에만 하셨군요? 실수로 빠뜨리신 건 아닌 것 같고......"

"그렇소."

코리온이 그다지 성의없이 대꾸했다.

코리온 옆에 나란히 선 릴라크는 등뒤를 째려보는 샤드니의 곱지않은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에게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원리주의 유학자라면 멋대가리없는 수도승들인줄로만 알았는데......꽤 세련되시군요."

기사인 자신보다도 더 큰, 코리온의 키와 몸매, 흠잡을데없는 얼굴에서 줄곧 시선이 맴돌던 릴라크는 어느새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이 매혹적인 남자의 몸 구석구석을 샅샅들이 살피고 있었다. 코리온을 신처럼 떠받드는 서부 사람들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황제령 출신으로 남부로 이주한 릴라크에게는 숨넘어가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훌륭한 신분의 '남성'일 뿐이었다. 릴라크의 그런 색기어린 시선을 짐짓 못본 척 코리온은 여전히 표정없는 얼굴로 사막만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뒤에서 전전긍긍하던 샤드니가 결국 입을 열었다.

"2일 있으면 라마단 기간이요. 플라칼 가 본대는 예정대로 라마단 후에 들어오는거요?"

"그럴 것 같습니다. 마랄루에서 입은 피해가 커서......부상병 치료해 합류시키고 보충병력 재편성하고 장비 손보려면 어차피 한달정도 소요될테니. 저희로서는 차라리 잘됐죠."

릴라크가 뒤로 돌아서며 사무적으로 대꾸했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코리온의 넓은 가슴과 그 위에 늘어진 길고 매혹적인 머리칼에 맘춰 있었다.

릴라크의 은근히 뻔뻔스럽기까지 한 태도에 내심 부아가 돋은 샤드니는 이번엔 코리온을 향해 말을 건넸다.

"라마단 기간중에 일정이 어찌되시는지......"

"첫날 저녁은 학교에서 행사가 있으니 가봐야 할거다."

"올해 라마단 학회는 어디서 열립니까?"

"비엔 6번 행성. 플라칼 가 영지에 있는 남서 콜로니 아카데미."

코리온의 대답을 듣는 순간 샤드니는 아차 싶어졌다. 굳어진 표정의 샤드니가 얼른 릴라크를 돌아보았다.

'제기랄, 하필이면.....'

아니나다를까 코리온이 남부로 온다는 말에 표정이 환해진 릴라크가 입가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저희 가문 영지로 오시는군요. 라마단중엔 저도 휴가를 얻어 남부에 머무를 것 같은데.....비는 시간 있으시면 학장님을 개인적으로 초청하고 싶습니다만."

"생각해보겠소."

코리온이 여전히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샤드니가 굳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라마단 세째날이 주페 태자저하 기제사일입니다."

순간 코리온의 갈색 눈동자에서 살기가 번득이기 시작했다.

"올해는 중요한 것이 결정되는 해니.....특별한 제수가 필요하겠구나."

"서부에서는 묘 앞에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바치는 것이 전통이니 그렇게 지시하겠습니다."

"훨씬 적당한 다른 제수를 바치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안타깝군......"

코리온의 턱에 선명한 힘줄이 불끈 일어서고 있었다.

부제학실에 앉아 책을 읽던 세네피스 황후에게 갑자기 대제학이 찾아온 건 자정도 지난 늦은 밤시각이었다. 수하 한 명 없이 도둑질이라도 하듯 몰래 부제학실을 찾아온 헤데론 자이센 대제학은 기다렸다는 듯 그를 맞아준 세네피스 황후와 공손하게 맞절을 나누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잔뜩 긴장한 자이센 대제학의 말에 세네피스 황후가 짐짓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대제학이 대문회에 나갔던 일은 전례도 없고......자칫 학교의 권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우려도 있으니......"

"동감입니다."

"에, 예?"

황후의 뜻밖의 대답에 자이센 대제학조차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는지 멍 해져 있었다.

"제국 제일의 명문교인 남극성당의 대제학이 대문회 따위로 매번 아랫사람의 도전에 직면하는 건 그다지 좋은 선례는 아니죠."

대문회를 먼저 제안했던 이 무서운 수석 부제학이 황당한 말들을 늘어놓자 자이센 대제학은 뭐라 할 말도 잊은 채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심 '살았다'며 안심하던 자이센 대제학의 귀에 황후의 엉뚱하기까지 한 한마디가 내리꽂히고 있었다.

"파예드 아카데미에서 이상한 소문이 떠돈다는군요."

"소문......이라뇨?"

씽긋 웃음지은 세네피스 황후가 자이센 대제학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코리온 리쿠 학장이 조만간 남극성당 대제학을 몰아내고 양교 수장을 겸직하게 될거라고 말입니다."

'코리온'이라는 말에 자이센 대제학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동부 탈라스에서 남부와 서부가 손잡고 움직이고있는 것을 보아선 근위대와 리쿠 학장이 모종의 거래가 있다는 말이 아주 근거없는 낭설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세네피스 황후의 소름끼칠정도의 미소가 자이센 대제학을 향했다. 황후의 낮은 목소리가 아무도 없는 조용한 부제학실 안에서 울려퍼졌다.

"어차피 제가 아니어도 조만간 리쿠 학장의 도전에 직면하셔야 할 겁니다. 그자를 맞상대할 자신이 있으신지......"

완전히 경악에 빠져있는 헤데론 경의 주변을 여유롭게 한바퀴 빙 돈 세네피스 황후가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참, 페로 경은 이번 사태만 마무리되면 타르서스 지방장관인 압둘 모투바 경을 중앙으로 불러올려 새 내무장관으로 천거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새 지방장관은 누가될지....."

아무리 단순한 헤데론 경이었지만 세네피스 황후가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대제학직을 자신에게 내놓으면 나중에 타르서스 지방장관으로 삼아주겠다는 이 은밀한 제안에 헤데론 경도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대제학이 지방장관보다 지명도나 권위에서 훨씬 높은 건 사실이었지만 코리온과 상대해 개망신을 당하는 것보다는 그편이 차라리 나은 선택이었다.

"조카가......동의했습니까?"

"페로 경은 숙부가 코리온같은 정신병자 녀석에게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손놓고 보고있을 바보는 결코 아닙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헤데론 경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세네피스 황후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대제학님의 결단이 필요한 순간인 듯 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알겠습니다."

풀죽은 얼굴의 헤데론 경이 힘없이 부제학실을 나서는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세네피스 황후는 문을 잠그고 뒤로 돌아섰다. 큰 책장에 기대 서서 잠시 말이 없던 황후는 목에 걸고있던 매화 무늬 은목걸이를 조용히 집어들어 입을 맞추었다.

"이 기쁨을 함께할 당신은 없지만......"

다음날, 50여년간 남극성당 대제학으로 봉직하던 헤데론 자이센 경이 '연구를 위해' 직책을 내놓으면서 그 지위는 자연스럽게 현 수석 부제학인 세네피스 레즐린 카파키에게로 넘겨지게 되었다.

417년의 라마단 시작을 하루 앞둔 이 날, 남극성당의 제7대 대제학으로 개혁적 중도파 유학자이며 전 황후인 세네피스 레즐린 카파키가 등극하면서 남극성당과 파예드 아카데미는 두 거물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대립의 시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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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제가 서부사람들에게 철천지 원수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네요."

한쪽 어깨에 붕대를 감은 채로 네페티 부인에게 여전한 넉살을 떨며 오르마즈가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동생 손에 손님인 오르마즈가 또다시 큰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에 부인은 전전긍긍해하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기왕이면 어깨가 찍힌 덕에 부인도 제 멋지고 잘 빠진 몸매 감상도 하고 좀좋습니까. 궁뎅이나 허벅지 찔려서 웃긴꼴 보는것보다야......"

오르마즈의 계속된 수다에 네페티 부인도 억지스러우나마 웃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 웃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아쉬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정말.......죄송해요......"

"괜찮다니까 그러십니까. 제가 한눈을 팔아 그런 것이니......"

"그걸 말하는 게 아니예요."

갑자기 굳어져버린 오르마즈의 시선에 민망한 듯 고개를 떨구어버린 네페티 부인은 오르마즈의 얼굴을 덮은 긴 갈색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올려주고 있었다. 그답지않게 바싹 긴장한 얼굴의 오르마즈는 그의 정성어린 손길을 피하듯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려버렸다.

"옛날에 처음 뵈었을때도 이렇게 밝으셨었는데......"

부인의 가는 숨결이 귓가에 와닿자 오르마즈가 그대로 눈을 감고 말았다.

"옛날 이야기는......안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죄송해요. 이제.....안할께요."

네페티 부인이 조금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둘 사이에 꽤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남편분들은 참 좋으시겠어요......지난번에 보니 인상도 좋아보이시던데."

네페티 부인이 눈을 조금 내리깔며 한숨같이 내뱉은 말이었다.

"좋긴요. 언제 또 사고치고 들어오나 걱정이 태산이죠. 말이 부부지 원수가 따로없죠."

"뭐, 오르마즈 님 그러신 게 하루이틀 일인가요, 결혼하시기 전부터......"

네페티 부인의 대꾸에 오르마즈가 갑자기 침실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상징같은 뻔뻔스러운 미소를 입가 가득 품은 오르마즈는 그런 부인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제가 어쨌든 배우자감으로는 빵점이라는 걸 인정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네요."

여전히 믿음직한 모습의 오르마즈를 잠시 바라보던 네페티 부인이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 경비도 더 강화하고.......정말 아무도 못들어오게 해 드릴께요. 정말이예요.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을거예요."

"오르마즈 경이 그곳에?"

샤드니의 보고를 받은 코리온의 두 눈이 놀라움에 바싹 긴장되고 있었다. 배와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가린 채 한밤중에 가까스로 코리온의 교수실을 찾아온 샤드니는 서둘러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코리온의 반응만을 살피고 있었다.

"카파키 가 2인자가 도대체 왜......하긴......토로인지 뭐시긴지 하는 가신을 야전 사령관이라고 내세웠을때도 조금 이상하기는 했어......실전에는 못나와도 오르마즈라는 이름만 팔아도 상대방의 기세를 절반은 죽이고 들어갈 수 있는건데 말이야......이유가 뭐겠나? 샤드니?"

"아시다시피 오르마즈 그놈은 옛날에 누님과......"

"아냐아냐, 오르마즈 경은 그렇게 섣부른 인물이 아냐......이런 시기에 자신에게 적대적인 서부에 와서 그따위 행각이나 벌이고다닐 생각없는 사람은 아닐게야.....자네에게 했다는 말을 봐서 아마......태자저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게야......"

"그럼 집안에 반기를 든 겁니까?"

"그성격에 그러고도 남지. 이미 그래본 전적도 있지 않나."

코리온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제서야 샤드니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다시한번 바라본 코리온은 한구석에 있던 구급함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상처 좀 보세. 일단 피라도 닦고, 소독이라도 해 줄테니 나와 함께 학교 의무실로 가세."

샤드니의 웃옷을 벗겨준 코리온은 그의 상처에 묻은 피를 직접 닦아내주기 시작했다.

"이제 그럼 어쩌죠?"

"별로 걱정할 건 없네. 자네 누이에겐 훼방꾼이 되어줄 그 한심한 남편이 있지않은가."

코리온이 웃음띤 얼굴로 배의 상처를 닦아주고 있는 동안 샤드니는 자신의 상처를 만져주는 그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려다보며 줄곧 미소만을 짓고 있었다. 상처의 따끔함조차 까맣게 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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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마왕님을 피해 한밤중에 올립니다. 이제 이 파트도 1회밖에 안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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