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맥The Iron Vein-273화 (272/1,132)

< -- 273 회: Part 14. 매화는 봄을 기다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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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쭐 것이 있습니다.”

타르서스 별궁에 와 있던 카렐을 직접 찾아온 세네피스 황후는 이번에도 여느 때처럼 딸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있었다. 카렐의 팔을 베고 누워있던 황후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딸의 날카로운 눈을 어리둥절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어머님이 사랑하시던 남자가......주페 태자였다는 걸 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결국 알고 말았구나.”

피식 웃음지은 황후는 그다지 놀라는 표정도 아니었다.

“말하지 않은 것뿐이지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않았잖느냐.”

어머니의 능청맞기까지 한 태도에 딴에는 심각하게 질문을 던졌던 카렐도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 남극성당 출신이라고 했고, 유학자라고 했고, 유난히 강직한 성격에 이미 죽었다 말했으니 틀린 건 없지 않냐?”

“그래서 처음에 주페 태자저하와 혼인을 요청하셨던 겁니까?”

“그래, 그런데 그 답답한 남자에게서 딱지를 맞고 말았지. 어쩌겠느냐.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데.”

마치 남의 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는 황후였지만 카렐은 그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다른 사람이 조카 코리온 대군이었다는 것이 문제였겠죠.”

“아무리 발버둥치고 애써도 안되는 게 있기는 하더구나.”

황후의 눈가에 해묵은 외로움이 번지고 있었다. 그런 황후를 향해 돌아누운 카렐이 갑자기 어머니의 뺨을 부드럽게 매만지기 시작했다. 황후가 갑자기 씨익 웃음을 지었다.

“네가 갑자기 살갑게 구는 걸 보니 뭐 심각하게 묻고싶은 게 있구나?”

“......”

“혹시 태자의 딸 이야기냐?”

황후가 카렐에게 바싹 달라붙으며 물었다.

“아시는군요.”

“언제든 네게 이야기해주려고 했으니.”

조금 머뭇거리던 카렐이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정말......어머님께서 죽이셨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내가 왜 죽였겠느냐. 그것도 언제 죽임을 당할 지 모르는 사람의 유일한 희망을 말이다.”

“하지만 리쿠 학장은......”

“어쩌다 그리된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보낸 사람들이 캡슐을 발견했을 때 캡슐은 이미 짓이겨져 있었고 아기는 죽은 뒤였단다.”

“학장에게 왜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벽창호가 철천지원수인 내 말을 믿었으리라 생각되냐?”

어머니의 세세한 설명을 듣는 카렐의 얼굴이 묘한 의아함으로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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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대 요원들에게 결국 붙잡혀 황궁 근위대 본부까지 끌려온 하심은 입고있던 옷이 모두 벗겨진 채 이미 몇 분째 발길질과 주먹질을 당하고 난 후였다. 그는 캡슐이 어디 있는지를 신경질적으로 묻는 베흔에게 주페의 아이 따위는 없다며 끈질기게 잡아떼고 있었다. 폭행으로 이미 피떡이 되어버린 이 고집 센 여생도를 내려보며 베흔은 이 녀석도 ‘유리방’으로 보내버릴까 말까 하는 고민에 한참 잠겨있었다.

“태자빈마마 드십니다.”

밖에서 들려온 느닷없는 고함소리에 베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베흔은 문이 열리고 나타난 세네피스의 모습에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심문실에 들어선 세네피스는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서 알몸으로 뒹굴고 있는 하심을 내려다보며 짐짓 놀란 듯 베흔에게 물었다.

“아니, 이게 다 뭡니까?”

“주페 태자의 추종자 중 한 놈입니다.”

“어허, 내 알기로 이애는 태자를 따르던 학부생도 아닙니까? 근위대장께서 심문할 사람이 없어 일개 학부생도 따위를 괴롭히고 계시다뇨?”

“그......그게......주페 태자에게 숨겨둔 자식이 있는 모양입니다.”

“세상에, 그게 사실입니까?”

세네피스가 짐짓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태자의 숙소에서 빈 태아캡슐과 유아용품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베흔의 말에 잠시 기가 막히다는, 황당함의 표정을 지었던 세네피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태자빈의 뜻밖의 태도에 베흔이 조금 어리둥절해져 있었다.

“이런, 이런, 근위대장, 어떻게 황실 근위대장이시란 분이 그리 단순하시답니까? 아니, 주페 태자에게 그 동안 관심을 두기나 하셨던 겁니까?”

“무슨......말씀이신지......”

베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세네피스가 웃음을 애써 참으며 베흔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주페 태자 그 양반을 모르십니까? 눈만 떴다 하면 예쁜 딸 하나 가지고 싶다는 타령을 입에 달고 사시는 양반이었죠. 길거리에서 예쁘장한 계집아이라도 지나가면 손에 뭐 하나씩을 꼭 쥐여줘야 직성이 풀릴 정도였다는 건 황실 가족들은 이미 다 알고있는 일입니다.”

“......”

“그런 괴상망측한 양반이 취미로 캡슐수집을 하건 유아복수집을 하건 그 양반 그 변태스런 취향을 저라고 어쩌겠습니까. 의료용품점에서 몇십 골드면 사는 그 흔한 아기캡슐을 가지고 이 호들갑이시라뇨? 이 양반 취미가 유아용품 수집이라는 것도 아직 모르셨단 말입니까? 내 참, 이 양반 집이니 별장이니 다 뒤져보세요. 아마 별의별 유아용품들이 다 쏟아져 나올테니.”

“예.....예?”

세네피스의 뜻밖의 말에 베흔이 질겁을 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자신들은 실체도 없는 주페의 2세를 쫓고있었다는 황당한 말이 되는 셈이었다. 게다가 샤드니 역시 아기 얘기는 금시초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생각 좀 하세요, 생각. 그 꽉 막힌 원리주의자가 결혼도 않고 자녀를 둔다는 게 어디 될 법이나 할 말입니까? 설사 그렇다해도, 아랫사람들도 걸핏하면 드나드는 집안에 그걸 보란 듯이 갖다놓고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시냐구요. 그래서, 이 불쌍한 어린 생도를 잡아 족치고 있던 겁니까? 세상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있는 하심에게 바싹 다가온 세네피스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사뭇 다정하게 물었다.

“이보게, 생도. 대답해보게. 태자에게 자녀가 있었나?”

“아, 아뇨, 그분께서 그러실 리가 있습니까,”

하심이 멍이 들어 퉁퉁 부어오른 눈을 애써 치켜뜨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럼 캡슐은 도대체 뭔가?”

“그분이......그분이 매일 끌어안고 닦으시면서......나, 나중에 예쁜 딸을 갖고 싶으시다고......”

하심의 눈치빠른 대답에 세네피스가 빙긋 웃음을 지었다. 성이 머리끝까지 오른 베흔이 하심의 가방을 바닥에 거칠게 팽개치며 부하들과 함께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만면에 웃음을 띠고있던 세네피스의 얼굴이 대뜸 차갑게 돌변해버렸다. 세네피스가 하심의 목을 죈 밧줄을 꽉 움켜쥐며 코앞으로 홱 잡아당겼다.

“네년 짓이냐?”

잠시나마 ‘구세주’로 알았던 그의 돌변한 태도에 하심이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되물었다.

“예? 무, 무어가 말씀입니까?”

“캡슐을 네년이 부쉈냐는 말이다!”

멍 해져있는 하심의 눈앞에서 세네피스가 이를 빠드득 갈고 있었다.

“방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캡슐 같은 건 없다고.....”

애써 부인하던 하심의 코앞에 세네피스가 중간이 찌그러든 태아캡슐을 불쑥 내밀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하심은 입을 쩍 벌린 채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이 망할 년, 네년이 부쉈냐?”

“이......이게......이게.......”

그 끔찍한 모습에 순간 경악한 하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럴 리가......”

“네년도 안 그랬고, 근위대도 안 그랬으면 도대체 누가 이랬냐는 말이다!”

세네피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그의 귀를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심은 자신이 캡슐을 맡긴 샤드니가 설마 이런 짓을 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눈앞의 이 무서운 태자빈이 자기가 그래놓고 의심을 피해보기 위해 이런 연극을 하고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료실에 숨겨두고......도망쳤었는데......그게......그게......”

세네피스가 넋이 빠져버린 하심을 바닥에 사정없이 동댕이쳐버렸다. 캡슐을 다시 가방에 챙긴 세네피스는 잔뜩 성난 얼굴로 취조실을 빠져나왔다.

한켠에서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던 베흔이 수행원들과 함께 근위대를 빠져나가는 세네피스에게 급히 달려왔다.

“잡힌 태자들의 처리에 관해 근위대에서는 전원 역모죄로 참수키로 방침을 세웠습니다.”

자리에 우뚝 멈춰 선 세네피스가 곱지않은 표정으로 베흔을 쏘아보았다.

“역모? 지금 역모라 했습니까? 로노라면 말이 되겠지만......주페와 타니토는 어떻게 역모죄를 성립시키려 하십니까?”

세네피스의 지적에 베흔이 흠칫 놀라고 있었다. 태자들 모두를 죽이는 데 세네피스가 흔쾌히 승낙할 것으로 믿었던 베흔은 이 ‘황후 예정자’가 뒤집어씌울 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오자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봐요, 근위대장님. 오넬론 태자께서는 무고한 형제들에게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워 제위에 오른 무자비한 황제로 기록되고싶어하지는 않으십니다. 태자들 재판을 그럴싸하게 진행시키려면 제대로 된 증거라도 붙이던지 하시란 말씀입니다.”

세네피스의 까다로운 태도에 조금 흥분한 베흔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섰다.

들고있던 자료를 잠시 뒤적거린 베흔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타니토는......세닉 가에 제위찬탈을 위한 병력요청을 직접 했던 명백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럼 됐군요, 주페 태자는요?”

세네피스가 짐짓 쌀쌀맞은 표정으로 물었다. 베흔은 세네피스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못한 채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듣자하니, 태자와 직접 연관된 자료는 하나도 없다면서요? 태자 스스로도 제위를 노린다는 말은 자기 입으로 한마디도 한 적이 없고요. 어쩌실 겁니까? 태자는 역모죄와 내란죄, 현행범이 아니면 면책특권이 있다는 것을 모르시지는 않을테고?”

세네피스의 날카로운 회색빛 눈동자가 베흔의 살기어린 초록색 눈빛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폐하께선 확실한 물증도 없이 형제들을 처형장에 올리는 판결문에 서명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세네피스의 신경질에 베흔이 흥분을 가다듬으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태자를 직접 심문해야겠군요.”

“지금 태자를 심문한다 하셨습니까? 그냥 황족도 아닌, 태자를요?”

세네피스가 대뜸 얼굴을 붉히며 따져물었다.

“심문당해서 피칠갑이 된 태자를, 저 천박한 평민들 앞에 내놓고 목을 친단 말씀입니까? 그게 황실과 우리 카파키 가에 얼마나 큰 망신이 될지 생각도 안 해보셨습니까?”

“그럼 어쩌란 말씀입니까!”

베흔이 맞받아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베흔을 똑바로 노려보던 세네피스가 갑자기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그 제일 가까운 측근을 심문하시죠. 듣자하니, 그놈이 모든 증거를 다 가지고 있었다면서요? 같은 유학자에 측근 문하교수니.....녀석 증언 정도면 물증에 맞먹을 증거가 되겠죠.”

세네피스의 말뜻을 알아들은 베흔이 그제서야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아하,”

“그놈 입에서 ‘증거’만 받아내시면......충분히 서명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못 받아내신다면......마음대로 처형할 수는 없으실 겁니다.”

“그깟 백면서생놈 때려잡는 정도야.......어려운 게 아니죠.”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치는 베흔에게 살짝 눈웃음을 지은 세네피스는 다시 휙 돌아 근위대를 빠져나왔다. 차가운 미소를 지은 세네피스의 입에서 들릴 듯 말 듯한 혼잣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놈이 어디 받아낼 수 있나 두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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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해보시게, 샤드니 경. 쿠엘스크에서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

학교에 돌아온 코리온이 샤드니에게 품고 온 질문을 결국 터뜨리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하심 역시 굳은 표정으로 샤드니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당혹스러운 표정의 샤드니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소인이......생각이 짧았습니다.....그놈에게 황실 피가 섞였다는 것이 서부에 알려지면 자칫 학장님께 해가 될까 두려워......순간 너무 당황해 판단력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샤드니가 발 밑에 이마를 대고 엎드리며 비굴할 정도로 싹싹 빌기 시작하자 코리온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고개 들게나.”

샤드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코리온이 다시 눈가를 일그러뜨렸다. 코리온은 샤드니의 변명이 얼마나 궁색한지, 그리고 이런 행동이 생각까지 읽어내는 자신의 매서운 눈길을 피하기 위한 수작이라는 사실까지도 물론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코리온도 나름대로 꽤나 애를 쓰고는 있었지만 사사로운 개입되어서인지 샤드니의 생각만은 도저히 읽어낼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코리온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쌀쌀맞게 말했다.

“샤드니 경이 이렇게까지 사과하니 일단 받아주도록 하게. 예킨터스 교수. 앞으로 비슷한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사사로운 관계를 떠나 내 샤드니 경에게 직접 극약을 내릴 것이니.”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소인 안심이 되옵니다.”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표정의 하심은 나란히 서 있는 코리온과 샤드니를 놔둔 채 뒷걸음쳐 학장실을 빠져나왔다.

한 손에 걸레를 쥔 채 이미 어두워진 교정을 멍 하니 구경하고 있던 라스가 하심에게 고개를 깊이 숙이며 물었다.

“이, 이제 들어가면 될까요?”

“저 두 분이 함께 계실 땐 따로 부르실 때까지는 안에 들어가지 마라.”

하심이 학장실 앞의 자기 책상에 자리잡고 앉으며 말했다.

“왜......죠?”

“차차 알게 될 거다.”

하심이 조금 짜증 섞인 말투로 대꾸하며 라스가 이미 깨끗이 닦고 정리해 놓은 자기 자리를 한 번 돌아보았다.

“네가 할 일은 많다. 마구간 노예들이 학장님 말들 잘 챙기고 있는지도 살펴야 하고 서가 청소나 학장님 옷가지나 목욕, 식사 챙기는 것도 네 몫이다. 아직 다리가 불편하시니까 항상 곁에 있어야 하는 걸 잊지 마라.”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발목까지 내려오는 코리온의 길고 검은 무명포와 무릎까지 오는 보랏빛 머플러, 회색빛 속 두루마기를 벗겨주며 샤드니가 속삭였다. 코리온은 오랜만에 돌아온 익숙한 잠자리에 샤드니의 부축으로 몸을 눕히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늘밤은 제가 곁에 있어드릴 테니 안심하고 푹 쉬십시오.”

“고맙다. 샤드니.”

코리온의 벗은 몸에 담요를 덮어주며 샤드니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과 반짝이는 금발머리를 부드럽게 매만지던 코리온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내 서부 사람들이 패를 갈라 싸우는 꼴은 정말 보고싶지 않다, 샤드니.”

코리온의 넓은 가슴에 입을 맞추던 샤드니가 잠시 움찔 했다. 코리온이 자신을 책망하고 있음을 깨달은 샤드니는 짐짓 미소를 지으며 누워있는 코리온의 가슴에 얼굴을 부볐다.

“내 가장 아끼는 수제자인 예킨터스 교수에게 감히 그런 짓을 하다니......앞으로 다시 이상한 기미라도 보인다면 너라도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니 명심해라.”

“이젠 정말 그러지 않겠습니다.”

샤드니의 손길에도 코리온은 별 반응 없이 조용히 눈을 감아버렸다.

잠시 말이 없던 코리온이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입을 열었다.

“내 이번에 생각했다만......이제 옛 기억을 접기 위해서라도......내 아이를 가지고 싶구나.”

눈을 번쩍 뜬 샤드니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코리온에게 얼굴을 바싹 가져갔다.

“저, 정말이십니까? 이제 정말 아이를 가지시겠습니까?”

“이제는......그래야겠지.”

코리온이 조금은 공허한 표정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아직까지 모디아크의 생각이 스쳐가고 있는 것이 확실했지만 샤드니로서는 코리온의 이번 결심이 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오랜 기간을 괴로워하던 그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는지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즐거움을 주체하지 못하며 싱글거리던 샤드니에게 들려온 코리온의 다음 말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주페 태자저하께 자손이 없었다는 것이 이렇게 가슴아플 수가 없구나......다행히 그분 세포가 서북 콜로니 아카데미에 아직 보관되어있을 테니 지금이라도 모디아크의 동생을 만들 수 있을 거다.”

“예에?”

순간 파랗게 질려버린 샤드니는 멍 한 얼굴로 코리온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샤드니가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그러시오면......저, 전.......”

샤드니의 절망어린 표정을 바라보던 코리온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주페 태자께서 제위를 이으셔야 마땅했으니 다음 제위 후계자는 당연히 그분의 핏줄을 이은 사람이 되어야 늦게나마 제대로 된 도리로 회귀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내 네가 말한 대로 잠시 제국의 황제에 있을 것이나, 그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닐 것이다.”

코리온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아이가 자라 황제의 자질을 갖출 때까지 잠시 내정을 맡는 정도로 만족할 것이니 그 이후엔 학자의 위치로 돌아올 생각이다. 태자저하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틀림없이 훌륭한 성군이 될 거다.”

샤드니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코리온이 그를 달래듯 말을 이었다.

“걱정 마라, 태자저하의 혈통에서 나온 딸로 내 장자를 삼고 나면 그 동생들은 너와의 사이에서 난 2세들이 자리할 것이니.”

“......알겠습니다.”

잠시 굳은 표정으로 코리온의 얼굴을 바라보던 샤드니가 생각 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도록 기특하게 행동하는 샤드니의 모습에 코리온이 내심 기뻐하며 그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하지만 가슴에 안겨있던 샤드니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지고 있다는 사실을 코리온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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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 회의 본문에 있던 일러스트, 삽화, 전황도는 유조아 개편으로 태그 사용이 불가능해져서 일단 지웠습니다. 팬카페 http://cafe.daum.net/TheIronVein 으로 가시면 지워진 그림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개편이 끝나는대로 그림은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추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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