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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The Iron Vein-257화 (257/1,132)

< -- 257 회: Part 13. 시들어가는 소나무 밑에 연꽃이 피어날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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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왜 제 정체를 밝히지 않으셨습니까?”

누마에게 맞아 봉합이 터져버린 코리온 가슴의 상처를 다시 꿰매주며 카렐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버린 코리온은 카렐의 질문에 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폐차와 폐기물들이 잔뜩 쌓여있는 시 외곽의 폐기물 처리장 한쪽에 차를 숨겨둔 일행은 도로를 정탐나간 자이납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멍이 크게 들었지만 큰 문제는 없겠습니다.”

매듭을 엮은 실을 이로 끊어내며 카렐이 중얼거렸다. 그 때 긴장한 얼굴의 자이납이 차 문을 확 열어 젖혔다.

“상황 좀 어때?”

자이납이 차문을 닫고 안에 들어오며 입을 열었다.

“외곽으로 나가는 도로는 다 폐쇄되었다네요. 공단에서 나가는 일부 화물차량들만 삼엄한 검문하에 통과시키고 있구요, 항구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사람들 말이 근위대들 어슬렁거리는 모습도 봤다고 하네요.”

“제기랄,”

카렐이 코리온의 가슴을 여미어주며 연신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기껏 포위망을 빠져 나왔는 줄로 알았지만 결국은 이렇게 다시 걸려든 셈이었다.

“네놈은......내 손에 죽어야 한다. 남부녀석들이나 근위대 손에 죽게 놔둘 수는 없었을 뿐이다.”

코리온이 쌀쌀맞게 중얼거렸다.

“제발 그럴 수 있을 때가 오기라도 했으면 좋겠군요.”

농담같이 흘려버린 카렐은 코리온의 매끈한 어깨에 스리슬쩍 코를 들이대며 킁킁대고 있던 자이납을 운전석으로 쫓아내 버렸다. 하지만 자이납은 운전석으로 쫓겨난 후에도 여전히 뒤로 고개를 돌린 채 코리온만을 바라보며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싱글거리고 있었다. 하심이 그런 자이납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그 정도에 신경 쓸 자이납이 결코 아니었다.

카렐이 갑자기 한마디 꺼냈다.

“딴생각하면 죽을 줄 알아.”

“딴생각이라뇨? 제가 뭘요?”

“몰라서 묻냐? 이놈아?”

카렐이 그 긴 팔을 쭉 뻗어 자이납의 머리를 또 한번 쥐어박았다.

“아이, 사모하는 것도 죄냐구요,”

“죄가 아니냐고? 그럼 이건 뭐냐?”

카렐이 자이납의 옷소매 속에서 냉큼 끄집어낸 건 코리온이 오른쪽 귀에 하고 있던 페리도트 귀걸이였다. 그제서야 자신의 귀걸이가 없어진 것을 알아챈 코리온이 기겁을 하고 있었다.

“너 다른 건 몰라도 귀걸이나 반지 손대면 내가 목을 비틀어버릴 줄 알어.”

귀걸이를 빼앗은 카렐이 자이납의 얼굴에 코리온의 검은 셔츠를 대뜸 집어던졌다. 얼굴에 셔츠를 뒤집어쓴 채 잠시 버둥거리던 자이납은 그곳에서 풍기는 코리온의 체취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헤헷,”

그제서야 귀걸이와 속셔츠를 ‘바꿔준’ 카렐의 속을 눈치챈 자이납이 갑자기 이를 드러내고 웃어보였다. 카렐이 코리온의 귀에 귀걸이를 다시 걸어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운전석 쪽과의 사이에 칸막이를 닫아잠근 카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머님께 주페 태자저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상할 것도 없지.”

코리온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비록 안좋은 일이 있기는 했지만......개인적으로는 많이 존경하셨던 것 같습니다.”

“존경?”

코리온이 갑자기 그답지 않은 실없는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지금 존경이라고 그랬나? 연모가 아니고?”

‘연모’라는 말에 카렐이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머니께는 이미 10년째 좋아하시던 분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풋, 그렇게 말하던가? 네 어미가?”

코웃음친 코리온이 갑자기 카렐을 돌아보았다. 무언가 이상함을 직감함 카렐 역시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코리온이 그를 향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군. 대문회 이후로 태자저하를 10년 동안이나 쫓아다녔으니.”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카렐이 코리온의 맑은 갈색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지금......뭐라 하셨습니까?”

“네 어미가 그분을 10년간 집요하게 따랐다고 말했다. 태자저하께선 관심도 두지 않으셨지만. 네 어미가 그렇게 말했다면 태자저하를 말한 거겠지.”

“그럼......”

갑자기 살기등등한 눈을 부릅뜬 코리온이 부들부들 떨고있는 카렐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대며 소름끼칠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악녀의 선택이 뭐였는지 아나? ‘내가 가지지 못할 바에는 남에게도 절대 못 주겠다’는 무서운 탐욕이었지. 그래. 태자저하는 네 어미의 악행을 이미 모두 알고 계셨다......네 어미가 날 황궁 앞에서 못박아 죽여버린다 해도 그분이 철천지원수인 그 망할 년에게 절대 정을 주지는 않으셨을 거다. 그 사실을 알 정도였으니 그년도 아주 바보는 아니었지.”

카렐이 긴장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래서......절 그리 미워하시는 겁니까?”

“아니, 넌 아냐.”

피식 웃음지은 코리온이 다시 자리에 똑바로 드러누우며 대답했다.

“네 어미의 죄를 그때부터 60년이나 뒤에 태어난 네게 뒤집어씌우기는 너무 불쌍하지. 하지만 네놈의 죄는 애석하게도 네 존재 그 자체다. 넌 복수의 목적이 아니고 수단일 뿐이야.”

고개를 돌린 코리온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에 카렐은 그에게 더 이상 따져물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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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푸른빛 갑주를 차려입은 샤드니의 손에는 섬뜩하게 긴 창이 들려있었다. 건장한 갈색 말에 올라탄 그의 등뒤에는 양아버지를 비롯한 가문 원로들이 동원한 1군단 소속 2백여 명의 경보병들과 50여명의 최정예 장갑보병, 이십 여기의 낙타병이 진격명령만을 기다리며 서 있었다.

코리온의 특별한 지시와, 가문 원로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번 쿠데타의 목표는 주페의 계획대로 서부 연합군이 출범해 장태자를 돕는 것을 막기 위해 누나인 네페티 부인을 최고제후에서 몰아내는, 아니 이대로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아직 40대에 불과한 젊은 나이지만 청소년기부터 장군이었던 양아버지를 따라 이런저런 전투에 동행했던 샤드니는 가문에서 손꼽히는 ‘미래의 사령관감’으로 주목을 받아오고 있었다. 5년 전에도 5천 여명의 병력을 직접 지휘해 남부와의 경계선분쟁을 승리로 이끈 바 있던 그에게 기껏 십여 명의 최고제후 경호원과 50여명의 경비병들을 ‘쓸어내는’ 이런 작전 정도는 손바닥 뒤집기만큼이나 손쉬운 일이었다.

해안가의 절벽에 매복한 샤드니의 170여명의 병력은 네페티 부인의 셔틀이 서 있는 작은 별장을 줄곧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의 호젓한 해안가에 큰 모래사장을 끼고 만들어진 이 별장은 가문의 특별한 손님을 영접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일종의 특별영빈관이었다. 바깥정원과 주기장을 감싸는 바깥쪽 담과, 중앙의 영빈관과 안쪽 정원, 접객실을 보호하는 안쪽 담까지 2중의 높지 않은 담이 있었지만 저 담은 군대의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좀도둑을 막는 정도의 목적이 고작이었다.

양쪽으로 절벽을, 뒤쪽으로 작은 숲을 끼고있는 이곳은 가문의 대권을 뒤집어엎는 이 쿠데타를 완벽하게 은폐해버릴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누나인 네페티 부인의 도착만을 기다리며 1시간째 이곳에 숨죽이고 있던 샤드니는 셔틀이 도착하고 누나가 안에 들어서는 모습까지 확인하고는 뒤로 휙 돌아섰다. 그의 계획대로 양아버지와 내통한 몇 명의 경비병들이 셔틀을 못쓰게 만들어놓으면 남는 문제는 누나에게 충성하는 나머지 경비병들과 경호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나를 없애버리는 것뿐이었다.

샤드니가 병사들을 향해 창을 치켜들며 큰 소리로 고함을 올렸다.

“무능한 최고제후가 가문을 위험에 빠뜨리려 하니 이를 어찌 두고볼 것인가!”

큰 소리로 포효한 샤드니가 말에 박차를 가하며 제일 먼저 달려나갔다. 뒤이어 그를 따르는 몇 기의 기병과 20기의 낙타병, 2백여 명의 경보병과 오십여 장갑보병들이 이 크지 않은 별장을 향해 양쪽의 절벽에서 우루루 몰려들어갔다. 조용하던 작은 모래사장은 돌격하는 쿠데타군의 함성으로 무섭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문 닫아! 닫아!”

3백명 가까운 많은 병력의 기습에 놀란 몇 명의 경비병들이 창과 칼을 뽑아들고 잠시 이들을 막아서려 했지만 그 엄청난 기세에 놀랐는지 허둥지둥 별장 안으로 도로 뛰어들며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미친놈들, 넘어가!”

샤드니의 명령에 사다리를 앞세운 50여명의 장갑보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눈 깜짝할 새 담을 넘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장갑보병들이 넘어들어오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란 별장 경비병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듯 다시 별장 안쪽 정원으로 번개같이 숨어들고 있었다. 별다른 저항도 없이 바깥 정원을 차지해버린 장갑보병들이 바깥문을 확 열고 바깥에 대기하던 백여 명의 경보병들을 들여보냈다.

일단 셔틀과 주기장이 있는 바깥마당을 장악했으니 네페티 부인과 그의 수행원들이 달아날 구멍은 완전히 막혀버린 셈이었다.

“별것도 아니군.”

친위 경비병들이 맥없이 도망치는 모습에 샤드니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안쪽 담도 바로 돌파해라. 시간 끌 필요 없다.”

샤드니가 이번에도 장갑보병들에게 즉시 지시를 내렸다. 서부 제일의 베테랑 보병인 그들은 또다시 사다리를 들고 이제는 거의 무의미해진 안쪽 담에 일제히 달려들었다. 1차 방벽인 바깥담을 너무도 손쉽게 돌파하면서 기세등등해진 그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담을 훌쩍 넘어들어갔다.

“배신자들을 처단해라!”

담을 넘어 안쪽 정원으로 막 뛰어든 50여명의 장갑보병들은 정원의 관상수 뒤에서 들려온 거친 발음의 고함소리에 순간 움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무 뒤에서는 머리에 흰 띠를 두른, 50여명이 넘는 건장한 체구의 낯선 보병들이 우루루 몰려나왔다. 기껏해야 이곳 경비병 50여명만 생각하고 담을 넘어들어왔던 쿠데타군 장갑보병들은 손에손에 도끼와 큰 방패를 들고 괴성과 함께 돌진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의 매복병들에 놀라 조금씩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안쪽 정원에서 갑자기 들려온 고함소리와 비명에 잠시 당황하고 있던 샤드니에게 부관이 달려와 보고를 올렸다.

“정체불명의 병력이 북쪽 숲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보병 2백여명과 기병 30기 정도로 추정됩니다!”

“뭐라고?”

말에 다시 뛰어오른 샤드니는 낙타병들과 경보병 약간을 이끌고 허둥지둥 집 밖으로 달려나갔다. 부장 말마따나 30여기의 기병들을 선두로 2백여 명의 보병들이 이 영빈관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영빈관 안쪽에 매복하고 있던 병력들은 물론이고, 바깥에서 쳐오는 이들과도 양쪽에서 전투를 벌여야 할 판이었다.

“저놈들은 또 뭐야!”

“남중부 일선부대인 5군단 기동부대 같습니다!”

자신의 쿠데타 계획을 이미 누나가 눈치채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샤드니는 온 몸이 그대로 굳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원로들이 이미 장악하고 있는 수도의 1군단 병력 대신 변방의 일선군단에서 병력을 뽑아내 이곳에 미리 매복시켜둔 모양이었다.

“저놈은.....”

샤드니는 선두 기병의 중앙에서 달려오는 번쩍이는 은색 갑주 차림의 큰 키의 기병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오른손에는 검은색의 소름끼치는 묵직한 창이, 허리에는 긴 카타나가 단단히 채워져 있었다.

“이런, 망할!”

샤드니가 창을 단단히 움켜잡았지만 그의 두 손이 자기도모르게 덜덜 떨려오고 있었다. 가디언까지 꺾은 바 있는, 저 무서운 자와 결국 이렇게 마주하고 만 셈이었다.

“너희는 안쪽 문을 돌파해 계획대로 내부병력을 처치하고 배신자 네페티를 처단해! 나는 여기서 저들을 저지하겠다! 낙타병 돌격!”

말에 박차를 가한 샤드니가 150여명의 경보병들과 5기의 기병, 20여기의 낙타병들로 이루어진 쿠데타군을 이끌고 저항군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샤드니와 오르마즈가 각각 이끄는, 같은 플레렌 가 제후군들끼리의 전대미문의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역적들에게서 최고제후님을 지켜라!”

카랑카랑한 여자 목소리에 피아 식별을 위해 머리에 흰 띠를 두른 5군단 기병들과 보병들이 큰 함성을 지르며 샤드니의 1군단 쿠데타군에게 무기를 내질렀다. 기병의 최선봉에서 달려온 오르마즈는 긴 창을 내질러 낙타병 한 명을 단 일격에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즉시 몸을 돌려 무서운 순발력으로 창 뒤쪽을 거칠게 돌려쳤다. 오르마즈의 측면을 공격하려던 샤드니의 부장 역시 뒤쪽의 작은 날에 얻어맞으며 말에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창의 양끝을 모두 사용하는, 오르마즈만의 매서운 공격에 샤드니의 낙타병들이 벌써부터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네, 네 이놈!”

보다못한 결국 샤드니가 창을 쥐고 오르마즈를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이미 남부의 내노라 하는 지휘관을 두 명이나 일기투로 꺾은 바 있던 샤드니 역시 비록 젊지만 가문 내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손꼽히고 있었다.

“네놈 정체를 이 자리에서 밝혀주마!”

오르마즈의 거울빛 투구 사이트를 쏘아보며 샤드니가 자기최면이라도 걸듯 악을 썼다. 그런 샤드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오르마즈 역시 그를 향해 창을 똑바로 움켜쥐었다.

“아악!”

샤드니가 오르마즈를 향해 힘껏 찌른 창은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 거칠게 쳐 올린 오르마즈의 창에 걸리며 무참하게 비껴나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번개같이 가해진 역습에 얼굴을 얻어맞은 샤드니는 큰 비명을 지르며 말 뒤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제대로 된 싸움한번 벌여보지 못한 채 단 한 합만에 제압당한 샤드니는 그 엄청난 위력에 놀라 잠시 멍해져 있었다. 창 옆쪽의 미늘에 맞았기 망정이었지 앞쪽의 거대한 날로 쳤다면 얼굴을 관통하며 그를 그대로 절명시켰을 정도의 강력한 공격이었다.

“젠장!”

옆에 있던 말 다리 밑으로 잽싸게 몸을 날린 샤드니는 다른 낙타병들이 오르마즈를 막아서는 새 재빨리 영빈관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단 집 바깥의 싸움에서 빠져나온 샤드니는 말도 버려둔 채 단신으로 별장 마당까지 허겁지겁 뛰쳐들었다. 이미 부서진 정원문 안쪽에서는 안쪽에 미리 매복해있던 탈라스 용병들과 이곳 경비병들, 그리고 쿠데타군 보병 백여명 간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멍청한 놈들!”

긴 시미터를 뽑아들고 난전에 뛰쳐든 샤드니는 직접 선두에 서서 경비병들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바깥에서 교전중인 오르마즈의 부대가 이 안쪽까지 돌파하기 전에 한시바삐 네페티 부인을 죽여야 할 상황이었다.

“귀찮은 놈!”

앞을 가로막는 경비병의 목을 힘껏 날려버린 샤드니는 나머지 보병들에게 싸움을 맡겨둔 채 이십 여명의 장갑보병들만을 데리고 정원 중앙의 영빈관 건물 창을 부수며 그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샤드니! 네놈.......”

십여 명의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영빈관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네페티 부인이 피가 흥건한 칼을 쥐고 병사들과 함께 뛰쳐들어온 샤드니의 광기 어린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누님의 우유부단함으로 서부가 또 한번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겁니다! 가문과 서부를 위해 죽어주셔야겠습니다!”

이미 피로 흥건해진 칼을 누나에게 똑바로 겨누며 샤드니가 큰 고함을 내질렀다. 네페티 부인을 몸으로 감싸 막은 경호원들 역시 거칠게 쳐오는 샤드니의 장갑보병들과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힘껏 칼을 휘둘러 경호원 한 명을 쓰러뜨린 샤드니가 부인을 향해 그대로 칼을 뻗었다.

“피하십시오!”

경호원 한 명이 급히 칼을 쳐냈지만 깜짝 놀란 네페티 부인의 뺨에 반 뼘 정도의 혈선이 그어져 있었다.

“배은망덕한 녀석!”

귀에 익은 날카로운 고함소리에 샤드니가 뒤로 휙 돌아섰다. 보병들을 단신으로 뚫고 그를 뒤쫓아온 오르마즈가 갑주 위에 온통 피를 뒤집어쓴 채 한 손에 붉은빛의 카타나를 굳게 움켜쥐고 있었다. 이미 얼마나 많은 병사들을 베었는지 그의 칼 역시 피로 범벅이었다. 오르마즈의 모습을 확인한 네페티 부인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네놈에게 약은 칼밖에 없구나!”

상단세로 칼을 번쩍 치켜들며 돌진해오는 오르마즈의 기세에 샤드니가 허둥지둥 방패를 치켜들며 다리를 넓게 벌렸다. 하지만 오르마즈가 두 손으로 체중을 실어 힘껏 휘두른 칼에 방패를 직격당한 샤드니는 반격조차 못해본 채 뒤로 몇 발짝을 물러나고 말았다.

오르마즈의 번쩍이는 카타나가 공중에 화려하기까지 한 금속성의 붉은 궤적을 그리며 정신없이 몰아붙이자 샤드니는 방패 뒤로 머리를 숨긴 채 무기력하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가디언까지 꺾는다는 오르마즈의 그 무시무시한 공격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샤드니로서는 감히 대항할 엄두조차도 내지 못할 지경이었다. 대장이 밀리고있는 모습을 본 3명의 장갑보병들이 이쪽을 향해 우루루 몰려들어왔다.

“뭐야!”

샤드니를 찌르려던 오르마즈는 등뒤에서 동시에 할버드를 내질러오는 무려 3명의 쿠데타군 장갑보병에 크게 놀라 뒤를 휙 돌아보았다.

“이놈!”

밀리고 있던 샤드니가 순간 빈틈을 발견하고는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까지 무려 4명에게 포위되어버린 오르마즈의 등을 향해 내질렀다.

“아익!”

잠시 한눈을 팔았던 오르마즈는 급히 칼을 치켜들었지만 이미 한발 늦은 후였다. 샤드니의 예리한 칼끝이 오르마즈의 갑주를 찢으면서 그의 팔에서 피가 벌컥 솟아올랐다. 칼에 깊이 베이며 뒤로 몇 걸음을 물러난 오르마즈의 오른쪽 팔에서 터져나온 붉은 피가 그의 등을 순간 부둥켜안은 네페티 부인의 창백해진 얼굴에 튀어올랐다.

“샤드니! 너......”

뒷걸음치는 오르마즈에 밀려 벽에 세게 부딪힌 네페티 부인이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를 경호원들 중간으로 거칠게 떠밀어낸 오르마즈는 칼을 재빨리 왼손에 옮겨들며 샤드니가 부인을 향해 내질러오는 시미터를 힘껏 쳐냈다.

“누구 맘대로! 썅!”

누나를 가로막은 오르마즈를 향해 시미터를 치켜들려던 샤드니는 장갑보병들을 쫓아 들어온 경비병의 기습에 다시 옆으로 밀려나며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최고제후님을 지켜!”

별장 경비병 20여명이 영빈관 안에 차례대로 뛰쳐들면서 전황은 샤드니 쪽에 점점 불리해지고 있었다. 밖에서 싸움을 벌이던 5군단 병사들까지 건물 안으로 속속 들어오면서 영빈관 밖 정원의 샤드니 측 보병들도 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제기랄!”

열세를 직감한 샤드니는 허둥지둥 건물 밖으로 달아나 할룩스를 열고 양아버지를 불러냈다.

“지원군을 보내주십시오! 매복에 걸렸지만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얼굴에 온통 피를 뒤집어쓴 샤드니의 애타는 표정에 역시 당혹스런 얼굴로 어딘가에 바삐 연락을 취하던 그의 양아버지 칼림은 이맛살을 살짝 찡그렸을 뿐이었다. ‘지원군’이라는 그의 말에 낮은 한숨을 내쉰 칼림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일단 퇴각해라. 방금 5군단 선발대 5천명이 종가 일대도 장악했다. 5군단 나머지 병력도 궤도 바로 밖에서 돌입해오고 있어. 그대로 있으면 너도 당하니 일단 남반구로 대피해라.”

샤드니의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버리고 있었다. 누나와 오르마즈가 중립적인 군단장이 있는 5군단을 모두 수도로 불러들인 모양이었다. 최고제후의 지시를 받는 무려 1만 5천에 달하는 이들 일선병력이 원로가 장악하고 있는 수도의 경비병력과 충돌한다면 가문은 일대 내분사태에 휩쓸리게 되는 셈이었다. 어쨌든 플레렌 가의 종장은 명목상이나마 이 누나였고 일이 커지면 불리해지는 쪽은 샤드니를 위시한 가문 원로들이었다.

“전......이제 어떡합니까!”

“일단 라호르 시 정도에 가서 피해있도록 해라. 일이 잠잠해질 때까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말을 마친 양아버지가 매정할 정도로 야박하게 통신을 끊어버리자 샤드니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종권 쟁취에 실패한 대역죄인인 자신을 이대로 내버리려는 것이 확실했다.

“이, 이......”

자신을 새 종장으로 밀어주겠다고 그리도 공언했던 원로들에게 결국 버림을 받은 샤드니는 비틀거리는 걸음을 별장 밖으로 옮기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병사들이 마지막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이미 승산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경비병들과 5군단 병사들에게 제압당해 가는 병사들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그리고 샤드니를 앞세워 서부를 장악하려던 코리온의 계획 또한 이로서 처참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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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 회의 본문에 있던 일러스트, 삽화, 전황도는 유조아 개편으로 태그 사용이 불가능해져서 일단 지웠습니다. 팬카페 http://cafe.daum.net/TheIronVein 으로 가시면 지워진 그림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개편이 끝나는대로 그림은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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