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77 회: Part 14. 매화는 봄을 기다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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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서스에서의 ‘장태자 선포’와 거의 동시에 북부 일대에는 케스난의 북부길드와 각 노조들을 통해 이 사실이 눈깜짝할 새 알려지기 시작했다. 북부인들의 환호는 말할 나위도 없었지만 일부 과격노조원들은 북부의 피가 섞인 장태자를 공개지지하지 않은 북부제후들을 가리켜 겁쟁이 회색분자라며 곳곳에서 단 몇 시간만에 소요사태까지 일으킬 정도로 그 파장은 어마어마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원하시는 대로 되었습니다.”
카파키 종가로 카렐을 찾아온 케스난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그 고혹적인 미소를 던졌다. 선언식 직후 곧바로 북부부터 찾아온 카렐은 북부의 반응을 알리는 케스난의 보고에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가 내민 자료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이곳에 도착한 카렐은 북부 최대의 컴플렉스인 1번과 7번, 10번 컴플렉스의 공개석상에 황후와 함께 얼굴을 내밀고 환호하는 북부인들에게 장태자로서의 모습을 처음으로 내보이고 돌아온 참이었다.
“노조들까지 움직이기 시작하면 북부는 걷잡을 수 없이 되고 말죠,”
“너무 시끄러운 지경까지는 가지 않는 게 좋아. 그래봤자 근위대놈들 끼어들 빌미만 주고 말 테니. 분위기는 적당한 정도로만 잡도록 해.”
“물론입니다.”
씨익 웃음지은 케스난은 옆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 보라는 듯 카렐에게 숨결까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서며 속삭였다.
“하지만 그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어서 저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지경이죠. 후훗, 전하와 마주할 때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제 가슴처럼 말이죠.”
카렐의 귀밑에서 그의 체취를 가볍게 들이킨 케스난이 창백해진 아메스와 세네피스 황후에게 뻔뻔스런 미소를 씨익 지었다.
“듣기 싫은 말은 아니군.”
카렐이 짐짓 건성 대꾸하며 들고있던 파일의 페이지를 넘겼다.
제네르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291년의 사태 때도 단 열흘만에 3만이나 되는 민병대를 조직해 오르마즈 경을 지원했던 게 북부인들이죠. 13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2등 국민 취급받아온 북부인들이니 남은 건 이제 악 뿐일 겁니다. 그러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전혀 이상할 건 없습니다.”
베아트릭스가 밝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ㅤㅋㅞㄹ크에 남아있는 가디언부대나 정규군은 물론이고 탈라스의 슈로 기사단과 슬레이프니르도 지금 사기충천해 있습니다. 몇몇 부대에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군기에 황룡을 새겨 넣는다고 벌써 난리들입니다.”
아랫사람들의 조금은 격앙된 반응에도 카렐은 여전히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든 북부나 동부제후들 너무 난처하게 하지 않도록 하고, 북부는 어차피 근위대나 다른 지역에 대응할 능력이 안되니 지배계층은 일단 숨죽이고 있으라고 해. 북부에서 꽤 많은 지원병이 한번에 몰려들어올 테니 조페한테 미리 준비 확실히 해 두라고 지시하고. 그리고.....”
무어라 더 지시하려던 카렐은 우베의 눈짓에 말을 문득 멈추었다. 귀엣말로 그의 보고를 들은 카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지금?”
“예. 무슨 일인지 서두르는데요?”
“그래....뭐, 상관 없지. 귀한 손님이니까 내 지시한대로 준비 잘 해두게.”
회의를 끝낸 카렐은 바람도 쐴 겸 아랫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종가 마당에 나선 카렐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더미를 열심히 두들기는 솔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자이납 녀석의 모습이었다.
“너 팔이 그 모양인데 가르칠 수 있겠냐?”
“이젠 그럭저럭 쓸만하다니까요.”
자이납이 프레임을 댄 왼팔을 공중에 휘휘 휘두르며 넉살좋게 웃음지었다.
“역시 학장님께서 몸소 만지고 살펴주신 그 기운이 그대로 남아서......”
“그래, 그 소리가 왜 안 나오나 했다.”
카렐은 결국 자이납의 머리를 또 한번 쥐어박고 말았다.
“맨날 리쿠 학장만 찾을 거면 도대체 뭐 하러 내 밑에 와 있는 거냐? 학장 개인경호원으로나 가지?”
“헤헤, 글쎄요? 어쩌면 전하 승은이라도 입어서 내명부에라도 들어갈지......”
“내가 미쳐.”
머리를 쥐어뜯는 카렐에게 속 좋게 웃음지은 자이납은 땀을 뻘뻘 흘리며 더미를 두들기고 있는 솔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직계 후손들은 이미 거의 몰살당한 북부 코윈의 카파키 종가에는 전사단 사람들이 찾으면서 모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솔 연습하는 태도가 전보다 훨씬 진지해진 것 같습니다.”
어느새 카렐에게 다가온 제네르가 말을 건넸다. 그의 말마따나 가검으로 더미를 후려치는 솔의 눈가에는 평소에는 절대 보이지 않던 매서움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모습에 씁쓸한 표정을 지은 카렐이 힘없이 대답했다.
“아침엔 자기도 기사단이나 슬레이프니르에 들어갈 수 있겠냐고 묻던걸.”
“정말입니까?”
제네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카렐에게 되물었다. 어깨를 으쓱 한 카렐이 대답했다.
“네피가 펄펄 뛸 게 뻔하니 일단은 안된다고 못박았는데......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는 않은데 큰일이야.”
마당에서 솔을 지켜보고 있던 카렐은 갑자기 본가 건물 쪽을 문득 올려보았다. 세네피스 황후가 3층 테라스에 서서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런 가벼운 시간에조차 어머니 세네피스 황후는 이렇게 멍하니 딸을 바라보며 혼자 생각에 잠겨있곤 했다.
카렐이 넉살좋게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자 황후도 마지못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응?”
문득 위를 올려보던 제네르의 눈에 띈 건 눈에 익은 셔틀 한 대였다. 먼 하늘에서 날아온 그 셔틀은 주변을 한바퀴 빙 돌고는 마당의 소형 주기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뭡니까?”
제네르의 질문에 가벼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카렐은 기다렸다는 듯 주기장 앞으로 다가갔다. 느닷없이 방문한 이 셔틀의 옆에는 이곳 카파키 종가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파예드 아카데미의 표시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다시 만나 반갑소. 하심 예킨터스 교수.”
카렐이 사뭇 밝은 얼굴로 셔틀에서 내려서는 하심에게 인사말을 던졌다.
“다시 만나뵈어 정말 기쁩니다. 카렐 님.”
주변의 눈치를 한 번 살핀 하심은 건강해 보이는 카렐의 모습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반갑게 맞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저 서부 년이 왜왔어?”
멀찍이에서 들으란 듯 투덜거리는 당사자는 ‘골수 북부사람’ 토로 로버넬 경이었다. 물론 대놓고 욕을 퍼붓는 그가 굳이 아니어도 마당에 모여있던 북부 출신 전사단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쨌든 그다지 고운 건 결코 아니었다. 눈치 없는 토로 경에게 무서운 눈초리로 경고를 대신한 카렐은 수하들의 사나운 시선을 무시하며 하심과 나란히 종가 건물 안에 들어섰다.
“그런데, 주페 태자저하 묘소가 도굴당했다더니......어떻게 된 거요?”
“지금 치안군에서 전력을 다해 수사중입니다. 현장을 목격한 증인도 있으니 조만간 해결될 것 같습니다.”
‘적’인 코리온의 왼팔이기도 한 하심과 카렐이 너무도 다정하게 대화하며 들어서는 모습에 로비에서 우베와 수다를 떨고있던 아메스도 대뜸 얼굴을 찡그렸다. 큰 키는 아니지만 날카로운 눈매, 서부 특유의 두드러진 이목구비에 파예드 정교수의 검은 무명포까지 두른 하심의 품위 있는 모습에 갑자기 두 눈이 휘둥그레진 우베가 입을 쩍 벌리며 중얼거렸다.
“우와아, 역시 여자는 그저 서부여자가 제일......”
“정말......”
아메스의 째려보는 눈길에 얼른 입을 다문 우베가 계단을 오르는 카렐의 뒤에 허둥지둥 따라붙었다.
“그런데, 학장이 내게 부탁할 게 있다니, 도대체 뭐요?”
“들어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심이 옆에서 알짱거리는 우베를 의식하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알현실에서 먼저 기다리던 세네피스 황후는 자신에게 공손하게 절을 올리는 하심의 모습을 줄곧 무표정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함께 있는 카렐의 수하들을 둘러본 하심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세네피스 태후폐하와 카렐 님 두 분과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하심, 넌 아직 호칭이 그 모양이냐?”
마지못해 방을 비워주며 제네르가 결국 한마디 던지고 말았다. 세네피스 황후 역시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은 표정으로 쏘아붙이고 있었다.
“내 딸이 장태자임은 이미 세상에 다 밝혀졌거늘, 호칭을 그리함은 그다지 적절치 못한 듯 하군. 그리고.....난 그냥 황후로 불러주게나.”
가타부타 별 대답이 없던 하심은 방이 비자 그제서야 황후에게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 코리온 세닉 리쿠 학장님의 공식사절 자격으로 온 것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잠시 코웃음을 친 황후는 오만하게 자리잡고 앉으며 물었다.
“그래, 날 찾아온 이유가 뭐지?”
황후의 질문에 하심이 냉큼 대답했다.
“리쿠 학장님께서 따님이신 모디아크 세닉 리쿠 아씨의 시신을 찾고싶어하십니다.”
순간 표정이 조금 굳어진 황후가 카렐을 문득 돌아보았다. 황후가 아무 대답이 없자 하심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보았다.
“매장한 장소를 알려주시면 저희 사람들이 다시 수습해 먼저 돌아가신 주페 태자저하와 합장할 예정입니다. 정치적인 문제를 떠난, 친부이신 학장님의 인도적인 요구이십니다.”
카렐 역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세네피스 황후의 표정에는 얼핏 보기에도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황후가 갑자기 밖에 있던 집사를 불러들였다.
“내 짐 속에 붉은 칠보상자가 있을 것이니 그 안에 파란색 편지 한 통과 붉은 술이 달린 두루마리가 들어있을 것일세. 그걸 이리로 가져오게.”
카렐도, 하심도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황후의 명을 받고 달려갔던 집사는 황후가 지시한 물건들을 들고 몇 분 되지 않아 돌아왔다. 그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를 바라본 하심의 표정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주페 태자께서 리쿠 학장에게 남긴 문서더군. 캡슐과 함께 발견되었던 것인데, 자네가 놓고 갔던 것인가?”
“......그렇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 한 맺힌 문서를 마주한 하심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학장은 아마 읽어보지도 못했을 거야. 내가 뜯어보았을 때 봉인도 그대로더군. 일부러 훔쳐보려고 뜯어본 건 아니었네. 나 말고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주인에게 전해주게.”
하심은 황후가 내준 두루마리를 소중하게 받아 가방에 챙겨 넣으며 다시 물었다.
“캡슐은......”
막 질문하려는 하심에게 황후는 색이 조금 바랜 파란색 봉투를 들어 보였다.
“그게 어찌되었는지는 이 글 안에 있을 걸세. 이건......태자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학장에게 전해주라고 내게 부탁하신 유서네. 그간 학장이 나를 계속 피해 전해줄 수가 없었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내가 가지고있을 물건이 아니니 학장에게 전해주게.”
하심은 주페 태자의 필체가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 편지지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봉투를 살펴본 하심은 봉인이 완벽한 것을 확인하고는 방금 전의 두루마리와 함께 가방에 챙겨 넣었다.
황후와의 알현을 마치고 돌아 나온 하심은 카렐과 함께 오르마즈의 묘 앞에 서 있었다. ‘오르마즈 님의 묘가 여기 종가에 있지 않느냐’며 뜬금 없이 물었던 하심은 언제 마련했는지 서부에서 나는 흰 백합꽃 한 다발까지 미리 준비해 온 모습이었다. 가져온 꽃다발을 그의 무덤 앞에 내려놓은 하심은 비석 앞에 끓어 앉은 채 한참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검은빛 대리석으로 장식된 무덤 주변에는 카렐이 얼마 전 심어놓은 매화나무가 곱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다. 함께 죽은 애마 ‘절영’의 마묘 역시 주인의 묘지 발치를 지금까지 충성스럽게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하임달의 전장에서 죽음까지도 함께 했던 남편 마에두 트라티누스 경의 합장묘는 ‘대역죄인과 남동생을 함께 둘 수는 없다’는 당시 트라티누스 가 종장 마굴루 부인의 명으로 이미 동부로 옮겨져 간 후였다. 그리고 그의 관이 묻혔던 자리는 야속한 동부인들에 대한 북부인들의 원망을 상징하는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자신의 곁을 지켜 준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그의 심정을 말하려는지, 오르마즈의 봉분 옆에서 검은 입을 벌린 채 그대로 내버려져 있었다.
“이곳을 이제야 올 수 있게 되었네요.”
무덤 주변을 둘러보며 하심이 붉어진 눈시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분하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딱 한번 뵈었어요. 예. 딱 한 번뿐이었죠.”
“......”
“그 별 볼일 없는 일 하나로 지금까지 수절한다고 사람들은 절 비웃을 거예요. 그래요. 잘 알아요. 그때 이분이 그다지 진지하지 못했었다는 것도 잘 알아요. 하지만 정이란 게 참 이상하죠? 오는 만큼 가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죠.”
오르마즈의 생전 모습이 새겨져있는 비석을 쓰다듬으며 하심은 그 크고 검은 눈에 가득히 맺힌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아직까지 주페 태자저하를 잊지 못하시는 학장님 심정을 제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이것 때문일 거예요. 저도 이 정도인데......학장님 심정은 오죽하셨을까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카렐의 거듭된 질문에도 하심은 조용히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때 일은 세상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기로 이분과 굳게 약속했어요.”
비석에 입을 맞추고 일어난 하심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며 중얼거렸다.
“저렇게 파란만장하게 사셨던 분이 정작 후손은 단 한 명도 남기지 못하셨다니.....참 아이러니하죠?”
하심의 말에 카렐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를 향해 돌아선 하심은 오르마즈와 너무도 닮은 그 얼굴을 올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분 생각날 때 여기 다시 와도 되죠?”
“물론. 언제든지.”
웃으며 대답한 카렐은 훌쩍거리고 있는 하심의 어깨를 꼭 껴안아주었다.
카렐의 품에 기댄 채 한참동안 울먹이던 하심은 얼굴에 남은 눈물자국을 닦아내며 셔틀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는 거요?”
“아뇨, 황궁하고 ㅤㅋㅞㄹ크에 잠깐 들러야 돼요.”
“황궁에는 왜?”
“근위대에서 보관하고 있던 주페 태자저하 유해를 받아오라고 하시더군요. ㅤㅋㅞㄹ크에는 붓 만드는 친구가 왕대를 좀 사다달라고 한 게 있어서 들러야 하구요.”
“흠, 그 늑골 조각을 결국은 받아내가는구려.”
자신이 알려주었던 바로 그 사실을 떠올린 카렐이 쓴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심은 편지와 두루마리가 든 가방을 단단히 어깨에 짊어지며 셔틀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문앞까지 하심을 배웅해 준 카렐은 안에 들어서는 그를 향해 명랑하게 말을 건넸다.
“좋은여행 하시오. 하심. 나중에 좋은 얼굴로 다시 봅시다. 나도 2시간 후에 ㅤㅋㅞㄹ크로 떠날 거요. 기왕 ㅤㅋㅞㄹ크까지 갈 거면 가서 다시 연락하시구려. ㅤㅋㅞㄹ크의 내 사촌 악어들하고 뱀들 소개시켜 줄 테니.”
카렐의 농담에 하심이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는 하심에게 가벼운 눈인사를 보낸 카렐은 그가 탄 셔틀이 떠나는 모습까지 줄곧 지켜보고 있었다.
“우베!”
카렐의 고함소리에 하심을 내내 구경하고 있던 우베가 냉큼 달려왔다.
“셔틀은 점검했나?”
카렐이 작은 목소리로 묻자 우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종사 모르게 정밀조사 했지만 이상한 반응은 없었습니다.”
“서부 쪽 연락책 동원해서 플레렌 가 동향 각별히 살피라고 일러라. 특히 샤드니 플레렌 경 동향을 빠짐없이 파악해서 내게 보고하도록 해. 그리고......ㅤㅋㅞㄹ크에 있는 루토 녀석한테 알려서 예킨터스 교수 뒤를 놓치지 말고 추적하도록 해. 무언가 감이 별로 안좋다.”
황제령을 향한 워프비행에 들어가면서 조금 흔들렸던 기체가 안정되자 하심은 자리에 편하게 기대앉으며 가방을 품에 꼭 껴안았다. 그제서야 품속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고 있음을 깨달은 하심은 핀과 함께 옷자락 속에 끼어 있던 작은 쪽지를 발견했다. 소매치기 수준을 능가하는 카렐의 빠른 손놀림에 하심이 내심 기가 막혀 하면서 그 종이를 펼쳐들었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황제령을 떠나기 전에 꼭 연락주시오.”
해서체로 제대로 쓰여진 글 밑에는 카렐의 수결이 되어 있었다. 말로 ‘만나자’고 해서는 들을 하심이 아닌 것을 잘 아는 카렐이 이렇게 라도 뜻을 전한 모양이었다. 종이를 그대로 먹어 없애버린 하심은 방금 만난 카렐이 황제령까지 가서 왜 자신을 또 만나자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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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퀘ㄹ' 자가 계속 깨지는군요. 그렇다고 이름을 바꿀수도 없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