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76 회: Part 14. 매화는 봄을 기다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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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 복도에서 베흔과 마주친 세네피스 황후는 사뭇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근위대장 표정이 왜 그러시오?”
잔뜩 죽상을 하고있던 베흔은 마지못해 표정을 펴 보이며 대답했다.
“코리온 대군이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아서 큰일입니다. 몇몇 교수들의 증언을 짜집기해도 부족하고......녀석이 워낙 용의주도하게 행동하고 다녀서......”
“아니, 그럴 리가 있나? 그런데, 그 허여멀건 서생녀석이 천하의 근위대 심문에도 입을 안열다니......세상에......정말 뜻밖이요.”
황후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레곤 대공주라도 들여보내서 설득해보시지 그러시오?”
“그건 이미 어제 했죠. 하지만 설득이고 뭐고 대공주저하께서 먼저 졸도하셔서......부마 예르마크 경을 대신 들여보냈는데도 소용없었습니다.”
“이런, 이런......”
세네피스가 내심 쾌재를 부르며 겉으로는 최대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주페 태자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거요?”
“35층 영빈관 밀실에 억류되어있습니다.”
“내 가서 좀 만나봐도 되겠소?”
“황후폐하께서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베흔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위험한 인물이오니 수에보를 동반하도록 하십시오.”
“됐소. 혼자 만나도 괜찮으니.”
창밖을 우두커니 내다보던 주페는 문 열리는 소리에 뒤를 휙 돌아보았다. 그는 수하 하나 거느리지 않은 채 가방 하나를 들고 문앞에 서 있는 세네피스 황후의 모습에 입술을 굳게 깨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당신과 할 얘기 없습니다.”
문을 잠근 황후는 주페의 쌀쌀맞은 태도에도 아랑곳없이 그에게 거리낌없이 다가섰다.
“머리를 다치셨군요.”
황후가 드레싱을 붙인 이마에 손을 뻗자 주페는 그의 손을 거칠게 쳐내버렸다.
“저를 언제 처형하실 겁니까?”
“태자저하를 구해드리기 위해 제가 백방으로 애쓰고 있으니......외롭고 힘드시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황후가 입가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주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다.
잠시 머뭇거리던 주페가 물었다.
“코리온도 잡아들였겠죠? 그 애를 어떡하실 겁니까?”
“만약 제가 그 애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면......절 어떡하실 건가요?”
황후의 회색빛 맑은 눈동자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머뭇거리는 그의 태도에서 모든 것을 짐작한 주페는 아무 대답 없이 다시 창을 향해 돌아서고 말았다. 그의 등뒤로 조심스럽게 다가선 황후는 태자의 넓은 어깨를 조심스럽게 껴안으며 그의 몸에서 풍겨오는 향기를 가슴깊이 들이켰다.
“그래요......이 체취군요......대문회 때 절 안아주시던 당신 가슴에서 풍겨오던 그 살내음이.....”
“코리온은 지금 어찌되었습니까?”
주페가 다시 묻자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황후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근위대에 잡혀와 있습니다. 저로서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주페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떨구었다. 황후는 주페의 등을 꼭 껴안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당신이라는 여자는.......정말......”
주페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한다 해도 내 마음은 절대로 변치 않을 거요......어차피 각오하고 있었소......이제 코리온과 나 두 사람 모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깊은 한숨을 내쉰 황후가 그의 등에서 천천히 떨어지며 낮게 입을 열었다.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문득 뒤를 돌아본 주페에게 세네피스가 들고 온 가방을 내밀었다.
“말씀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황후가 내민 가방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받아든 주페는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열어보았다.
“허, 헉!”
순간 창백해진 얼굴의 주페가 가방을 쥔 채 자리에 털석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캡슐을 두 손에 쥔 주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황후가 조그맣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나름대로 애썼지만......따님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모디아크가....모디아크가......”
바닥에 이마를 댄 주페가 거칠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성스럽게 싸놓은 작고 흰 면포 안에서는 죽은 모디아크의 손바닥만한 시체가 이 아버지를 야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도 아끼던 딸의 처참한 시체를 품에 꼭 끌어안은 주페는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심이라는 생도가 지금 근위대에 잡혀와 있습니다. 레곤에게 이걸 전달해주려 왔던 것 같습니다. 누구 소행인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울고있는 주페 앞에 꿇어앉은 황후가 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짚었다. 슬픔에 잠긴 주페를 조용히 품어안은 황후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주페의 두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로 그의 가슴이 젖어들어가고 있었다.
“제 형편이 이러하니......아기 시신을 맡아주십시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주페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고개를 끄덕인 세네피스는 주페의 떨리는 손에서 작은 시체를 다시 건네받아 캡슐과 함께 가방에 챙겨넣었다. 아기에게서 끝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던 주페가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제 흔적을 남긴다는 꿈도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니......제 죽음이 조금 더 처절하게 다가오는군요.”
주페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의 말에 황후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제가 태자저하를 반드시 살려드릴 테니 걱정 마십시오.”
“제발, 절 혼자 놔둬 주십시오.”
주페가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세네피스 황후는 하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없이 돌아나가는 황후를 조용히 지켜보던 주페가 들릴 듯 말듯 말했다.
“시신이나마 지켜주셔서......감사합니다.”
자신을 향해 문득 고개를 돌린 세네피스의 눈시울 역시 젖어있었다는 것을 주페는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보인 세네피스가 짧게 대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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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떠날 차비를 분주히 차리고 있던 샤드니는 주페 태자의 유골 감정을 의뢰했던 의사의 갑작스런 알현에 호기심어린 눈을 부릅떴다. 샤드니가 사뭇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벌써 결과가 나왔나?”
샤드니의 물음에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던 의사가 입을 열었다.
“그게......안좋은 소식입니다.”
“안좋다니?”
“유골에서는 유전물질 추출에 실패했습니다. 제대로 매장만 되어있었다면 몇십만년이 지났어도 아무 문제도 없었겠지만 화학적인 손상이 너무 심해서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부장품으로 묻혀있는 유품들 표면을 조사중입니다만 큰 기대는 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얼굴을 살짝 찡그린 샤드니가 다시 물었다.
“그럼......혈통조사도 불가능하다는 건가?”
“일단 함께 묻힌 대군마마의 머리칼을 이용해 혈흔의 주인이 황족이 맞는지 여부만이라도 확인할 예정입니다.”
“뭐, 굳이 옛날 머리칼 쓸 필요도 없지.”
자신의 옷을 잠시 뒤적거린 샤드니는 그 한쪽에 붙어있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 한 올을 조심스럽게 집어 의사에게 넘겨주었다.
“학장님과 제대로 된 사촌지간인지 알아 봐.”
샤드니와 함께 콜로니 아카데미의 유전자은행을 찾아온 코리온은 여전히 힘이 없어 보였다. 샤드니가 그런 코리온에게 힘을 주려는 듯 한 번 밝은 웃음을 지었다.
“지금 치안군을 총동원해 찾고 있으니 조만간 도굴범을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 염려 마십시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코리온은 그를 기다리던 은행 책임자의 모습에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 오십시오, 리쿠 학장님.”
옛날 모디아크의 합성을 담당하기도 했던 지금의 책임자는 이곳을 찾은 코리온의 모습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태도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코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그러는가?”
“아, 아닙니다,”
“옛날 이곳에서 나와 주페 태자저하가 딸을 가지지 않았던가.”
“예. 그렇습니다.”
책임자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당시에 태자저하께서 당신의 세포를 남겨두라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책임자의 어깨가 순간 들썩하고 있었다. 코리온과 샤드니의 얼굴을 한번씩 바라본 그는 샤드니의 무서운 시선에 급히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코리온이 눈살을 조금 찌푸리며 물었다.
“그것이......지금 남아있겠지? 내 어제 코드도 알려줬을 텐데?”
“그게......”
책임자의 목소리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코리온의 표정이 창백해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 샤드니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빨리 이실직고하지 못하겠는가! 학장님께서 지금 남아있냐고 묻고 계시지 않은가!”
둘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떨고있던 학자가 갑자기 바닥에 납죽 엎드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죽여주십시오!”
“무슨......무슨 일이 있던 거냐?”
가늘게 치켜 뜬 코리온의 갈색 눈동자가 갑자기 살기를 뿜고 있었다. 바닥에 엎드린 의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없어졌습니다......학장님께서 오신다는 연락에 서부 유전자은행에 연락해 캡슐을 확인해 보았는데......내용물은 감쪽같이 없어져 있다고 합니다! 부모코드를 모르면 내부인조차 찾아낼 수 없는 것이온데.....어떻게 된 일인지 소인도 도저히 모르겠사옵니다!”
코리온이 이를 꽉 악물었다. 움켜쥔 그의 두 주먹이 파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언제......없어진 건가!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그때 이후로 200년이 넘도록 한번도 열어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곳은 지난 500여 년간 단 한번도 사고 같은 건 있은 일이 없던 곳입니다! 다른 모든 세포들은 다 제대로 보관되어있는데 오직 태자저하 세포만 없어졌습니다! 저도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절망스런 표정을 지은 코리온이 맥없이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반짝이던 갈색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히 맺혀 있었다.
붉어진 눈시울로 잠시 멍 하니 앉아있던 코리온이 목메인 소리로 의사에게 다시 물었다.
“그분과 내 피가 섞인 후손을 만들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코리온의 눈치를 살핀 의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두 가지 방법이......더 있습니다.”
“두 가지?”
“그분의 유골이나......시신 일부나 어디에서든 유전정보를 간직한 물질을 찾아낼 수 있다면......체세포를 조작해 새 생식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옵고......이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뒤에 서 있던 샤드니가 짓고있는 의기양양한 미소와 코리온의 절망어린 표정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코리온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리고......두 번째는?”
“행여나 태자저하께서 다른 자녀를 두셨다면......그 자녀의 세포를 조작해서......원 생식세포를 비교적 유사하게 복원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엔 두 분 사이의 자녀라기보다는......대군마마와 태자저하 자녀 사이의 자손이라는 편이 정확하겠죠. 어쨌든 태자저하의 후손임에는 틀림없으니......”
“그분께서는 다른 자녀를 두지 않으셨다.......모디아크밖에는......”
고개를 번쩍 든 코리온이 갑자기 샤드니를 휙 돌아보았다. 움찔 하고 있는 샤드니에게 코리온이 대뜸 질문을 던졌다.
“황후의 수하들이 모디아크를 죽이는 광경을 네가 틀림없이 보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그렇습니다.”
“그럼 모디아크의 시신 역시 그 망할 년이 어찌했겠지?”
“아마도.....그렇겠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코리온이 지팡이를 짚고 급히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무언가에 힘이라도 얻은 듯한 코리온의 모습에 덜컥 불안한 기분이 든 샤드니가 허둥지둥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왜 그러십니까?”
“아직 희망이 두 가지나 더 남아있구나.”
코리온은 그 이상은 말해주지 않았다. 주페 태자의 유골을 훔쳐오면서 나름대로 안도하고 있던 샤드니로서는 학장의 이런 자신만만한 태도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테나토에서 카렐을 놓친 일부터 시작해서 델루지 종가에서 있었던 일은 물론이었고 카렐의 장태자 선언까지 줄줄이 악재가 이어지면서 베흔의 기분은 한마디로 최악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문제는 ‘황실‘ 근위대로서 ’황손‘을 자처하고 나선 카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압하느냐였다. 물론 근위대에 대한 베흔의 지배력은 확고했지만 카렐이 태자라는 사실 하나는 도저히 부인할 수가 없는 명백한 사실인 이상, 부분적인 항명이나 이탈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언제든 현존하고 있었다.
“일단 한동안은 내부단속에 주력해야겠습니다. 지난번 4차 혼란기 때 시로가 아메샤 스펜타 군단을 데리고 배반을 했던 전철을 되밟지 않으려면요.”
쿠베의 조언에 베흔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베흔이 가장 신경쓰고 있는 존재가 바로 ‘전과’까지 있는데다가, 카렐에게 투항해버린 루토 녀석이 한때 참모장으로 있던 ‘아메샤 스펜타 군단’이었다.
무려 3만에 달하는 그 최정예 병력은 원래는 근위대장인 자신의 휘하에 있던 부대였지만 세네피스 황후 시절, 근위대 견제를 위해 슈로 기사단과 함께 황제 직속부대로 개편되어버린 후였다. 초기 결성 당시부터 언니인 오르마즈의 입김이 유난히 많이 작용했던 그 부대를 세네피스 황후가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한 친위군으로 사용하려 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다.
주로 6세대 위주의 최고참급 베테랑 가디언들과, 옛 TSG 열성 민병대원 출신 정규군으로 짜여진 그들은 이번 제위경쟁에 중립을 선언한 사령관 케레사스 솔로스 경의 지시에만 따를 뿐 베흔의 말은 개 짖는 소리 정도로 치부해버리는 천하의 고집불통 광신도 녀석들이었다. 베흔도 세네피스의 몰락 이후로 저 망할 부대를 해체하는 것을 몇 번이나 심각하게 고려했었지만 답답하기가 이를 데 없는 그들의 기질을 자칫 잘못 건드려 일을 내느니 매번 포기해버렸던 터였다.
“아메샤 스펜타 놈들하고 남부파견군이 제일 문제인데......”
카렐이 한때 사령관으로 있던 근위대 남부파견군까지 머리에 떠올린 베흔은 심난한지 머리를 연신 긁적거렸다.
“어쨌거나 당장 중요한 건 탈라스에서 동부 녀석들을 꺾어서 녀석들의 팔다리를 잘라내는 건데......문제는 서부놈들 하는 짓거리도 영 맘에 안 든단 말이야......”
“대장님, 아켐의 파예드 아카데미에서 코리온 리쿠 학장님이십니다. 독대를 요구하시는데, 연결해드릴까요?”
부관의 보고에 한참 회의에 열중하던 베흔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서생이 웬일이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베흔은 옆에 딸린 자그만 소회의실로 들어섰다. 먼저 연결되어있던 코리온의 형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리쿠 학장님.”
베흔이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코리온에게 머리를 숙였다.
베흔에게 오만하게 눈인사만을 한 코리온은 평소처럼 침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난번 플라칼 가 영지에서 있었던 기습사건에 관해 내 공식적인 조사결과를 보내달라 부탁드렸건만 아직 별다른 대답이 없으시구려. 근위대장?”
“그......그건......아직 조사중이라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될 듯 하오니......”
“그런데 이상한 건 그 피해당사자인 내게 진술을 요구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거요. 참으로 희한하지 않소? 나는 할말이 가슴속에 잔뜩 쌓여있는데 말씀이요.”
궁지에 몰린 베흔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코리온이 그를 몰아붙이듯 쉴새없이 말을 토해냈다.
“나를 폭행했던 치안군 장교복장 차림의 사내와 그 수하들 얼굴과 언어구사습관, 신체특징 역시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으며, 그들이 타고있던 차의 고유코드까지 머릿속에 담고 있으나 그 정보를 그쪽에서 요구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하구려.”
“조만간 근위대 수사관을 보낼 것이니......”
“됐소. 내 근위대장이 바쁘신 것을 잘 아니......잠깐 짬을 내 직접 자료를 만들었소이다.”
코리온이 미리 준비해 둔 서류뭉치를 들어 보이자 베흔의 표정이 순간 조금씩 일그러들고 있었다. 그런 베흔의 변화를 즐기듯 미소를 지은 코리온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이걸 근위대에 보내야 할지......플라칼 가에 보내야 할지 심히 혼돈스러운데......어찌해야 하겠소?”
코리온의 ‘협박아닌 협박’에 베흔이 이를 악물었다. 이번 라마단 학회장의 기습사건으로 제후들 사이에 망신거리로 전락한 플라칼 가문이 그 배후로 델루지 가와 근위대를 의심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일족인 델루지 가에 대놓고 불평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빠져나갈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다면 망신을 감수한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베흔이 표정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도대체 무얼......원하십니까?”
베흔의 질문에 코리온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 보안국 자료보관소에 주페 태자저하의 시신 일부가 보관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소만......사실이요?”
잠시 기억을 쥐어짜낸 베흔이 조금 자신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워낙 옛날 일이어서 가물가물하지만......아마 그럴겁니다.”
“내 사람을 보낼 터이니 그걸 내게 돌려주시면 고맙겠소이다.”
베흔은 있는대로 자신을 협박한 코리온이 생각 외로 ‘별것아닌 물건’을 요구하자 내심 안도하고 있었다. 죽은지 200년도 넘은 사람의 기분 나쁜 시체조각을 가지고있어 봤자 이제와 그다지 쓸모도 없는 일이었다.
“뭐, 원하신다면 기꺼이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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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지 출판에 관한 질문사항들을 정리해 올립니다. ^^
[1] 표지와 도장, 목차, 제목에 쓰인 고대문자에 관해
고대 페르시아에서 실제 쓰였던 아리안 설형문자입니다. 단순한 장식으로 사용된것은 아니고 각각이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ex) 제 도장 밑에 쓰인 4 글자는 ta-sha-u-fa 즉 제 닉을 뜻합니다. ^^
[2] 3, 4권 출판시기에 관해
2권 출판의 경우는 구매자의 경제사정을 감안해 그 간격을 2개월 정도로 잡는 것이 보통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3, 4권 원고작업은 교정에 드는 시간을 고려해 5월 초 완성을 목표잡고 이미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상범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3권 : 파트3 나머지 부분 ~ 파트5 (68회~101회) --- 연재분에서 삭제된 파트4 포함
*4권 : 파트6 (~ 파트7...?) (102회~145회)
시범조판해본 결과 생각보다 양이 너무 많아 파트7이 들어갈지 여부는 유동적입니다.
(이대로 조판한다면 현재 분량으로 매권 450페이지 이상이 나오게 됩니다. -_-;; 쿨럭)
물론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3, 4권은 1, 2권과 달리 내용상 므흣한(?) 부분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상당히 많아진 관계로 미리 유념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가위질할 생각은 없습니다. ^^;; 특히 이번에는 교정에 각별히 유념을 두어 진행할 생각입니다. 유조아 연재분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어쨌든 첫 출판에서 겪은 서툴렀던 점들을 발판삼아 다음번에는 훨씬 나은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