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93 회: Part 14. 매화는 봄을 기다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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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 물담배 시샤를 입에 문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자료들을 읽던 카렐은 하심이 무슨 이유엔지 자꾸 자신을 돌아보며 미소짓고있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였다.
“같이하겠나?”
카렐이 물담배를 내밀자 하심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라마단 기간 낮에 이걸 피면 곤란하긴 하지.”
자신은 라마단 따위는 전혀 상관 않는다는 듯 카렐이 태연하게 물담배를 다시 입에 물며 서류로 시선을 가져갔다. 아켐 3번 행성의 발 가 종가와 4번 행성의 메디스 시를 오가며 머무르고 있던 카렐은 샤드니 녀석이 탈라스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며 그때 가서 코리온을 구해낼 계획에 온 신경을 쏟고 있던 차였다.
니치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서류를 살피던 카렐은 하심에게 짐짓 건성 질문을 던졌다.
“자네 부모님들이 여전히 여기 계시다지? 뭐하고 계신가?”
“아버님은 수명개조 당대시고 체력도 약하셔서......집에서 계시구요. 어머님은 공립학교 교사로.....계셨었죠.....며칠 전까지.....”
하심이 힘없이 대답했다. 서류를 살피던 카렐은 풀죽은 표정의 하심에게 다시 시선을 주었다. 하심이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말했다.
“하나 있는 딸이 학장님 곁에 있다고 정말 자랑스러워 하셨는데.....그 딸 때문에 이젠 교단에서도 쫓겨나셨다고 하니......”
샤드니가 하심의 가족에게까지 해코지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아 제대로 악감정을 품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하심은 담배를 입에 문 카렐이 쪽지 한 장을 불쑥 내밀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 타르서스에 안전한 거처를 마련해 뒀으니 일단 조용해질 때까지만이라도 피해계시라고 하게나. 샤드니 그자가 무슨 짓을 할지 알 수가 없으니. 서부는 연좌제가 아직 남아있는 곳 아닌가.”
쪽지를 받아든 하심은 짐짓 무표정한 얼굴로 물담배를 빨고 있는 카렐을 다시 한번 빤히 바라보았다. 카렐에게서 ‘타르서스 지방정부 학예보좌관’이라는, 무얼 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직책을 받은 하심은 서류상으로는 이제 어엿한 6품의 지방공직자의 신분이었다. 그리고 카렐이 내민 주소는 틀림없는 타르서스 별궁에 딸린 ‘공직자 관사’였다. 그 정도면 아무리 서부 최고제후라지만 샤드니가 아랫사람을 동원해도 멋대로 몹쓸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그런 곳은 결코 아니었다.
카렐이 뿌연 물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중얼거렸다.
“탈라스에서 나와 함께 있는 자네를 그자가 본다면 자네 부모도 무사치 못할테니.”
“......감사합니다.”
갑자기 울컥 해진 하심은 카렐을 바라보며 가까스로 대답을 내놓았다.
“말은 탈 줄 아나?”
“학장님 따라서 조금 탔습니다. 처지지는 않을 정도.....”
“탈라스 가면 말 타는 연습은 좀 해. 우리 전사단에서는 기마술은 기본이거든. 우베 그 녀석같이 매번 말 태워달라고 징징거리던가 폼 안 나게 당나귀나 타고다니지 않으면 말이야. 아니면 누구처럼 걸핏하면 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던가.”
카렐이 키득거리며 시로에게 눈짓을 보냈다. 도끼를 손보고 있던 시로는 갑자기 붉어진 얼굴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휴, 왜 괜히 저는 걸고넘어지고 그러시남요.”
“그런데, 리쿠 학장이 말도 타나? 처음 듣는 말인데?”
함께 있던 제네르가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은 승마를 즐기십니다. 아버님이신 부마 예르마크 경에게서 배우셨다고 합니다. 남부에서는 꽤 알려지신 기사 아니십니까. 학장님도 상당한 실력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지난번엔 교내 경주에 나가셔서 이기신 일도 있죠.”
“허, 싸우는 것만 빼고는 뭐 못하는 게 없네?”
카렐이 서류를 읽으며 장난스럽게 중얼거렸다. 카렐이 훅 내뱉은 담배연기에 깜짝 놀란 제네르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어휴, 그거 자주 피면 폐세척해야 되는 거 아시죠?.”
“그냥 입담배야. 사과향이 좋아서 피는 것 뿐이라네. 콧구멍으로 내보내면 싸아 한 게 기분이 좋거든. 나도 귀찮게 폐세척하는 건 영 질색이야. 자네도 피겠나? 아, 맞아, 자네도 유학자였지.”
“전하! 전하!”
태연하게 담배를 뻐끔거리던 카렐은 호들갑을 떨며 안에 뛰어들어온 우베를 힐끔 돌아보았다.
“플레렌 종가에서 들어온 소식입니다.”
“뭔데?”
“새 최고제후 샤드니 플레렌이 오늘 낮에 탈라스로 떠났다고 합니다.”
“제에기랄, 그 귀찮은 놈, 이제야 비켜주는군, 그럼 슬슬 학장을 구할 계획을.......”
들고있던 서류들을 제네르에게 돌려주며 카렐이 중얼거렸다. 카렐의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던 우베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런데......리쿠 학장도 동행했다고 합니다.”
“뭐, 뭐?”
카렐이 얼굴을 찡그리며 담배연기를 훅 뿜어냈다.
“샤드니 경, 아니 공과 함께 탈라스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장의 몸이 많이 안좋아 보였다고 합니다. 제대로 걸음도 옮기지 못해 결국 가디언들에게 업혀서 탔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학교에서 봤을 때는 그 지경은 아니었잖아?”
놀란 표정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하심을 힐끔 돌아보았던 카렐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학장은 군의관까지 대동하고 셔틀에 탔다고 합니다.”
“제길할, 샤드니 그 지독한 놈의 새끼.”
며칠간의 기다림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리자 카렐이 그답지 않게 짜증까지 부리고 있었다. 잠시 발을 동동 구르던 하심이 카렐에게 물었다.
“이제......어쩌죠?”
“어쩌겠나. 우리도 탈라스로 가야지.”
코리온을 사이에 두고 샤드니와의 일전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은 카렐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며 부하들에게 큰 소리로 지시했다.
“모두 황제령으로 돌아간다!”
라마단으로 잠시 접었던 싸움은 이제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지경에 처해버린 코리온을 두고 벌어질 이제부터의 전쟁은 전과는 조금 다른, 더 복잡하고 미묘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카렐도, 제네르도, 하심도 모두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카렐은 손에 끼고있는 반짝이는 페리도트 반지를 바라보며, 그리고 자신의 뜻과 능력에 상관없이 파멸의 길을 밟아갈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주페 태자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이유 없이 번지는 가슴속의 불안감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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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 회의 본문에 있던 일러스트, 삽화, 전황도는 유조아 개편으로 태그 사용이 불가능해져서 일단 지웠습니다. 팬카페 http://cafe.daum.net/TheIronVein 으로 가시면 지워진 그림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개편이 끝나는대로 그림은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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