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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236화 (236/1,132)

< -- 236 회: Part 12. 그는 항상 크로커스를 품고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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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렌 부인 사택이 가까와집니다."

발 가 종가를 떠난 아르다가 셔틀은 이번에는 남반구 중위도 해안가에 위치한 흰색의 화사한 저택에 접근하고 있었다. 다른 여느 서부의 고급저택들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정원과 분수, 색색의 바닥타일들로 장식된 이 절벽 위의 저택은 서부 제2제후의 친동생의 사택답게 그 우아함 또한 잊지 않고 있었다. 가벼운 진동과 함께 셔틀은 저택 중앙의 널찍한 정원에 내려섰다. 늦은 밤의 조용한 저택은 손님맞이를 위해서인지 불을 환하게 켜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셔틀에서 내려선 아메스는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르키스에게 두 팔을 활짝 벌려보이며 입가 가득 웃음을 지었다.

"오랫만이예요, 사르키스 외숙부."

당장 동부로 돌아가면 적장으로 마주서야 할 아메스의 이런 모습에 사르키스가 조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그의 포옹을 받아주었다.

사르키스를 따라 해안가 절벽 위의 응접실로 안내된 아메스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외할머니 뤼렌 부인에게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외할머님."

아메스가 또다시 뻔뻔스러움을 그대로 내보이며 상석에 앉아있던 뤼렌 부인에게 절을 올렸다.

"그래, 잘 있다만, 네가 온 목적은 그다지 달갑지않구나. 그래, 카렐 그 죽일 놈의 부탁으로 온거냐?"

부인이 외손녀를 째려보며 물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그분께서도 이자리에 함께하고 싶어하셨습니다만 지금 당숙부이신 주페 태자저하의 제례에 잠시 가 계십니다. 용납만 하신다면 그쪽 일이 끝나는대로 아직 할머님을 만나고 싶어하십니다."

"그분? 너같은 애가 그런 천한 가디언을 그렇게까지 올려부르다니, 정말 뜻밖이구나. 그리고 말은 똑바로하거라, 반역자 주페는 가문에서 이미 파문당했으니 네 당숙부가 아니다. 그런데, 그 망할 가디언이 뭣때문에 거기는 갔다는거냐?"

사촌인 주페 태자를 칭하는 어머니의 표현에 사르키스가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페 태자 시체 훼손사건으로 격노한 세네피스 당시 황후의 손에 가문 사람 십여명이 사지가 잘려 죽으면서 세호 가 내에서 태자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은 편이 되지 못했다.

외할머니의 질문에 무어라 대답하려던 아메스는 때맞춰 노크를 하고 들어온 두 명의 노예 때문에 급히 말을 멈추었다. 달려들어온 2명의 노예들이 뤼렌 부인과 아메스의 앞에 찻상 하나씩을 내려놓고 물러났다. 아메스는 앞에 앉은 외할머니 뤼렌 부인이 어딘지 많이 불안해보인다는 느낌을 문득 받고있었다.

"오늘 찾은 목적은 두가지입니다."

그들 노예들이 물러나자 아메스가 그제서야 입을 다시 열었다. 그는 서부식의 예에 따라 주인이 대접한 따뜻한 차의 3분의 1 정도를 받자마자 들이키고 있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릴 내용은 비밀을 지켜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 비밀은 지켜준다만 네 감히......"

막 언성을 높이려는 뤼렌 부인을 올려보며 아메스가 또렷하게 말했다.

"첫째로, 세나우스 3세 폐하와 세네피스 카파키 황후폐하의 피를 물려받으신 카렐 카파키 리쿠 장태자전하의 뜻이십니다. 그분께서 저를 장태자빈이며 미래의 황후로 맞고자 하시어, 그에 대한 합의가 아버님이신 페로 자이센 경과 얼마 전 이루어졌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뭐? 지금 뭐라고 그랬냐?"

뤼렌 부인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잠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분께선 선대폐하와 세네피스 황후폐하 사이에서 인공수정으로 태어났으나 모종의 사정에 의해 가디언으로서 길러진 것 뿐입니다. 그분께서는 명실상부한 첫째태자이며 정신상태에도 이상없는, 완벽하게 발현된 S혈통이고 장태자이십니다."

뤼렌 부인은 할 말을 잊은 듯 멍 해져 있었다. 아메스는 놀란 토끼같이 앉아있는 외할머니의 모습에 내심 쾌재를 부르며 품속에 가져온 카렐의 친서와, 모렌 박사의 사인이 들어있는 편지를 그 앞에 내놓았다.

"두번째로, 솔은 그 분 곁에 있을 3명의 소실 중 한명이 될 예정으로 이미 약혼이 성립되어 있었으니 제롬 공과의 또다른 약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분께서도 그간 오해가 있어 외할머니께서 실수를 하신 것임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솔을 전하께 돌려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다지 길지도 않은 편지를 몇 번이나 반복해 읽은 뤼렌 부인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뤼렌 부인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사르키스가 어머니를 붙들며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저 말이 사실이라면......"

"믿으셔도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왜 그리도 야심만만하시던 아버님께서 직접 제위승계를 포기하시고 카렐 전하를 보필하고 계시겠어요?"

하지만 이순간 뤼렌 부인의 굳어버린 표정에는 당혹스러움과 긴장, 공포와 후회 등등의 모든 감정이 뒤섞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답답해진 사르키스가 어머니의 팔을 붙들고 거칠게 흔들었다.

"어머니, 사실이라면 우리가 당장이라도......"

"느......늦었어......"

뤼렌 부인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찻잔을 다시 들이키던 아메스가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부인을 잠시 바라보았다. 몇초의 짧은 시간동안 아메스와 뤼렌 부인의 떨리는 눈동자 사이에 그들만이 이해할 대화가 흐르고 있었다. 찻잔을 쥔 아메스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속이다니......"

아메스의 손에 들려있던 도자기 찻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며 산산조각나 흩어졌다.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해져있던 사르키스는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려던 아메스가 비틀거리며 바닥을 뒹구는 모습에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어머니! 무슨 짓을 하신겁니까!"

"나......난.....앞으로 이런 소리를 못하게 하려고......."

뤼렌 부인이 멍 한 얼굴로 바보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메스가 감기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며 카펫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애써 정신을 차리기 위해 꽉 깨문 그의 혀에서 바닥을 향해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하지만 강력한 마취약을 먹은 그의 의식은 그다지 오래 가지 못했다. 카펫바닥에 누워버린 아메스는 외숙부 사르키스와 외할머니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문이 갑자기 홱 열리더니 종가 경비병 3명이 무기를 들고 응접실 안에 뛰쳐들어왔다.

"어머니! 이게......안전을 약속하고 불러들여놓고 이러시다뇨! 그것도 성스러운 라마단 기간에......야! 모두 나가지 못해! 손님이시다! 손님에게 뭐하는 짓이야!"

"사르키스. 넌 아직 세상을 좀 더 배워야겠구나."

응접실의 숨겨진 커튼 뒤에서 모습을 나타낸 라바니 세호 경이 들고있던 할룩스를 끄며 경비병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거의 의식을 잃어가는 아메스는 이미 경비병들이 필요없을 정도로 무력하게 온몸을 꿈틀거릴 뿐이었다.

"얘는 지 애비한테 몸값 좀 뜯어낼 수 있겠지?"

"숙부님! 도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명색이 제후가가 이런 치욕스러운 짓을 하다뇨! 안전보장약속은 어디간겁니까!"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르키스가 아메스 앞을 막아서며 고함을 버럭 질렀지만 라바니 경은 들은척도 않으며 그를 거칠게 떠밀어냈다.

"천박한 가디언 따위하고 한 안전보장약속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

"숙부님도 듣지않으셨습니까! 그사람은......"

더 말하려는 사르키스의 입을 라바니 경이 틀어막아버렸다. 벌벌 떨고있는 여동생 뤼렌의 손에서 카렐과 모렌 박사의 편지를 빼앗아든 라바니 경이 사르키스에게 코끝이 닿을 듯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다.

"미안하지만 지금 근위대 파견군하고 제후군들이 주페 그놈 무덤으로 출동했어. 녀석 목에는 2억 골드가 걸려있다. 파예드에서 건 몸값까지 합치면 2억 5천골드야. 그리고, 종장이신 벨리크 누님이 방금 코리온 그놈을 제위에 밀어주기로 결정했는데 이제와 번복한다는거냐? 생각을 좀 해 이 멍청아."

뤼렌과 사르키스 모자를 한번씩 째려본 라바니 경은 손에 쥐고있던 편지를 서슴없이 촛불에 가져갔다.

"이건 몰랐던 걸로 해 둬."

카렐이 위험에 직면했음을 깨닫고 버둥거리는 아메스의 흐려진 눈동자 속에서 소중한 편지는 노란 불꽃과 함께 속절없이 타없어지고 있었다.

다른 날도 아닌 라마단의 둘째날 저녁에 코리온을 새 황제로 지지하기 위한 서부의 결의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에 제롬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한달 동안 계속될 '교전금지기간'을 냉각기간 겸 선전기간삼아 남부의 예봉을 피해갈 심산임이 확실했다. 게다가 라마단 기간은 유난히 종교관련 대 행사가 몰려있는 때였고 코리온으로서는 자신의 '교리정치' 어쩌구를 사방에 선전하고다닐 수 있는 최적의 기간이기도 했다.

바로 얼마 전 플라칼 가와 서부의 연합군 결성안이 합의되면서 남-서부가 지난 2차 혼란기 때처럼 제대로 손잡았다고 믿고있던 제롬으로서는 거의 뒤통수 맞은 것이나 마찬가지의 결과였다. 라마단을 맞아 황궁에 돌아온 베흔과 나란히 선 제롬과 수우는 발을 동동 구르며 뜻밖의 사태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발 가는 거부의사를 표했다고 합니다."

뚱보 클레모 대신이 제롬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말했다.

"제기랄, 그러면 뭐하냐구! 이제야 뭐가 제대로 되어가나 했더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신경질을 내던 제롬의 어깨를 살짝 짚어준 베흔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베흔의 태연한 모습에 제롬이 또다시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걱정할 게 없긴 뭐가없어! 적이 하나 더 늘었는데!"

"코리온 그놈이 언제는 적이 아니었습니까?"

제롬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다혈질 아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베흔은 흐뭇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차라리 잘된 일입니다. 녀석이 끝까지 야심을 숨기고 있었다면 나중에 녀석을 제거하는 데 많은 애를 먹었겠지만 자기 입으로 반역을 선언하고 나섰으니 우리로서는 도리어 경사스러운 일이지요."

"탈라스에 연합군은 어쩌구?"

"제가보기는 그쪽은 큰 문제가 없을 듯 합니다. 어차피 탈라스 원정은 명목상으로는 코리온 녀석이나 제위싸움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니까요. 서부녀석들은 탈라스가 필요하고 우리에겐 동부를 무너뜨리는 게 필요하다는 이해관계가 딱 일치하니까 아마 서로가 제위 문제는 적당히 모르는 척 하고 손잡고있어도 무방할겁니다."

그제서야 베흔의 의도를 이해한 제롬 공이 표정을 돌변해 웃음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어쩌지?

"별것 아닙니다."

술잔을 쥔 베흔이 높은 황궁 아래 휘황한 도시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일단, 전제로써 명심해두셔야 할 건, 코리온 리쿠 학장의 지금까지 결정들을 우리가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건 별로 득될 게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

"리쿠 학장은 어머님이신 네페티 부인을 퍼더로 몰아 주살하라 사실상 명령을 내린 주역이죠. 각하께서 기분은 나쁘시겠지만......우리에겐 반드시 불이익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무슨 소리야?"

"어머님께서 서부 최고제후로 자격이 없다면......그 자리는 누가 차지해야 하죠? 왜 그 자리를 사촌동생인 두겐이 차지하고 있는 겁니까? 그 아들이신 각하께서 멀쩡히 존재하고 계신데."

제롬의 눈에서 초롱초롱한 호기심이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그도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저 계산적이고, 제후세력이 비대해지는 것을 은근히 견제하는 입장의 근위대장과, 그리고 기껏 손잡은 서부의 반발을 우려해 눈치만 보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근위대장이 먼저 자신에게 '서부 최고제후'라는 먹이를 던져주며 유혹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시겠습니까? 지금은 리쿠 학장이 자기 입으로 황제가 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고, 아랫놈들이 떡고물을 노리고 설치고 있는 것 뿐입니다. 리쿠 학장의 견해 자체를 부인하면 네페티 부인을 몰아낸 그자의 생각 또한 위협받게 되니 기왕 어머님은 밀려나신 김에 그대로 야인 신분으로 놔두고 이젠 각하께서 그 자리를 취하십시오."

자신이 남부 최고제후와, 서부 최고제후까지도 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제롬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떡하려고?"

머릿속이 복잡한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제롬이 다시 물었다.

"우리에겐 두가지 선택이 있죠. 비싼 길과 돈안드는 길."

수우가 눈을 동그렇게 뜨고 베흔의 대답을 재촉했다.

"비싼 길은?"

"맹수 셋이 먹이를 놓고 으르렁거리고 있을 때 가장 쉬운 길은 두 놈이 먹고 나머지 한놈을 먼저 처치하는거죠. 동부와 페로 패거리 놈들에겐 참으로 애석하게도 서부와 우리는 이미 손을 잡은 상태니......"

"그럼......"

제롬이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리자 베흔이 말을 이었다.

"코리온 녀석이 황제가 되고싶어하건 말건 모른 척하고 이대로 일단 동부와 페로 녀석을 때려잡는 겁니다. 마지막에 카렐 녀석까지 무너뜨리고 나면 그때가서 전하께서 서부 최고제후 승계권을 내세우시면서 서부를 공격해 장악하는 겁니다. 동부와 서부를 차례대로 적으로 만들어 맞서야 하니 많은 피를 흘리겠지만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이긴 하죠."

"그럼, 돈 안드는 길은?"

제롬의 질문에 베흔이 씽긋 웃음을 지었다.

"답답하고 짜증나고 싸움도 할 줄 모르는 유학자새끼 없애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일이 커지면 나중에 각하께서 서부를 장악하기가 그만큼 곤란해지는 게 문제랄 수 있으니.......대신 혐의를 뒤집어쓰고 서부녀석들에게 뭇매를 얻어맞아줄 녀석이 하나쯤 있다면......."

베흔이 갑자기 씨익 웃음을 지었다.

"코리온 리쿠 학장 그자만 죽어주면 서부는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고말죠. 놈들에게 그자 외에 제위 후계자로 내세울 인물이 있는것도 아니니.....녀석에게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지지할곳을 잃은 녀석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쪽에 손을 내밀수밖에는 없을겁니다."

"푸하하!"

제롬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코리온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해오던 그로서는 더이상 좋은 제안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술잔을 살짝 들쳐보이며 베흔이 중얼거렸다.

"남부에 머무르시는 것이 좋으실 듯 하니 얼마간 자택에 돌아가셔서 부인이나 실컷 안아주고 계시죠."

"언니......언니가 여기 무슨 일이예요?"

병사들 손에 저택 한쪽의 안가 밀실에 내동댕이쳐진 아메스의 모습에 깜짝 놀란 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제기랄! 빌어먹을 서부 돈버러지들! 돌아가면 네놈들 싹 다 태워죽여서 일년내내 씹어먹어줄테다!"

문짝을 거칠게 걷어차며 아메스가 있는대로 악을 썼다. 그는 자신을 맞아주는 동생은 본척도 않은 채 단단한 창문과 문짝만을 미친 듯 두들겨대고 있었다.

"언니, 무슨 일이냐구요?"

"무슨일은 무슨일이야! 너때문에 왔다가 이지경됐지! 망할! 전하는 어떡해!"

"전하께서도 오셨어요?"

"서부 개새끼들이 근위대에 전하 팔아넘긴대잖아! 썅! 이놈의 개떡같은 유리창은 왜이렇게 딴딴해!"

유리창을 힘껏 걷어찼던 아메스는 그 충격에 튕겨 제풀에 나가떨어지며 또한번 있는대로 신경질을 부렸다. 카렐이 잡혔다는 소식에 순간 경악한 솔이 손가락을 깨물며 자리에 다시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야! 솔! 넌 기운도 센 놈이 질질 짜고앉아 뭐하냐고! 달아날 생각도 안해! 전하를 구해야 할 것 아냐!"

의자를 집어든 아메스가 유리창에 있는 힘껏 내던졌지만 퉁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를 퉁겨낸 유리창은 여전히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안부서져요......소용없어요."

쭈그려앉은 솔이 무릎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닥쳐! 안부서지는 게 어딨어? 아버지께 이 일을 알려야 된다구! 제기랄, 저대로 전하께서 당하시는 걸 그냥 볼거야!"

여전히 쭈그려앉아 울고만 있는 솔을 바라보며 답답함과 한심함에 이를 빠드득 갈던 아메스는 창밖으로 머리를 있는대로 내밀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해안가의 높은 절벽 위에 지어진 이 저택 사방으로는 이미 수십의 경비병이 쫙 깔려있었고 어느구석으로도 도망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아메스의 숨이 꽉 막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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